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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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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 정윤석
  • 승인 2011.04.11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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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인터뷰] 수영로교회 정필도 목사


 

정필도 목사(수영로교회, 70세)와의 인터뷰는 2011년 3월 31일 서울 독산동 노보텔엠베서더호텔에서 진행됐다. 정 목사와의 2시간여의 인터뷰 시간동안 기자는 스페셜 특강을 듣는 것 같았다. 박장대소할 정도로 웃기도 했고 가슴 찡한 감동도 있었다. 그의 인생은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뜻대로 살려는 흔적으로 점철된 삶이다.

정 목사는 기도 응답을 받고 지금의 아내 박신실 사모(62)와 결혼했다. 그런데 결혼 첫날 아내는 “목사와 살 마음이 없다”고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결혼 후 3년 동안 집에서 말 한 마디 따스하게 나눠본 적이 없다. 아내는 목사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가슴속의 한을 삭이며 지냈다. 삭막한 결혼생활은 밥상에서 잘 나타났다. 밥상에는 늘 밥, 멸치, 고추장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대화도 없는 결혼생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이 지나던 어느 날 집에 들어갔다. “여보 오늘 힘들었지?”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결혼 한 뒤 처음으로 아내의 일상에 관심을 갖고 한 말이었다. 아내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부터 식탁위의 반찬이 달라졌다. 정필도 목사의 말에 기분이 좋았던 아내는 옆집 할머니 집에서 군둥내가 풀풀 나는 총각무를 얻어와 식탁위에 올렸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정 목사가 지금까지 먹어본 김치 중 가장 맛없는 최악의 김치였다. 정 목사가 입을 열었다.

“여보, 내가 먹어본 김치 중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식탁은 이후로 점점 달라졌다. 정 목사는 말한다. “세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고 했어요. 저는 아내에게 우리 부부가 연극의 주인공이 되자고 했어요. 그렇다면 비극을 쓸 것인지, 희극을 쓸 것인지는 우리 몫인 거에요. 희극의 주인공이 되자고 했지요.”

목사 남편과 결혼하기 싫어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들 낳고 키우며 3년 동안 남편과 따스한 대화 한마디 안했던 아내의 뚱뚱해진 몸을 껴안았다. 정 목사는 “여보 당신 몸은 아직도 날씬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아내를 안고 하는 기도는 지금도 이어지는 그의 기도법이다. 그의 멘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보, 나는 세상에서 당신만큼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어.” 이후 어떻게 됐을까? 정말 정 목사 가정에는 희극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의 일이다. 5천여 평의 공간에 예배당을 지으려고 했는데 그 때가 1998년이었다. 딱 IMF가 터져 국가가 경제적 위기에 봉착했다. 정 목사는 당시 교인들에게 건축헌금 작정을 시키지 않았다. 성도들에게 강조했다.

“아무도 돈 걱정 마시고 기도만 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감동이 오는 대로 원하는 분들만 헌금하십시오. 절대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정 목사가 당시 성도들에게 강조했던 건축헌금의 방식은 ‘빚내서 헌금 말라, 억지로 하지 말라, 주시는 대로 하라, 기쁨으로 하라’였다. 감사한 것은 교인들에게 기도하며 결정하라고 맡겼을 때 성도들이 각자가 기도하는 가운데 넘치도록 헌금했다는 것이다. 결국 일체의 불평 없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었다.

 

▲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수영로교회(사진제공 수영로교회)

고희를 넘긴 정 목사만의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일까? 정 목사는 “그저 편안히 쉬는 것을 좋아한다”며 “찬양과 성가합창곡, 복음성가를 틀어놓고 쉬는 거죠. 그게 내 건강에는 최고로 좋은 거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하루 일과 중 정 목사가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 첫 아침 시간이다. 늦어도 5시경에는 기상한다. 그리고 오전 10시경까지 성경묵상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연다. 이 시간에 대해 정 목사는 “은혜의 샘물을 긷는 시간이다”며 “주님과 교제하는 이 시간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후임 목회자에 대해 정 목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면 된다”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헌신과 희생을 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후임 목회자 청빙을 위해 정 목사는 “오직 주님이 가장 알맞은 사람으로 인도하고 세워 주실 줄 믿는다”며 청빙위원회와 함께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물망에 오르고 있는 호주 새순교회 이규현 목사의 청빙과 관련해서도 ‘오직 주님께 맡기고 있다’며 기도하는 중이라고만 답했다.

