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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천지의 포교전략 ATOZ - 마지막회마지막회 김충일 전도사 간증 "폭행 테러 계획하다 회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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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29  05: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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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6년 동안 신천지 전도교관으로 활동했던 김충일 전도사(안산 상록교회 교육 전도사)가 '신천지의 포교전략'에 대해 글을 정리했습니다. 기독교포털뉴스에서는 이 글을 5차례(마지막은 간증)에 걸쳐 연재합니다. 김 전도사는 2005~2010까지 신천지 전도 교관을 지내다 회심했으며 현재 안산상록교회 교육 전도사이자 안산이단상담소 강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포교전략 ATOZ 1편
신천지의 포교전략 ATOZ 2편
신천지의 포교전략 ATOZ 3편
신천지의 포교전략 ATOZ 4편
Ⅴ 부록 : 개인적인 간증 “대적자도 사용하시는 하나님”

저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약 6년간 신천지에서 활동하다가 상록교회를 통해 회심한 김충일 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졌다고 하면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로교 합동교단에서 목회하시는 부모님을 통해 모태신앙으로 살아왔고, 학창시절에는 큐티동아리 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신앙에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능시험을 마친 2004년 12월경 입학 예정이던 한동대학교의 선배를 소개받아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작할 때는 정통교회의 성경공부로 소개받았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성경공부는 신천지의 교리를 가르치는 성경공부였습니다. 나름대로 열심 있는 신앙생활을 해오던 저였지만 처음 신천지의 성경공부를 접하게 되었을 때 이를 분별하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체계적이고 성경적인 성경공부라는 생각을 가지며 배움을 이어나갔고 그렇게 수개월이 지나자 저는 어느새 신천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진리를 찾았다는 감격에 젖어 신천지에서 활동하던 6년간을 매우 열심 있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신천지에서 요구하는 모든 모임과 예배와 봉사 및 전도활동에 참여하였고, 이를 삶의 최우선순위로 두었습니다. 당연히 학생으로 마땅히 해야 할 학업과는 멀어져갔고 휴학도 많이 하였습니다. 부모님께는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속이며 신천지 활동에 열중하기도 하였고 몇몇 학기는 수업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고 신천지 활동을 하여 전 과목 F학점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신천지에 진리가 있다는 생각에 전혀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나의 중요한 것을 신천지를 위해 희생했다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특전대 팀장으로 활동하던 때는 수개월간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만 자고 활동하기도 하였고, 신천지에서 탈퇴하던 날까지 포항지역 청년부 전도 교육 및 업무를 책임지는 복음방 교관으로 지내며 최소한의 수면으로 신천지 활동을 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습니다.

보통 하루의 일과는 오전 6시에 새벽예배로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일 활동자를 대상으로 한 전도 교육 및 모임을 가지고 바로 활동에 나갑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의 시간을 모두 복음방과 섭외활동으로 보낸 후 오후 7~8시쯤 다시 모여 당일 활동 결과를 보고받고 피드백 합니다. 저녁 9~10시경에는 다시 복음방 교사교육을 하고 이후 각 부서 전도책임자들이 모여 당일 활동 결과를 교회 담임에게 보고하고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때는 “그 딴식으로 해서 천국 갈수 있겠어?” 라는 소리와 함께 욕을 먹기 일쑤였습니다. 매일매일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설정해놓고 달성하지 못하면 격려보다는 책망을 하며 결과를 내도록 쥐어짜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이 끝나고 나면 보통 자정이 넘습니다. 이후에 복음방 교사들의 보고서를 보며 피드백을 하고, 청년부 전도전략 회의를 하고, 일일 전도활동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면 보통 새벽 1-2시가 됩니다. 여기에 교회 건축이나 신천지 교육장소인 센터설립 등 건축 관련 업무가 추가되면 하루 종일 전도 업무 이외에는 공사 일에 투입되어 늦게까지 막노동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한푼 받지 않고 노예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평 없이 오히려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낸 까닭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올바른 도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에서는 전도열매를 채우고, 교리 시험에서 100점을 맞고, 예배, 헌금, 모임, 봉사 등의 항목에서 꾸준한 실적을 쌓아야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몸이 다치거나 아프면 그것마저 죄로 여겼습니다. 실제로 신천지에서 “아픈 것도 죄다”라는 말들을 많이 들었고 또 같은 말로 가르치기도 많이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프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10년 3월의 어느 날 신천지 활동을 하던 중에 교통사고로 몸이 다쳐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까지 신천지 업무를 보다가 늦게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입어 왼쪽 다리에 커다란 타박상을 입고 반 깁스를 하였고, 헬맺을 쓴 채로 얼굴이 땅에 쓸려 얼굴이 타박상과 함께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음날부터 바로 목발을 집고 전도활동을 다녔습니다. 매일같이 아픈 것이 죄라고 가르쳤던 제가 다쳤다는 이유로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이 스스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전도책임자로써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담임강사로부터 듣게 될 질책의 말들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에겐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과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하는 목마름이 매일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교의 교목실에서 신천지 활동을 하던 저의 정체를 인지하고 부모님께 연락을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학교를 휴학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로 내려가 신천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저와, 아들을 다시 찾아오기 위한 부모님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신천지를 버리는 것보다 부모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을 선택할 만큼 신천지에 미혹되어 있었고, 이러한 저를 부모님은 어떤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6차례에 이르는 가출과 저의 완악함은 부모님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어 갔습니다.

