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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현안 기독교적 대응(Homosexuality Christian Response)퀴어 신학에 대한 비판과 동성애에 대한 복음적 해법을 중심으로
이요나 목사  |  www.kporta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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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9  14: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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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4일 오후 2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부산성시화운동본부·건전신앙수호연대·선민네트워크가 주최, 홀리라이프가 주관한 탈동성애 인권포럼에서 이요나 목사(서울갈보리채플 담임, 탈동성애인권포럼, 치유상담학교, 홀리라이프 대표)가 발제한 글을 요약했습니다. 

서론
I. 동성애 신학적 배교에 대한 비평

A.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정의와 하나님의 뜻
B. 교리적 모순
C. 성경 해석의 모순
II. 큐어신학, 구약적 해석의 모순
A. 창세기 19장
B. 사사기 19장
C. 레위기 18장, 신명기 22장, 열왕기상 14장
III. 큐어신학, 신약적 해석의 모순
A. 복음서와 동성애
B. 로마서와 동성애
C. 고린도전서, 디모데전서
D. 유다서
IV. 동성애 이슈, 복음적 정의
A. 동성애, 영적이해
B. 동성애, 율법적 이해
V. 동성애 이슈, 복음적 해법
A. 하나님의 공의
B. 하나님의 사랑
C. 사도적 교리의 정립
D. 성경의 목적과 사역자의 역할
결론

금세기 서방국가들이 앞을 다투어 동성애를 또 하나의 성생활로 규정한 이래,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건국한 미국마저 2015년 6월 26일 미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법화 선언을 하였다. 더욱이 세계평화를 기조로 설립된 유엔은 인권이란 빌미로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정론화 하며 전세계 국가들이 동성애 이슈를 인권문제로 다루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국가권위원회도 성소수자 인권 옹호정책을 펴고 있으며 국회를 통하여 차별금지법 입법화를 독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내무부 행정 내규와 언론 보도 준칙에는 성소수자인권을 옹호하도록 규정화 되었으며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서로 앞을 다투어 성소수자인권정책을 지지하는 인권조례 제정을 서두르고 있으며, 서울대학교 학생회를 선두로 각 대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안을 속속 채택하고 있으며, 국가장래를 걸머진 우리 자녀들을 교육을 담당한 교과서에서까지 동성애를 정상적인 성행위로 다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성소수자 정책 일색의 국가적, 사회적 반란의 배경 속에서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하나님의 교회와 기독교 일각에서 신구약 성경에 명확하게 명시된 동성애 범죄행위를 왜곡된 해석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적용하려는 교리적 배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동성애와 전쟁 중이다. 이러한 세태적 위기 속에서 우리 교회가 경각심을 갖고 동성애 반대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또한 이러한 기독교계의 반대운동을 통하여 차별금지법 입법과 성소수자 정책을 지지하는 각 지자체 조례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가 언제까지 정치현실에 관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과거 교회 역사상 정치현실과 싸워서 승리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은 교회가 정치와 대립각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는 칼로 싸우는 자는 칼로 망한다 말씀하시며 빌라도 총독을 향하여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고 말씀하셨다.

우리 교회의 사명적 역할은 진리의 선포이며 이를 위해서는 진리의 수호가 생명이다. 진리는 빛이며 생명이며 하나님의 뜻을 실현키 위해 오신 창조자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이며 구원의 토대이다. 진리가 무너지면 더 이상 교회는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설법하였고 복음의 일군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를 향하여는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 명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먼저 오직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분변하여 동성애를 정당화 하려는 배도의 무리를 거룩한 성전에서 끊어내는 성전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신사도운동’을 내세워 마치 자신들이 사도의 은사를 이어받은 자들처럼 위장하며 사도행전 29장을 새로 써야 한다는 무리들도 있다. 설혹 그들이 동성애 문제를 죄로 다룬다 할지라도 그들은 배도의 영들로서 결국은 사랑의 실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동성애를 정당화 할 것이다. 그러나 은혜의 구속과 거룩함과 의로움은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명분으로도 성경이 정한 범죄의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말의 시대를 당면한 우리 교회는 오직 성경의 진리로서 퀴어 신학을 비롯한 이단적 교리의 모순을 배격하며, 동성애 문제에 대한 사설적 논쟁을 멈추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복음적 교리를 정립하여 죄에 빠진 동성애자들을 구원하고 변화 시키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다행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를 훼방하는 이단사설들과 끊임없이 싸워왔다. 주께서도 이단사설을 배격하고 진리를 지켜 온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2-5) 경고하셨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이 시점에 와 있다. 동성애를 합리화려는 세력들과도 싸워야 하고 더 나이가 교회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그 부분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논의를 하고 싶다.

