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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출현할 마지막 아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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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출현할 마지막 아이(하)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08.05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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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 진단 5 - 정해동 편

1) 정해동 씨 주장

증거장막성전은 계 15:5에서 약속하는 마지막 재림 때의 하나님의 성전이요 추수 알곡이 모이는 곡간이요 거룩한 시온산이다. 계시록의 예언대로 마지막 시대의 등불 사명으로 1966년에 세운 7촛대 교회가 이세벨과 발람의 무리들과 짝이 되어 1981년 9월 20일 14시(년월일시, 계 9:15)에 이방과 언약하고 세상으로 떠내려 가버렸다. 이것 자체가 일곱 금 촛대의 배도의 행위였던 것. 이 사실을 목도하고 계시록의 재림 사건이 동방 해 돋는 곳에서 시작되어 배도의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두 증인이 출현하였다. 두 증인은 1260일간의 예언적 사명을 띠고 갈대지팡이를 가지고 이세벨과 무저갱의 사자 황충이 무리들과 사건이 진상을 알리며 출범한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신천지이다.

두 증인은 ‘주 앞에’ 섰던 두 감람나무요 두 촛대라 했음에도 두 증인은 사명을 뛰어 넘어 자신이 주가 되어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 아이라 자처하며 월권을 하고 나아가 15장에서 주어지는 증거장막성전이라는 이름조차 멋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가 곧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일컫는 멸망의 아들이 아닌가? 가히 그 행하는 악행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은커녕 이방의 짐승만도 못한 짓거리로 세상의 지탄꺼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이 멸망의 아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음을 보고 있다. 그들의 간판으로 내걸고 있는 증거장막성전은 계12장의 ‘철장 권세를 가진 남자 아이’가 받아야 할 이름을 도적질한 것이요 신천지라는 이름은 천 년 후에 이룰 새 하늘과 새 땅을 도용했으니 그야말로 절도요 강도요 이보다 더 큰 강도도 없을듯하다.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는 출현하는 날짜와 장소가 모세의 율법 속에 이미 예언되어 있다··· 여기까지(유월절, 초실절, 오순절)가 (예수) 초림에 대한 절기의 예언들이었다. 그 이후의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팔절은 7월 1일이요, 속죄일은 7월 10일이고, 초막절은 7월 15일이다. 초림의 절기는 유월절을 기점으로 계산이 되는데 재림 사건의 기점은 나팔절로 시작된다··· 7월 1일 나팔절의 나팔은 두 증인이 죽었다가 일어난 후 하늘로 올라간 후에 불어진다. 그리고 계시록 11:15에서 시작된다. 그 나팔이 불리니까 언약궤가 보이는 지성소(성소 아님)의 하늘에서 7머리 10뿔 용이 죽이려는 위협 속에서 해 입은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된다. 곧 나팔절은 철장 권세를 가진 남자 아이가 출현하는 날짜였던 것이다···

그리고 7월 15일 초막절로 이어진다. 이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지킬 수 있는 최종적 절기이고 마지막 가을 추수를 끝내고 지켜지는 최고의 축제일인 것이다. 이는 마지막, 진정한 구원의 장소인 지성소의 언약궤 곧 속죄소로 나아가는 날인 것이다. 계시록이 예언한 증거장막성전이 열린다면 이는 7월 15일이어야 한다. 이 증거 장막이 (7월 15일) 열리기는 하지만 마지막 7대접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계시록 15:8). 철장 권세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지만 당장이 아니라 ‘장차’라는 유예기간을 두었지 않은가? 남자 아이가 권세를 행사하는 날이 이 증거장막의 성전에 들어가게 되는 날과 일치하지 않을까? 그것은 겔 39장에서 마지막 전쟁(42달)이 끝나고 7년간 병기를 불사르고 7개월간 거리를 청소하는 시간이 지나고 시온산에서 잔치를 벌일 것이라는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다.

본 성전은 2006년 7월 15일에 세워졌다. 그리고 우리의 나라는 빼앗기고 42달과 7년 7개월이 2017년 8월까지였다. 그 외에 계시록에 기록된 12장부터 20장까지 전개된 계시록의 실상은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사연들이 있었음을 알려드린다.

‘마지막 아이’에 대한 정해동 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배도자는 일곱 금 촛대 교회이고, 멸망의 아들은 신천지 교주이다.

* 유월절, 초실절, 오순절은 초림에 대한 예언이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재림에 대한 예 언이다.

