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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신학적 조명과 복음적 해법(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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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신학적 조명과 복음적 해법(이요나 목사)
  • 이요나 목사
  • 승인 2016.07.2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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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문 2

동성애, 신학적 조명과 복음적 해법

-이요나 목사-
(서울 갈보리채플 담임, 탈동성애인권포럼, 치유상담센터 홀리라이프 대표)

서론
I.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조명
A. 성경적 정의와 하나님의 뜻
B. 성경 해석의 당위성
C. 동성애 관련 성구 해석 원리
D. 구약에 나타난 동성애 문제의 해석적 조명
E. 신약을 통해 나타난 동성애 문제의 해석적 조명

II. 동성애 문제에 대한 복음적 정의와 이해
A. 동성애 이슈의 영적 이해(창세기18장,19장)
B.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
C. 동성애의 복음적 정의

III. 동성애 문제에 대한 복음적 대응과 해법
A. 지상명령과 새 계명
B. 성경적 상담의 대전제
C. 동성애 상담의 대전제
결론


지난 6월 26일 미연방대법원은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였고,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성소수자(LGBT)를 혐오하는 것은 미국의 적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완전한 입법을 추진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또한 유엔마저 성소수자 인권정책을 압박해오고 있는 실정에서 동성애 문제에 당면한 선교대국 한국교회의 입장은 매우 심각한 위기에 처해졌다. 이제 한국마저 무너지면 더 이상 동성애 문제를 성경적 해법으로 해결할 국가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한국교회는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동성애 문제를 극복할 하나님의 최종병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청교도신앙으로 시작한 기독교 국가 미국도 실패한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우리 한국교회가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모든 영들과 천상천하의 모든 만물과 이 땅에 거한 모든 인류의 창조자이며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다. 오직 진리의 성경만이 인생의 실패를 승리로 이끄는 지혜이며, 인생의 모든 생사화복의 근원이 그로부터 시작되고 그에게 돌아간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모든 사설적 논쟁을 멈추고 오직 성경을 통해서 동성애에 대한 복음적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I. 동성애에 대한 신학적 조명

(사 5: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A. 성경적 정의와 하나님의 뜻

우리가 동성애 문제를 신학적으로 조명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동성애에 대한 성경적 정의이다. 성경은 이미 구약을 필두로 신약에 이르기 까지 영들과 인간의 죄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죄하셨다. 그 어느 곳을 보더라도 동성애를 비롯한 불의한 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지 않고서는 피할 길이 없다.

따라서 만약 성경에 동성애에 대한 정의가 없다면 우리는 결국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철학적 논리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동성애 문제를 여러 번 언급하였고 그에 대한 복음적 해법도 명확하게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동성애의 죄를 성경적인 원리를 떠나 세상의 철학과 인간의 사상을 도입한다면 그가 비록 천사라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 자로 가혹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다. (갈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 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므로 모든 영들과 인간사와 세계 경영과 천지만물의 조화의 기준과 원리는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시대의 어느 성현과 도인과 학자가 천상천하의 그 무엇을 논했다 하드라도 그 권위와 지혜는 성경에 미치지 못한다. 성경은 창조자 하나님의 선지자와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해서 성령으로 친히 기록하신 것이므로 하늘의 일이나 이 세상의 일이나 그 어떤 것이라도 그 모든 정의와 해답은 성경에서 찾아야만 한다. (고후 10:5,6)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두 번째는 동성애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이란 그의 계획과 예정과 결정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논하건데 그 대표적인 것은 공의와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의 분명한 성경적 기준을 통해서 사람을 다루신다.

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심판하시는 근엄한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는데 심판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공의의 표이다. 다시 말하여 하나님은 모든 불의를 하나님의 공의를 따라 판단하시며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아들의 이름으로 구속하신 그 날까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심판을 정하시고 각 사람들이 스스로 택하게 하셨다.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언급한 기록이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제자들에게 어린소자라도 실족시키면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을 말씀하시며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고 말씀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살전 4:3,4)라고 증거 하였다.

위 말씀의 두 맥락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교회와 사역자들의 책임과 역할을 말씀하신 것이며, 바울은 육체의 정욕에서 벗어나 거룩함에 이르기 위한 성도들의 삶의 기준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교리와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주셨고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 또 복음 사역자들을 세우신 것이다. (엡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교리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고 (막 4:24)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눅 8:18)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
,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사도의 가르침과 이단 사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B. 성경 해석의 당위성

1. 퀴어 신학의 출발과 모순

동성애 문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정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경의 해석의 당위성이다. 오늘날 이미 많은 신학자들이 해방신학, 퀴어신학(queer theology)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어 기독교계가 혼잡한 상황이지만, 신학은 오직 성경의 진리를 토대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들을 발견하기 위한 기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인간의 지혜와 생각으로 새로운 학문적 교리를 만들어내면 이단사설에 빠지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성경은 모든 학문의 시작과 끝 곧 ‘알파와 오메가’이며, 모든 일들의 ‘시작과 끝’이며, 발단과 결과 곧 ‘처음과 나중’이다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아무리 과학과 문명이 발달되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며 인류는 아직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영원한 세계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 증거 하였다.

2. 퀴어 신학의 핵심교리

오늘날 퀴어 신학자들과 호모필리아(homophilia; 동성애옹호자)들은 로마 카톨릭 신부이며,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A. 헬미니악의 성경해석 교리를 롤 모델로 삼는다. 그들이 말하는 교리는 모두 헬미니악이 2000년에 저술한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What the Bible really say about Homosexuality? 'Millenium Edition')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What the Bible really say about Homosexuality) 다니엘 A. 헬미악, 한국어 해울출판사,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 2003.9.8
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물론 칼빈주의나 알마니안주의도 신학적 해석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원리를 교리화한 것이지만, 퀴어신학의 출발점이 된 헬리미니악의 논리는 하나님의 신적작정과 거룩한 품성을 훼손한 고의적이고 악위적인 발상이다. 이미 성경은 이들을 향하여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사 5:18)라고 저주하였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 1:18,19)고 기록하였다.

