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대표적인 교회들 앞에서 ‘재림예수’ 사진을 걸어놓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은 ‘구인회’ 사진을 보여주며 그가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중이다. 이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정통교회 앞이어서 문제다. 과연 그들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구인회는 누구일까? 그가 한국사회의 언론에 집중적으로 부각된 연도는 1976년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은 ‘사이비종교’ 일제 수사를 진행했다. 이때 다수의 소위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구속된다. 이때 붙잡힌 사람이 그 유명한 신천지의 큰 형님뻘 되는 장막성전의 유재열 교주다. 동방교의 노영구 교주도 이때 구속된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의 현대화를 위해 애쓴 대통령 시절에 이미 사이비 종교는 종교로 보지 않고 사회악으로 진단하며 철저히 수사하고 구속까지 한 것이다.
그 와중에 1976년 2월 11일 붙잡힌 사람이 구인회다. 당시 언론보도는 구인회에 대해 매우 상세히 다뤘다. 그중 동아일보 1976년 2월 12일 기사가 매우 구체적이다.
구인회는 신앙이력이 이만희 교주와 유사하다. 소위 박태선 교주의 신앙촌을 출입하다가 탈퇴한 후 장막성전으로 옮겨 유재열 교주로부터 포교수법을 배운 후 신장개업을 했다는 점에서다. 신천지가 자신들의 교적등록을 번호를 매겨서 철저히 하고 이를 생명책이라고 했다면 구인회도 천국가는 번호판을 판매했다고 한다. 이것을 5만원에서 10만원을 받고 팔았다는 점에서 차이다. 참고로 당시 짜장면 값이 150-200원할 때다. 당시 대졸신입사원 초봉이 되는 급여다. 한달 급여를 천국티켓으로 판매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으로 따지면 200~300만원 정도.
이 돈을 어디에 썼을까? 유흥비로 탕진했다. 고위층으로 위장하기 위해 외제 승용차를 구입했다. 160만원을 들여 무선 전화기까지 구입했다. 여자들에게 돈을 마구 뿌렸다. 주간지에 광고비로 썼다. 광고 내용은 난치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돌연 서대문형무소에서 1976년 2월 29일 오후 2시 사망한다. 사인은 급성간장염 및 탈수 증세였다. 구인회 신도들 주장대로 그가 진짜 재림예수라면, 신도들의 피 같은 돈을 유흥비로 탕진하고, 외제 차를 굴리며 무선 전화기로 호사를 누리다, 차디찬 감방에서 간장염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정욕도 다스리지 못한 재림주, 급성간장염도 이기지 못한 재림예수인 셈이다. 그리고 경기도 마석의 모란공원묘지 무덤에 어처구니 없게 ‘재림예수님의 묘’라고 남겨 놓았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사이비 종교를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철퇴를 가했던 이유는 명확하다. 종교라는 탈을 쓰고 서민들의 삶을 파괴하는 사기 행각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50년 전 이미 사기범죄자로 구속됐던 이를 ‘재림예수’라고 하는 신도들이 여전히 활동하며 피켓을 들고 정통 교회 앞에서 성도들과 목회자들을 조롱하고 있는 현실이다.
다음은 동아일보 1976년 2월 12일자 보도 전문이다.
재림예수 탈을 쓴 탕아
구인회의 상습사취 내막
이번에 밝혀진 구인회(상습사기사건)은 사이비신앙교가 그들의 일반적인 속성인 시한부말세론을 내세워 위기의식을 조장하거나 불치의 병을 고쳐준다는 등의 수법으로 서민들을 괴롭혀온 대표적인 케이스다. 검찰에 의하면 이들 사이비종교의 종교의 신도수는 전체 종교인의 2%밖에 되지 않지만 번져가는 속도나 그것이 끼치는 악영향은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적인 병리보다도 먼저 치유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돼 일제수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재림예수」를 자칭한 교주 구인회 씨(34)의 설교 중 「곧 불의 심판이 올 것이니 돈도 부모도 버리고 학교나 군대 직장까지도 나갈 필요가 없다」는 등의 말은 서민들의 건전한 사회참여의식을 잃게 하고 나아가서 국민총화를 깨는 요인으로까지 지적되었다. 사이비신흥종교는 기성 종교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파고든다. 구씨는 72년 9월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 동사무소옆 지하실에 「새마을전도관」을 차려놓고 처음에는 무지한 부녀자들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을 상대로 포교, 1년만에 5백명의 신도를 확보했고 73년말 강남구 양재동으로 옮긴 후 검거될 때까지 2년 동안에는 전국에 43개 지교를 두고 5천명의 신도를 갖게 됐다.
신종 종교의 모순과 불법성이 노출될 때마다 수사기관이 단속을 받으면서도 쉽게 뿌리가 뽑히지 않고 오히려 비슷한 교리나 포교수법으로 또다른 신흥종교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사이비 종교의 특징 중의 하나다. 구인회 씨도 처음에는 신앙촌 전도관 신도였다가 「장막성전」으로 옮겨 그곳에서 교주 유재열 씨에게 포교 수법을 배워나왔다는 것.
제각기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는 우매한 신도들의 재산을 사취하고 있다. 구 씨의 경우 일련번호를 적은 플라스틱 원판을 이른바 「천국가는 번호판」이란 명목으로 5만-10만원씩에 팔거나 성경의 예수처럼 불치의 병을 안수기도만으로 즉석에서 고쳐줄 수 있다고 속여 돈을 뜯어내는 등의 수법을 썼다.
사이비종교의 교주들은 이런 수법으로 거둬들인 돈을 자신과 몇몇 간부들의 유흥비로 탕진해 버리기도 했다. 구 씨도 고위층으로 위장하기 위해 외제 승용차에 1백 60만원을 들여 무선 전화기까지 달고 다니는가 하면 고급술집을 드나들며 술과 여자들에게 돈을 마구 뿌리고 다녔다. 구씨도 또 여러차례에 걸쳐 상당액의 광고비 등을 들여 일부 주간지에 난치의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다는 선전까지 했다.
검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동방교 2세 교주 노영구 씨도 거의 한달에 한번씩 승용차를 바꾸어 탔으며 장막성전 교주 유재열 씨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등 신도들의 헌금이 교주들의 사치 생활에 쓰여져왔다는 것이다.
혼음이나 성문란 행위가 빚어내는 피해도 재산 피해 못지 않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검찰에 의하면 구 씨는 천국에 가려면 자신이나 사도와 짝을 지어야 한다며 자신은 유부녀인 윤모 부인과 관계를 계속, 결국 윤 부인의 가정을 파탄케 했으며 「3사도」로 하여금 17세 안팎의 처녀 신도들과 동거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도들 중에는 상당한 학식이나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도 끼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의 자유」라는 그늘에 숨어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번져가는 사이비신흥종교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당국의 단속이나 수사로 필요하지만 건전한 국민 윤리의 확립이 더욱 중요하다고 이 사건을 5개월 동안 내사해온 최중현 검사(서울지검)는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