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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출현할 마지막 아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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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출현할 마지막 아이(상)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07.2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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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4 - 정해동 편

 

1) 정해동 씨 주장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 그랬죠. 레위기 23장 앞에는 유월절, 칠칠절 이렇게 나왔죠..··· 유월절이라는 절기는 1월 14일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실 날을 예언해 놓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칠칠절은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이 임할 것을 예언한 절기입니다.···율법은 무엇을 하라 혹은 하지 말라는 행위를 규정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설계하시고 그것을 암호화해서 예언으로 묻어둔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그러면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나팔절도 장차 올 좋은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겁니다. ···이 절기를 모르면 이것이 이루어지는 예언에 참여할 수가 없어요.···모세를 통해서 정해 놓으신 이 나팔절이 한참 세월이 지나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데 나팔이 나오는 거예요. 여기 나팔이 몇 개예요. 하루에 한 개씩 한 개씩 불어가는 거예요. ···

여호수아서 6장 15절 봅니다.···일곱 바퀴를 돌고 일곱 번째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거예요. 7일째 일곱 번째 나팔을 불더라 이 말이다. ···이 나팔절과 여리고 성의 이 나팔의 사건과의 연관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8장에는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가졌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여리고 성에서 계시록으로 뛰어 넘었으니까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6절에 보면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8절에는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고 10절에는 셋째 천사가 나팔, 12절에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8장에 보면 네 개의 나팔이 불려졌어요. 일곱 개 중에 네 개를 불렀으니까 몇 개 남았죠. 3개. 그 다음 9장을 보세요.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13절에는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나팔을 하나씩 하나씩 불어서 지금 여섯 개까지 불었다. 이제 마지막 일곱째 나팔만 남았습니다. 이 일곱째 나팔은 언제 나타나느냐?···

(요한계시록)11장 15절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이렇게 되어 있죠.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꼭 여리고성에서 나팔이 하나씩 하나씩 불었던 것처럼 계시록에서도 하나씩 하나씩 불어진다. 연결이 됩니까? ···성경을 이렇게 연결시켜서 봐야 바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이 일곱째 나팔은 마지막 나팔입니다. ···여리고 성이 일곱 번째 나팔에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올 사건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면 이 일곱째 나팔이 불어졌을 때는 뭐가 무너질까?

과거에는 여리고 성이 무너졌죠. 계시록에서 마지막 나팔이 불어지면 실제 뭐가 무너지는 일이 생길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피날래와 같은 것입니다. ···10장 7절을 보세요. 일곱째 천사가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뭔가 어마 어마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우리 성산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이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어질 것을 기대하고 오는 것 맞죠? ··· 이 복음은 일곱째 나팔이 불리어질 때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결말은 뭐냐?. ···요한계시록 11:5를 보면 세상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로 바뀐다는 겁니다. ···지금은 7일째 접어든 시대 아닙니까? ···지금 우리 시대를 말세라고 하는 것은 일곱째 나팔이 불리어지는 때라는 말입니다.···고린도전서 15장 51절을 보세요.···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라.

일곱 개 나팔이 있었는데 일곱 번째 나팔이니까 마지막 나팔이죠. 마지막 나팔이 불리어지면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다 죽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 죽는 길도 있다는 겁니다. 그 길이 뭐냐?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는 예수님의 재림의 역사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일곱째 나팔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집니다.···(정해동의 마지막과 나팔절 영상)

12장으로 넘어 가면은 여기서 해 입은 여자가 나옵니다. 이 여자가 애를 배고 있고 그 애를 잡아 먹으려고 붉은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요.···이 아이가 일곱째 나팔에 출현하는 일꾼이다. 이 말입니다.···이 아이에 대해서 뭐라 그랬냐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다. 장차라고 말한 것은 이 두 증인이 활동한 때에는 아이가 나온 거예요 안 나온 거예요? 아직 안 나온거야. 그리고 나왔다하더라도 당장 이 축복(만국을 다스림)을 받는 것이 아닌 거지. 그러니까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하늘만 쳐다보고 재림을 기다리는 거지. 땅에서는 지금 이런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데···이 아이를 통해서 이제 세상이 변하기 시작하는 거야.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변화가 되는 역사가 이 아이로 인해서 시작됩니다(정해동의 두증인과 감람나무 영상).