* 나팔절은 요한계시록 11:15에서 시작되며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 간 후에 불려지며, 이 날 에 철장권세를 가진 아이가 출현한다.

* 초막절은 마지막 구원의 장소인 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의 속죄소로 나아가는 날이다.

* 초막절 7월 15일에 증거장막성전이 열리는데 2006년 7월 15일에 우리 교회(정해동 교회)가 설립되었다.

* 철장 권세를 가진 아이가 2006년 7월 15일로부터 11년 1개월 후, 2017년 8월부터 권세를 가지게 되는데 이것을 에스겔 39장이 예언한다.

2) 성경적 해석

한 때 신천지의 유명 강사였던 정해동 씨가 지금은 그들과 등지고 그들의 허점을 맹공하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신천지 안에 머물러 있다. 그의 가르침 대부분은 신천지에서 배운 체계 위에 서 있다. 단 이만희 씨가 앉아있는 영광의 자리(?)에 자기를 올려놓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경에 손질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신천지가 배멸구 교리의 핵심 구절로 여기고 있는 데살로니가후서 2:3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주의 재림 전에 나타날 ‘배도하는 일을 하는 자’를 유재열(일곱금촛대)로 보는 것에 있어서 이만희 씨와 정해동 씨가 동일하다. 하지만 “멸망의 아들”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엇갈린다.

이만희 씨는 멸망의 아들을 오평호 목사로 보고, 정해동 씨는 그 멸망자를 이만희 씨로 규정한다. 여기에 정해동 씨의 흑막이 있다. 그는 기존 신천지의 배멸구 교리를 그대로 차용하지만, 만국으로 철장을 다스릴 아이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이만희 씨를 끌어내리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해동 씨의 성경 해석은 여전히 신천지의 프레임 안에 갇혀있음을 보여준다. 데살로니가후서 2:3에 대한 이 이만희 씨와 정해동 씨의 해석은 모두 비성경적이다. 계속 언급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들은 성경의 원저자와 성경의 시대적 배경을 건너뛰어, 성경을 오늘날 자기 종파나 자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주의 날이 이르렀다”(살후 2:2)에서 “이르렀다”로 번역된 에네스테켄(ἐνέστηκεν)은 ‘이미 와 있다’의 의미이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되어 예수가 이미 재림해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울은 이러한 가짜 재림 예수의 출현이 예수 재림의 임박한 징조라고 설명한다.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어떤 배교(배도)의 사건을 일으키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서 자기를 재림주로 신격화하는 일이 있을 것임을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자기를 재림주로 자처하는 사람이곧 배교자(배도자)이며, 불법의 사람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이 구절을 한번만 정독하면 이 세 부류의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단순한 사실조차 도 파악하지 못하는 이만희 씨와 정해동 씨가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는지 의아하다. 데살로니가후서 2:3에서 배도자와 멸망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이를 오늘날 어떤 인물들과 동일시하는 것은 더 기가 막히다.

정해동 씨는 유월절, 초실절, 오순절은 초림 예수에 대한 예언이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은 재림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전제한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이 절기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계획의 스케줄이 암호화되어 있으며, 이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를 재림 예수의 위치에 올려놓기 위함이다. 즉 절기를 이렇게 설정해 두는 것은 요한계시록 12장의 철장을 가지고 만국을 통치할 아이와 자기를 동일시하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이다. 물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는 날과 부활하는 날과 성령을 세상으로 파송하는 날을 아무 날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절기에 맞추셨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하나의 사례만을 바탕으로 절기를 하나님의 구원 스케줄의 암호이며, 나아가 말세에 등장하는 재림주를 가려낼 수 있는 해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유치한 말장난과 같다. 성경을 감추어진 글, 혹은 암호로 보는 것은 성경을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계시의 글로 이해하는 전통적 성경관을 크게 훼손한다.

정해동 씨는 나팔절과 속죄일과 초막절은 재림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으며, 그 중에 나팔절은 요한계시록 11:15에서 시작되며, 이 시기는 두 증인이 죽었다가 하늘로 올라간 이후이며, 이 때 철장권세를 가지고 만국을 다스릴 아이가 출현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첫 나팔은 요한계시록 8:7에서 처음 불려진다. 요한계시록 11:15의 나팔은 처음 나팔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이다. 또한 이 나팔이 두 증인이 하늘로 올라간 후에 시작되며 이 때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아이가 출현한다는 정해동 씨의 주장은 정당한가?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을 펼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두 증인을 신천지의 교주 이만희 씨로 간주하는 정해동 씨가 자기가 바로 이만희 씨 다음의 사람이며, 자기가 그 철장으로 만국을 통치할 아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두 증인은 이만희 씨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가리킨다.

