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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가는 목사, 지옥으로 가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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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으로 가는 목사, 지옥으로 가는 목사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09.09 2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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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서사라 목사편 (4) - 성경 오역이 바탕이 된 신비 체험

1) 서사라 목사의 주장

나는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는 것과 흐려지는 것에 대하여 질문을 갖고 있었다. “주님 생명책에 이름이 흐려지는 것이 있나요?” ···그런데 생명책에서 이름이 기록되었다가도 지워지면 계시록 20장 15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영원한 불못에 던져진다. ···이기는 자에 속하지 못하는 자는 계시록 3:5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름이 흐려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이름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되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 이기지 못하는 자는 지옥에 가는 자와 틀리다.(서사라,「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 예수 그리스도(지옥편)」, 497-498).

나는 이전에 목사님들이 가는 지옥을 보았다.

1. 교회를 팔아먹은 자

2. 죽을 때까지 여자 문제가 있는 자

3. 교회 돈을 자기 마음대로 쓴 자

4. 이중인격자로 교회서 버젓이 설교는 잘하는데 집에 가서 아내를 폭행한 자들이다.

···이 네 가지 죄 중의 하나라도 지은 자는 히브리서 6장 4절부터 6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들은 한번 비췸을 받고 타락한 자들인 것이다. 그러나 쇠창살 안에 있는 그 두 분은 여기에 속하지 않은 것이 알아졌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가는 곳, 즉 성밖에 있는 것이다(위의 책, 522).

모세, 주님, 그리고 요한과 내가 즉시 갑자기 큰 광장 같은 넓은 곳에 와서 서 있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흰 옷 입은 것을 입고 쭉 앉아 있었는데 모두가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그러는 중에 한명씩 끌려 나가 매를 맞았다.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천사가 매를 때리는 천사에게 불려나온 자가 몇 대를 맞아야 한다고 하면 그를 책에 적힌 대로 매를 때려서 제자리로 돌려 보내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천사들은 갑옷을 입고 있다. 이 갑옷은 꼭 조선 시대에 포졸들이 입는 옷과 비슷하였다. ···‘주님, 저번에 누구누구 목사님이 쇠창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들이 있는 곳이 이 성 밖이에요, 아니면 지옥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여기가 지옥이 아니라 성밖이라고 모세가 내게 알게 하여 주었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다 여기에 오는 것이다(위의 책 514-515).

계시록에서 두 번째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 안과 성 밖을 구분하고 있는 곳을 다음에서 볼 수 있다계 22:14-15〕···계시록 22장에서 말하는 성은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성이다. ···여기서 ‘성 밖’을 찾아보니 영어로는 ‘outside’라는 말이고 원어로는 ‘엑소’이며 그 뜻은 ‘밖에’, ‘문밖’에 라는 것이다. 여기서 ‘성 밖’이란 열 처녀 중 미련한 다섯 처녀가 남은 ‘문 밖’과 동일한 장소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밖은 어디에 있는가 하면···계시록 21장 2절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내려온 새 예루살렘의 바깥 즉 성 밖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위의 책, 583-586).

‘성 밖으로 가는 목사, 지옥으로 가는 목사’에 대한 서사라 목사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요한계시록 3:5에 의하면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진다.

*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목사는 이기지 못한 자들로 모두 ‘성 밖’에서 고통 받는다.

* 타락한 목사들은 모두 ‘지옥’에 처해진다.

* 히브리서 6:4-6은 한번 비췸을 받고 타락한 자들에 관한 말씀이다.

* 이기지 못한 목사들이 가는 “성 밖”은 요한계시록 22:15의 예루살렘 성 바깥쪽에 있다.

2) 성경적 해석

서사라 목사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과 ‘흐려지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지워지는 사람은 이름이 완전히 삭제된 사람이고, 흐려지는 사람은 이름이 흐릿해져서 지워질 듯 말 듯 한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 목사들이 가는 ‘지옥’과 이름이 흐려진 목사들이 있는 ‘성 밖’을 실지로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지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로 「개역한글」 판 성경의 요한계시록 3:5의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라는 문장을 채택한다. 하지만 “흐리지 아니하고”에서 ‘흐리지’로 번역된 ‘액살레입소’(ἐξαλείψω)는 ‘닦아내다’, ‘지우다’, ‘제거하다’의 뜻으로 ‘흐려지다’, ‘희미해지다’라는 의미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액살레입소의 원형 액살레이포(ἐξαλείφω)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된다. 더욱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번역본 성경을 대조하면 된다.