이 기간은 부모님에게도 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역시 끔찍하고 답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매여 신천지에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 무엇보다 답답했습니다. 때문에 매일 이 상황에서 벗어나 신천지 활동에 전심전력할 수 있게 해달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대오 지파의 섭외부장을 통해 한 가지 특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네가 지금 신천지 활동을 해야 하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차라리 지금 상황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상록교회에 찾아가 진용식 목사님을 폭행하여 테러하고 상담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폭행으로 인한 법적인 처벌을 받은들 하나님의 일을 위한 것인데 더 큰 복이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섭외부장은 지파차원이 아니라 신천지 본부 총회의 지시임을 강조하며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의 저는 폭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도 신천지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을 해 주셨다는 착각을 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차례에 걸쳐 상록교회에 찾아가기도 하고 목사님의 세미나에 찾아가 난동을 부리기도 하며 테러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고 신기하게도 저의 시도는 매번 실패하였습니다. 한번은 테러를 목적으로 상록교회에 찾아가 목사님과 면담을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목사님은 식사중이셨고 저는 식사하는 중에 테러를 시도할까 고민 하다가, 식사 이후 면담시간에 테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가 실패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목사님께서 식사가 마치자마자 면담은 해주지 않고 바쁘게 다른 교회에 집회를 인도하러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식사 끝나기를 기다린 이유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한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알 수 없는 측은지심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밥 먹다가 맞으면 너무 불쌍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제가 진용식 목사님을 사탄의 종이자 원수로 생각하고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목사님뿐 아니라 저를 보호하고 건지시고자 인도하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때 제가 테러까지 감행했었다면, 원활히 상담교육을 받고 회심하기는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말씀드리자면 저의 모교인 한동대학교에 이단 세미나를 인도하러 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목사님께서 세미나를 인도하러 오신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부모님을 속이고 가출하여 신천지 사람들과 함께 곧장 세미나 장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대오지파 섭외부장과 함께 목사님을 어떻게 테러할 것인지 작전을 세웠습니다. 원래 계획은 곧장 공개적인 자리에서 폭행하여 창피를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작전을 실행하기 직전 5분여를 남겨두고 섭외부장이 갑자기 계획을 변경하였습니다. 바로 폭행하는 것은 계획적인 범행으로 여겨져 처벌이 무거울 수 있으니, 세미나 자리에서 자신이 신천지 사람임을 밝히며 당사자와 공개토론을 하자며 분위기를 유도하고, 언쟁 중에 우발적으로 폭행하는 그림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서 공개적으로 신천지 사람임을 밝히며 토론해보자고 하자 토론은커녕 사람들에게 가로막혀 질질 끌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막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껏 뿌리치고 달려 나가 주먹과 발길질을 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가까이 있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섭외부장이 계획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목사님께서도 큰 상처를 입으시고, 저 역시 집회방해는 물론 폭행죄로 법적인 처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상담소에서 원활히 교육받기는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 일로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당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에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관에게 진용식 목사님께서 처벌을 원하지 않으며 선처를 해달라고 부탁하셔서 벌금도 물지 않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눈앞에서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있는 경찰을 보며 “사탄의 자식이 왜 저런데?”라는 의아한 마음을 품는 것으로 그쳤지만, 돌아보면 이 일이 차후에 목사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달리하는 작은 시발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위에서 기록한 사건들 뿐 아니라 몇 차례의 테러시도가 있었으나 목사님께서 계시지 않아 헛걸음을 하는 등 모두 실패하고 부모님과 시골집에서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부모님께서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자 답답한 마음에 위협해서라도 못하게 해야겠다. 생각하셨는지 눈앞에서 칼을 들고 위협하신 적도 이었습니다. 신천지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자 다음번에 또 그러시면 칼을 들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칼에 스스로 찔리라고 조언했습니다. 칼에 찔리면 부모님이 병원에 데려갈 것이고 칼에 찔린 상처는 의사가 의무적으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어 있으니 이를 빌미로 부모님과 법적으로 접근금지 처분을 받아 부모님의 방해 없이 신천지 활동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실제로 칼에 찔리리라 다짐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께서 칼로 위협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접은 것은 칼에 찔리면 치사율이 60%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육체영생을 위해 죽으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이 사건은 신천지에서 저를 한 사람으로써 귀하게 여기기보다 신천지 일을 위한 도구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로도 부모님께서는 심신이 지쳐가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셨고 마지막으로 상담소에서 상담교육만 받는다면 그 이후는 너의 원대로 해주겠다며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는 것을 지켜보던 다대오지파의 지파장은 부모님의 요구대로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오도록 허락하였고, 상담소에 가서 말씀으로 싸워 이기고 가는 김에 상담하는 목사들까지 신천지로 데려 오라는 지시를 받아 상담소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집불통이고 듣기에 둔하고 교만했던 저는 몇 주가 지나가도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채 버텼습니다. 오히려 상담하시는 분들 앞에서 왜 신천지가 옳은지 내가 가르쳐주겠다면 펜을 빼앗아 신천지의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억지스러운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신천지 말씀에 일점일획의 오류라도 있다면 내 목을 걸겠다”고 자신하던 저도 “신천지가 틀렸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고대하던 진용식 목사님께서 반증교육을 위해 오셨습니다. 