I. 동성애, 신학적 배교에 대한 비평
(사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A.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정의와 하나님의 뜻
우리가 동성애 문제를 신학적으로 조명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정의이다. 성경은 이미 구약을 필두로 신약에 이르기 까지 영들과 인간의 죄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죄하셨다.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동성애를 비롯한 불의한 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지 않고서는 피할 길이 없다.

따라서 만약 성경에 동성애에 대한 정의가 없다면 우리는 결국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철학적 논리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동성애 문제를 여러 번 언급하였고 그에 대한 복음적 해법도 명확하게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동성애의 죄를 성경적인 원리를 떠나 세상의 철학과 인간의 사상을 도입한다면 그가 비록 천사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자로 가혹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들의 세계와 인간사와 세계 경영과 천지만물의 조화의 기준과 모든 원리는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시대의 어느 성현과 도인과 학자가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논했다 하드라도 그 권위와 지혜는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미치지 못한다. 성경은 창조자 하나님의 선지자와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해서 성령으로 친히 기록하신 것이므로 하늘의 일이나 이 세상의 일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그 모든 정의와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야만 한다.

두 번째는 동성애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그의 계획과 예정과 판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논하건데 그 대표적인 것은 공의와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의 분명한 성경적 기준을 통해서 사람을 다루신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심판하시는 근엄한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는데 심판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의 표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모든 불의를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판단하시며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이름으로 구속하신 그 날까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심판을 정하시고 각 사람들이 스스로 택하게 하셨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언급한 몇 가지 교훈이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린소자라도 실족시키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말씀하시며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 4:3,4)라고 증거 하였다.

위 두 말씀의 맥락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교회와 사역자들의 책임과 역할을 말씀하신 것이며, 바울은 육체의 정욕에서 벗어나 거룩함에 이르기 위한 성도들의 삶의 기준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성경을 주셨고, 또 복음사역자들을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교리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고,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사도의 가르침과 이단 사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B. 동성애, 교리적 모순

1. 퀴어신학의 출발점
동성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의 해석의 당위성이다. 이미 많은 신학자들이 해방신학을 토대로 퀴어신학(queer theology)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기독교계가 혼잡한 상황이지만, 신학은 오직 성경의 진리를 토대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들을 발견하기 위한 기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인간의 지혜와 생각으로 새로운 학문적, 철학적 교리로 접근하면 이단사설에 빠지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성경은 모든 학문의 시작과 끝 곧 ‘알파와 오메가’이며, 모든 일들의 ‘시작과 끝’이며, 발단과 결과 곧 ‘처음과 나중’이다.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되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인류는 아직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영원한 세계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증거 하였다.

2. 퀴어 신학의 핵심교리 분석
오늘날 동성애를 지지하는 호모필리아(homophilia; 동성애옹호자)와 퀴어 신학자들은 로마 카톨릭 신부이며,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A. 헬미니악이 저술한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What the Bible really say about Homosexuality? 'Millenium Edition') 를 퀴어신학의 역동적 교리로 삼고 있다.

물론 칼빈주의나 알마니안주의도 신학적 해석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원리를 교리화한 것이지만, 퀴어신학의 역동점이 된 헬미니악의 성경에 기록된 동성애 관련 해석적 논리는 하나님의 신적작정과 거룩한 품성을 훼손한 악의적이고 고의적 발상이다. 이미 성경은 이들을 향하여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5:18)라고 저주하였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8,19)고 확증하였다.

더욱 경악할 일은 다니엘 A. 헬미니악은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하나님의 증인들을 동성연애와 관련된 악의적인 관점에서 해석을 유도하였다. 예를 들면, 다윗과 요나단의 거룩한 우정을 연정관계로 악의적으로 유추 하였다. 그는 사무엘상 16장 21절의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 라는 말씀에서 히브리어 ‘크게 사랑하여’라는 어휘를 ‘다윗이 사울에게 왔고 그[다윗]가 그 앞에서 발기했을 때 그[사울]는 그를 무척 사랑했다’로 볼 수도 있다고 확대 해석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룻과 나오미’의 관계를 레스비안 관계로 유추하였으며, 또 다니엘과 환관장 역시 동성애적인 관계였을 개연성을 열어 놓으며 ‘성서의 중요 인물들의 삶에 나타난 동성애 관계의 현실적인 개연성을 따져 보면 성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하여 개방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다’ 고 주장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사설적 횡포는 불경스럽게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서에까지 미쳐, 마태복음 5장과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된 로마 백부장이 예수께 나아와 사랑하는 종의 병을 고쳐달라는 말씀에서 마태복음 8장5-13에서 백부장이 자기 종을 지칭한 헬라어 'pais'는 ‘내 아이’; ‘소년’(눅7:1-10에서는 doulos) 이므로 이 역시 두 사람은 동성애 관계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열어 놓고, 예수께서도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를 알면서도 죄의 논증 없이 백부장의 연인의 병을 고처 주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설혹 그의 논리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어원의 해석을 폭넓게 유추한 학문적 연구라고 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고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며,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의 영역을 훼손한 것이므로 이는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한 죄에 대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C. 성경 해석의 모순