「개역한글」에서만 “흐리지 아니하고”로 표기되었을 뿐 「개역개정」에서는 “지우지 아니하고”로, 「새번역」에서는 “지워 버리지 않을 것이며”로, 「공동번역」에서는 “지워버리지 않을 것이다.”로,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지우지 않고”로 표기한다. 이는 영문 성경에서도 동일하다. 「NIV」에는 “will never blot out”으로, 「KJV」에는 “will not blot out”으로, 「NASB」에도 “will not erase”로 기록한다. 이를 포함한 모든 번역본 성경에서도 하나같이 ‘액살레입소’를 지우다, 제거하다, 삭제하다의 의미로 번역한다. 생명책에 있는 이름 중에 흐려지는 이름이 있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렇게 이름이 흐려진 사람들을 실제로 목격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자기가 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헛것’을 보았든지, 성경이 잘못되었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서사라 목사는 자기가 경험한 스토리에 대해서 반드시 성경적 근거를 첨부한다. 이는 그의 간증에 공감과 신뢰를 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증거로 제시하는 대부분 성경구절들은 그의 체험과 일치하지 않는다. 전혀 상관없는 구절들을 끌어들여 자기의 스토리를 뒷받침하려 하였다.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매우 간단한 단어의 의미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그가 「성경편 제3권 계시록 이해」라는 요한계시록 해설집을 내어 놓았다는 사실이다. 충격적이다. 이는 그의 요한계시록 해석이 얼마나 정상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있을지 짐작하게 한다.

서사라 목사는 살아생전 불의하게 산 사람들이 결국은 두 종류의 장소에 처해진다고 주장한다. 곧 ‘지옥’과 ‘성 밖’이다. 그리고 그는 타락한 목사들이 처하게 되는 ‘지옥’과 이기지 못한 목사들이 가게 되는 ‘성 밖’을 직접 보고 왔다고 한다. 지옥에 처해진 목사는 주로 교회 매도, 이성 문제, 돈 문제, 이중인격과 같은 도덕적인 문제와 연관되어있고, 성 밖 신세로 전락한 목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취한 것이 죄 몫이다. 그러니까 성 밖에 가는 자들은 지옥에 가는 자보다 조금 덜 죄를 지은 자이고, 성 밖은 지옥보다는 조금 덜 고통을 받는 곳이라는 것이다. 서사라 목사가 주장하는 ‘성 밖’이 과연 실존하는 장소일까? 이는 마지막 주제에서 자세히 밝힌다.

서사라 목사는 성 밖 신세로 전락한 목사들에 대해서 “그들은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가는 곳, 즉 성밖에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성 밖의 목사’들과 ‘이기지 못한 자’들을 동일시한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그것이 이기지 못한 내용이며, 그렇게 이기지 못했기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려지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성 밖까지 쫓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사라 목사는 살아생전 하나님의 영광을 훔치다 생명책에서 차츰 이름이 희미해져버린 목사들이 ‘성 밖’ 어느 장소에서 한명 씩 끌려 나가, 책에 기록된 횟수대로, 조선 시대 포졸 모양을 한 천사들에게 얻어맞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간증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성경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지는 경우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는 이미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해도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 그 이름의 색이 바래질 수 있다는 말은 얼핏 그럴듯하나, 전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필자는 요한계시록 3:5을 오역한 이 지점에서 서사라 목사의 ‘성 밖 목사들’ 체험담도 팩트가 아님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출발이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전제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역이 바탕이 된 이러한 신비 체험에 대해서는 마땅히 의심할 권한을 가지며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론 서사라 목사가 지목한 네 가지 죄 항목에 저촉되는 목사, 그리고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는 목사의 최후 운명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는 굳이 서사라 목사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성경이 충분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라 목사의 오역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지옥에 처해질 목사를 히브리서 6:4-6에 등장하는 한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락한 자에 대입한다. 서사라 목사는 이 구절을 근거로 구원을 얻은 자라도 타락하면 그 구원은 무효가 된다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히브리서 6:4-6은 구원 얻은 이후라도 그의 행실이 패악하면 그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로 알려져 왔다. 그렇다면 과연 이 구절을 그렇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히브리서의 수신자는 기독교로 개종하였지만 유대교 주류 사회에서 각종 핍박과 불이익을 견디다 못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갔거나, 돌아가기 직전의 사람들이다. 이런 당시 분위기 속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비교 분석하며 유대교의 모순을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변증한다. 그리고 이 수신자들을 향하여 복음 안에 머물 것을 요청한다. 유대교로 돌아가지 말 것을 촉구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이들을 가리켜 4-5절에 등장하는 ‘한 번 빛을 받은 자’, ‘하늘의 은사를 맛본 자’, ‘성령에 참여 한 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 본 자’ 등으로 표현한다. 이들은 복음에 대한 지식을 소유했고, 그러한 지식을 통해 기쁨을 얻었고, 성령의 보편적인 능력과 은사도 아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타락한다. 그렇다면 이 ‘타락’은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는가? 당연히 배교이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6절)에서 이 “타락”의 의미는 의도적인, 고의적인 배교행위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했지만 다시 복음과 그리스도를 공적으로 부인하며, 유대교로 복귀하는 것을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러한 자들의 최후를 6절의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πάλιν ἀνακαινίζειν εἰς μετάνοιαν)라는 문장으로 표현한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회개에 이르도록 다시 회복시키다”라는 뜻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리하게 분석한다. 기독교를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 다시 회복되어 회개하는 자리까지 나오는 경우는 없더라는 것이다.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는 문장은 배교한 사람의 속성과 특징을 나타낸다. 이 문장은 ‘구원의 취소’, ‘구원의 취하’, ‘구원의 박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다. 서사라 목사는 이러한 의미를 가진 히브리서 6:4-6을 임의대로 해석해 하나님은 이미 구원받은 자라도 그 행위에 따라 그 구원을 거두어 가시는 분으로 확정한다. 그리고 이를 타락한 목사에 대입한다. 목사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문제는 그가 애초부터 참다운 신앙인이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할 뿐 히브리서 6장과는 연관될 수 없다. 목사의 ‘타락’과 히브리서 6:6의 ‘타락’은 배경과 의미에 있어서 명백히 구분된다.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는 문장 또한 ‘박탈된 구원’과 무관하다. 서사라 목사는 이 본문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 모두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지옥 체험기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이탈한 체험기이기 때문이다.