원래 계획은 상담을 받으러 가더라도 혹시 진용식 목사님을 만나면 가까이 있는 머그컵 등을 이용해 폭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날 강의를 통해 신천지가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니 목사님을 폭행하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 졌습니다. 신천지가 틀렸다면 저의 행동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그저 흉악한 범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한참을 고민한 저는 일단 당분간은 목사님께서 교육하실 것 같으니 들어보고 신천지가 옳으면 테러를 하고 틀렸으면 하지말자로 결론을 내린 채 교육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가 틀렸을 수 있다는 조금은 열린 자세로 교육을 듣게 되자 저의 잘못된 신념은 산산히 조각나버렸고 그렇게 목사님을 테러하려던 시도도 끝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하루만 먼저 교육을 오셨거나, 그날 말씀을 통해 제가 회심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폭행죄로 구속되고 목사님께서도 크게 다시셨을 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던 때조차 저를 보호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후 교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다만 신천지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복음의 말씀을 들은 후에도 저는 다시 믿음을 가질 용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그렇게 쉽게 받느냐며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신앙을 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도 한번 잘못된 믿음으로 크게 데이고 나니 다시 무언가를 믿고 신앙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도 신천지에서 믿던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 다가가기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상록교회에서 배우고 있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라면 저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하고 침을 뱉고 욕을 한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많이 신천지로 미혹해간 대적자이기 때문입니다. 잠깐이라도 상록교회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맞다고 생각해보면, 저는 저의 과거 행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실 하나님이 너무너무 두려웠습니다. 신천지에서 배운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이며 행한 대로 심판하는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수개월을 방황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더라도 상담해주신 분들과 마주치기를 꺼려했습니다. 상담해주신 분들에게 신천지에 있을 때 얼굴에 물도 뿌리고 소리도 지르고 반말도 하는 등 워낙 버릇없이 대했었기에 마주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신천지가 틀린 것을 인정하였으니 과거의 행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찾아가 사과해야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와는 달리 교회에 갈 때마다 상록교회의 사람들은 저를 매우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특히 제가 버릇없이 반말하고 힘들게 했던 배경숙 권사님께서는 제가 신천지에서 이탈한 것만으로 너무 기뻐하시며 볼 때마다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고 힘들게만 하였는데 작은 것이라도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아직도 자주 손에 쥐어주시던 어린이용 영양 캬라멜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에 이분들은 진심으로 내가 나온 것을 기뻐하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졌고, 나의 과거 행위에 대해 나에게 사과를 받을 생각도, 받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어느 순간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적어도 이분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의 과거 잘못들을 무작정 벌하시지는 않겠구나 라는 마음이 생겼났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하나님께 나아갈 작은 용기가 되었습니다. 들었던 복음의 말씀을 기억하며, 작은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는 순간 눈물이 막을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가 이미 다 용서하고 기다리고 있었단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잃어버린 두 번째 아들 이야기가 저에 대한 말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들었던 구원론의 말씀들이 생각나고 그 말씀들이 모두 믿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로마서4장 4-5절의 말씀은 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저는 신천지에서 일을 열심히 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자 최선을 다했었습니다. 또한 신천지에서는 행위로써 거룩해 질 수 있고 거룩해져야만 구원 받는 것이라 배웠었기에 행위로 거룩해지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행위를 다 갖추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교만, 시기, 질투, 미움, 음란 등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며 매일매일 기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않아도 믿음만으로 의롭게 여기신다는 말씀은 수년간 지고 다니던 커다란 짐을 벗어버린 듯 자유해지는 경험을 하게 하였습니다. 나에게 직면해 있던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수개월간 이어졌던 저의 방황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어느덧 하나님께서 저를 흉악한 신천지에서 건지신지도 9년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때 흉악한 대적자였던 저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신학을 공부하게 하시고 상록교회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저는 벌써 3년째 상록교회 이단상담소에서 과거 저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회심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상록교회의 귀한 청소년들과, 이단에서 회심한 새신자들을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신천지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가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가 될 줄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목사님을 테러하려했던 테러범이 목사님의 동역자가 될 줄을... 아무도 몰랐지만 오직 하나님만 아셨습니다. 태초부터 저를 택하셔서 흉악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며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는 길에 사용하신 상록교회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알았고 여러분들을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평생 사랑의 빚진 자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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