철장을 가진 아이는 정해동 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며, 아이를 배고 있는 “해를 입은 여자”(계 12:1)는 교회(마 25:1-13; 막 2:19; 엡 5:29; 고후 11:2; 계 19:7)를 상징한다. 성경은 교회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여자’를 교회로 나타낸다.(박수암, 요한계시록, 163) “아이”로 번역된 가스트리(γαστρὶ)는 자궁이란 뜻으로, 여자가 자궁 속에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것은 실지로 뱃속에 있는 아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 아이를 다른 사람으로 대체시킬 수 없다.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집어 삼키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붉은 용”은 사탄이다(계 12:9). 이 붉은 용이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면 삼키려고 하는 장면(계 12:3-4)은 예수 탄생 시에 그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의 흉계를 나타낸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현재의 교회가 당하고 있는 고난의 배경과 원인이, 예수의 출생 때부터 발악했던 붉은 용 때문이었지만, 아이와 여자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 속에서 붉은 용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듯이, 현재의 교회도 하나님의 보호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한계시록 오늘날의 시대에 대입하는 것은 대단히 무지하다.

과연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 재앙이 구약의 나팔절, 그리고 한국 국적의 재림주와 연결이 되어있는 것일까? 레위기 23장의 나팔절과 요한계시록 8-11장의 일곱 나팔 재앙은 그 기록목적과 배경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장르를 가진 별개의 책이다. 레위기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허락된,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법률이며, 요한계시록은 1세기의 로마와 소아시아를 배경으로 하는 묵시이다. 물론 모든 성경은 하나의 주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그러한 면에서 구약과 신약에 있어서 모형론적 접근이 가능한 부분이 있다. 구약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나 사건 등의 모형과 신약의 원형 사이에는 타당한 유사성이 존재할 때에만 신구약을 모형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정해동 씨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발음이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있는 구절들끼리만을 모아서 연결 고리로 삼는 식의 해석은 모형론적 성경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레위기 23장의 나팔과 요한계시록 8-11장의 나팔을 함께 엮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요한계시록 8:7-11:19에 등장하는 일곱 나팔 심판은, 앞에 등장했던 일곱 인 심판(계 6:1-8:6)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15장부터 시작되는 일곱 대접 심판(계 15:1-16:21)의 전초전 성격을 가진다. 이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심판의 대상은 교회를 핍박하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악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이 일련의 일곱 인 심판, 일곱 나팔 심판, 일곱 대접 심판 중에서 특별히 ‘나팔’을 오려내어 레위기 23장의 나팔절과 요한계시록 12장의 아이에게 갖다 붙이고, 이를 통해 한국인 재림주와 그의 출현 시기를 산출해내는 정해동 씨에 대해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성경을 이렇게 코에도 걸고 귀에도 걸어보면 이 세상에 성경을 통해서 증명하지 못할 것이 없다.

