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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여섯째 나팔이 이슬람·오스만 제국에 대한 예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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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여섯째 나팔이 이슬람·오스만 제국에 대한 예언인가?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1.07.14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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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11HN 성서연구원 5편
1789년 이후부터 마지막 때라고 주장하는 손계문 씨.
1789년 이후부터 마지막 때라고 주장하는 손계문 씨.

1. 손계문 목사에 대한 비평
1) 손계문 목사의 주장

손계문 목사가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 17부: 요한계시록9장 성경에 예언된 이슬람과 교황청의 밀월(1)'(2019년 4월 13일)과 '요한계시록 강해 19부: 요한계시록10장, 예수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는 교회'(2019년 4월 27일)는 네 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하단 녹취록 참고)
* 다섯 째 나팔은 이슬람이 150년간 유럽을 공격할 것을 나타낸다.
* 여섯 째 나팔은 셀주크투르크가 발전한 오스만 트루크 제국을 나타낸다.
* 요한계시록 10장은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즉 19세기 개신교 시대를 나타낸다.
* 요한계시록 10:2의 작은 책은 다니엘서를 말한다.

2) 성경적 비평
손계문 목사는 첫째 나팔은 AD 70년에 발생한 유대의 멸망을 나타내고, 둘째 나팔은 AD 476년의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리키고, 셋째 나팔은 중세 교회를 보여주며, 넷째 나팔은 16세기의 유럽 교회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요한계시록을 세계사 속에 등장했던 특정 시대와 연관 짓는 이러한 기법은 요한계시록에 9장에 등장하는 다섯 째 나팔과 여섯 째 나팔 해석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다섯째 나팔(1-12절)에 등장하는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10절)는 문장을 곧바로 이슬람과 연결한다. 그리고 전갈처럼 생긴 황충의 꼬리가 사람을 해하는 기간 다섯 달을 150년으로 계산해서 이슬람이 150년 간 유럽을 괴롭히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를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에 의해 함락당한 사건에 대입한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열쇠를 받아 무저갱을 열자 연기 속에서 전갈처럼 쏘는 권세를 가진 황충들이 나와 온 땅에 퍼지는 장면을 본다(1-3절).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 황충들은 사람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섯 달 동안 괴롭히기만 해야 한다(5절, 10절). 실제로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죽지는 않고 고통만 당한다(6절). 사도 요한은 이 황충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한다. 머리에는 금 면류관 같은 것을 썼고,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여자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이빨은 사자 이빨 같고, 쇠로 된 가슴막이를 두르고, 날개 소리는 병거 끄는 소리와 같았고, 전갈과 같은 꼬리와 침이 달려 있다(7-10절). 성경에서 전갈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것으로 묘사된다(참고, 신 8:15; 왕상 12:11, 겔 2:6, 눅 11:12).

요엘 1:3-6은 황충들이 떼를 지어 공격하듯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될 것을 알려준다. 아모스 7:1-2에서도 황충 곧 메뚜기의 파괴력을 볼 수 있다.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가운데서도 메뚜기의 이런 특징을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황충의 공격 대상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과 인간이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맞은 사람은 황충이 괴롭히지 못한다. 이는 요한계시록 6:17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된다. 진노의 그 날에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속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세기의 독자들은 황충을 묘사하는 이 마귀적 이미지를 통해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문화적인 것이든 이 황충들에 의해 세상과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지배를 받게 될지를 보게 된다. 이 재앙은 종말로 갈수록 심화된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 하나님을 거스르는 현상은 더욱 강화된다.