1. 역사 비평적 읽기의 모순
헬미니악은 그의 저서 서두에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성경해석 때문이라고 전재하며, 오랜 교회사 속에서 성경해석의 원칙을 고수해 온 보수주의 성경학자들의 성경의 ‘문자대로 읽기’(Literal Reading)는 모순이라고 비평을 하면서 동성애는 ‘역사 비평적 읽기’(Historical_critical Reading) 을 통해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의 논지는 성경은 각 시대를 따라서 풍습과 언어의 관습을 수용해야하기 때문에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 이러한 주장들로 인하여 성경적 해석의 오류가 발생하고 이단자들이 발생된 것이다. 성경의 존재 이래 변하지 않는 진실은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무오하심을 증거해온 성경 저자들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원칙은 시대와 상황적 적용과는 다른 문제로서 이러한 해석적 토대와 질서가 깨어지면 성경은 결국 각 사람들의 생각대로 재해석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결국 망언자 헬미니악의 말에 의하면 성경은 동성애자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에 대해 아무런 직접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은 최소한 동성애에 관해 ‘중립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창조적 균형을 간과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성경적 사고만 가졌다면 이런 악의적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성경해석의 2가지 법칙
지금까지 보수적 가치관을 고수해 오던 성경 해석의 토대는 ‘최초 사용의 법칙’ (Law of first us)과 ‘해석의 불변성 법칙’ (Law of Ex-positional Constancy)이다. 이 원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귀납적으로 분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성경 기록을 살펴 보건데 성경저자들도 모두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초 사용의 법칙’이란 성경의 어떤 말씀을 해석할 때 그 말이 성경에서 처음 사용된 곳을 토대로 해석하는 원리로서, 다시 말하여 ‘창조’라는 단어의 해석은 이 단어가 성경 기록상 제일 먼저 기록된 창세기 1장1절의 ‘창조’를 기준으로 그 해석을 유추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 법칙인 ‘해석의 불변성’이란 성경해석의 일관성을 말한 것으로, 성경에서 죄의 상징으로 언급된 누룩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동일한 해석을 취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성경은 수천 년 인류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부르신 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으로 쓰신 것으로(벧후2:21, 딤후3:16)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품성과 의로운 삶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뜻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II. 큐어신학, 구약적 해석의 모순
A. 창세기 19장
창세기 19장 본문을 살펴보면 “그들이 눕기 전 그 성 사람 곧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게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19:4,5) 기록되었다. 흥미롭게도 어떤 사람들은 ‘상관’이라는 말을 다른 논리로 해석 한다. 그들은 ‘상관하다’라는 히브리어를 왜 ‘성적’ 관계로 국한 지으려 하느냐, 소돔성 사람들이 그들과 교제를 하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느냐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려는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성경의 해석은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이 믿는 자 가운데 역사 하는 것이다(요16:13).

여기서 ‘상관하다’는 곧 히브리어 동사 “야다”(ע󰕈󰖷)는 ‘알다’라는 뜻이다. 곧 남편과 아내가 서로 안다는 의미로 부부관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943번 사용되었으며 창세기에서 10번이나 성적관계로 사용되었다. 그 한 예로 창세기 4장 1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에서 ‘동침’이란 단어는 ‘야다’로서 부부관계를 의미하며, 또한 창세기 19장 8절에서 롯이 몰려 온 성 사람들을 만류하며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청컨데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에서도 ‘야다’라는 단어가 나온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자 가운데 이 말씀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유추하려는 태도를 갖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고의적으로 태클을 거는 것이다. 무순 이유에서 그런 논리를 유추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가 설혹 동성애일지라도 동성애를 성경에서 정당화하고자 하는 사고는 망령된 행위이다.

