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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동 씨가 말하는 신천지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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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동 씨가 말하는 신천지의 허구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07.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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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3 - 정해동 편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가 누구인가?'
신천지 지파장 출신으로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정해동 씨

1) 정해동 씨 주장

신천지가 주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계시록 11장이거든요. 자기들이 두 증인, 두 감람나무라고 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일곱 촛대 교회가 2장~3장에서 출현을 하고 여기에 이세벨이나 발람같은 이교도들이 침입을 해서 일곱 촛대 교회의 변질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일곱 교회가 우리나라에 출현을 했고 이 일곱 촛대 교회가 계시록에 나오는 과정대로 변질되어 가지고 심판받아서 끝이 났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 일곱 촛대 교회가 과천에서 출현했습니다. 1966년도에 출현했습니다. ···이 교단의 이름이 뭐냐 하면 장막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장막성전을 창설한 멤버가 일곱 사람이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유재열이라는 사람이었어요.···

이 장막성전이라는 이름이 80년도에 장로교로 바뀌어 버렸어요. ···이런 즈음에 이 사람이(이만희) 여기를 바라보면서 여기서 계시록이 시작되었고 이들이 멸망을 당했구나 하는 것을 증거하기 시작한 거예요. ···계시록의 역사가 대한민국에서 시작되었다 하는 것을 증거한 것이죠. 그렇게 증거를 하면서 자기가 ‘두 증인이고 두 감람나무이고 두 촛대다’ 그러면서 교회를 세워서 시작한 것이 1984년부터입니다. ···자기를 두 증인이고 두 감람나무라는 것은 계시록의 11장의 현장이 자기라는 얘기죠, 그리고 여기서 끝나지 않고 12장으로 들어가서 만국으로 철장을 다스릴 아이도 자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15장에 나오는 증거장막성전도 이 아이가 세운 교단이라고 합니다. ··· 그러면 성경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평할 것인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여러분 감람나무에 대해서는 설명을 드렸죠. 성소의 일곱 등대에 사용되어진 기름이 감람유라 그랬죠.···그 감람유에서 유래된 것이 감람나무인데 계시록 11장으로 놓고 보면 두 증인이 두 감람나무이고 이는 말세에 어마어마한 역사를 해야 될 종으로 표현이 되어 있죠.···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감람나무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되어 있나요? ···신명기 28장 40절을 보세요.···15절부터는 말 안 들으면 벌 받는 내용이잖아요. 신천지 교주가 두 증인이고 감람나무라는 주장이 맞다 칩시다.···이 신천지 교주가 마지막까지 이어갈 선지자인지인지 아니면 중간에 그만 둘 선지자인지 계시록 11장에는 기록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0절에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기록하게 했는데 그냥 기록하게 했겠냐? ···그 다음 욥기 15장 33절을 봅시다. ···감람꽃도 떨어질 수가 있다고 암시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거예요. ···이사야 17장 4절부터 볼까요. ···감람나무가 멸절당한다고 암시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만 찾아봐도 감람나무의 결말이 해피엔딩입니까 세드엔딩입니까?

예레미야 11장 16절을 봅시다. 그 감람나무 위에다 불을 싸질러 버린다고 합니다. ····신천지 교주는 이런 구절들을 백성들에게 보지도 못하게 다 가려놓고 자기가 딱 가르쳐주는 것만 믿어! 하고 세뇌를 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아모스 4장 9절을 봅시다. ···감람나무가 다 멸절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어요. 그 다음 미가서 6장 15절을 봅시다. ···이렇게 철저히 감람나무의 종말에 대해서 예언을 해놓고 있어요. 오늘 신천지 백성들이 오늘 이 유튜브를 들으면 간이 다 녹아 버릴 거야.···하박국 3장 17-18절을 봅시다. ···감람나무에 열매가 하나도 없어도 실망하지 마라 이 말이다. 당연히 이런 날이 있을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교주가 가야 할 길이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계시록 11장에는 두 증인에게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짓밟히도록 측량하지 말라 했어요. ···밖 마당은 성소입니다. 안마당은 지성소이죠. 여기(지성소)있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지성소로 들어왔다는 겁니다. ···여기(지성소)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 신천지들은 계시록 15장의 증거장막이 자기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계시록 15장 5절을 보십시오. ···이 증거장막이 15장에서는 열려 있지만 일곱 대접이 마치기 전까지는 여기 들어갈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일곱 대접은 16장에 나옵니다. 16장 재앙이 마치기 전에는 증거장막에 들어갈 자가 없어야 되는데 벌써 11장 여기(지성소)에 들어와 있지요. 이 증거장막이 제대로 된다면 15장에서 열려야 하는데 이미 여기(지성소, 증거장막) 들어와 있고 역사는 진행되고 사람들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증거장막 17장이 되기 전까지는 못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간판(신천지 증거장막)은 15장에서 달아야 될 간판이지 11장에서 달아야 될 간판이 아니란 거죠. 그래서 이게 증거장막이라는 이름을 절도했다는 겁니다. ···