더욱 경악할 일은 다니엘 A. 헬미니악은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하나님의 증인들을 동성연애와 관련된 악의적인 해석으로 유추하였다. 다윗과 요나단이 연정관계 사무엘상18:14; 삼하1:26; *사무엘상20:30(70인역을 인용, 수치를 벌거벗음으로 유추) 삼상16:21
는 고사하고 사울과 다윗의 관계까지 언급하며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든 자를 삼고’(삼상 16:21) 라는 기록을 히브리어 원어를 무작위로 유추하여 ‘다윗이 사울에게 왔고 그[다윗]가 그 앞에서 발기했을 때 그[사울]는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악의적인 주석을 하였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184-185


그는 더 나아가 ‘룻과 나오미’의 관계를 레스비안 관계로 유추하였으며, 다니엘과 환관장 역시 동성애적인 관계였을 개연성을 열어 놓으며 ‘성서의 중요 인물들의 삶에 나타난 동성애 관계의 현실적인 개연성을 따져 보면 성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제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하여 개방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188-190
고 주장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그의 사설적 횡포는 불경스럽게도 거룩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까지 미쳐, 마태복음 5장과 누가복음 7장에 기록된 예수께 나아와 사랑하는 병든 하인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을 언급하며, 마태복음 8장5-13에서 백부장이 지칭한 종의 헬라어 원어가 'pais'는 ‘내 아이’, '소년‘이므로 백부장과 종은 동성애 관계 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예수께서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를 알면서도 죄의 논증 없이 백부장의 연인의 병을 고처 주었으니 결국 동성애를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괴변을 늘어놓았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Millenium Edition') p.xxii; p191-195
그러나 누가복음 7장 1절-10절에는 ’하인‘ 곧 ’doulos‘로 기록되었으므로 공관복음의 관점으로 볼 때 누가는 백부장과 하인의 상하관계를 그대로 서술한 것이고 마태는 그의 하인을 아끼고 사랑한 백부장의 성품을 묘사한 것이며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에 살며, 또한 동일한 성경을 읽으며 이와 같은 망령된 발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설혹 그의 논리가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어원의 해석을 폭넓게 유추한 학문적 연구라고 하더라도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하고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며,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의 영역을 훼손한 것이므로 이는 하나님의 진리를 훼방한 죄에 대한 형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C. 동성애 관련 성구 해석 원리

1. 역사 비평적 읽기의 모순

헬미니악은 그의 저서 서두에서 동성애를 죄악으로 언급하는 것은 잘못된 성경해석 때문이라고 전재하며, 오랜 교회사 속에서 ‘문자대로 읽기’(Literal Reading)의 성경해석의 원칙을 고수해 온 보수주의 성경학자들을 비평 하면서 동성애는 ‘역사 비평적 읽기’(Historical_critical Reading) 을 통해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22-23
. 결국 그의 논지대로 하자만 성경은 각 시대를 따라서 풍습과 언어의 관습을 수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매우 위험하며 이러한 주장들로 인하여 성경적 해석의 오류가 발생하고 이단자들이 발생된 것이다. 그러나 변할 수 없는 진실은 성경의 무오하심을 믿는 우리는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도와 그의 후예들의 가르침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문자적 해석의 원칙은 시대와 상황적 적용과는 다른 문제로서 성경해석의 원리와 질서가 깨어지면 성경은 결국 각 사람들의 생각대로 재해석되고 말 것이다.

결국 그의 말에 의하면 성경은 동성애자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에 대해 아무런 직접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여 성경은 최소한 동성애에 관해 ‘중립적인 견해’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창조의 권위와 균형을 간과하고 있다. 그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한 성경적 사고만 가졌다면 이런 악의적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2. 성경해석의 2가지 법칙

지금까지 보수적 가치관을 고수해 오던 성경 해석의 토대는 ‘최초 사용의 법칙’ (Law of first us)과 ‘해석의 불변성 법칙’ (Law of Ex-positional constancy)이다. ‘천지창조’(척 스미스 저; 포도원) P359-360
이 원리는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며 귀납적으로 분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성경 기록을 살펴 보건데 성경저자들도 모두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최초 사용의 법칙’이란 성경의 어떤 말씀을 해석할 때 그 말이 성경에서 처음 사용된 곳을 토대로 해석하는 원리로서, 다시 말하여 ‘창조’라는 단어의 해석은 이 단어가 성경 기록상 제일 먼저 기록된 창세기 1장1절의 ‘창조’를 기준으로 그 해석을 유추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 법칙인 ‘해석의 불변성’이란 성경해석의 일관성을 말한 것으로, 성경에서 죄의 상징으로 언급된 누룩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동일한 해석을 취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또한 성경해석에 있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해석의 적용적 균형이다. 이것은 성경 해석의 확대 범위와 적용의 범위의 균형적 질서를 뜻한 것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면 계시록 12장 1절에는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류관이 있더라”는 의미심장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서 어떤 학자들은 ‘여자’를 교회라고 해석한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갈라디아서 4장 21절 이후의 말씀을 유추 해석한 것이지만 이 해석을 따르면 계시록의 축이 뒤틀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부분의 바른 해석은 창세기 37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꿈을 꾸고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내가 또 꿈을 꾼 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37:9) 말하였다. 여기서 해와 달과 별은 말할 것도 없이 야곱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요셉의 열한 형제 곧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의 ‘해를 입은 한 여자’는 이스라엘을 뜻한 것으로 이는 7년 대환난 중의 이스라엘과 적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수천 년 인류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던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의 부르신 자들에게 성령의 영감으로 쓰신 것으로(벧후2:21, 딤후3:16)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예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품성과 의로운 삶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기록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결국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뜻을 대적하는 것이 된다.