정해동 씨는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절기 중 초막절(레 23:33-44)에 큰 의의를 둔다. “초막절은 진정한 구원의 장소인 지성소의 언약궤 곧 속죄소로 나아가는 날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성소가 구원의 장소라든가, 초막절에 속죄소로 나아간다는 말은 도대체 판독조차 되지 않은 난해한 소리이다. 정해동 씨의 이 말은 초막절이 종말적 구원의 완성과 관계된 날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아마 열왕기상 8:1에 솔로몬이 초막절에 언약궤를 지성소에 갖다 놓은 사실에 착안하여 이런 식의 말로 변형시켰는지 모르겠다. 성경에는 그 누가 초막절에 지성소로 들어간다는 표현이나 개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정해동 씨는 초막절 날짜인 7월 15일에 철장으로 전 세계(만국)를 다스릴 아이가 출현하는데, 자기가 교회를 시작한 날짜가 바로 그 7월 15일이었다는 것이다. 구약의 일곱 절기 안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암호화되어있다며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말하자면 자기 교회가 종말의 마지막 처소이며, 자기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그 아이라는 것이다. 정해동 씨는 “왜 대한민국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띠가 무슨 띠라야 가장 음양사상에 맞는 띠일까?···소띠죠”라고 하며 소 띠를 가진 사람이 이 마지막 시대에, 새 시대를 여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혹시 정해동 씨가 소 띠가 아닌지 모르겠다. 출생한 연·월·시에 따라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주역 사상을 통해 종말에 등장할 재림 주를 알아맞히고자 하는 그가 과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정해동 씨는 2006년 7월 15일에 장막성전을 시작했지만 그로부터 마흔 두 달(3년 6개월)과 7년 7개월이 지난 2017년 8월까지가 유예기간 즉, 숨 고르는 기간이었다고 한다. 장막성전을 시작한 2006년 7월 15일부터 2017년 8월까지의 시간, 11년 1개월(42달+7년 7개월)은 자기가 세상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 워밍업 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이다. 성경에 3년 6개월을 의미하는 “마흔 두 달”(계 11:2: 13:5) 혹은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 12:7: 계 12:14)라는 용어를 끌어와 자기에게 대입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마흔 두 달은 정해동 씨와 연관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요한계시록 11:2의 “마흔 두 달”은 로마 제국이 교회를 박해하는 기간을 가리킨다. 마흔 두 달은 B.C 168년에서 164년에 있었던 수리아의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을 압제했던 기간과 일치한다. 때문에 이 이후로 ‘마흔 두 달’은 악이 마음대로 활개 치도록 허락된 짧은 기간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수가 된다. 이를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이 로마 제국으로부터 겪는 교회의 고난이 한정된 기간임을 마흔 두 달로 표현한다(박수암, 150). 요한계시록 13:5의 “마흔 두 달” 또한 붉은 용으로부터 ‘짐승’(로마)이 받았던 권세가 일시적이며 한정되어 있음을 나타낸다(박수암. 177) 요한계시록 12:14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도 다니엘 7:25과 다니엘 12:7의 반영이다. 이 3년 반은 하나님이 여자(교회)를 보호하는 기간을 상징한다(박수암. 171). 이 마흔 두 달과 정해동 씨의 유예기간은 아무 관계가 없다.

정해동 씨는 ‘7’이라는 숫자가 두 번 나오는 에스겔 39장을 끌어들여 자신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의 유예기간을 산정하는데도 활용한다. 그가 “겔 39장에서 마지막 전쟁(42달)이 끝나고 7년간 병기를 불사르고 7개월간 거리를 청소하는 시간이 지나고 시온산에서 잔치를 벌일 것이라는 예언을 해 두었던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이 그것이다. 에스겔 39:9의 “일곱 해”는 하나님께서 몰살시킨 대적 곧 곡의 무기를 수거해 땔감으로 사용하는 기간이며, 에스겔 39:12. 14의 “일곱 달”은 멸망당한 곡과 군사들의 시체를 매장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하는 기간이다. 정해동 씨는 에스겔 39장에 등장하고 있는 일곱 해와 일곱 달은 오늘날 자기와 연관되어있으며, 또 자기를 예언하고 있다고 믿는다. 과연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에 예언 활동을 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유다 왕국의 멸망이라는 대 파국의 위기상황 속에서 실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한 위로와 소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24장은 예루살렘 멸망 이전 유다백성이 들어야 할 심판 메시지를 전하고, 33-48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유다백성이 새겨들어야 할 회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 중에서 38-39장은 바벨론을 의미하는 ‘곡’이 장차 도래할 종말의 날에 무참하게 멸망당하게 될 것을 보여준다. 에스겔서는 오늘날 정해동 씨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을 조망하지 않는다. 두 번 등장하는 7개월은 멸망당한 곡의 상황을 묘사한다. 정해동 씨의 논리대로라면 지난 수세기동안 에스겔서를 읽고 교훈을 얻었던 전 세계의 독자들은 모두 ‘헛일’을 한 셈이다. 과연 하나님께서 에스겔서를 2천년 동안 그렇게 쓸모없는, 무의미한 책으로 내버려 두셨을까?

정해동 씨는 초막절이란 절기에 종말론적 구속의 의미를 부여한 후, 초막절 날짜인 7월 15일에 의도적으로 자기 교회를 오픈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11년 1개월 후에 생긴 자기 위상의 변화를 성경에 등장하는 마흔 두 달과 에스겔서에 기록된 7년과 7개월을 끌어내 그럴듯하게 짜 맞추어 포장한다. 이렇게 성경을 집요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는 그에게서 자아도취적, 망상적 징후가 보인다. 정해동 씨는 자기 교회의 형성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든 성경의 사건을 오늘날 자기들에게서 일어나는 사건과 평행적 관계로 해석한다. 이는 이 땅에서 수없이 발흥했다가, 사라진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의 성경 해석과 별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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