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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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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을 통한 칭의는 개혁파 정통 교리”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21.11.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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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제 33회 정암신학강좌서 김병훈·박상봉·이승구 교수 재천명
김병훈 교수
김병훈 교수

그리스도의 능동 순종과 수동 순종을 구분해서 칭의를 설명하는 것은 정통 신앙이라는 주장이 다시 한번 제기됐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합신대원) 정암신학연구소가 주최하고 총동문회가 주관한 제 33회 정암신학강좌가 2021년 11월 16일(화) 오전 10시 합신대원 4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온오프라인 동시 진행됐으며 김병훈 교수(조직신학)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역사적 개관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박상봉 교수(역사신학)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초기 종교개혁자들의 견해’, 이승구 교수(조직신학)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현대개혁파 정통신학자들의 견해’를 주제로 진행했다.

김병훈 교수는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하여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는 은혜가 주어진다는 교리는 종교개혁 신학의 핵심적인 토대”라며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리스도의 생애의 전체적 순종’(능동순종)과 ‘십자가의 순종’(수동순종)으로 나눠왔다고 밝혔다. 17세기초 프랑스,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이 주장에 동참했고 도르트총회가 1561년 작성한 벨직 신앙고백서 22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하여 행하신 그 많은 거룩한 일들을 전가하셨다”)(유튜브 바로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HolsBA9dJds).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채택되기까지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수동으로 나눠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십자가의 수동적 순종만을 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했다.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1647년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그리스도의 순종을 능·수동으로 구분하는 입장이 선명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신앙고백서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순종, 그리고 그분 자신을 드린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성부 하나님의 공의를 완전히 만족시키셨다”(8장 5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순종, 그리고 죽음으로, 이렇게 의롭다하심을 받는 모든 사람의 빚을 완전히 청산하셨으며”(11장 3절)가 대표적이다.

김교수에 따르면 신앙의 선배들 또한 동일한 주장을 했다.

칼뱅의 기독교강요(2권 16장 5절)에서 그리스도의 복종이 전생애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봤으며, 튜레틴(1623-1687)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수동적 순종뿐 아니라 능동적 순종의 공로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며 교회가 인정해 온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찰스핫지(1797-1878)도 하나님께서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근거는 그리스도의 의에 있음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의를 하나님의 공의 만족을 위한 고난, 죄의 용서와 영생을 선물로 주기 위한 공로로 구분했고 전자를 수동순종, 후자를 능동순종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박상봉 교수
박상봉 교수

2강을 진행한 박상봉 교수(https://www.youtube.com/watch?v=ui_6ZK_cSuw)는 “그리스도의 순종에 대한 논쟁은 이미 1588년 피스카토르가 제기하면서 시작했다”며 그전까지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은 성육신 하실 때부터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까지의 모든 대속사역으로 이해됐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피스카토르가 그리스도의 순종을 십자가 순종으로 한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내려는 논의가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스카토르 이전에는 그리스도의 순종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 움직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종교개혁가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순종을 두 가지로 구분하는 진술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 박 교수의 견해다. 대표적으로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년 11월)에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섬기시려고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행하셨으며, 또한 그분이 종의 형상대로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셨다”고 말했다. 루터가 '갈라디아서 주석'(1529년)에서 갈 3장 27절을 주석하며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의, 진리, 모든 은총, 모든 율법의 성취를 입는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쯔빙글리는 '67개 논제에 대한 해설'(1523년)에서 “그분은 의롭고,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죄에 종속된 분이 아니다. 우리처럼 죄에 종속되거나 죄 아래 팔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우리의 죗값을 치르실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한번도 죄를 짓지 않은 유일한 분을 통해 성취된 것이다”, “이 중보자는 하나님이심으로 하나님의 뜻[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아니 지키는 것 이상의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칼뱅 또한 기독교강요 2권 17장 5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에 관하여 율법 안에서 ‘사람이 이를 행하며 그로 말미암아 살이라’고 약속하셨는데, 우리는 이 약속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취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라면 그리스도께서 그 짐을 담당하시고 마치 우리가 율법을 지킨 것 같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신 것이 공로가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의 호의를 얻어 주셨다는 것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우리가 지불할 수 없는 것을 친히 지불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의를 얻으시기 위함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계신 목적이 과연 무엇이었다는 말인가?”라고 진술했다고 소개했다. 이외에도 3권 11장 23절도 근거로 제시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나눠 주시는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의 힘을 우리 안에 넉넉히 부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이 심판을 견딜 수 있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은 우리의 의를 그리스도의 순종에 맡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순종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3권 11장 23절).