D. 구약에 나타난 동성애 문제의 해석적 조명

동성애와 관련된 성경 구절은 레위기 18장 22절, 20장 13절, 신명기 22장 5절, 열왕기상 14장24절, 로마서 1장27절, 고린도전서 6장9절 그리고 디모데전서 1장10절이다. 헬미니악은 이 구절들은 모두 남성 간 섹스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고는 있지만 딱히 동성연애 행위를 단죄한 것은 아닌데도 ‘근본주의 노선을 따르는 보수 기독교계가 성경의 몇 구절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오류를 범하여 동성애를 배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성경에서 겨우 다섯 번 밖에 언급되지 않은 동성애 문제를 갖고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동성애 문제를 다섯 번이나 거론하였다는 것은 동성애가 시대를 무론하고 성도의 삶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느냐는 증명한 것이다.

1. 창세기 19장

성경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제일먼저 언급된 것은 창세기 19장이다. 인간의 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처럼 빠르게 타락의 역사가 전개되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창세기 19장 본문을 살펴보면 “그들이 눕기 전 그 성 사람 곧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게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창19:4,5) 기록되었다.

헬미니악을 따르는 사람들은 여기에 언급된 ‘상관’ 곧 ‘야다’라는 히브리어를 달리 해석하려고 애를 쓴다. 그들은 ‘상관하다’라는 히브리어 ‘야다’를 왜 ‘성적’ 관계로 국한 지으려 하느냐, 소돔성 사람들이 그들과 교제를 하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악의적 억지이다. 성경의 해석은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계획을 발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성령이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요16:13).

여기서 ‘상관하다’는 곧 히브리어 ‘야다’로서 ‘알다’라는 뜻이다. 곧 남편과 아내가 서로 안다는 의미로 부부관계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943번 사용되었으며 창세기에서 10번이나 성적관계로 사용되었다. 그 한 예로 창세기 4장 1절에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에서 ‘동침’이란 단어는 ‘야다’로서 부부관계를 의미하며, 또한 창세기 19장 8절에서 롯이 몰려 온 성 사람들을 만류하며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으니 청컨데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고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에서도 ‘야다’라는 단어가 나온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 자 가운데 이 말씀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유추하려는 태도를 갖는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고의적으로 태클을 거는 것이다. 무순 이유에서 그런 논리를 유추하는 것인지 그들의 저의를 알 수 없으나 그가 설혹 동성애일지라도 동성애를 성경에서 정당화하고자 하는 사고는 더 이상 사람되기를 거부한 망령된 자이다.

2. 사사기 19장

(삿 19:22)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보편적으로 목회자들은 이 내용을 동성애 문제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맥상을 보던지 원어를 보든지 여기서 언급된 “네 집에 들어 온 사람”은 레위사람이므로 그 지역 비류들은 레위사람에게 동성애인 매력을 느끼고 몰려 온 것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사역자의 도덕적 성품과 윤리적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기록된 레위사람은 오늘날 목회자와 같은 신분으로 절대로 축첩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사기 19장 전체를 읽을 때 그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첩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처가에까지 찾아 나섰으며, 또한 딸을 염려하여 사위의 마음을 달래려는 장인과 함께 수일을 함께 술타령을 한 것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패역한 사역자이다.

또한 25절 말씀에 의거 그들은 결국 레위사람의 첩과 밤새도록 분탕질을 했으니 이들은 양성애자이기도 하다 (삿 19:25)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 그러나 22절에서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삿 19:22) 고 말한 내용은 분명 동성연애 행위를 요구한 것이다.

이 구절을 놓고 큐어 신학자들은 보수교회들이 사사기 내용은 동성애라고 보지 않으면서 유독 창세기 19장만을 동성애 사건으로 보려는 것은 소돔의 멸망을 동성애자에게 돌리려는 의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내용의 핵심은 레위인들이 맡은 바 사역적 위치를 떠나 세속적인 생활을 하는 시대에 나타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고발적 메시지라는 것이다.

오늘날도 신부나 목사나 신학생들 중에도 동성애자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있다. 각 사람의 성품과 생활방법이 각각 다르듯이 동성애자들도 여러 부류가 있다. 커밍아웃하고 동성애자로 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면서 동성애 생활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다 타락한 비류들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성경을 왜곡한 동성애자들이나 친동성애 단체들은 성경이 정죄한 것은 동성연애를 즐기는 사람들을 정죄한 것이지 동성애자로 살아가도록 소명된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라고 소명받은 사람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는다. 누가 동성애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그의 선택이며 그의 선택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의 공으로서 심판하실 것이다.

3. 레위기 18장, 신명기22장, 열왕기 14장

헬미니악은 이 구절들에 언급된 동성애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이상적인 역할을 중시하는 고대 유대교의 율법을 어기거나 동성 성교에 따르는 악습, 곧 성적 착취와 학대를 논한 것이지, 섹스의 고유한 본질을 악으로 규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하나님의 뜻과 신적작정을 바꾸시지 않으며 성경은 결코 인간의 육체의 속성을 삶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의 결정에 의하여 예정된 계획을 실행하신다. 설혹 하나님께서 시대적으로 인간을 다루시는 가운데 많은 더러운 사건들이 유추되었다 하드라도 불의한 일들 곧 우상숭배, 음행, 간음, 도적질, 살인, 방탕, 탐색, 동성애 술 취함과 같은 육체의 일들을 정당화 하신 일은 신구약 성경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신적작정은 결코 인간을 멸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육체의 속성을 버리고 오직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하기 위함이다.