‘마지막 아이’에 대한 정해동 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율법 안에는 인류 구원 설계에 대한 하나님의 암호가 있다.

* 나팔절기의 나팔과 여리고성의 나팔과 요한계시록의 나팔과 고린도전서 15:51의 나팔은 연 결된다.

* 오늘날은 일곱째 나팔이 불린 예수 재림의 시대이며, 복음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시대이다.

*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는 일곱째 나팔 때 등장하고, 이 아이는 두 증인이 활동할 때 나온다.

* 재림주가 이 아이이며, 이 아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미 와 있고, 이 아이를 통해 세상이 변한다.

2) 성경적 해석

정해동 씨는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를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룰 구원자로 나타내며 레위기 23:24의 나팔절을 끌어들여 이 구원자의 출현 시기를 확정한다. 이를 위한 사전 포석으로 율법을 인류 구원에 관한 암호라는 전제를 먼저 설정한다. 과연 이러한 해석이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레위기 23장에 의하면 나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일곱 절기 가운데 하나이며, 이 절기에 관한 규정은 율법으로 정해져 있다.

정해동 씨는 율법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설계도이며 암호라는 사실을 유월절과 칠칠절(오순절)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날이 유월절이며,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한 날이 오순절이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율법(유월절, 칠칠절)안에 이와 같은 예수님의 구속 역사의 비밀이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유월절이 아닌 니산월 13일 유월절 예비일에 돌아가셨다(요 19:31). 물론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한 것은 유월절 어린 양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요 1:29). 이런 면에서 유월절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예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 양이 속죄제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 의의가 있음을 밝히셨다. 또한 성령 하나님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강림한 것도 사실이다(행 2:1).

이는 하나님께서 부활 후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맞추어 성령 하나님을 보낸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날도 안식 후 첫날 초실절이었다. 초실절은 무교절(1월 15일)이 지난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는 시점, 부활할 날, 성령 하나님이 강림할 날을 아무 날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구약의 절기에 맞추셨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약의 일부 사례만을 바탕으로 해서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이 암호화되어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섣부른 일반화이다. 명확하지 않은 증거나 일부의 사례만을 가지고 섣불리 어떤 결론을 도출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성경을 오역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성경은 율법에 대해 그러한 말을 하지 않는다. 율법은 그 자체로 고유의 기능을 지닌다. 율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그 누구도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음을 가르치며(롬 3:20) 또한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통해 율법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교사의 역할을 한다(갈 3:24~25).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히 10:1)라는 표현에서 장차 올 좋은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이다. 성경은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고 진술할 뿐, 율법이나 절기가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구원 계획이 담긴 암호라고 말하지 않는다.

“율법은 무엇을 하라 혹은 하지 말라는 행위를 규정한 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설계하시고 그것을 암호화해서 예언으로 묻어둔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라는 정해동 씨의 주장은 율법의 원래의 기능을 상실시키는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다. 도대체 이 말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근거해 있는지 궁금하다. 성경을 암호로 취급하는 것은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 씨에게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성경을 암호나 비밀스러운 책으로 전제하는 이유는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기 위해서이다. 암호는 그 암호를 풀 수 있는 특수한 사람에 의해서만 풀린다.

정해동 씨는 자신의 설교 가운데 한국교회의 모든 목사들은 무지하며, 자신만이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특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자주 자기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성경 구절을 자기주장에 뜯어 맞추는 비상식적인 일을 자행한다. 과연 하나님이 성경을 그렇게 난해하게 하셨을까?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 얻기를 원하신다(요 20:31). 하나님은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그것을 통해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워지고,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신다(딤후 3:16-17). 성경은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은 이성을 가진 모든 인간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어떠한 성경도 암호화하지 않으신다. 율법도 이에 있어서 예외가 아니다.