은퇴 후 정 목사는 어떻게 사역할 계획일까? 은퇴 후에도 그의 사역은 계속 열매를 맺으며 피어날 전망이다. 정 목사는 은퇴 후에는 성시화 운동을 통해 이 나라에 대부흥의 구원역사를 일으키고 싶다며 중국선교를 위해서도 헌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장년 출석 2만여 명의 수영로교회 본당 예배 모습(사진제공 수영로교회)

다음은 정 목사와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개인사와 목회, 한국교회와 관련한 문제 등 3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눴으면 합니다. 먼저 목사님 함자의 뜻은 무엇인지 누가 지어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1941년생이에요. 창씨개명 당시 일본 이름을 갖고 있었어요. 해방이 되면서 대학생이 됐을 때 제가 스스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베드로를 연상했어요. 부족하지만 열정적인 수제자처럼 하나님께 충성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종이 되어 특별한 기도로 나라를 돕는 자가 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도울 필(弼)자에 기도 도(禱)자를 썼습니다. 당시 외국인 선교사 중 갈필도 선교사가 있었어요. 그분 성함이 영어로 베드로를 뜻하는 피터였거든요. 그 생각을 하면서 ‘필도’라고 지은 겁니다.

- 목사님 어린시절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고향은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이에요. 가난한 동네였어요. 무당들도 많이 살고 많은 사람들이 미신을 갖고 있었죠. 동네에 넓은 호수가 있었고 그 주변으론 버드나무가 늘어져 있었는데 그 주변을 산책하면 참 좋았어요. 동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6.25한국전쟁 당시에도 폭격을 당하지 않고 잘 보존이 됐어요. 전체적으로 가난했지만 저는 좋은 기와집에 살았어요. 주변에 당시 KBS 아나운서가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제가 11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어요.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죠.

- 사모님과 자녀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아내 박신실 사모는 신앙 좋은 장로·권사의 딸이었어요. 그러나 전혀 목사와 결혼할 마음은 없었던 사람이죠. 부모님 신앙이 훌륭하시니 자신도 아버지 같이 신앙 좋은 장로감 남편을 만나 기도하는 권사로 살겠다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어요.

저는 결혼할 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과 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당시 중매가 많이 들어왔는데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사인을 주시는 사람이면 만날 마음이었어요. 처가 쪽에서 중매가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에 확신을 주셨어요. 1969년 11월이었죠. 목요일에 만나보겠다고 약속을 했더니 처가쪽에서 곧바로 약혼식을 올리자고 답이 왔어요. 당사자는 만나야 할 거 아니예요. 그래서 토요일 아침 10시에 처가를 찾아갔죠.

집에 갔더니 장인·장모님께서 3층에 큰딸 방이 있으니 올라가보래요. 3층 방에 갔을 때 아내 될 여자가 방금 자고 일어났는지 침대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허름한 옷을 입고 머릴 땅바닥에 대고 고개를 들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할 말도 없고 그냥 20분을 기도하고 나왔어요. 대화도 한 마디 못해보고 약혼식을 하고 한달 만에 결혼했어요. 사정이 넉넉지 않아 신혼여행도 못가고 사택에 들어갔어요. 처음 둘이 대면했는데 아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요?’라는 거예요. ‘왜?’ 그랬더니 ‘나는 목사랑 살 마음이 없어요’라고 하잖아요. 아찔했어요. 머리가 복잡해졌죠. ‘이건 실수도 보통 실수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이 여자가 제 아내라는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었어요.

아내에게 말했죠. 세상에는 '똑똑사모'와 '바보사모'가 있다고. 똑똑사모는 말 잘하고 기도 잘하고 교인들을 믿음으로 이끄는 사모다. 바보사모는 교인들 보면 그저 인사 잘하고 교인들이 뭔가 질문하면 ‘저는 잘 몰라요. 목사님께 여쭤 보세요’라는 사모다. 어떤 사모 할래? 물었더니 아내는 바보사모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내는 바보사모로 살기 시작했어요. 교회 안에서는 걸릴 게 없었죠. 시비가 될 것도 없었어요.