E. 신약을 통해 나타난 동성애 문제의 해석적 조명

1. 복음서에 없는 동성애 문제

신학에는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다. 특별히 퀴어 신학자들은 신약에 언급된 동성애 부분에 대하여는 더욱 강력한 논쟁을 제기한다. 또한 그들은 예수께서는 동성애에 대하여 한 번도 논하지 않았고 정죄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된 주장이다. 하나님의 의와 불의를 논할 때 동성애라는 단어가 꼭 사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미 ‘여인을 보고 음행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정의하셨고, 예수님의 말씀 전체에는 성도의 거룩함과 의로운 삶의 기준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구약에서 리얼하게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에 대하여는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에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산산수훈에서 율법의 정의가 잘못 정의되고 있는 부분은 모두 구체적으로 언급하셨다. 다시 말하여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마다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가 되리라’(마5:22) 고 재 정의하셨다.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는 잘못을 바로 잡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에서 율법의 잘못된 해석과 관행적 적용에 대하여 “~~너희가 들었으나‘라는 관용구를 사용하여 살인에 대하여(마 5:21), 간음에 대하여(27), 이혼에 대하여(31), 맹세에 대하여(33), 원수 갚는 것에 대하여(38), 이웃사랑에 대하여(43), 또한 구제와 기도와 금식과 재물관에 대하여(마6장), 비판에 대하여, 신앙관에 대하여, 거짓 선지자에 대하여(마7장) 잘못된 해석과 관행들을 바로 잡으셨다. 그러므로 만약 구약에서 증거 된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가 잘못 사용되었다면 예수께서 분명하게 바로잡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율법이 옳지 못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율법은 거룩하고 신령하다’(롬7:12) 하였고,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말씀하셨으며,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듯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하시며 ‘이 계명 중에 하나도 버리고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친다면 그는 지극히 작다고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할 것’(마5:19)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구약의 동성애 정죄에 대한 율법적 교리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만약 동성애 교리에 문제가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분명히 다른 정의를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동성애의 엄격한 율법교육을 받아 온 터라 감히 동성애와 같은 패역한 행위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시대가 온 세상에 확장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면서 믿는 이방인들 중에 동성애 성향을 가진 자들이 유입되면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동성애의 복음적 교리를 설파한 것이다.

2. 로마서의 동성애 관련 성구

(롬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본성)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보기 흉한 짓)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신약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일먼저 언급되는 곳은 로마서 1장 26절, 27절이다. 흥미롭게도 큐어신학의 대부 다니엘 헬미니악은 그의 저서 ‘성경이 말하는 동성애’에서 로마서 1장에 언급된 동성애 문제에 대한 논쟁을 가장 많이 할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울이 동성애의 악하고 더러운 속성을 가장 리얼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헬미니악은 로마서에 나오는 동성애 성구를 조명하며 ‘로마서에 언급된 동성애의 정죄는 것은, 태생적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니고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동성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괴변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이를 인하여’ 라는 연결구는 25절의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는 말씀의 결론구이므로 그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동성연애자를 만드셨다 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또한 헬미니악은 존 보스웰과 윌리엄 컨트리먼과 같은 신학자들의 학술을 인용하여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동성 간의 성행위를 단죄한 것이 아니라 윤리적 중립을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99
따라서 로마서에서 사용한 동성연애 행위의 ‘더럽다’(impure)는 기록은 사회적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윤리적 불의로 묘사하지 않았으므로 본문 구조상 정죄의 목록들과 구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바울의 로마서 기록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성결문제를 중요시한 것이 아니므로 바울 서신은 그러한 율법적 문제 때문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분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100-146
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서신서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율법을 가벼이 여겨 방탕한 생활에 빠질 것을 염려하고 더 엄하게 경계하였다. 롬7:12, 딤전1:3-11, 고전6:9-10, 갈5:19-21, 엡5:3-7


헬미니악은 로마서 1장 26-27절에서 언급한 동성연애와 관련된 세 단어 곧 ‘역리_비정상적인’(unnatural), '부끄러운‘(degrading), ’망측한, 흉한‘(shameless)과 같은 헬라어 단어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였으며, 바울은 여기서 ’역리‘는 윤리를 뜻하는 ’본성‘(natural)에 대한 거슬림이 아니라 유대인의 율법적 요구에는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헬라어 중심 번역의 최고 오래된 킹제임스 성경은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어주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본성)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욕정이 불일듯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하여 자기들의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들 속에 받았느니라” 기록되었다. 이 기록을 보건데 그의 주장은 허구임이 명백하다. 이는 ‘먹물깨나 먹은 사람’이란 우리나라 옛 속어를 ‘물이 없어서 먹물을 먹고 산 사람’이라고 해석한 것과 같다.

또 그는 비정상적인 생활을 뜻하는 ‘역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 퓨신’(para physin)에서 ‘퓨신’은 물리학적인 용어로서 영어 ‘순리’ nature 에 반하는 말이지만 바울이 언급한 순리는 특성을 말한 것이지 원초적이고 ‘자연적 법칙’에 반하는 의도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헬라 문헌에도 ‘역리’라는 헬라어 ‘덴 파라 퓨신’(ten para phusin) 곧, "본성에 반한다"라는 해석은 윤리와 도덕적 관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더 나아가 경망스럽게도 헬미니악은 바울이 'para physin'이란 단어를 윤리적 단죄로 사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롬 11:24) 의 말씀을 인용하며 야생나무를 재배용 나무에 접붙이는 것은 정상이 아님에도 하나님께서도 비정상적으로 행동하셨다는 증거라고 망령된 폄론을 하였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105-110
이것은 하나님께서 밤을 만드신 것처럼 죄를 만드셨으니 그의 피조물인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는 괴변과도 같다.

