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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문 목사의 여섯인 심판과 콘스탄틴의 종교통합 해석'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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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문 목사의 여섯인 심판과 콘스탄틴의 종교통합 해석' 비판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1.06.10 0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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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11HN 성서연구원 3편

1. 손계문 목사에 대한 비평

1) 손계문 목사의 주장

손계문 목사가 2018년 6월 16일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 14부: 요한계시록6장, 네 말탄자와 일곱인(印)의 비밀’은 3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하단 녹취록 참고).

*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은 세계 교회사에서 일곱 교회 시대를 나타낸다.

* 콘스탄틴이 세계 단일 종교로 로마의 이교 교리를 혼합시켜서 기독교를 창설했다.

* 콘스탄틴이 이교의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가지고 왔고,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었다.

2) 성경적 비평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6장에 등장하는 여섯 인을 예수께서 승천하신 AD 31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전 기독교 시대에 나타났던 일곱 교회의 유형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첫째 인은 1세기의 사도시대 교회, 둘째 인은 2-3세기의 박해 시대의 교회, 셋째 인은 4-5세기의 세속 시대의 교회, 넷째 인은 6-14세기의 중세 시대의 교회, 다섯째 인은 15-18세기의 종교개혁 시대의 교회, 여섯째 인은 19세기의 개신교의 시대와 재림 직전의 현대 교회 시대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는 첫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흰 말의 흰색이 사도들의 순결함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사도시대의 교회에 적용한다. 둘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말의 붉은색은 피를 상징한다며 박해시대의 교회, 셋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말의 검은색은 타락과 어두움을 상징함으로 세속 시대의 교회, 넷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말의 청황색은 죽은 시체 색깔이므로 이를 타락한 중세 시대의 교회에 대입한다. 다섯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순교자들의 호소를 종교개혁 시대에도 일어났던 핍박과 연관 지으며 이를 종교개혁 시대에 적용한다. 여섯 째 인을 뗄 때 나타났던 징조들의 일부는 개신교가 부흥했던 19세기에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에 이는 19세기 개신교회를 나타내며, 아직 성취되지 않은 남은 징조들은 재림 전에 성취될 것이기 때문에 재림 전의 현대 교회를 나타낸다고 한다. 말하자면 여섯째 인은 두 개의 교회 시대, 즉 19세기의 개신 교회와 현대 교회를 모두 보여준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손계문 목사의 설교와 요한계시록의 증언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까? 과연 세계 교회사에 등장했던 여러 유형의 교회들이 계시록 6장의 여섯 인과 동일시될 수 있는 대상일까?

요한계시록 5:1에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취한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고, 6장에서는 이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심판의 현상이 발생한다.

첫째 인을 뗄 때 나타난 흰말 탄 기수는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받고서 이기고 이기려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1-2절) 이 장면에서 기수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호전적인 정복자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활(τόξον)은 전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공격용 무기이다. 첫째 인 환상은 전쟁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을 묘사한다. 흰색의 상징이 순결함이기 때문에 이 장면이 순결한 사도시대 교회를 나타낸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문맥과 단어의 용례에 있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둘째 인을 뗄 때 나타난 붉은 말 탄 기수는 칼을 들고 서로 죽이려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3-4절). 여기서 “죽이게”로 번역된 스팍수신(σφάξουσιν)은 ‘살육하다’ ‘도륙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칼(μάχαιρα)은 전쟁 용 장검을 가리킨다. 둘째 인 환상은 인류가 서로 싸우는 전쟁을 심판의 도구로 허락하심을 나타낸다. 붉은 색이 피를 상징함으로 이 장면이 순교 시대의 피 흘리는 교회를 의미한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저자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다.

