마스크를 쓴 김도형 교수(50, 단국대 수학과)는 흔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흰 머리카락도 많이 늘었다. 눈빛도 거대 조직 JMS를 상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인 사람 같지 않게 평범해 보인다. 그런 그에게 청춘은 ‘잊혀진 계절’이다. 성폭행범 정명석 교주(기독교복음선교회 설립자)측과 1995년부터 2008년 그가 구속되기까지 14년간을 인생을 건 혈투를 벌이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 싸움은 정명석 교주가 구속돼 끝장 나거나 혹은 김도형 교수가 죽을 수도 있었던 대혈투였다.
정명석측과의 투쟁 중에 죄없는 김 교수의 아버지가 테러를 당한 적도 있다. 김 교수에겐 이 사건이 가장 큰 상처로 남았다. 김 교수의 부친은 광대뼈가 함몰당하는 큰 부상을 입고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김 교수 자신도 테러를 당했고 특수 강도 혐의 등 전과를 얻었다. 그 모진 시련을 감내하며 JMS와의 싸움에서 김 교수는 승리했다. 정명석 교주가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결국 징역 10년형을 받고 실형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이비 단체의 교주가 성폭행범으로 구속됐다가 전자발찌를 차고 만기출소한 사례는 JMS가 최초이다. 교주가 구속되기까지 김도형 교수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정명석 교주 구속에 이르기까지 혁혁한 공을 세웠던 그는 KAIST 졸업 후 박사학위를 받고 단국대 수학과 교수로서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레 JMS와의 투쟁기를 담은 잊혀진 계절Ⅰ, Ⅱ를 펴냈다. 이 책은 JMS와 인생을 건 전쟁을 벌인 김 교수의 회고록이다. 기자는 2022년 2월 6일(목) 서울 종로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2006년 4월 18일 정명석 교주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만났으니 거의 16년만에 만난 셈이다.
그가 펴낸 <잊혀진 계절 1, 2권>을 읽다보면 장기판에서 고수가 하수를 놓고 요리하듯 JMS측을 코너로 몰아넣으며 압박하는 김 교수의 모습에 혀가 내둘러진다. 그와 더불어 고구마 100개를 먹은 듯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먹먹해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상대는 성폭행을 교리화했을 뿐 아니라 실행하는, 섹스교와 다를바가 없는 곳을 이끄는 정명석 교주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 검경, 사법부가 시퍼렇게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 JMS는 당연히 처벌을 받고 해체돼는 게 마땅한 사이비 종교이다. 그런데 오히려 김 교수는 JMS와 싸워갈수록 깊은 늪에 빠진 듯하다.
검찰 조직은 물론 심지어 국가정보원에까지 JMS의 마수가 뻗쳐 있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근무하게 된 곳에서도 JMS신도를 만난 것은 물론이다. 책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면은 부친이 테러를 당한 뒤 입원한 병원 주치의까지 JMS신도였다는 점이다. 김 교수 자신도 이 때를 가장 섬뜩했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성폭행범 정명석 교주의 호위무사들이 끊임없이 김 교수와 대적해왔다. 정명석 구속에 이르기까지 숱한 고소고발, 테러, 원치 않는 전과까지 얻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김 교수가 거대 조직 JMS를 상대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동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 교수는 ‘분노’라고 말한다.
“‘분노’ 때문이었어요. JMS와 싸우면서 겁도 났지만 겁을 능가할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검찰, 국정원, 법조인 등등 대한민국 곳곳에 문어발식으로 세력을 뻗친 거대 조직 JMS와 비교할 때 김도형 교수와 안티 JMS 단체인 엑소더스는 힘없는 약자에 불과했다. 돈키호테같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벌이면서 창끝이 무뎌지는 절망도 맛보았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 안티JMS 활동을 하는 동료들이 JMS측으로부터 처절한 폭행과 테러를 당하며 극심한 공포가 김 교수를 엄습했다. 그런데도 그는 굴하지 않고 끝까지 칼끝을 벼리며 JMS측에 맞섰다. 그것은 겁과 공포를 넘어서는 분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성폭행범이 대한민국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을 교리적으로 정당화하며 순결을 빼앗는 현실, 국가 고위직과 공직에 있는 호위무사들의 비호속에 사이비 교주가 전 세계를 돌며 그룹섹스 행각을 펼치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추악한 실상, 그런 만행을 벌이면서도 신도들에게 메시아로, 구원자로 추앙받는 부조리함에 김 교수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분노가 김 교수를 버틸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만일은 없지만, 그가 다시 1995년, KAIST를 다니며 친구의 소개로 JMS에 3개월을 몸 담았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김 교수는 JMS에 맞서서 싸울 마음이 있을까? 김 교수는 “싸울 마음이 없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때, 그때, 거대 사이비조직과 부딪히며 싸워왔을 뿐, 지금 되돌아보니 끊임없는 고소고발, 테러, 배신 등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어려움들이 압축된 잃어버린 청춘이 아파서다. 그는 이런 결과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도저히 다시 싸울 마음을 가질 수 없다고 고백했다. 정 교주가 전자발찌를 차게 됐지만 김 교수의 사이비와의 전쟁은 한 개인이 감내하기 어려운, 힘에 겨운 싸움이었다.
그래도 보람은 있다. 정 교주의 처벌뿐만 아니라 JMS 피해자들이 김 교수의 활동으로 힘과 용기를 얻고 정 교주를 고발하며 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JMS 투쟁의 산 증인이자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마중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은 의미와 보람있는 인생이었다고 회고한다. 김 교수는 잊혀진 계절Ⅰ, Ⅱ를 낸 이유도 JMS와 다시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지난 시절의 궤적을 되짚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혹시라도 이 역사적 기록을 갖고 JMS에서 트집을 잡고 싸움을 걸어 온다면 김 교수는 도전을 묵과하지 않고 반드시 응전할 생각이다.
책은 1권, 2권이 아니라 3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 놨다. 그러나 이는 JMS측의 몫이다. 책의 마지막에도 명기해 놓았다. “이 책의 출판을 2권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하지만 이 책이 과연 여기 2권에서 마무리될지, 아니면 3권이 나오게 될지는 김도형도 궁금하다. 정명석 네가 결정해라. -어쩌면 3권에서 계속-.”
과연 JMS측은 그가 3권을 집필하지 않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3권을 집필하지 않으면 못 견디도록 만들어갈 것인가. 오롯이 JMS측의 몫이라고 김도형 교수는 공을 던졌다.
김 교수의 책 잊혀진 계절은 실화로서 매우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성폭행 피해자들의 수기, 정명석 교주의 그룹섹스 관련 판결문, JMS측 여신도들이 수영복 차림으로 정명석 교주에게 보낸 사진 등등 정 교주가 구속되기까지 보여줬던 추악한 실체들이 객관적 자료를 통해 공개됐다. 김 교수의 잊혀진 계절은 온라인 서점 등에서 구매 가능하다(온라인 서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