서사라 목사는 자신이 경험한 이 신비한 이야기들을 안전하게 보장받고, 또한 세상의 비평과 독설을 미연에 차단하기 위해, 자신 체험의 근간이 성경이라는 사실을 매번 나타낸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소망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체험과 그가 제시하는 성경 구절 사이에 그 어떠한 접촉점, 그 어떤 연결 고리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그 둘 사이에 개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 언급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대목에서 서사라 목사의 천국 지옥 체험기를 근본적으로 의심한다. 성경이 모르는 신비 체험은 존재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도 자신이 본 환상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내용이라고 증언한다(계 1:2). 즉 성경을 이탈한 신비체험은 없다는 것이다.

서사라 목사의 ‘성경 오역’ 사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실제 예루살렘 성이 내려온다고 믿는다.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계 21:2)를 문자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천국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 예루살렘 성 바깥 지역을 예수를 믿어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성 밖’이라 주장한다. 그러니까 ‘천국’과 ‘성 밖’은 한 통로로 연결되어있는 셈이다. 매우 황당한 해석이다.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이 아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그리스도의 신부’와 ‘어린 양의 아내’를 가리킨다(계 21:9-10). 요한계시록 22:2에서도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로 묘사한다. 이를 「새번역」 읽으면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가 된다. 신랑은 어린 양 예수이다.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 교회공동체이다. 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실체는 어린양의 신부 곧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 이 지점에서 이미 서사라 목사의 ‘성 밖’ 스토리도 팩트가 아님이 증명된다. 예수를 믿어도 이기지 못한 자들이 간다는 ‘성 밖’이란 없다.

요한계시록의 저자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다양한 교회의 모습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셀 수 없는 큰 무리(7:9-17), 십사만 사천(7:1-8; 14:1-15), 두 증인(11:3-13), 여인(12장), 신부(19:7-9) 등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이 다양한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최종적으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응축한다. 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면모는 요한계시록 21:9-22:5에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서사라 목사는 요한계시록 21, 22장에 묘사된 새 예루살렘의 구조와 특징을 천국의 실제 모습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천국 밖의 지역을 ‘성 밖’으로 지칭하며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진 자,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한 자, 예수는 믿으나 이기지 못하는 자 등등 이 죽은 후 가는 곳이라고 한다. 상식을 벗어난 해석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서사라 목사가 말하는 ‘성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배경과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이라고 해서 이러한 해석의 원칙이 비켜가지 않는다. 건강한 요한계시록 해석의 기본 원칙은 우선 요한계시록 자체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당시의 맥락과 배경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파악한 그것을 교회에 제시하는 교훈과 위로와 경고와 전망 등을 중심으로 오늘날에 적용하는 것이다.

서사라 목사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기반으로 성경을 해석한다. 필자는 그의 체험담 자체가 ‘사실’이 아님을 확신한다. 하지만 설령 그가 체험한 일화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 자체가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길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의 성경 해석에서 발견된 수많은 오독과 오류가 그것을 증명한다. 성경 해석에서 필요한 것은 건전한 기독교 신학을 바탕으로 한, 기본적인 해석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성실한 연구와 주해뿐이다. 그가 목사로서의 길을 계속 걷기를 원한다면 이 부분에 더 증진하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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