B. 사사기 19장
(삿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성경의 특별한 단어의 정확한 해석을 확립하는데 가장 정통적인 방법은 문단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19장이나 사사기 19장은 큐어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방문한 손님을 “알려는” 요구가 아니라 모두 성적(性的)인 ‘안다’ 의미를 지니고 있다(창 19:8; 삿 19:25). 고 보는 것이 문맥상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라면 소돔성 남자들이 롯의 집을 방문한 손님들을 더 깊이 알고 교제하기 원한 것이라면 굳이 롯이 ‘남자를 알지 못하는 두 딸을 내어 놓겠다’는 문맥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사사기 19장을 동성애 문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맥상을 보던지 원어를 보든지 여기서 언급된 “네 집에 들어 온 사람”은 레위사람이므로 그들은 그에게서 동성애적인 매력을 느끼고 쫓아 온 것이다.

또한 25절 말씀에 의거 그들은 결국 레위사람의 첩과 밤새도록 분탕질을 했으니 이들은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22절에서 언급된 내용은 분명 동성연애 행위를 요구한 것이다. 이 구절을 놓고 큐어 신학자들은 보수교회들이 사사기 내용은 동성애라고 보지 않으면서 유독 창세기 19장만을 동성애 사건으로 보려는 것은 소돔의 멸망을 동성애자에게 돌리려는 의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내용은 사사기 19장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율법을 맡은 레위인들이 거룩한 지위를 상실하고 비성경적인 생활을 하는 시대에 나타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고발 메시지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신부나 목사나 신학생들 중에 동성애자들도 있고 그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다. 각 사람의 성품과 생활방법이 각각 다르듯이 동성애자들도 여러 부류가 있다. 까놓고 동성애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동성애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 동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친동성애자 단체들은 성경이 정죄한 것은 이런 사람들을 정죄한 것이지 동성애자로 살아가도록 소명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라고 소명받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다. 누가 동성애자의 삶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며 그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다.

C. 레위기 18장, 신명기22장, 열왕기 14장
헬미니악은 레위기 18장 22절, 신명기 22장 5절, 열왕기상 14장24절의 기록들은 모두 남성 간 섹스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이 구절들이 꼭 동성 간 성행위를 단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근본주의 노선을 따르는 보수 기독교계가 성경의 몇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여 동성애를 배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에서 겨우 다섯 번 밖에 언급되지 않은 동성애 문제를 갖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동성애 문제를 다섯 번이나 거론하였다는 것은 동성애가 시대를 무론하고 거룩한 성도의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느냐는 증명한 것이다.