3. 고린도전서, 디모데전서의 동성애 관련 성구

(고전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딤전 1:10)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위의 두 구절 말씀은 동성애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큐어 신학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구절이다. 그들은 헬라어 'malakoi(말라코이)'와 ‘arsenokitai(아르세노코이타이)' 곧 ‘탐색하는 자’(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 ‘남색하는 자’(남자 동성애자들)의 해석의 문제를 놓고 여러 성경 번역본을 나열하며 보수성향의 교회들이 이 단어들을 자기들의 입맛대로 번역하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하였다.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149-153


한 예를 들면 그들은 ‘탐색’(malakos) 이 사용된 마태복음 11장 8절에서 ’부드럽다‘라고 사용된 것을 들어서 ’행실이 단정치 못한‘, ’규율없는‘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왜 동성연애 행위로 해석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다. 이는 자위, 수음, 손작난, hand play는 같은 의미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여자나, 여성이나, 자매나, 계집애나 계집년이나 사용하는 범위가 다를 뿐이지 모두가 동의어다.

또한 그는 ‘남색’(arsenokitai)의 해석을 놓고 이 단어가 성행위의 동작의 주체가 남자라는 것을 뜻하는 말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섹스하는 남자를 뜻하는 것인지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이 단어가 사용된 정황상 ’남색(arsenokitai/아르세노코이타이)‘ 이란 단어는 ’능동적인 삽입 성교‘를 뜻하는 것이므로 ’남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동성연애자라고 번역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우리나라 말 ’문 닫고 들어와‘, ’나는 먹물깨나 먹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해석하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싶다. 성경 전체를 문맥을 따라 읽으면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알 수 있는 말을 가지고 혼자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격이다.

4. 유다서에 언급된 동성애 관련 성구

(유 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다른 육체_KJV)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큐어 신학자들은 본문에 언급된 ‘다른 색’이란 단어를 왜 동성애와 연관을 갖느냐고 말한다. 물론 이 단어는 동성애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것은 아니다. 이 번역은 킹제임스 번역을 따라 ‘다른 육체(sarkos hetras)'라고 보는 것이 맞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는 이 논증을 펴면서 왜 소돔과 고모라를 인용하였을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창세기 6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들’(베네하엘로힘; 욥1:6)이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자기 임의로 아내로 취한 사건을 언급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의 해석은 교파에 따라 신학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강해설교의 명문 미국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 척스미스 목사님의 창세기 강해 ‘우주창조’에서 창세기 6장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창세기 보다 먼저 기록된 욥기 1장 6절 말씀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에서 처음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성경해석의 ‘최초 사용의 법칙’ (Law of First use)과 ‘해석의 불변성 법칙’(Law of Ex-positional Constancy)에 의거 ‘하나님의 아들들‘(베네하 엘로힘)은 ’타락한 천사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척 스미스 목사는 이들은 베드로후서 2장4절에 유일하게 언급 된 ‘옥’(Tartarus)에 던져져 흑암 속에서 큰 날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우주창조 p84-87 (척 스미스 저, 포도원출판사)


II. 동성애 문제에 대한 복음적 정의와 이해

(딤전 1:9-11)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음행하는 자며 남색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 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A. 동성애 이슈의 영적 이해(창세기18장,19장)

(창 18:32)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창세기 19장에서 동성애 문제를 처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 19장은 동성애를 직접 다루기보다는 동성애와 관련된 종말론적 영적 이슈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창세기 19장을 조명해 보건데 하나님께서 소돔 땅의 패역함을 리서치하기 위해 두 명의 천사를 파송하셨을 때, 천사들을 발견한 사람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요, 두 번째 그룹은 바로 동성애자 집단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 롯과 동성애자들 무리만 천사들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믿는 의인 된 롯은 천사들의 거룩한 신성을 발견하였고, 동성애자들은 천사들의 아름다운 매력에 이끌렸던 것이다. 그러면 과연 타락의 성 소돔에 천사들을 유혹할만한 타락한 창녀들이나 매음녀들은 없었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소돔성은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할 만큼 동성애까지 만연될 정도로 악으로 가득한 도시였다.

그러므로 동성애가 만연된 세상을 사는 우리는 동성애 문제를 처음 언급한 멸망의 소돔성의 사건을 종말의 시대에 나타날 영적 예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미 그러한 시대가 우리 앞에 성큼 닥아 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성애는 악한 영들이 인간에게 잠입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가 만연된 시대 곧 영원한 멸망의 날을 예고한 메시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 소돔의 멸망 이유

창세기 18장과 19장은 종말의 날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극렬하게 엇갈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메시지로서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9a) 하신 말씀으로서 동일한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 메시지는 오늘과 같은 종말의 때 우리 교회와 성도가 어떤 신앙관을 선택할 것인지 가늠케 하는 교훈적 메시지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동성애와 직접적인 관련을 짓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창세기 19장에 기록된 소돔성의 동성애 사건은 소돔성의 타락의 극한 상태를 조명한 것이지 동성애자들로 인해 심판을 받은 것을 뜻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무리한 관점해석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소돔성 멸망의 원인을 다리 해석하는 큐어 신학자들의 억지는 정말 적반하장이다.

헬미니악은 소돔성의 멸망의 원인에 대해 에스켈 16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소돔성의 죄는 궁핍한 나그네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에스겔서 16장 문맥 전체를 보면 에스겔 선지자는 헷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소돔 사람들의 죄악들을 열거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보다 더 악해진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함을 책망하며 인용한 것임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교회의 중보

또한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창세기 18장에 나타난 온전한 구원의 믿음의 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온전한 신앙관이다. 그는 의인 된 롯과 그의 친속의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대면하여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요구하며 만약 소돔성에 의인 열 명이 있다면 소돔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끌어 내었다. 사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역할이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음적 해법인 것이다.