이 장면이 어떤 이유에서 150년간 유럽을 공격한다는 이슬람을 보여 주는가? 도대체 어떤 구절, 어떤 낱말이 이슬람과 유럽을 나타내는가? 오히려 황충에게 부가된 명령 곧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 말라는 명령은 이슬람의 살육적, 약탈적 이미지와 완전히 상치된다. 손계문 목사는 민수기 14:34, 에스겔 4:6을 끌어들여 성경은 1일은 1년으로 계산한다고 하며 다섯 달을 150년으로 산출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베드로후서 3:8을 인용하여 성경은 하루를 1000년으로 계산한다며 다른 숫자를 산출할 수 있다. 5는 10의 절반이다. 10이 충만과 완전을 함축하는 숫자라는 점에서 10의 절반인 5는 모자람과 결핍을 의미한다. 황충 재앙이 미치는 기간이 다섯 달 즉 매우 짧은 기간임을 나타낸다(박수암, 『요한계시록』, 134). 다섯째 나팔 장면 그 어디에서도 이슬람이 150년간 유럽을 괴롭힌다는 단서를 찾을 수 없다. 도대체 요한계시록이 교회사 시대의 특정 시대를 계시한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손계문 목사는 이번에는 여섯째 나팔 재앙을 셀주크투르크가 발전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황충이 머리에 쓴 면류관과 여자의 머리털은 무슬림이 쓰는 터번으로 간주하고, 메뚜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은 이슬람의 빠른 정복을 나타내며, 마병대 수가 “이만 만”(16절) 즉 이억이라는 것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이슬람의 마병대를 의미하고, “불과 연기와 유황”(17절)을 오스만투르크의 막강한 화력을 가리킨다고 하며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면류관, 머리털, 날개는 다섯째 나팔에 등장하는 황충의 용모이다. 여섯 째 나팔을 설명한다면서 다섯째 나팔 소재를 끌어다 활용한 것이다. 이는 상식을 벗어난 행위이며, 도덕적이지도 않다. 아무리 요한계시록을 모르는 독자라 할지라도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본문을 읽으면 손계문 목사의 이러한 기교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은 목적과 의도가 전혀 다른 각각의 재앙이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사도 요한은 정해진 연월일시에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유브라데강에 결박되어있는 네 천사를 풀어주라는 소리와 동시에 네 천사가 풀려나는 장면을 본다(13-15절). 이 천사들이 거느린 마병의 수는 이억(16절)이며 이 마병들은 여러 색깔의 가슴막이를 달았고,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와 같고, 그 입에 뿜어져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장면이 나타난다(17-18절). 이 재앙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일을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귀신들을 섬기며 우상에게 절하고 살인과 마술과 음란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않는다(20-21절).

다섯째 나팔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고 괴롭게만 하는 재앙이지만 여섯째 나팔에서는 결박에서 풀려나온 네 천사들의 수하에 있는 마병대가 사람을 죽이는 재앙이다. 네 천사가 결박당해 있었던 유브라데 강은 이스라엘의 북단 경계선으로 (창 15:18; 신 11:24; 수 1:4) 예로부터 강대국들의 침략 기지였다(사 7:20; 8:7; 렘 46:10). 구약의 예언서에서 북쪽으로부터 오는 적에 대한 경고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사 14:31; 렘 1:14; 6:1; 겔 26:7; 38:6). 네 천사는 유브라데 강에 결박당해 있었다. “결박당하다”는 동사는 신적수동태로 이들이 하나님에 의해 제어를 받고 하나님이 정한 시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기다리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때가 되면 네 천사는 수하의 마병대를 동원하여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삼분의 일을 학살한다. 1세기의 독자들은 이 장면을 통해 하나님이 정한 때에 있을 종말적 우주적 심판의 정황을 보게 된다. 사도 요한은 이 우주적 심판을 하나님의 심판의 대행자로 행동하는 천사들을 언급하는 묵시문학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참조, 1 Enoch 53:3; 56:1: 62:11: 63:1: 66:1: J Enoch 31:2: 32 :1: 33:1, 데이비드 E. 아우네 『요한계시록 6-16』 “WORD BIBLICAL COMMENTARY volume II”. 322).