우리 부부는 성격이 100% 달랐어요. 상대방이 싫어할만한 요소의 99%는 갖고 있었다고 보면 되요. 서로 원수 같은 사람이 만난 거예요. 1% 공통점이 있다면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정도였죠. 입을 꼭 다물고 기도하며 말도 하지 않고 3년을 보냈어요. 입을 열면 싸울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아내는 말도 하지 않고 3년을 보내며 내가 교회 사역을 하고 심방을 다니면 늘 혼자서 금식하고 기도했어요. 목사와 결혼한 게 괴로워서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늘 마음 가운데 ‘네 남편이다’는 확신을 주셨대요. 그래서 아내는 제게 참으로 순종하며 3년을 보냈어요. 저는 저대로 3년이 지나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말을 시작했어요. 위로의 말부터 시작했어요. “당신 얼마나 피곤해”, “오늘도 고생 많았지? 힘들었지?”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3년 만에 처음 들어본 남편의 위로이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그동안 식탁에는 밥, 고추장, 멸치만 놓였는데 아내는 그날 옆집에서 시커먼 총각무를 얻어 와서 식탁에 올렸어요. 진짜 맛이 없었어요. 세상에 그렇게 맛없는 김치는 처음이었어요. 한 입 베어 물고는 ‘여보, 내가 평생 먹어본 것 중에 제일 맛있는 김치야’라고 말했어요. 일종의 쇼이죠.

뚱뚱한 몸을 안아주며 ‘당신은 어쩜 이렇게 날씬해’라고 말하기도 하고 ‘여보 이 세상에서 나는 예쁜 여자를 본 적이 없어, 당신 밖에는’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어요. ‘당신 얼굴은 어쩜 그렇게 복이 많아 보여.’

항상 칭찬하고 고맙다고 말하면서부터 아내는 애를 업고 최고로 좋은 배추를 사서 생선을 구어주고 밥상 서비스를 확 바꿔줬어요. 이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셰익스피어는 ‘인생은 연극이다’고 했는데 부부는 주인공, 세상은 관객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희극의 주인공이 되자는 거예요. 비극을 연출하면 우리만 아니라 세상도 슬퍼지는 거고, 우리는 항상 희극만 하고 살자고 했어요. 좋은 말을 하고 재밌는 말을 하고 언제나 연기하듯이요.

집에 가면 아내를 안아주고, ‘하나님이 당신을 크게 쓰실 거야. 당신 얼굴에는 총기가 흘러, 복이 붙어 있어, 당신은 특별해’ 희극을 연출하며 결혼 40년간 살아왔어요. 지금 아내는 저 대신 교회에서 특강을 진행하고 교역자 대상 세미나를 진행할 정도로 사역하고 있어요. 바보사모에서 이젠 똑똑사모가 된 거죠.

큰 딸 은애는 UCLA를 나와 목사 사모가 됐어요. 둘째 은영도 UCLA를 나와 휘튼 칼리지대학원 선교학 석사를 마쳤어요. 막내 사무엘(성은)은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나와 졸업 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어요. 현재 수영로교회에서 중1~고3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 목사님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목회 현장에서의 긴장을 해소하고 여유를 갖기 위해서 하시는 일은요?
△저는 그저 편안히 쉬는 것을 좋아합니다. 찬양과 성가합창곡, 복음성가를 틀어놓고 쉬는 거죠. 그게 내 건강에는 최고로 좋은 거 같습니다. 정서적으로 편안해지면 잠도 잘 옵니다. 긴장되거나 불안할 때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습니다.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나 10시까지 저는 경건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 시간이 제겐 생명과도 같은 시간입니다. 은혜의 샘물을 긷는 시간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인 거죠.

나 스스로를 은혜 가운데 충만해지도록 관리하는 게 제겐 최고의 건강관리법입니다. 나를 관리를 잘하면 교인들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저는 설교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설교를 하지 않으면 무척 괴롭습니다. 주의 일 자체가 늘 즐겁다 보니 교회에 있어야 행복해집니다. 아기가 엄마 품에 있을 때처럼 행복을 느낍니다. 교회에 들어가면 그런 마음이 생깁니다. 교인들 보는 게 좋고, 설교하는 게 좋습니다. 교회사역은 일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시간이자 내 삶입니다.