소돔성의 멸망 후 성경은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이 메시지는 각 사람의 믿음의 선택에 따라서 내가 롯과 같은 입장일 수도 있고 아브라함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의인이라 칭호된 롯의 믿음을 보건데 그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재물을 선택한 자의 본보기이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종말의 날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는 매년 유월마다 거창하게 개최되는 큐어축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선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저들 가운데 있을 의인들을 위해 중보해할 것이다.

B.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약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율법적 정의는 그 어떤 타협의 여지가 없다. 물론 율법적 정의는 동성연애의 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모든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결정이다. 율법이 이처럼 죄에 대하여 단죄한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1. 동성애 사형제도(레위기18:22, 20:13)

율법서에 동성애 대해 언급은 레위기이다. 하나님은 먼저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하셨고 다시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라고 엄히 단죄하셨다.

이에 대하여 헬미니악은 ‘이는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함축 때문에 오직 삽입 성교를 금한 것이지 일반적인 동성애 행위의 도덕성에 관해서는 아무런 진술도 없었고 이와 같은 것들은 구약성경의 관심사가 아니라’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해울) p76-79
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어리석고 무모한 발언이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한 것은 호모필리아(homophilia)로서가 아니라 동성연애자로서의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율법을 통하여 동성애를 ‘가증한’(토에바_혐오하다) 일이라는 극단적으로 혐오하시고 죽음에 이르는 심판을 하셨을까? 바울은 이에 대하여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롬7:13) 하였다. 이와 같이 율법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을 의의 백성으로 보존케 위해 주신 것으로 그들이 율법을 경계삼아 죄를 짓지 않게 하려 함이다.

2. 동성애 지향의 복장 윤리제도 (신명기 22장 5절)

또한 신명기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 22:5) 고 기록하였다. 이로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도적으로 스스로 동성애 지향에 빠지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날 트랜스젠더와 같은 패역의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상담하다보면 공통된 것이 발견된다. 게이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하고 부모 몰래 여자 옷을 입고 얼굴에 화장한 경험들이 있었고, 레스비안 성향자들은 어려서부터 남자 머리와 옷을 입고 전쟁놀이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즘과 같은 영적으로 혼란한 미디어 시대에는 부모들 스스로 생활 속에서 악한 영들의 문화와 풍습을 차단하는 경건한 생활 유지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3. 동성애 추방제도 (왕상14:24, 왕상15:12, 왕상22:46)

왕국시대에 이르러서는 긴급한 조치가 발령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열왕기상 14장 24절에는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기록과 함께 이스라엘 성군 아사왕이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왕상 15:12a) 또 그 아들 여호사밧도 “저가 그 부친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왕상22:46) 고 기록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윗 이후 이스라엘 왕국이 거대해 지면서 주변 국가들과 무역이 빈번해지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해 지면서 각양각색의 이방인들이 유입되는 가운데 동성애자들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하여 동성애 행위를 행하여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은연중에 동성애에 빠지게 되어 국가적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동성애 문제를 엄격하게 다스리신 것은 인간의 심령을 사로잡고 있는 동성애적 죄성을 끊어낼 수 없기 때문에 율법으로 엄격하게 통제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법적으로 윤리와 도덕을 보장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지만 육신은 세상의 정사와 권력과 어둠의 세력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다.20)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이 종말의 시대에 교회의 역할이 막중한 것이다. (엡3: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C. 동성애의 복음적 정의

이제 복음의 시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에 있어서의 동성애에 대한 복음적 정의를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먼저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구약이나 신약이 변함이 없다. 죄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은 상을 베푸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기 때문이다. 은혜의 시대에도 하나님의 공의의 판단은 불변하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이 다른 점이 있다면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하여 의로운 삶을 살게 하셨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구속의 방법을 택하신 것이다. 그것은 율법으로는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없고 오히려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여 주신 율법으로 인해 택하신 백성이 사망에 이르게 됨으로 온전케 할 수 없는 율법을 치우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의인의 길에 이르게 하는 십자가의 도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나라와 민족을 막론하고 또 그 어떤 죄악을 범한 자라 하더라도 그 아들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인간의 죄를 율법으로 정죄할 필요가 없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를 다 멸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으로 죄를 다스릴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가 아직까지도 동성애 문제를 율법적인 관점에서 다루려고 한다면 그것은 아직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모순된 믿음이다. 이미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율법으로 의인이 되려하던 이스라엘은 이미 실패하였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의로 세운 은혜의 법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 믿음이 없어 순종치 않은 자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 로마서 교회의 특성

신약에서 동성애 문제가 제일먼저 언급되는 곳은 로마서 1장 26절, 27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부분만을 가지고 동성애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로마서 1장 전체를 통하여 로마 교회 안에서까지 동성애와 같은 문제가 발생된 이유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롬1:18,19) 기록하였다. 우리가 이 말씀만을 보면 종말에 나타날 불신자들을 향한 심판 같지만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살펴 볼 때 이 구절은 로마에 있는 신자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를 말하기 앞서 로마서 1장 16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언급하였으며,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을 강조하였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구조로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의로운 삶의 체험이 나타나지 않음을 책망한 것이다.

사실 로마교회는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 소천하신 후 첫 번째 오순절날에 각국에 살던 유대인들이 오순절 축제에 참여 하던 중 사도들과 함께 기도하던 120명 성도들 가운데 나타난 성령강림으로 은혜를 받은 로마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개척한 교회이다. 사도행전 2장 10절

2. 죄, 첫번째 결과 – 성적타락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여기서 우리가 두려워야 할 말씀은 주를 믿는 사람이 그가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내어 버려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어버린다는 것은 곧 함께 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이것은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첫 번째 형벌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죄들이 마음의 욕정에서 태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벗어나 서로의 몸을 더럽히는 욕정의 사람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두 번 째 나타난 죄의 결과는 동성애 문제이다. 그 문제의 발단에 대하여 성경은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 1:25)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에서 떨어져 나간 것도 부족해서 이제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경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성경의 정의를 자기네 입맛에 맞게 뒤집는 것이다. 이것은 곳 하나님의 정하신 남자와 여자의 창조적 섭리를 뒤집는 것과 같다.