또 그들은 이 구절들에 언급된 동성애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이상적인 역할을 중시하는 고대 유대교의 율법을 어기거나 동성 성교에 따르는 악습, 곧 성적 착취와 학대를 논한 것이지, 섹스의 고유한 본질을 악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인간의 육체의 속성을 성도의 삶의 근간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성경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과 신적작정을 바꾸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의 결정에 의하여 예정된 계획을 실행하신다. 설혹 하나님께서 시대적으로 인간을 다루시는 가운데 많은 더러운 사건들이 유추되었다 하드라도 불의한 일들 곧 우상숭배, 음행, 간음, 도적질, 살인, 방탕, 탐색, 동성애 술취함과 같은 육체의 일들을 정당화 하신 일은 신구약 성경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적작정은 결코 인간을 멸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속성을 버리고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III. 큐어신학, 신약적 해석의 모순
A. 복음서와 동성애
신학에는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다. 특별히 퀴어 신학자들은 신약에 언급된 동성애 부분에 대하여는 더욱 강력한 논쟁을 제기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께서는 동성애에 대하여 한 번도 논하지 않았고 정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된 주장이다. 하나님의 의와 불의를 논할 때 동성애라는 단어가 꼭 사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미 ‘여인을 보고 음행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정의하셨고, 예수님의 말씀 전체에는 성도의 거룩함과 의로운 삶의 기준이 녹아 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리얼하게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하여는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율법의 정의가 잘못 정의되고 있는 부분은 모두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 다시 말하여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마다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가 되리라’(마5:22) 하셨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간음에 대하여(27), 이혼에 대하여(31), 맹세에 대하여(33), 이웃사랑에 대하여(43), 또한 구제와 기도와 금식과 재물관에 대하여(마6장), 비판에 대하여, 신앙관에 대하여,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7장) 잘못된 해석과 관행들을 바로 잡으셨다. 만약 구약에서 증거 된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가 잘못 사용되고 있었다면 분명히 바로잡아 주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주제는 성도의 의로운 삶이다. ‘성도의 의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마5:20) 말씀하셨다 또 율법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하시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듯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하시며 이 계명 중에 하나도 버리고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친다면 그는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할 것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의 동성애 정죄에 대한 율법적 교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만약 동성애 교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다른 정의를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동성애의 엄격한 율법교육을 받아 온 터라 감히 동성애와 같은 패역한 행위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서 믿는 이방인들 중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이 유입되면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동성애의 복음적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B. 로마서와 동성애
동성애 지지자들은 사도 바울서신에 대해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예수님도 거론하지 않은 동성애 문제를 유독 사도 바울만이 여러 번 거론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적 시선으로 보며, 바울과 그 제자 디모데가 독신인 것을 빙자하여 바울과 제자 디모데의 관계는 동성연애를 하는 사이였을 것이라는 악의적 말들을 서슴치 않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자신들의 말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신약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일먼저 언급되는 곳은 로마서 1장 26절, 27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부분만을 가지고 동성애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로마서 1장 전체를 통하여 로마 교회 안에서까지 동성애와 같은 문제가 발생된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8,19) 기록하였다. 우리가 이 말씀만을 보면 종말에 나타날 불신자들을 향한 심판 같지만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살펴 볼 때 이 구절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기 앞서 로마서 1장 16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언급하였으며,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을 강조하였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구조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의로운 삶의 체험이 나타나지 않음을 책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로마교회의 믿음은 전세계로 전파될 정도로 요란했으나(롬1:8) ‘신령한 은사’가 없었으며(롬1:11), 그로 인하여 ‘믿음의 위로’가 없었으며(롬1:12), ‘믿음의 열매’ 또한 없었던 것이다(롬1:13). 그 결과 속에서 바울은 그들 가운데 나타난 죄들을 3단계적 발전관계를 로마서 1장 21절부터 32절에서 논지하였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향하여 증거한 것으로 우리 교회는 좀 더 명철한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1. 죄, 첫번째 결과 – 성적타락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여기서 우리가 두려워야 할 말씀은 주를 믿는 사람이 그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내어 버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어버린다는 것은 곧 함께 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이것은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첫 번째 형벌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죄들이 마음의 욕정에서 태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벗어나 서로의 몸을 더럽히는 욕정의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두 번 째 나타난 죄의 결과는 동성애 문제이다. 그 문제의 발단에 대하여 성경은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간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경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성경의 정의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뒤집는 것이다. 이것은 곳 하나님의 정하신 남자와 여자의 창조적 섭리를 뒤집는 것과 같다.

2. 죄, 두번째 결과 – 동성애 타락
(롬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불고 있는 동성애 이슈 가운데 특이한 것은 성경 속에서 동성애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규어신학자들의 주장을 따라 ‘신약성경에서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니고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동성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괴변을 늘어놓는다. 저들이 이런 논쟁을 벌일 때 즐겨 사용하는 부분이 바로 로마서1장 26절로 27절의 말씀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어주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욕정이 불일듯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하여 자기들의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들 속에 받았느니라”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이러한 까닭..’이라는 연결구로서 25절의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는 말씀과 연결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친동성애자들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동성연애자를 만드셨다 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또한 여기서도 주목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라는 구절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음행에 빠져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지나친 성적 욕구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만약 당신이 음행과 간음에 빠져 있다면 어느 순간에 당신은 동성애를 즐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퀴어 신학자들은 바울은 동성애로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본성의 순리를 역행하여 난잡한 동성애 행위를 즐기는 이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을 정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라는 말씀 그 어디에서도 이성애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런 논쟁을 끌어내는 이들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헬라 문헌에도 ‘역리’라는 헬라어 ‘덴 파라 퓨신’(ten para phusin)과 "본성에 반한다"라는 표현은 윤리와 도덕적 관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3. 죄, 세 번째 결과 – 사형에 이르는 타락
조의 세 번째 단계에 대하여 바울은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찬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고통스런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죄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자신의 양심 밖으로 배제하여 버릴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할 때 급속도로 타락해 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다. 인간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여 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32) 기록하였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불의한 생활을 다루면서 왜 동성애적인 속성을 언급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고, 바울은 동성애자들을 단죄한 것이라고 단정해 버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복음은 구원에 있다.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정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되 경건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정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의한 삶의 태도에 대한 합당한 죄의 결과를 논리적으로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바울이 말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은 범죄한 교회 지도자들일 수도 있고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당신과 나일 수도 있다.