지금 신천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성경이 비판하는 거예요. 이 두 11장의 촛대와 15장의 증거장막은 완전히 다른 거다.···11장에 보면 두 증인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계시록에는 지팡이가 세 개가 나오거든요. 갈대 지팡이 하나 나오죠. 12장에 철장이 나오죠. 이것은 아이에게 주는 철장이죠. ···계시록 21장에는 금갈대가 나와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왕성할 때에 측량하는 잣대는 금갈대라고 합니다. 이 갈대는 두 증인에게 주고, 이 철장은 아이에게 주고, 이 금갈대는 마지막 완성시킬 때 주고. ···자, 그러면 보세요. 이 아이와 두 증인이 동일인물이 아니란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 두 증인을 두고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라고 말했으면 절대로 두 감람나무는 주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주가 되어 있고 자기가 하나님까지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두 증인이 가지는 사명은 1260일은 에언하는 거예요. 시한부 예언이다. 어차피 두 증인은 시한부 사명자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에 대해서는 뭐라 했습니까? 장차 만국을 다스릴 아이라 그랬어요. 미래는 이 아이에게 다 쏟아부어버렸어요. ···그러면 1260일을 예언하고 나면은 이 두 증인은 이 아이를 따라야 합니다. 이 두 증인인 이 아이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언이 되어있는 겁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요한계시록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천지 허구’에 대한 정해동 씨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이만희 씨가 스스로 자기가 두 증인이며, 감람나무이며, 마지막 때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다.

* 신명기 28:40, 욥기 15:33, 예레미야 11:16, 미가서 6:15, 하박국 3:17-18은 자신을 감람 나무라고 주장하는 이만희 씨의 운명을 예언한다.

* 이만희 씨가 요한계시록 15:5의 증거장막성전이라는 명칭을 도용했다.

* 이만희 씨가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가 아니며 이 아이에 해당하는 자를 배척했지만 장차 는 그를 따라야 한다.