3. 죄, 두번째 결과 – 동성애 타락

(롬 1:26)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롬 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오늘날 교회 안에서 불고 있는 동성애 이슈 가운데 특이한 것은 성경 속에서 동성애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규어신학자들의 주장을 따라 ‘신약성경에서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난 동성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 것이 아니고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의 동성 섹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라는 괴변을 늘어놓는다. 저들이 이런 논쟁을 벌일 때 즐겨 사용하는 부분이 바로 로마서1장 26절로 27절의 말씀이다.

킹제임스 성경은 “이러한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런 애정에 내어주셨으니 심지어 그들의 여자들도 본래대로 쓸 것을 본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남자들도 이와 같이 본래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를 향하여 욕정이 불일듯하여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보기 흉한 짓을 행하여 자기들의 잘못에 합당한 보응을 자기들 속에 받았느니라”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이러한 까닭..’이라는 연결구로서 25절의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는 말씀과 연결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친동성애자들의 주장처럼 하나님께서 동성연애자를 만드셨다 말은 결코 성립될 수 없다.

또한 여기서도 주목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라는 구절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음행에 빠져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지나친 성적 욕구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만약 당신이 음행과 간음에 빠져 있다면 어느 순간에 당신은 동성애를 즐길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퀴어 신학자들은 바울은 동성애로 태어난 사람들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본성의 순리를 역행하여 난잡한 동성애 행위를 즐기는 이성애자들이나 양성애자들을 정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라는 말씀 그 어디에서도 이성애자들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헬라 문헌에도 ‘역리’라는 헬라어 ‘덴 파라 퓨신’(ten para phusin)과 "본성에 반한다"라는 표현은 윤리와 도덕적 관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오히려 이런 논쟁을 끌어내는 이들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러울 뿐이다.

4. 죄, 세 번째 결과 – 사형에 이르는 타락

조의 세 번째 단계에 대하여 바울은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찬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31)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고통스런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죄들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하나님을 자신의 양심 밖으로 배제하여 버릴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들이다.

인류가 존재한 이래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그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할 때 급속도로 타락해 버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증거다. 인간들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하여 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32) 기록하였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인간의 불의한 생활을 다루면서 왜 동성애적인 속성을 언급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외면한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고, 바울은 동성애자들을 단죄한 것이라고 단정해 버릴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복음은 구원에 있다.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정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되 경건의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정욕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의한 삶의 태도에 대한 합당한 죄의 결과를 논리적으로 증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은 범죄한 교회 지도자들일 수도, 진리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당신과 나일 수도 있다.


III. 동성애 문제에 대한 복음적 대응과 해법

A. 지상명령과 새 계명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우리는 복음의 시대에 살고 있다. 복음의 시대의 대주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한 그리스도의 나라 건설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죄인된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대속을 이루셨다. 예수님은 친히 몸된 교회를 세우시고 승천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는 지상명령을 내리셨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지상명령을 실천함에 있어 절대 명제인 새 계명을 주시며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말씀하셨다. 이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랑의 분질이 상실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B. 하나님의 뜻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두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영혼구원의 사명을 가진 우리 교회가 생명처럼 여겨야 할 명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한 목회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교회가 대형화되면서 대부분 이 부분에서 실패를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지 교회의 위상이나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천국을 세우기 위한 목회원리를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먼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마 18:6,7) 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일백 마리의 양 중에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와 함께 하신 말씀이다.

1. 누가 소자인가?

여기서 우리는 소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께서 말씀하신바 소자들은 비단 어린아이들만을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을 언급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온전한 천국 복음의 교육이 필요한데 그들의 양육을 맡은 사역자들이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지 못하면 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실족하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은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 18:10)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이 소자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이 모두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이다(참조, 요1:13, 엡1:4,5)

2. 수술의 절대성(Radical Amputation)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아직 의의 도를 깨우치지 못하고 세속적인 죄의 습관 속에서 죄된 생활을 그대로 하고 있는 어린 소자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9)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소자들은 그들의 신분이 어떻든 세상 속에서 자기 죄성을 따라 살던 죄의 습관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 그것들을 수술(Radical Amputation)해 내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세속적이고 육신적 생활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스물일곱 살에 아들의 동성애 성향을 아신 어머니의 자살로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고통을 딛고 서른 살에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성령운동이 강렬하다는 교회에 출석하여 열정적인 믿음생활을 하였다. 한 달에 한번은 기도원에 올라갔으며 주중에 한번은 목사님을 모셔 놓고 구역예배를 드렸다. 구원의 은혜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며 예수를 사랑했다. 어디 그뿐인가? 영혼의 갈급함에 이끌려 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장로교 신학교, 순복음 신학교를 전전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은 진리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인 출세 지향적인 카날 크리스천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 당시 내가 하던 유흥업이 옳지 못함에도 교회는 침묵하고 있었고, 오히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어둠의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길이라는 명분을 주었다. 돈을 많이 벌수록 교회에서 나의 입지도 커져 갈수록 더욱 모순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의 지배 속에서 사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두 타고날 때부터 죄 중에서 태어나 죄 속에서 살아 왔다. 자기를 사랑하며 세상의 정욕에 빠져 사는 동안 옛 생활습관을 따라 죄인의 인격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바울도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2,3) 라 하였고 다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경계하였다.