C. 고린도전서, 디모데전서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딤전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두 구절 성경 말씀은 동성애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큐어 신학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구절이다. 그들은 헬라어 'malakoi(말라코이)'와 ‘arsenokitai(아르세노코이타이)' 곧 ‘탐색하는 자’(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_KJV), ‘남색하는 자’(남자 동성애자들_KJV)의 해석의 문제를 놓고 여러 성경 번역본을 나열하며 보수성향의 교회들이 이 단어들을 자기들의 입맛대로 번역하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하였다.

한 예를 들면 그들은 ‘탐색’(malakos)이 사용된 마태복음 11장 8절에서 ’부드럽다‘라고 사용된 것을 들어서 ’행실이 단정치 못한‘, ’규율없는‘과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왜 동성연애자로 해석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다. 이는 자위, 수음, 손작난, masturbation은 모두 같은 뜻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다. 여자나, 여성이나, 자매나, 계집애나 계집년이나 사용하는 범위가 다를 뿐이지 모두가 동의어다.

또한 그는 ‘남색’(arsenokitai)의 해석을 놓고 이 단어가 성행위의 동작의 주체가 남자라는 것을 뜻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섹스하는 남자를 뜻하는 것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 단어가 사용된 정황상 ‘남색(arsenokitai/아르세노코이타이)’ 이란 단어는 ‘능동적인 삽입 성교’를 뜻하는 것이므로 ‘남창’이라도고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동성연애자라고 번역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우리나라 말 ’문 닫고 들어와‘, ’나는 먹물깨나 먹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해석하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싶다. 성경 전체를 문맥을 따라 읽으면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말을 가지고 혼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격이다.

D. 유다서의 동성애 문제 종말론적 적용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다른 육체_KJV)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큐어 신학자들은 본문에 언급된 ‘다른 색’이란 단어를 왜 동성애와 연관을 갖느냐고 말한다. 물론 이 단어는 동성애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 번역은 킹제임스 번역을 따라 ‘다른 육체(sarkos hetras)’라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유다서 저자는 이 글을 쓸 때 창세기 6장 2절의 타락한 천사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는 이 논증을 펴면서 왜 소돔과 고모라를 인용하였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창세기 6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들’(베네하 엘로힘; 욥1:7) 곧 타락한 천사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임의로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취한 일과 소돔성 사람들이 천사들과 성관계를 갖겠다는 내용을 같은 맥락에서 다룬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또한 유다서의 목적은 종말의 날 곧 그리스도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시는 그러한 범죄를 짓지 말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IV. 동성애 이슈, 복음적 정의
A. 동성애, 영적 이해 (창세기18장,19장)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창세기 19장에서 동성애 문제를 처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19장은 동성애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동성애와 관련된 종말론적 영적 이슈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창세기 19장을 조명해 보건데 하나님께서 소돔 땅의 패역함을 리서치하기 위해 두 명의 천사를 파송하셨을 때, 천사들을 발견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요, 두 번째 그룹은 바로 동성애자 집단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 롯과 동성애자들 무리만 천사들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의인 된 롯은 천사들의 거룩한 신성을 발견하였고, 동성애자들은 천사들의 아름다운 매력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타락의 성 소돔에 천사들을 유혹할만한 타락한 여인들은 없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소동성은 동성애가 만연될 정도로 악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동성애가 만연된 세상을 사는 우리는 동성애 문제를 처음 언급한 멸망의 소돔성의 사건을 종말의 시대에 나타날 영적 예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미 그러한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닥아 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성애는 악한 영들이 인간에게 잠입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가 만연된 시대 곧 영원한 멸망의 날을 예고한 메시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 소돔의 멸망 이유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동성애와 직접적인 관련을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소돔성의 동성애 문제는 소돔성의 타락의 극한 상태를 조명한 것이지 동성애자들로 인해 심판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비약된 설교로 인해서 큐어신학자들은 에스켈 16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소돔성의 죄는 궁핍한 나그네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는 헷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소돔 사람들의 죄악들을 열거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보다 악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패역함을 책망하며 인용한 것이다.

