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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점술’ 같은 허황된 ‘예언’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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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리 ‘점술’ 같은 허황된 ‘예언’ 집회
  • 정윤석
  • 승인 2002.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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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도원의 은사집회에서 소위 ‘예언’이라는 이름으로 신도들의 집안 대소사 등에 대해 점을 쳐주는 듯한 무속적 행위를 자행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몇몇 기독교 언론에 무분별하게 소개되거나 전단지 광고를 통해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어 각 교회마다 이에 대한 예방 교육이 시급한 실정이다.

“귀하의 문제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확실히 풀어드립니다”, “예언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방향을 제시”,  “모든 얽매인 결박이 끊어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성회”.
최근 교계 언론과 일부 지역에 배포되는 예언 집회 전단지에 쓰인 문구다. 집회에 한 번만이라도 가면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기자가 이들 중 3인을 찾아가 예언이란 것을 받아보기로 했다. 방식은 똑같다. 어디를 가든 헌금봉투에 돈을 넣고 예언 받기 원하는 내용을 적어서 내기만 하면 예언이란 것을 들을 수 있다. 여동생이 없지만 기자는 ‘여동생 결혼 문제에 대해 예언받기 원한다’며 신청했다.

   ▲ 각종 예언집회를 알리는 전단지들

“여동생이 아직 준비가 덜 됐어! 때가 아니야. 여동생이 축복권이 아직 없어. 그것을 누리려면 다음주 월요일부터 여기 와서 40일 작정 기도해 봐. 결혼상대자인 남자는 괜찮은데…. 그리고 당신 이름은 너무 갑갑해.”

B교회의 J 목사가 8월 9일 오전 집회 시간에 기자의 헌금봉투를 들여다보며 해 준 말이다. 여동생이 없으니 성립될 수도 없는 허황된 말이다. 이런 식의 자의적이고, 황당한 예언은 다른 곳에서도 계속됐다.

기자는 같은 날 저녁 최근 모 기독교 신문에 ‘신유, 예언, 신앙상담’을 한다며 광고를 낸 P기도원을 찾았다. 밤 10시 집회 시간에 앞서 가진 상담 시간. C 원장은 기자가 건넨 헌금 봉투를 보며 예언이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여동생이 외로움이 많아. 그래서 남자를 의지하고 싶어하니 막지 않아도 되겠어.” “여동생을 보지 않고도 어떻게 그렇게 아시죠?” “아, 무당들도 귀신의 영을 받아서 하는데 성령 받은 사람이 그 정도 못해서 되겠어? 결혼은 걱정말고 진행해.”

기자는 곧바로 S교회를 향했다. 담임인 J 목사는 기자와 맞대면한 자리에서 돈 봉투를 받고는 예언기도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와리켈레 세이 코레 와라켈레.” J 씨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외친 후 “하나님께서 가타부타 응답이 없다”며 “여동생과 남자의 결혼은 그들 자유에 맡겨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3인이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을 한다면서도 사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황당한 말을 각양각색으로 쏟아낸 것이다.

이런 일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기자는 지난 1999년 12월 S·L 씨, 2000년 8월과 9월 사이 ‘사명자 능력 대성회’(L 목사), ‘치유 축복 대성회’(P 목사)에서도 동일한 기도제목을 내 놓고 소위 예언이라는 것을 받아보았다. 당시 L (서울 집회)씨는 ‘결혼 찬성’, S 씨 내외와 P 씨는 ‘결혼 반대’라는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다. ‘예언’이 전혀 맞지 않는 허황되고 자의적인 사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현재도 소위 ‘예언 집회’를 한다며 일간지  등에 광고를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예언 집회’에 참석하는 이들에게도 있다. 한 은사집회에서 만난 Y 씨는 “000 목사를 만나면 가정 문제, 학교 붙는 것, 장래 일, 사명이 있는지의 여부 등 모두 정확하게 맞춘다”며 기자에게 “찾아가 보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B교회 신도들은 자기네 목회자가 예언을 잘한다며 “다른 곳을 다 다녀봤지만 이곳만큼 예언을 잘하는 곳은 없다”고 선전했다. 이렇듯 ‘예언 집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수요’가 계속되는 한 현재 교계에서 일고 있는 예언 행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 허황된 예언 행위에 대해 김상훈 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 신약학)는 “개인의 대소사와 관련해, 당장 벌어질 어떤 일에 대해 점치듯 질문하고 답해주는 것은 성경이 금하는 무속적 행위”라고 지적하고 “이런 행위를 좋아하다 보면 하나님과 그 말씀보다는 예언 행위자를 의존하는 기형적 신앙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앞길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좋으신 하나님께서 선을 이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하며 헤쳐나가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라며 “교회에서 잘못된 예언 집회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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