과연 여섯째 나팔 재앙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오스만투르크를 나타내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로마의 황제숭배 강요에 직면해 있었던 1세기의 소아시아 교회에게 무함마드의 이슬람, 셀주크트루크, 오스만투르크를 보여줄 의도를 가졌겠는가?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섰던 그들에게 이슬람의 변천사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성경 해석은 주어진 본문을 통해서 당시의 청자와 독자들이 무엇을 들었으며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묻는 작업에서 시작해야 한다. 즉 저자가 의도한 본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해석자는 반드시 성경시대로 들어가야 한다. 그 다음 현대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는 그것의 오늘날의 의미와 적용을 모색해야 한다. 이 적용은 저자가 의도한 근본적인 의미와 가치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성경 해석 기본 원칙은 요한계시록 해석에 있어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해석 방법을 과거주의 해석방법이라 치부하는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독자들이 살았던 시대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가 정해 놓은 결론 혹은 가설의 정당성을 본문의 몇몇 단어나 문장의 이미지를 통해 입증하거나, 아니면 직접 단어와 문장의미를 조작하거나, 아니면 타 성경 구절을 가져와 덧대는 방식으로 증명을 시도한다. 자기가 세운 결론을 성경을 통해 입증하는 방식으로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각종 사진, 영상, 문헌 들을 자료로 제공한다.

손계문 목사의 이 같은 방식은 요한계시록 9장뿐 아니라 10장 해석에도 나타난다. 그는 요한계시록 10장을 빌라델비아교회 시대 즉 19세기 세계 선교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며 또 다시 무리한 해석을 이어간다. 그는 2018년 2월 10일 “요한계시록 강해 9부” 설교에서 요한계시록 10장을 1798년부터 1844년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해석 기조는 매우 일관성이 있다. 1798년을 시작으로 정한 이유는 이 해부터 개신교의 세계 선교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며, 1884년을 마지막으로 잡은 이유는 이 해에 예수님이 하늘 지성소에서 임해서 조사 심판을 단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사심판은 안식교의 핵심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손계문 목사와 안식교가 무슨 공감대가 있는지 궁금하다.

손계문 목사는 빌라델비아 교회를 나타내는 요한계시록 3:7-13에 등장하는 여러 표현 가운데 나오는 ‘열쇠’(3:7)와 ‘문’(계 3:8)이라는 낱말을 다른 성경 구절과 엮어서 이를 1798년에서 1884년까지의 개신교의 선교 역사와 직결하고 이를 빌라델비아 교회가 상징하는 시대로 규정한다.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시원시원한 정답을 제시해주는 그에게 충분히 매력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대단히 비성경적이며, 인위적이며 자의적이다. 손계문 목사는 타락한 중세 교회를 나타낸다는 사데교회(1-6절) 다음의 교회 즉 빌라델비아 교회(7-13절)를 중세 다음에 오는 시대로 설정하고, 몇 개의 성경 낱말을 주춧돌로 삼아 자기가 세운 가설을 증명해나가는 방법을 여기에서도 발휘한다. 매우 현란하나 객관적이지 못하고 직관적이다. 물론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인내했고, 면류관도 약속받았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3:7-13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와 1798년에서 1884년까지의 개신교 역사가 관련되어있다는 객관적 정보를 얻을 수 있는가? 그렇게 추정할 수 있는 단서나 암시조차 있는가? 빌라델비아 교회는 1798년에서 1884년의 기간을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손계문 목사의 오역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요한계시록 10장이 19세기 개신교의 선교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수용할 있는가?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다니엘서를 중간 매개로 이용한다. 요한계시록 10장에 등장하는 힘센 천사의 손에 든 작은 책을 다니엘서로 전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주제는 다음 장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여기에서는 이 작은 책이 다니엘서인지 아닌지만 밝혀둔다. 이 책이 다니엘서가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되면 요한계시록 10장과 19세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힘센 천사의 손에 있는 ‘작은 책’(10:2)은 무엇일까? 이 작은 ‘책’(βιβλαρίδιον)은 요한계시록의 5:1의 ‘책’(βιβλίον)과 동일한 책이다. 즉 작은 책으로 번역된 ‘비블라리디온’은 5:1에 언급된 ‘비블리온’의 축소형이다. 차이가 있다면 5:1의 책은 인봉되었고 10:2의 책은 펼쳐져 있다. “그 손에는 펴 놓인 작은 두루마리”(10:2)에서 “펴 놓은”으로 번역된 에네오그메논(ἠνεῳγμένον)은 이 책이 열려진 상태로, 공개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5:1의 책과 10:2의 책이 동일한 책이라면 왜 봉함된 책이 펴 놓인 책으로 전환되어 언급되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양이 이 봉함된 책의 봉인을 차례로 뗐기 때문이다(6:1, 3, 5, 7, 9, 12; 8:1). 어린 양이 봉인된 일을 하나씩 뗄 때 마다 거기에 수반된 내용이 공개되며 종말적 심판들이 실현된다(계 6:1-17; 8:1). 이것이 힘센 천사의 손에 있는 그 책이 열려진 상태 즉 공개된 상태로 있었던 이유이다. 천사의 손에 있는 작은 책은 다니엘서가 아니라 어린 양이 보좌에 앉으신 분에게서 취하여 봉인을 뗐던 바로 그 책이다.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이미 이 지점에서부터 빗나간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0장이 19세기 개신교 선교역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그의 주장은 더 이상 평가할 가치가 있을까? 요한계시록 10장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19세기 개신교 시대부터 전 세계에 강력하게 전해질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들어보나 마나이지 않을까?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다음 장에서 그가 주장하는 바를 더 세밀히 다룰 계획이다. 이유는 그의 설교가 얼마나 궤변인지를 알리기 위해서이다. 요한계시록이 기독교 역사를 총망라 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인지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2. 다음은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7부와 19부를 요약 녹취한 것입니다. 