2. 하나님의 공의
롯을 보건데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재물을 선택한 자의 본보기이다. 이는 창세기 13장 을 통해서 분명하게 증거 되어 있다. 따라서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종말의 날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극렬하게 엇갈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메시지로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9a) 하신 말씀으로서 동일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메시지는 오늘과 같은 종말의 때 우리 교회와 성도가 어떤 신앙관을 선택할 것인지 가늠케 하는 교훈적 메시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창세기 18장에 나타난 온전한 믿음의 반열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신앙과 의로운 마음이다. 그는 의인 된 롯과 그의 친속의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들어 소돔성에 의인 열 명이 있다면 소돔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내었다. 사실 이것이 우리 교회의 역할이고 이것이 복음적 해법인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고 증거하였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각 사람의 믿음의 선택에 따라서 내가 롯과 같은 입장일 수도 있고 아브라함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매년 유월마다 거창하게 개최되는 큐어축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선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저들 가운데 있을 의인 열 명을 찾아내야할 것이다.

B. 동성애, 율법적 이해

구약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는 그 어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물론 이러한 정의는 동성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이다. 율법이 이처럼 죄에 대하여 단죄한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1. 동성애 사형제도(레위기18:22, 20:13)
율법서에 동성애 대해 언급은 레위기이다. 하나님은 먼저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하셨고 다시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라고 단죄하셨다.

이 말씀에 대하여 헬미니악은 ‘이는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함축 때문에 오직 삽입 성교를 금한 것이지 일반적인 동성애 행위의 도덕성에 관해서는 아무런 진술도 없었고 이와 같은 것들은 구약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발언이다. 이런 주장은 그가 호모필리아(homophilia)로서가 아니라 동성연애자로서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율법을 통하여 동성애를 ‘가증한’(토에바_혐오하다) 일이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혐오하시고 죽음에 이르는 심판을 하셨을까? 바울은 이에 대하여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롬7:13) 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의의 백성으로 보존케 위해 주신 것으로 그들이 율법을 경계삼아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다.

2. 동성애, 윤리제도 (신명기 22장 5절)
또한 신명기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 22:5) 고 기록하였다. 이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도적으로 동성애 지향에 빠지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여 트랜스젠더의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상담하다보면 공통된 것이 발견된다. 게이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하고 부모 몰래 여자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한 경험들이 있었고, 레스비안 성향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자 머리와 옷을 입고 전쟁놀이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과 같은 미디어 시대에는 부모들이 생활 속에서 악한 영들의 문화와 풍습을 차단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3. 동성애 추방정책 (왕상14:24, 왕상15:12, 왕상22:46)
성경은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왕상 14:24) 기록과 함께 “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왕상22:46) 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다윗 이후 이스라엘 왕국이 거대하여 주변 국가들과 무역을 하고 왕래하는 일이 빈번하자 각양각색의 이방인들이 들어오는 중에 동성애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하여 동성애 행위를 행하여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은연 중에 동성애에 빠지게 되어 국가적 조치가 생겼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동성애 문제를 엄격하게 다스리신 것은 인간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동성애적 죄성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적으로 윤리와 도덕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세상적으로는 세상의 정사와 권력과 어둠의 세력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에 교회의 역할이 막중한 것이다.

V. 동성애 이슈, 복음적 해법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색하는 자나(남자 동성애자들이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A. 하나님의 공의
이제 복음의 시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에 있어서의 동성애에 대한 복음적 정의를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먼저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구약이나 신약이 변함이 없다.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상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은 불변하다.

복음은 우리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색하는 자나(남자 동성애자들이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이 다른 점이 있다면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죄의 본성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율법을 통하여 의로운 삶을 살게 하셨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구속을 하신 후에 율법으로는 변화 될 수 없는 죄의 성품을 진리 안에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자유케 하는 은혜의 길을 여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간의 죄를 율법으로 정죄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를 다 멸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으로 죄를 다스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가 아직까지도 동성애 문제를 율법적인 관점에서 다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직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모순된 믿음이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율법으로 의인이 되려하던 이스라엘은 이미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의로 세운 은혜의 법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 믿음이 없어 순종치 않은 자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하심다.

B. 하나님의 사랑
나는 그동안 1700여명의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을 상담하였다. 그들 중에는 모태신앙이 38%이며, 17%가 사역자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모두 예수를 믿으면서도 동성애 생활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사랑하고 온전한 생활 소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면 예수를 믿어 죄없다 하심을 얻고 의인의 칭호를 받았음에도 동성애의 죄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나 역시도 12년 동안 예수를 믿고 신학을 하면서도 동성애를 끊어낼 수 없었다. 또한 그들에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하신 말씀은 어떻게 해석하며 적용해야 할 것인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엇이며 구속의 은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연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구원에 이르지 못하도록 정죄를 받은 자들인가? 아니다. 비록 그들이 동성애의 속성에서 벗어 나지 않았다 해도 예수를 믿는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틀림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죄에 사무쳐서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애통하며 기도하고 있다.