- 1975년 선교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수영로교회를 담임하셨으니 36년 정도 목회를 하신 셈입니다. 목사님의 목회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설명한다면 무엇인가요?
△사도행전 역사의 연속이라고 설명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그대로 순종했을 때 큰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 36년간 담임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위기, 또는 보람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998년 IMF로 국가가 경제적 위기에 빠졌을 때 큰 어려움 없이 5천평의 공간에 예배당을 지은 겁니다. 당시 교인들에게 헌금 작정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에게 강조했어요. ‘아무도 돈 걱정 마시고 기도만 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감동이 오는 대로 원하는 분들만 헌금하십시오. 절대 억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일체의 불평 없이 교회 건축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교인들에게 기도하며 결정하라고 맡겼을 때 성도들이 넘치도록 헌금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성도들에게 강조했던 건축헌금의 방식은 ‘빚내서 헌금 말라, 억지로 하지 말라, 주시는 대로 하라, 기쁨으로 하라’였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으로 저희 교회에는 현재 빚이 없습니다. 후임 목회자가 와서 잘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위기가 있었다면 교회 문제를 사회법정에 고발해서 참으로 어렵게 했던 분이 있습니다. 그분으로 인해 7년을 고통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의 어려움으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교회 분쟁과 갈등은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겁니다. 이것이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절대적인 원리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영적 싸움을 할 줄 몰라서 극한 투쟁과 분쟁으로 치닫는 것을 봅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 원수까지 사랑해야 이기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너무도 힘들어 하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너는 왜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지 않느냐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안아주고 축복해 줄 수는 없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그 즉시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그후로 저는 영적 싸움과 교회의 어려움이 생길 때 상대를 미워하지 말고 상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게 승리하는 방법이라고 배우게 됐습니다.

교회 사역하면서 가장 큰 보람은 역시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은혜받고 변화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헌금하고 봉사하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볼 때 너무 예쁘고 그들을 볼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현재 교회 장년 출석 성도들은 약 2만 명 정도입니다.

▲ 설교하는 정필도 목사(사진제공 수영로교회)
- 할렐루야교회, 지구촌교회, 서울교회 등이 리더십 승계를 한 가운데 있습니다. 목사님의 최근 가장 큰 고민도 후임 목회자 인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후임 목회자를 어떤 사람을 세우실 계획인지 한 말씀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면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위해 목숨을 거는 헌신과 희생을 할 각오가 돼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다니엘처럼 사자굴에 들어갈 각오로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장년 출석 2만명의 수영로교회를 담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고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인생을 바치는 헌신적인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 아들을 후임으로 세울 계획은 없으십니까?

△없습니다.

- 호주 새순교회 이규현 목사님이 후임 목회자로 물망에 오르기도 합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후임을 세워주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사람들의 평가와 달리 하나님의 뜻은 다른 데 있을 수 있습니다. 후임으로 들어올 목회자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에 대한 비전을 보여 주시면 지체 없이 순종할 마음이 돼 있습니다. 이는 청빙위원회도 동일한 마음입니다. 저희들의 기도는 ‘주님이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저희는 내려 놓고 있습니다’라는 것입니다.

-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차세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목회자가 되어야 하는지, 행복한 목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해 주십시오. 또 그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은 무엇인가요?
△행복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선 첫째 자기 행복이 아니라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목회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한 목회를 하려고 한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행복하게 하는 목회자가 행복한 목회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행복하면 성도들도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둘째로 성령충만한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충만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그로 말미암아 교인과 목사가 행복해집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뤄지면 교회도 천국으로 변해갈 겁니다.

셋째로 성도들을 철저히 훈련하는 목회자가 돼야 합니다. ‘기도로 목사님을 돕겠다’, ‘물질로 교회를 돕겠다’는 생각을 하는 성도가 많아질수록 좋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인은 절대 저절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첫째와 둘째 항목에 충실한 목회자에게 셋째 항목의 성도들이 생겨납니다.

처음 목회를 할 때 아무리 살펴봐도 쓸만한 교인들이 없었습니다.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가 저절로 성도가 되는 게 아니라 성도로 만들어야 성도가 된다, 장로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장로로 만들어야 장로가 되는 것이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교육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서 오늘의 수영로교회가 된 겁니다.

- 현재 한국교회의 극복할 과제 중 안티 기독교의 문제만큼 심각한 게 없습니다. 기독교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아주 안 좋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다고 보시는지요?
△안티 세력이 아무리 공격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오히려 그들이 부끄러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격 대상이 될 만한 일들이 발생하는 게 문제이지요. 기독교인들이 많이 부족해요.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 연륜이 자라갈수록 믿음이 성장해 예수의 형상을 닮아가야 하는데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는 목사와 장로가 너무 많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성품이 변화가 돼야 합니다. 의롭고 진실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뭔가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의 세속화를 틈타 이단들이 침투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단들 중에는 교회 안에 들어와 교인들의 인정을 받을 정도로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성도들의 정보를 외부로 빼돌리는 이단이 있습니다. 교역자를 세워주기 보다 뒤에서 험담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려 교역자를 추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 아직 현역이지만 은퇴 이후의 계획도 세우고 계실 것으로 사려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은퇴 후에는 성시화 운동을 통해 이 나라에 대부흥의 구원역사를 일으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 선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내용이라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중국선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 <교회와신앙>·호주<크리스찬리뷰> 공동기획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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