계시록 9장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은 이슬람에 대한 예언인데요 먼저 다섯째 나팔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계 9:10). 여기 보니까 다섯 달 동안, 그러니까 성경에서 1일은 1년이고, 한 달은 30일로 계산하죠(민 14:34, 겔 4:6). 그러니까 다섯 달이면 150일 ···150년간 이슬람 세력이 유럽을 괴롭힌다는 겁니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이 되어서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게 됩니다. 자 그리고 여섯 번째 나팔이 불리어지는데요. 15절에 보면요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여러분 여기 여섯 번째 나팔은 오스만 제국에 의한 정복과 전쟁, 살육 그렇게 설명이 되어 있는데 여러분 이 기간이 뭐라고 되어 있어요? 년 월 일 시라고 되어있습니다. ···이게 391년 15일이 되는 겁니다. 오스만 제국의 종말은 ···1840년 8월 11일이 됩니다. ···계시록 9장을 좀 더 자세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충이 머리에 쓴 면류관과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은 무술림이 쓰는 터번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메뚜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은 이슬람의 빠른 정복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산을 넘을 때 대부분 말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서 진행하면서 전쟁을 하고 약탈을 했기 때문에 가히 이만 만(계 9:16), 이만 만이면 2억이라는 얘기거든요. 2억 명의 기병대로 보일만 했습니다. 이 때 셀주크투르크가 오스만투르크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노련한 기병대들과 대포와 같은 화학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화약의 주성분이 뭐예요? 유황이거든요. 그리고 화약은 폭발할 때 연기가 나거든요. 이슬람 군대가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뭐라 했어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계 9:17)고 한 것입니다(손계문, 2019년 4월 13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 17부” https://www.youtube. com).

계시록 10장의 배경은 일곱 교회 중에서 19세기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에 벌어지는 일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와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예언을 마치 릴레이 선수가 바통을 넘겨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힘 센 천사에게 묘사된 내용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얘기죠. 왜냐하면 그 뒤에 이어지는 묘사를 보면 더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입니까? ···다니엘서를 말합니다. 다니엘서 12장에는 무슨 이야기가 있어요?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 그런 얘기가 있죠. 그런데 그 책이 드디어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바다와 땅을 밝고 큰 소리로 외친다는 것은 이 펼쳐진 다니엘서의 예언이 계시록 10장의 시대에 전 세계에 강력하게 전해질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손계문, 2019년 4월 27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 19부” https://www.youtube.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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