바울은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동성애를 비롯한 천국을 기업을 받지 못하는 죄들은 온전하게 해결됨을 확증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해법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이 언급한 11절에 기록된 첫 번째 조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두 번째 조건 ‘성령 안에서의 씻음’이란 말씀에 대한 적용적 해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나에게 상담 오는 청년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찾아온다. 그러나 그들은 ‘이요나 목사는 탈동성애자다, 어머니가 자살하셨다. 게이바를 운영했다. 갈보리채플 목사다,’ 이 정도의 정보를 알 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교회 출석하는 청년 중 6개월 된 청년도 있고 3년, 5년, 7년, 12년 된 청년도 있다. 출석한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성격과 나의 말하는 어법, 성경적 지식, 나의 목회철학을 아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나를 안다고 해도 나와 함께 한 부모에게서 자라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함께 예수를 믿어 오늘 갈보리채플 장로와 권사가 된 나의 동생과 누님이 나를 아는 정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의 이름’이란 창조의 근원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을 전재로 한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안다’는 것과 또 다른 의미이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마는 구원의 목적은 믿음의 종착지 영원한 생명이 이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 사도도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으니 자기의 영광의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육신의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벧후 1:3,4) 고 증거하였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 안에서의 씻음이란’ 무엇인가? 이는 성령이 우리 믿음 안에서 역사하는 속성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역사하실 성령에 대하여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말씀하셨다.

또한 여기서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이다(요 16:14,15).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셨으니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말씀하실 것이다‘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혜 속에 살더라도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복음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여야 성령의 능력에 의해 온전한 변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에 바울은 ”우리 안에 착한 일을 하신 분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라“(빌1:6) 기록하였다.

C. 사도적 교리의 정립
(딤전1:9-11)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우리는 사도 바울이 쓴 디모데서를 목회서신이라고 말한다. 이는 복음 사역에 부름을 받은 목회자로서는 당연한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서신 말미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1:18-19) 기록하였다. 이는 이 말씀을 목회에서 소홀히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빙자하여 죄의 경책과 권고에 대하여는 율법과 같이 생각하고 오직 은혜와 사랑의 복음에만 열중하였다. 더구나 교회성장과 부흥에 열정을 가진 나머지 정통의 목회를 지향하느라 성범죄와 같은 껄끄러운 부분에 대하여는 설교하기를 꺼려하였다. 그러는 사이 교회 안에서도 성윤리가 무너지고 동성애와 같은 성적문제가 공공연하게 합리화되고 있었다. 나 역시 예수를 믿고 12년간의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동성애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본 일이 있다. 설혹 목사들이 설교를 한다고 해도 동성애에 대한 복음적 해법을 설파하지 못하고 동성애를 저주하기 급급하였다. 이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바울은 분명하게 동성애 범죄에 대하여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기록하였다.

D. 성경의 목적과 사역자의 역할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과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을 무엇인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7) 기록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온전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한 프로세스이다.

여기서 ‘교훈’은 성경적 ‘교리’를 뜻하며 ‘책망’은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야 심령의 회개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바르게 함’ 곧 교정, 수정이 가능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의의 훈련을 받아 온전한 사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복음 사역자를 세우셔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셨다. 이는 성경과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온전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는 온전한 성경적 교육과 성령 안에서의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다. 고작 담배라 할지라도 주여주여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와 사역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고 중요하다고 하겠다.

(결어) 교회의 사명

시편기자는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시 102:18-20) 말씀 하셨다. 이는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신적작정이다. 나는 동성애자들도 이 속에 포함되었다고 확신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나의 증언도 무익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기록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것이다. 지옥에 간다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죄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이와 같이 동성애는 사도 요한이 말한 것과 같이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다. 만약 동성애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면 그와 동일한 범주에 있는 음행과 간음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며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도 지옥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능히 복음으로 극복하고 온전함을 얻을 수 있는 죄의 목록이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여 누가 성령을 통하여 전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따라 나아갔다면 그는 성령을 훼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오직 성경의 진리와 성령으로 해결될 수 있는 죄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가 나서서 동성애자들을 적으로 삼지 말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저들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긍휼하신 은혜의 복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성경은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로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성애와 같은 난제에 부딪힌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의 진리로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동성애와 같은 죄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공의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 작정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도 작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이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로서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때이다. 우리 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전히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이요나 목사 
주소: 서울 강남구 논현동 275-3 갈보리채플 서울교회
상담전화: (070)7565-3535 이메일:holylif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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