셋째 인을 뗄 때 나타난 검은 말 탄 기수는 손에 저울을 가졌다. 그리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린다(5-6절). 노동자의 하루 치 임금으로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 밖에 살수 없다는 선언은 물가 폭등으로 고통 받는 것을 묘사한다. 검은 색이 타락과 어두움을 의미하며, 저울은 영적 기근과 연관 되어있다고 하며 이 장면은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승인한 때부터 로마 교황청이 성립된 AD 538년까지의 세속 교회 시대를 나타낸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넷째 인을 뗄 때 나타난 청황색 말 탄 기수의 이름은 사망인데 이 자가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을 가지고 사람 사분의 일을 죽일 권한을 받는다(7-8절). 이 기사는 살해의 도구인 전쟁과 기근과 질병과 짐승을 한꺼번에 받은 이 장면은 앞의 세 개의 심판보다 훨씬 강도가 세고 구체화된 종말적 심판의 정황을 보여준다. 청황색이 시체 색깔이므로 넷째 인은 AD 538부터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개신교를 일으킬 때까지의 긴 중세의 암흑시대 교회를 나타낸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매우 인위적이다. 그는 네 가지 인 장면 해석에서 과도할 정도로 말의 색깔에 집착한다. 그는 본문의 배경과 문맥과 단어의 용례는 고려하지 않고 말의 색깔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 의미를 해석의 중심으로 놓고 자기주장에 꿰맞추어 나간다. 또한 문장 가운데 유리한 단어가 발견되면 곧바로 의미화 하여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한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단어에 대한 해석은 필수적이지만 그 단어의 의미도 문맥 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손계문 목사는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을 거의 준수하지 않는다.

다섯째 인을 뗄 때 제단 아래 순교자들이 자기들이 흘린 피의 원한을 갚아달라는 기도 소리가 들리고 또한 동무 종들과 형제들의 수가 차야한다는 하늘의 음성도 들린다(9-11절). 이 음성은 이 순교자들의 기도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는 그들처럼 고난 받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낸다. 이것이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의 수가 차야 함을 언급하는 이유이다. 손계문 목사는 이러한 다섯 째 인 장면을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도 예수님의 재림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성도들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며 이 장면을 종교개혁 시대를 나타낸다고 단정한다. 요한계시록의 문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장이다.

여섯째 인을 뗄 때 해가 검어지고, 달은 피 빛으로 변하고, 별들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말리고, 산과 섬들이 이동하고, 땅의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겁에 질려 굴과 산과 바위틈에 숨는 장면이 나타난다(12-17절). 해, 달, 별에 이러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종말의 심판이 우주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심판의 대상은 15절에 언급된 ‘땅’에 속한 모든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심판에 대해 돌이키지 못하고 그 낯을 피해 일시적으로 도피만 한다. 이들이 숨은 굴과 산과 바위 등은 이 심판을 당하는 자들이 갖는 공포심을 이미지화하기 위한 소재들이다. 이 도피자들은 이 날을 “진노의 큰 날”(17절)로 부른다. 즉 이 날은 두렵고 공포 서러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다. 손계문 목사는 이러한 성경의 진술을 외면한 채 여기에서도 여섯째 인을 여지없이 교회사 시대에 등장했던 여러 교회의 유형 곧 19세기의 개신교회 시대와 오늘날의 현대 교회 시대와 연결한다. 자신의 소신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성경을 악용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비성경적인 주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손계문 목사는 콘스탄틴이 로마의 이교 교리를 혼합시켜 기독교를 창설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세계 단일 종교를 만들어내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설명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들이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콘스탄틴은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여 교회에 대한 박해를 끝내고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공인했고, AD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이 논의에 참석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콘스탄틴의 이러한 치적들이 기독교를 세계 단일 종교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을까? 로마 황제들에게는 종교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고, 종교가 매우 효과적인 정치의 한 도구였으며, 기독교에 대한 정책 역시 모두 정치적인 통치 행위의 일부였다. 마찬가지로 콘스탄틴도 로마 제국을 통일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이용하려 했지만 당시의 교회 내부에는 많은 교리의 대립이 있어 수습이 곤란하였다. 콘스탄틴은 이러한 목적으로 니케아 회의를 소집했다. 신학적인 본질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가 아닌 로마제국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공의회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였을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Ralph E, Woodraw, 「로마 가톨릭의 어제와 오늘」, 김덕균 역, 서울: 문서선교회, 1994, 76). 과연 이러한 콘스탄틴이 기독교 자체를 세계 단일 종교로 키울 의도를 가졌겠는가? 손계문 목사의 지나친 상상이나 비약이 아닐까?