이에 예수께서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말씀하시며 죄의 습관에 빠진 소자들을 온전케 하는 두 가지 성경적 방법을 말씀하여 먼저는 성도 한 두 사람으로부터 교회전체가 함께 합심하여 권면할 3단계적 상담원리와 그 어떤 죄라도 용서해야하는 복음적 원리를 섭법하셨다.(참조 마18:15-20; 마18:21-35)

B. 성경적 상담의 대전제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면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심히 가까운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어떠한가? 차마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날이 이르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이미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마15:8-10) 경고하셨고, 바울사도도 우리를 향하여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경계하였다.

1. 거짓 선지자와 교사

(고후 11:15)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 예언자와 거짓 교사들이다. 그들은 모두 예수를 말하고 구원을 외치고 있지만 온전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제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눅 11:52) 하셨고 다시,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책망하셨다.

나는 최근에 탈동성애자 운동과 관련하여 염려하는 것이 생겼다. 남들은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구원은 오직 진리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교회에서 올린 유튜브 동영상에 탈동성애자들의 간증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증언을 듣다보면 사실성을 의심스러워진다. 그들은 마치 입으로 죄의 고백을 하면 탈동성애가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이 다니는 교회의 신학적 배경을 보면 극단적이고 비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2.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울은 동성애를 비롯한 천국에 이르지 못할 죄의 목록들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말하여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기록하였다.

또한 예수께서도 거룩함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셨으며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기도하셨다. 사도바울도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증거하였다. 성경의 진리가 이렇게 명확한데 비성경적인 이단적 사설을 가르치는 곳에서 어떻게 거룩한 변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진리가 아니면 거룩하게 될 그 어떤 명분이 없는 것이다.

심리학이든 다른 종교의 가르침이나 세상의 그 어떤 학문으로도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길이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5) 하심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비성경적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에서 구원이나 변화를 받는다는 논리는 삼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사람을 미혹하는 이단사설인 것이다.

C. 동성애 상담의 대전제

1. 복음적 정의의 확립

복음은 우리에게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색하는 자나(남자 동성애자들이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10)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느냐는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다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11) 기록하였다. 이는 복음으로 해결됨을 확증한 것이다. 그러면 성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아는 자들과 성령 안에 있는 자들 중이 동성애자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그동안 1200여명의 크리스천 동성애자들을 상담하였다. 그들 중에는 모태신앙이 38%이며, 17%가 목회자 가정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모두 예수를 믿으면서도 동성애 생활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예수를 사랑하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살기를 소망하는 자들이다. 동성애를 끊어내기를 소망하고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온전한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 역시도 12년동안 예수를 믿고 신학을 하면서도 동성애를 끊어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따라서 바울이 언급한 11절 말씀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의 씻음’은 특별한 적용적 해석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나에게 상담 오는 청년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나에 대한 정보를 갖고 찾아온다. 그들은 ‘이요나 목사는 탈동성애자다, 어머니가 자살하셨다. 게이바를 운영했다. 갈보리채플 목사다,’ 이 정도의 정보를 알 뿐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교회 출석하는 청년 중 6개월 된 자나 있고 1년, 5년, 7년, 12년 된 청년도 있다. 출석한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나에 대한 성격과 나의 말하는 어법, 성경적 지식, 나의 목회철학을 아는 정도가 다를 것이다. 또한 그들이 나를 안다고 해도 나와 함께 한 부모에게서 자라고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하고 함께 예수를 믿어 오늘 갈보리채플 장로와 권사가 된 나의 동생과 누님이 나를 아는 정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마는 믿음의 종착지 영원한 생명이 이르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라고 말씀하셨으며 베드로 사도도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으니 자기의 영광의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육신의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셨다‘ (벧후1:3,4) 고 증거하였다.

그러면 ‘성령 안에서의 씻음이란’ 무엇인가? 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속성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역사하실 성령에 대하여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말씀하셨다.

또한 여기서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역사하신다는 말이다(요16:14,15). 따라서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혜 속에 있더라도 진리의 복음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이다.

2. 성경의 목적과 사역자의 역할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과 사역자를 세우신 목적을 무엇인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17) 기록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온전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한 프로세스이다.

여기서 ‘교훈’은 성경적 ‘교리’를 뜻하며 ‘책망’은 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그래야 심령의 회개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바르게 함’ 곧 교정, 수정이 가능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의의 훈련을 받아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복음 사역자를 세우셨으니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심과 같다. 이는 성경과 복음 사역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온전한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는 온전한 성경적 교육과 성령 안에서의 훈련을 받지 못한 것이다. 고작 담배라 할지라도 주여주여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동성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와 사역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고 중요하다고 하겠다.

3. 교회의 역할

시편기자는 “이 일이 장래 세대를 위하여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며 하늘에서 땅을 감찰하셨으니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케 하려 하심이라“(시 102:18-20) 말씀 하셨다. 이는 이 땅의 모든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며 신적작정이다. 나는 동성애자들도 이 속에 포함되었다고 확신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나의 증언도 무익할 것이다.

또한 성경은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기록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는 하나님의 저주받은 것이다. 지옥에 간다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잘못된 판단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죄없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으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동성애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다. 만약 동성애가 사망에 이르는 죄라면 그와 동일한 범주에 있는 음행과 간음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며 밧세바를 간음한 다윗도 지옥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능히 복음으로 극복하고 온전함을 얻을 수 있는 죄의 목록이다.

예수님은 오직 성령을 훼방하는 죄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여 누가 성령을 통하여 전달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뜻을 따라 나아갔다면 그는 성령을 훼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오직 성경의 진리와 성령으로 해결될 수 있는 죄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가 나서서 동성애자들을 적으로 삼지 말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저들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긍휼하신 은혜의 복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성경은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6) 기록하였다.

예수님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로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날 동성애와 같은 난제에 부딪힌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의 진리로서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불의로 가득한 세상에 동성애와 같은 죄의 문제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우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공의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영원한 생명’이 작정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멸망’도 작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이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은혜로서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때이다. 우리 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온전히 성취되기를 기원한다. (20150907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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