2) 성경적 해석

정해동 씨는 대한민국에서 나타날 세상의 마지막 임무를 맡은 자를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로 단정한다. 이에 앞서 자신을 가리켜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이며 감람나무이며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 씨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정해동 씨는 이만희 씨가 감람나무에 해당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의 운명은 성경의 예언대로 곧 끝이 날것이며 결코 그는 그 ‘아이’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요한계시록 11장까지는 이만희 씨에 해당이 될 수 있지만 12장까지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장의 아이는 현재 대한민국에 있으며 아직 드러나 있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이러한 주장을 하는 두 사람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만희 씨는 1966년에 설립되었다가 붕괴되어버린 장막성전의 유재열 씨와 자기의 스토리가 요한계시록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재열 장막성전의 붕괴 과정과 이를 붕괴시킨 멸망자들의 만행을 목격했으며, 이 멸망자들을 이기고 자기가 마침내 오늘날에 이르렀는데, 이 모든 과정들을 요한계시록이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이란 다름 아닌 1966년 한국 과천에서 시작했다가 몰락한 유재열 장막성전 이야기이며, 그리고 이만희 씨의 신천지 장막성전이 설립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신천지 변천사라는 것이다. 이만희 씨는 소위 영적 해석이란 성경 해석 방법을 동원해서 요한계시록에 대해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이러한 요한계시록에 대한 몰이해 내지 왜곡이 요한계시록을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스토리라고 가르치고 있는 정해동 씨에게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요한계시록의 배경과 기록 목적과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이를 오늘날의 이야기로 해석한다는 점에서는 이만희 씨와 정해동 씨는 도긴개긴이다. 요한계시록은 대한민국이 아닌 1세기의 소아시아 교회를 배경으로 한다. 사도요한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지명하신 이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이었다. 예수님은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계 1:11) 하셨다. 요한이 보낸 편지의 내용 또한 각 교회의 상황에 맞는 책망뿐 아니라 칭찬과 격려, 그리고 회복과 상급에 대한 약속도 정확하게 덧붙여져 있다. 요한계시록은 한국이 아닌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요한계시록의 대미를 장식하는 22장에 등장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으로, 창세기 1장에서 처음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이 성취되는 사건이다. 이것은 전 지구적, 전 우주적 사건이다. 그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켜 과거 대한민국에서 발생했거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어떤 단체와 관련된 이야기로 국한하는 것은 요한계시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만희 씨나 정해동 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요한계시록을 읽었던 전 세계의 독자들은 그동안 헛된 교훈만 받아왔다고 단정 지을 수 있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주장이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또 그를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고(요 5:39), 또 자기 백성들을 교훈하고, 책망하여 바로 잡고, 의로 교육하고, 온전하게 만드실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딤후 3:16-17)와 조화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과연 성경을 그렇게 되도록 하셨을까? 2천년 동안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묻어 두셨을까?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구속 역사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요한계시록을 한낱 대한민국에서 출현한 아이가 그 중심이라는 정해동 씨의 가르침을 듣고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요한계시록을 한낱 우스갯거리로 여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해동 씨는 자기를 감람나무라고 주장하는 이만희 씨의 운명을 신명기 28:40, 욥기 15:33, 예레미야 11:16, 미가서 6:15, 하박국 3:17-18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설명한다. 이런 해석이 정당한가? 정해동 씨는 성경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표현된 ‘감람나무’와 관련된 구절들을 모두 뽑아내어 이를 이만희 씨의 운명에 대입한다. 그렇다면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복으로서의 감람나무를 말한 신명기 6:11과 감람나무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는 호세아 14:6은 어떻게 해석해서 이만희 씨에게 적용해야 할까? 각 구절에 등장하는 감람나무와 요한계시록의 감람나무를 동일시하는 정해동 씨의 해석은 신천지의 단어 짝 맞추기의 해석을 그대로 닮아있다. 감람나무라는 글자가 신명기 28:40, 욥기 15:33, 예레미야 11:16, 미가서 6:15, 하박국 3:17-18에도 나오고, 요한계시록 11:4에도 동일하게 등장하지만 각각의 감람나무들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동일한 단어를 연결 고리 삼아 비약하는 해석은 성경의 해석의 기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소리값이 같은 글자를 끌어 모아 연결 고리 삼는 버릇은 신천지 교주와 빼 닮아 있다.

요한계시록 11:3에는 두 증인을 가리켜 두 감람나무라고 한다. 감람나무는 스가랴가 본 환상을 배경으로 한다. 이 환상에 등장하는 두 감람나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유다 총독 스룹바벨을 상징한다. 이 환상은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이 장차 파괴된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예언을 담고 있다. 즉 감람나무에 비유되었던 이 두 증인은 성전 혹은 교회와 관계있는 인물이다. 두 증인, 두 감람나무는 모두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증인 앞에 붙은 ‘두’ 즉 ‘2’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이다(신 17:6; 19:15). 따라서 두 증인은 ‘증언하는 교회’를 가리킨다.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은 입었다는 것은 교회의 사역의 속성을 말한다. 굵은 베옷은 회개 시에 입는 옷이다(왕하 1:8; 렘 4:8; 욜 1:13 참고). 두 증인은 세상을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교회이다. 이러한 두 증인을 대한민국 출신의 사람으로 해석하는 데 있어서 이만희 씨나 정해동 씨나, 둘 다 피장파장이다.

정해동 씨는 자기 교회가 진정한 증거장막성전이라고 주장하며 이만희 씨가 요한계시록 15:5의 증거장막성전이라는 명칭을 도용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요한계시록 15:5의 ‘증거 장막의 성전’이라는 용어가 이 땅에 속한 어떤 집단과 동일시 될 수 있는가? 이 명칭을 차용하든 베껴 쓰든 그것은 자유이지만 이 용어를 자기 집단과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이다. 요한계시록을 한국에서 이루어진 혹은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으로 해석하는 면에서는 이만희 씨나 정해동 씨나 동일하다.