손계문 목사는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세계단일 종교로 만들기 위해 이교의 교리였던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끌어들였다고 주장한다. 만약 콘스탄틴이 기독교와 이교의 교리를 혼합시켰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것이 기독교를 세계단일 종교로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부활절 날짜에 대한 논쟁은 2-3세기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니산월 14일을 부활절로 지키는 동방교회와 니산월 14일인 만월이 지난 후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키는 서방교회의 논쟁은 니케아 공의회가 서방교회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며 일단락되었다. 과연 콘스탄틴이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의 이 결정이 기독교를 세계 단일 종교로 만들기 위한 회의 전략이었을까? 손계문 목사에게 묻는다. 과연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부활절이 이교의 산물인가? 물론 부활절의 영어 명칭 이스터(Easter)는 고대 북유럽의 여신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면서 이 여신의 축제일을 기독교 부활절로 바꾸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도 영어권에서는 부활절을 이스터로 부른다. 그렇다면 영어권 크리스천들이 오늘날의 부활절 즉 이스터 데이(Easter Day)를 지키면서 북유럽의 여신을 마음에 새기고 있을까? 과연 이스터라는 명칭이 기독교의 이교화를 의미하는가? 오히려 한국교회에서는 이 날을 ‘부활절’이라 정확하게 부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린다. 손계문 목사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이스터라는 용어를 굳이 들추어내어 기독교의 세계 단일 종교화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한 소재로 활용한다. 그리고 콘스탄틴에 의해 이교의 관습, 부활절을 수용한 기독교를 부각하며 부정한다.

또한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세계단일 종교로 만들기 위해 이교의 교리 크리스마스를 끌어들여 접목시켰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물론 예수님의 탄생일을 알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12월 25일이 로마의 동지제 축제일(태양신 미트라)과 관련되어있다는 사실도 이미 상식이다. 콘스탄틴이 예수의 탄생일을 이 축제일로 대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기독교의 세계 단일 종교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은 기독교의 이교화를 의미하는 게 전혀 아니다. 손계문 목사에게 묻는다. 과연 12월 25일에 예배하는 것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행위인가? 4월 석가탄신일에 예배한다고 부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며, 단군 탄신일에 기도한다고 해서 단군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며, 공자 탄신일에 찬송가를 부른다고 해서 공자를 경배하는 것이 아니듯 12월 25일에 예배한다고 해서 태양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마스 날짜가 과거에 무엇이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날에 누구를 경배 하는가가 중요하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의 생일’은 아니지만 그 탄생을 경축하는 것은 계속 지켜나가야 한다. 예수님의 탄생일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한 날을 정해서 성탄을 기념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기독교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정한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고 있다. 손계문 목사는 성탄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느 날에 드리고 있는지 궁금하다. 손계문 목사는 이교의 관습과 연관된 12월 25일 소재를 끌어들여 이를 기독교를 세계 단일 종교로 만들려는 콘스탄틴의 야심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라는 이교를 받아들인 기독교를 혐오의 대상으로 부각한다. 매우 질이 좋지 않다.

안식교 영향을 받은 손계문 목사는 콘스탄틴에 의해 안식일이 주일(일요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콘스탄틴 훨씬 이전부터 초기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이 아닌 주일 예배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성경이 증명한다.

사도행전 20:7은 바울이 드로아에 머무는 동안 주일에 성만찬 의식을 포함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 주간의 첫날”에서 ‘주간’으로 번역된 삽바톤(σαββάτων)은 안식일부터 그 다음 안식일까지를 일컫는 일주일을 가리키며, “첫”으로 번역된 미아(μιᾷ)는 첫째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 주간의 첫 날”은 일주일의 첫 번째 날인 일요일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6:1-2은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매 주일마다 헌금을 해야 할 의무를 가르친다. “매주 첫날”(2절)은 안식일 후 첫날로써 주일을 가리킨다. ‘매주’라는 말은 그 모임이 ‘정기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일요일마다 정기적으로, 규칙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주일 예배자들이다.