정해동 씨가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나팔절의 나팔(레 23:23)과 요한계시록의 나팔(계 11:15)을 고리로 꿴 후 이를 통해 종말에 출현할 ‘아이’가 나타나는 시기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 연결 고리 안에는 여리고 성 함락 때 불었던 나팔(수 6:15-27)과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고전 15:51)까지 끼워 넣고 있다. 이러한 네 가지 소재를 엮어서 오늘날이 바로 종말의 때이며, 종말에 출현할,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가 이미 대한민국에 와 있다고 말한다. ‘나팔’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구절들을 임의로 선택하여 왜곡하고 비약하여 내린 자의적 결론이다. 이런 식의 해석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일까? 각각의 구절들이 모두 ‘나팔’이라는 글자를 포함하고 있지만 각각의 구절들은, 전혀 접촉점이 없는, 완전히 다른 배경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절들을 뽑아와 연결 고리 삼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 이러한 단어 중심의 해석은 모든 사이비들에게 있어서 공통적 나타난다. 단어는 어디까지 임의적인 표시이다. 단어는 여러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동일한 단어이지만 성경을 기록했던 시대적 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동일한 단어이지만 문맥 속에서도 그 뜻에 변화가 생긴다. 나팔을 예로 들자면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나팔(출 19:18-20; 민 10:9-10), 소집을 알리는 나팔(삿 6:3-4; 느 4:20), 전쟁을 선포하는 나팔(수 6:20; 렘 4:19), 의식이나 절기를 알리는 나팔(레 23:24; 삼하 6:16; 시 81:3), 악기로서의 나팔(대상 15:28; 대하 5:12-14) 등이 있다. 이 ‘나팔’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 네 구절들은 서로 연관이 없으며 각각 독립적이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단어의 의미는 문맥이 최종적으로 결정해 준다. 철자가 같거나, 소리값이 같은 단어들을 끌어 모아 연결 고리 삼는 방식의 해석은 성경을 오역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필자도 정해동 씨의 해석 방법을 사용하면 수도 없는 ‘썰’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역대상 16:6에 등장하는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었던 제사장들과 느헤미야 4:18에 등장하는 성전 재건 공사와 관계된 나팔수들과 마태복음 6:2에 나오는 위선자들이 불었던 나팔과 마태복음 24:31의 예수님의 재림 시에 울려 퍼지게 될 나팔을 연결하고, 비약해서 교회를 크게 지으려고 욕심을 내는 목사들은 위선자들이며, 예수님 재림 시에 버림받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단어만 연결해서 악용하면 성경은 귀에도 걸고 코에도 걸 수 있다.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은 저자와 독자의 상황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문맥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해동 씨는 이러한 성경 해석의 기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자기의 입맛대로 문맥과 관계없는 풍유적 해석을 남발한다. 나팔절과 여리고성을 진격하며 불었던 나팔은 서로 아무 관련성이 없다. 전자는 절기를 알리는 신호이며 후자는 진격 시에 부는 나팔소리이다. 또한 이 나팔과 일곱째 천사가 불었던 나팔과도 무관하다. 요한계시록 8:7-11:19에 등장하는 나팔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상에 대한 심판과 관계가 있다.