박상봉 교수는 루터, 쯔빙글리, 칼뱅을 예로 들며 “의심의 여지 없이 종교개혁자들은 이 전가된 의를 그리스도의 대속사역 안에서 그분의 율법에 대한 순종뿐 아니라 그분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해 칭의의 근거로 간주했다”며 “믿음 안에서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행하신 것과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것을 근거로 죄인이 친히 경험한 것처럼 여겨주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그리스도의 순종은 서로 다른 두가지 순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순종 안에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지만 두가지 특성(이 있다고 본 것)”이라며 “하나님의 만족을 이룬 그리스도의 순종은 인간이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한 저주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신 것과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신 것을 다 포함한다”고 분석했다(이는 헤페 개혁파 정통교의학, 657-658 참고). 박 교수는 “종교개혁자들이 능동적 순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능동적 순종을 말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심각한 오해”라며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용어가 없기 때문에 성경이 삼위일체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무지한 논리이다”고 비판했다.

이승구 교수
이승구 교수

3강을 한 이승구 교수(https://www.youtube.com/watch?v=R2qXXf7EUN8)는 현대 정통 개혁파 신학자들이 거의 그리스도의 능수동 순종으로 표현하며 이를 받아 들여왔다고 강연했다. 개혁신학자 하인리히 헤페, 헤르만 바빙크가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바빙크가 ‘순종이 하나의 순종이요, 하나의 행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행위’였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제하고 “그는 ‘그리스도의 이 만족을 그의 수난에만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전적으로 어긋난다’, ‘그리스도는 단지 수동적 순종만이 아니라 능동적 순종도 완수했다’고 아주 명확히 한다”고 강조했다(Reformed Dogmatics, vol.3 439).

이 교수는 "게할더스 보스는 특히 능동적 순종과 관련 '율법을 지킴에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것, 즉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붙어 있는 언약의 규정을 다 지키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른 말로 ‘죄로 인해 깨어진 지속적 관계는 수동적 순종으로 회복되고 영생은 능동적 순종으로 얻는다. 그 어느 하나만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얻는 데 충분하지 않다'”고 표현한다"(Vos, Reformed Dogmatics, vol.3: 128)고 소개했다. 

루이스 벌코프 또한 “개혁파 신학에서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구별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하나의 유기적 전체의의 상호 보완적인 부분들로 여겨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Berkhof, Systematic Theology, 4th edition, 379). 이외에도 이 교수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의 존 머레이(조직신학), 죽산 박형룡, 로레인 뵈트너, 정암 박윤선, 안토니 후크마, 로버트 레이몬드, R.C. 스프롤, 웨인 그루뎀 등도 예외없이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정리했다. 이 교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에 대한 개혁파 정통신학자들의 견해는 너무도 자명한 것이다”며 “성경에 충실하여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인정하고, 그래야만 수동적 순종도 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1월 16일 3강까지 진행한 정암신학강좌는 11월 17일(수) 이남규 교수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전기 정통주의의 견해’, 안상혁 교수가 ‘그리스도의 순종과 의의 전가: 후기 정통주의의 견해’를 주제로 진행한다. 정암신학강좌는 유튜브에서도 시청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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