요한계시록 1:10은 사도 요한이 언제 환상을 보았는지 밝힌다. 그 날은 “주의 날”이었다. 주의 날로 번역된 ‘퀴리아케 헤메라’(κυριακῇ ἡμέρᾳ)는 기독교가 유대교와 분리된 후 기독교의 예배일의 정식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단어이다. 여기서 주의 날은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날’을 뜻하고 좁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 부활의 기념일’을 뜻한다(Roger T. Beckwith, 「Christian Sunday」,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8, 35-36).

콘스탄틴에 의해 예배의 날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다는 손계문 목사의 주장은 수준과 질이 매우 떨어진다. 왜냐하면 중학교 세계사 교과서만 읽어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콘스탄틴은 300년간 로마의 박해에 시달리던 기독교를 공인된 종교로 인정했고 교회의 편의를 위해서 일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콘스탄틴에 의해 기독교가 여러모로 혜택을 누렸던 것은 사실이지만 콘스탄틴에 의해 안식일(토요일) 예배가 주일 예배로 대체되었다거나, 그가 세계 최고의 단일 종교의 꿈을 가지고 이교를 끌어들여 기독교를 창설했다는 주장 등은 손계문 목사의 개인적인 소망(?)이 아닐까? 성경에 무지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주장을 여과 없이 답습하고 있는 그가 진정한 종교개혁자의 후예인지 의심스럽다.

2. 다음은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강해 14부: 요한계시록6장, 네 말탄자와 일곱인(印)의 비밀’(2018년 6월 16일 유튜브 11HN성서연구원 채널)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일곱 인의 시작 시점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AD 31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전 기독교 시대를 망라하는 기간입니다. ··· 첫째 인의 시대는 ···에베소 교회의 시대에 해당된다고 했죠. 그러니까 이 에베소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사도시대의 그 사도들의 순결함과 그리고 복음의 승리가 흰색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둘째 인으로 넘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붉은 색은 순교자의 피가 곳곳에서 흘렸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둘째 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서머나 교회에 해당하는 시대로써 AD 100년경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리는 AD 313년까지의 기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기간은 교회가 이단과 세상과의 타협 때문에 아주 고통을 받던 때였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핍박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

세째 인으로 넘어갑니다. ···검은 색은 ···타락과 어두움을 의미합니다. 이 검은 말을 탄자가 손에 뭘 가졌습니까? 저울을 가졌습니다. ···아주 극심한 기근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 당시에 말씀에 대한 영적 기근이 아주 심했던 것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셋째인의 시대는 일곱 교회의 시대로 보면 버가모 시대에 해당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승인한 때부터 로마 교황청이 성립된 AD 538년까지, 그 때를 말하는 기간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야심만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 단일 종교로 무슨 종교를 선택했습니까? ···기독교를 선택 했는데요 그 기독교는 로마의 모든 이교의 교리와 관습을 혼합시킨 새로운 종교였습니다. 죽은 성도들을 경배하고 성물들을 숭배하고, 이교의 기념일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같은 것들이 이름을 바꾸어서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되고, 또 안식일은 일요일로 대체되고. ···기독교의 본질은 부패되어갔습니다. ···그야말로 이 시대는 말씀의 기근과 영적 기근이 참으로 심했던 시대였습니다.

이제 넷째 인을 떼게 됩니다. ···청황색은 ···죽은 시체 색깔입니다. ···넷째 인은 일곱 교회의 두아디라 교회 시대와 일치합니다. ···AD 538부터 시작해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개신교를 일으킬 때까지의 긴 암흑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다섯째 인을 떼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보니까 제단 아래에서 순교자들이 자기들의 피를 신원해 주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다섯째인은 사데 교회 시대로써 종교개혁 시대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도 핍박은 계속되고 예수님의 재림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성도들의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인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요한에게 알려주신 징조들은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아직 하늘이 종이 축처럼 말려버리는, 최종적인 지진, 이런 일들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섯째 인의 시대는 빌라델비아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 이 두 교회의 걸쳐서 해당이 됩니다. 대부분 빌라델비아 시대에 다 이루어졌지만 그러나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라오디게아 시대 이 종말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6장 13절과 14절 사이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겁니다(손계문, 2018년 6월 6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 14부” https://www .youtube.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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