이만희 씨는 「진리의 전당 주제별 요약 해설」, 116에서 자기들을 증거장막으로 호칭하는 이유는 신천지가 이 땅에서 신약성경이 이루어지는 사건들을 낱낱이 ‘증거’하는 곳이기 ‘증거장막’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증거장막에서 ‘증거’로 번역된 마르튀리우(μαρτυρίου)는 모세의 장막 안에 있는 두 증거 돌판(십계명의 두 돌비)에 기인된 단어이다(출 32:15, 신 10:5). 그래서 모세가 받은 두 증거판이 간직되어있는 장막을 가리켜 민수기 17:7과 18:2에서는 ‘증거의 장막’으로 호칭한다. 이만희 씨가 생각하는 ‘증거’와 이 ‘증거’는 전혀 다르다. 이만희 씨가 증거장막이라는 용어를 도둑질했고 자기 교회만이 증거장막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정해동 씨가 이 어구의 용례를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증거 장막의 성전’으로 번역된 “나오스 테스 스케너스 투 마르튀리우”(ναὸς τῆς σκηνῆς τοῦ μαρτυρίου)를 직역하면 ‘성전 곧 증거의 장막’이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늘의 성전에 대한 환상은 몇 번 언급되어있다(계 7:15; 11:19 참조). 그러나 하늘의 성전을 모세의 장막으로 표현한 경우는 요한계시록 15:5이 유일하다. 왜 사도요한이 일곱째 천사가 나오고 있는 하늘 성전을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이 들어있는 모세의 장막과 연결시켰을까? 이는 일곱째 천사가 진행시키는 일곱 대접 재앙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된다는 사실과 그 재앙이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지상에 내려지는 대대적인 재앙들은 우연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의 성취임을 보여준다. 이를 간과하고 오직 ‘성전’이라는 글자와 ‘증거’라는 글자와 ‘장막’이라는 글자를 나열시켜 놓고 이를 자기 집단의 명칭과 동일시하는 것은 ‘증거 장막’ 혹은 ‘성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의 문맥을 고려해 증거장막의 성전이 왜 등장했는지를 살펴보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단어만을 연결 고리 삼아 자기 집단의 특수성만을 강화하고 있는 면에 있어서는 이만희 씨나 정해동 씨나 동일하다. 요한계시록 15:5의 “성전 곧 증거의 장막”은 이만희 씨나 정해동 씨의 ‘증거장막성전’과 아무 관련 없다.

정해동 씨는 이만희 씨가 11장의 두 증인에 해당될지는 모르나 12장의 만국으로 철장을 다스릴 아이는 절대로 될 수 없는 이유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설명한다. 즉 두 증인(이만희)에게는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는데 12장의 아이에게는 철장을 주었으므로 이 이만희 씨와 그 아이는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은 존재는 두 증인(이만희)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다(계 11:1). 정해동 씨의 논증은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요한은 천사로부터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여기서 측량의 의미 또한 정해동 씨의 주장과는 다르다. “측량하다”(계 11:1)로 번역된 메트레손(μέτρησον) 보호하다는 의미이다(박수암. 「요한계시록」. 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148-149). 그러므로 척량의 대상에서 제외된 성전 밖 마당이 짓밟히게 되는 것이다(계 12:2). 정해동 씨는 측량을 심판의 의미로 해석한다.

물론 두 증인과 아이는 동일하지 않다. 이미 언급했듯이 두 증인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마지막 편에서 설명하겠지만 이 아이는 대한민국 출신의 그 누군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 정해동 씨는 요한계시록 11:3을 근거로 두 증인 즉 이만희 씨가 받은 사명은 1,260일을 예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사명은 시한부라고 주장한다. 이 논증 또한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두 증인은 이만희 씨가 아니라 당시의 교회공동체를 상징하며 1260일은 교회가 예언하는 기간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정해동 씨는 만국을 철장을 다스릴 아이가 누구인지를 암시한다. 정해동 씨는 “1260일을 예언하고 나면은 이 두 증인(이만희)은 이 아이를 따라야 합니다. 이 두 증인인 이 아이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배척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언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한 때 신천지에 충성하며 신천지를 융성하게 했었지만, 무슨 연고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신천지와 등지고 이만희 씨를 공격하고 있는 정해동 씨가 만국으로 철장을 다스릴 아이를 누구로 여기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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