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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목회자들이 특정 대통령 후보 공개지지하면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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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목회자들이 특정 대통령 후보 공개지지하면 안되는 이유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1.10.13 0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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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이 특정 정당 대통령 후보자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에서 도드라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부정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방식으로 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대통령 후보는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영역이어서다. 목회자는 스스로 최고라고 자부하는 절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직임을 맡은 자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 선택은 대다수 차악을 선택해야만 하는 영역이다. 지금 여야 1순위 후보로 꼽히는 사람이 이재명·윤석열 후보이다. 둘다 도덕성에 하자가 적지 않다. 이재명 후보는 형수 쌍욕, 대장동 게이트, 조폭관련설, 흉악범 조카 변호 등으로 문제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행정 능력이나 유능함, 개혁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추진력을 최고로 친다.

윤석열 후보는 또 어떤가. 조국 관련 표창장 하나로 70여곳 압수수색을 한 과잉수사와 고발사주, 아내는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학력 위조, 과거 전력 논란이 불거진 사람이다. 물론, 장모까지 구속 재판을 받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그럼에도 윤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시장을 폭등시키고 나라빚 천조에 이르도록 국가경영을 무너뜨린 문 정권을 심판할 수 있는 최고의 칼잡이라고 생각하며 정권 심판을 위해 윤 후보가 최적임자라고 지지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를 지지하든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것은 차악이 아니라 ‘최악’으로 보일 뿐이다.

국내 정치는 타자의 악마화에 익숙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한마디는 “국힘 당원이래”라는 한마디다. 또 “조중동이 낸 기사래”라는 단 한마디다. 그동안의 적폐적 행태가 적지 않다 해도 그 한마디는 그 어떤 지적과 비판도 무색하게 하는 프리패스 카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국힘 지지자들에게 정당성을 입힐 수 있는 말은 ‘대깨문이래’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우리들의 의식은 여전히 프레임의 덫에 갇혀 있다. 무슨 정당한 말을 하든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논리, 정당함은 모두 무시해도 괜찮은 발언으로 윽박지르는 타자의 악마화, 그 악마화에 길들여진 문화 속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그 덫 속에 같이 들어가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재명 후보의 별명은 찢재명, 아수라 등이다. 윤 후보는 윤쩍벌, 무속열 등 여러 가지다. 왜 이런 별명이 붙었는지는 설명을 생략한다. 당장 인터넷만 쳐봐도 무수히 많은 이유들이 나온다.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다른 사람도 아닌 목회자가 공개 지지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관점에 따라 악마의 영역에 한발 들어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권 유력 주자인 이 후보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윤석열 후보는 더 악한 사람이다. 윤 후보자 지지자 입장에서 보면 역시 이 후보가 더 악한 사람이다. 목회자가 어떤 후보를 지지하든 그것은 반대측 입장에서 ‘악’을 선택한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 특히 목회자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할 책무를 맡은 자이다. 따라서 아무리 분통이 터지고, 아무리 이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고민된다고 해도 공적인 영역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목회자의 주요 책무가 그것이 차악이든 최악이든 상관없이 ‘악’의 편에 서는 게 아니라 지고지선의 복음과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교회에는 특정 정파 지지만이 모이지 않는다. 수많은 지역과 정치 노선과 지지자를 달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다. 분명 마음 속으로 서로 다른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사적 영역에서 녹여져야 한다. 그것을 공개적으로, 공적으로 전환하는 순간 보편교회가 인정하는 복음의 영역이 아니라 60%는 반대하는 차악의 영역으로 들어서서 스스로 프레임의 덫에 빠진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자 스스로 자신이 전할 그리스도를 정치 프레임에 가둬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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