일곱 나팔 재앙은 1세기의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로마 제국과 핍박받는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를 배경으로 한다. 이 나팔은 여리고로 진격하며 불었던 나팔과 하등 상관없다. 이 말은 여호수아 6:15-27와 요한계시록 11:15은 연결될 수 있는 아무런 접촉점이 없으며, 원형과 모형의 관계는 더욱더 아니라는 것이다. “여리고 성이 일곱 번째 나팔에 무너졌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올 사건의 그림자입니다.”라는 정해동 씨의 설명은 그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동시에 이 나팔들과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와 연결될 접촉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동 씨의 대부분 주장들은 이렇다 할 근거 제시가 없는 일방적인 선언에 가깝다.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아이는 예수 탄생을 저지하려는 헤롯의 흉계와 관련이 있다. 레위기 23장의 나팔과 여호수아 6장의 나팔과 요한계시록 11장의 나팔과 고린도전서 15장의 나팔을 연결하여 현재 대한민국에 출현해 있다는 아이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하다.

정해동 씨는 일곱째 나팔이 불리는 오늘날이 예수 재림의 시대이며, 복음이 완성 되어가고 있는 시대라고 주장한다. 지금이 예수 재림의 시대라는 말은 예수가 이미 재림해 있다는 말과 같다. 의도가 훤히 보이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미 재림해 있는 이 예수가 누구일까?

정해동 씨는 “우리 성산 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이 일곱 번째 나팔이 불리어질 것을 기대하고 오는 것 맞죠?. ···지금 우리 시대를 말세라고 하는 것은 일곱째 나팔이 불리어지는 때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일곱째 나팔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12장으로 넘어 가면 여기서 해 입은 여자가 나옵니다. 이 여자가 애를 배고 있고 그 애를 잡아먹으려고 붉은 용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요. ···이 아이가 일곱째 나팔에 출현하는 일꾼이다 이 말입니다...그러니까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하늘만 쳐다보고 재림을 기다리는 거지. 땅에서는 지금 이런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는데...이 아이를 통해서 이제 세상이 변하기시작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 정해동 씨의 말을 정리하면 일곱째 나팔 소리가 들리는 오늘날이 말세이며, 이 말세에 이미 재림 예수가 대한민국에 와있고, 이 존재가 요한계시록의 아이이며, 이 아이를 통해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미 재림해 있는 예수를 몰라보고 아직도 하늘의 구름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질타한다. 정해동 씨는 구름을 ‘영’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육적 차원에서 실제로 오신다는 전통적 재림관을 부인하는 신천지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만희 씨는 예수님이 실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영이 누군가에게 임함으로 재림이 이루어지며, 그 영이 자기에게 임했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하늘의 구름만 쳐다보며 예수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요즘 대다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씀에서 ‘구름’이 실제적인 구름이 아니라 다니엘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필자도 안산제일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할 때 이 사실을 많이 주지시키고 강조하곤 했다.

구약 성경에서 구름이란 하나님의 임재 시에 나타나는 현상(출 19:9, 16, 24:15-16, 40:34, 신 4:11; 5:22; 왕상 8:11; 시97:2)이며 구름을 타고 오는 존재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현법이다(시 104:3; 사 19:1). 다니엘은 인류 최후의 날에 구름타고 오는 “인자”에 대해 예언했다(단 7:14). 예수님은 유대 전통을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니엘서를 인용해서 장차 구름 타고 오는 “인자”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을 정확하게 나타내셨다(마 24:30, 26:64). 이 유대인들은 예수가 실지로 그러한 자격이 있는가를 의심할 뿐, 최소한 구름을 실지 구름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신다. 예수님의 영이 어떤 사람에게 임함으로 이루어지는 재림은 없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그 누구의 도움이나 매개자 없이 스스로 재림하신다.

정해동 씨는 이 ‘아이’(재림주)가 출현하는 시점을 언급함으로 그 재림주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이 두 증인이 활동한 때에는 아이가 나온 거예요”라고 하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두 증인은 이만희 씨를 가리킨다. 현재 대한민국에 있는 재림주는 이만희 씨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이다. 과연 현재 대한민국에 와 있다는 재림주가 누구일까? 성산교회의 신도들은 정해동 씨가 재림주를 누구와 동일시하고 있는지 감은 잡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이 너도 나도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데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들이 자기와 예수님을 동일시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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