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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계보14]철장권세 가진 자로 군림했던 어린 종 유재열(활동연대 1966~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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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계보14]철장권세 가진 자로 군림했던 어린 종 유재열(활동연대 1966~1975)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3.06.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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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싸이의 장인‧‧‧이만희 교주의 고소로 1975년 구속됐다 출소 후 사업가 변신
디스패치는 2020.03.23자에 장막성전의 유재열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디스패치는 2020.03.23자에 장막성전의 유재열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싸이의 노래 ‘강남 스타일’이 전세계 히트상품이 될 때 느닷없이 싸이의 종교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신천지다, 아니다’ 등등. 갑작스레 신천지 논란이 일었지만 정작 싸이의 종교가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것 한가지가 있다. 그가 신천지의 할아버지뻘 되는, 사이비 계보사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가장 어린 남신, 유재열의 사위라는 점이다. 그래서 ‘강남스타일’의 인기와 더불어 세인의 관심이 유재열이란 인물에 쏠리기도 했다. 시선을 60년 전, 장막성전의 시대로 돌려보자.

“모세스, 모세스, 따따따~.” 모세를 부르는 방언 소리가 집회장소에 울려퍼진다. 마치 무당의 초혼의식(죽은 혼을 불러서 달래는 무속 의식)을 연상케 한다. ‘모세스’ 외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이 울려퍼질 때 어린 종이라는 유재열이 강단에 선다. 아무도 모르는 방언을 유재열은 통역한다. 1966년, 장막성전 주요 지도자들에겐 ‘여호수아’, ‘미카엘’, ‘솔로몬’ 등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붙었다. 이를 ‘영명’이라고 했는데 ‘여호수아’ 이름을 붙인 지도자에게는 여호수아의 영이 임했다는 의미였다. 신령이 임한 사람이 방언하고 어린종이 통변하는 방식의 집회는 ‘신령예배’로 불렸다(탁명환, 『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3권』, (서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74), 78).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 한국동란을 거쳐 보릿고개로 접어 들며 모두다 못 살고 모두다 어려운 시절, 한국인들에게는 신령 사상이 범람했다. 문선명의 통일교와 박태선의 전도관을 이어 새 천년성을 이룬다며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는 유재열의 집회에 사람들은 구름 같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이단 계보사에 합류한 이 인물은 아직 18살의 청년이었다. 어린 종이라는 그를 보기 위해 주일 아침이면 용산터미널에는 장막성전 신도들이 곳곳에서 과천행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초만원을 이루었다(『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3권』, 47). 많을 때는 4천여명이 몰렸고 일부 신도 중에는 재산을 바치고 장막성전 인근에 입주해 사는 사람까지 있었다(신천지문화부, 『신천지 발전사』, (경기도: 신천지, 1997), 35).

어린 종이라는 유재열은 언제부터 방언과 통역을 하게 됐을까? 그가 남신의 계보사에 등극하기 전 방문한 곳은 김종규의 호생기도원(1964년 설립)이었다. 유재열은 기계체조선수인데 일본 원정을 가려했으나 일본어를 할 줄 몰랐다. 그런데 먼저 호생기도원을 출입하던 모친이 방언은사를 받더니 흡사 중국어를 하듯 방언을 하는 게 아닌가. 유재열은 일본 원정을 가기 전, 호생기도원을 출입하게 된다. 방언을 받으면 쉽사리 일본어도 익힐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그곳은 김종규가 ‘주님’, ‘아버님’으로 불리며 남신으로 군림하는 곳이었다. 신으로 군림하던 김종규는 여신도들을 밤마다 자신의 방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통간한 여성이 60여 명에 이르렀다(『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3권』, 52).

교주의 여신도 간음사건을 보고 실망해서 이탈, 1966년 4월 아버지 유인구 등과 함께 유재열은 경기도 과천, 청계산 저수지에 장막성전을 세운다(탁지일,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 (서울: 현대종교, 2009), 247, 257). 이때가 유재열이 고등학생 나이인 18살이었다. 한국 교회사에 나타난 남신 중 가장 어린 교주의 등장인 셈이다.

유재열이 장막성전을 세우기 전부터 신도들은 신비체험을 다수한다. 1966년 3월 유재열이 운동을 하고 몸을 씻는데 갑자기 태양 빛이 나타나 유재열을 비췄고 빛을 피해 방으로 들어가자 방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유인구의 환상 중에 유재열이 두루마리를 받아 먹었다, 유재열의 입에서 종이 테이프가 나와서 모으니 한권의 성경 책이 됐다, 지구 모형을 붙들고 힘을 주어서 부수니 지구모형에서 피가 주루루 나왔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장막성전은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며 1966년 3월 14일로 삼아 성탄절로 지켰다(탁명환, 『기독교이단연구』, (서울,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6), 345). 유재열은 설교시에 자주 요한계시록을 인용하며 일곱인으로 봉한 책속의 비밀은 마지막 새역사를 말한 것이라며 새 역사는 두루마리를 먹은 자가 공급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유재열 교주의 설교(1968년-1980년 5월 18일까지), 『영원한 생명』(미출판자료),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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