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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교란’ 위해 구약에 초림·재림 뒤범벅 배치했다는 ‘펀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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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교란’ 위해 구약에 초림·재림 뒤범벅 배치했다는 ‘펀토피아’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12.2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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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제니퍼의 펀토피아(3) 루시퍼와 사탄의 왕국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펀토피아의 진행자 제니퍼(유튜브 펀토피아 갈무리)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펀토피아의 진행자 제니퍼(유튜브 펀토피아 갈무리)

1) 제니퍼의 주장

루시퍼는 메시아 왕국을 좌절시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실패하죠. ···왜 모든 구약 성경의 예언을 숙지한 사탄이 이것을 막지 못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이유는 이러한 루시퍼의 간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예언을 뒤범벅으로 구약 성경에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룩될 메시아 왕국의 건설에 대한 예언들은 구약 성경의 주류를 이루죠. 이러한 예언들은 시편, 이사야, 다니엘, 스가랴, 에스겔 등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 시에 이룩될 메시아 왕국이라구요? 네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구원할 정치적인 왕국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이 와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가운데서 구원할 것이라고 기대했었어요. ···당시 유대인의 거의 100퍼센트가 메시아를 정치적인 지도자로 생각했어요. 세례요한까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사실 말할 나위가 조차 없죠. ···이런 이스라엘인들의 모습은 심지어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도 나타납니다. ···구약 성경을 받은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정치적인 지도자로 여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루시퍼 또한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이죠. 여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

루시퍼는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메시아 왕국을 좌절시키고자 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환경을 통해서 예언을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메시아 왕국을 이룩하고자 하시는 의지가 있어 보였다는 거예요. 이 말씀을 보실게요.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니라(마 4:17). 이 말씀에서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천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서는 하늘의 왕국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하늘의 왕국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땅에 임하는 왕국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왕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죽어서 가는 영계 같은 곳이 아니라 실질적인 왕국인 것입니다. 메시아 왕국이 지상의 왕권을 뛰어넘어 하늘의 권위로 세워지는 왕국이라는 거에요. 이 왕국은 향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천년 왕국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완전한 하늘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초림 때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초림 때 이 왕국을 이룩하려는 그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늘의 왕국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사역에 집중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

나는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어지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드리기를 끝내 거부하죠. 이에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3:39). 즉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메시아 왕국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늦추어지고 예수님은 이때부터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이방인들까지 끌어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성경은 너무 담담하게 기술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초림 예수님께 처음부터 십자가를 염두에 두시고 오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또한 계획하신 것입니다(제니퍼, 2020년 9월 9일 방송 “예수 대 루시퍼 5” https://www.youtube.com/watch?v=xC3xkJT5d2k)

‘루시퍼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제니퍼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예수는 유대 땅에 정치적인 왕국을 세우기 위해 초림했다.

*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절했으므로 메시아 왕국은 재림 후로 연기 되었다.

* 메시아 왕국이 연기되자 그 때부터 예수는 이방인을 끌어안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 하나님이 구약에 초림과 재림을 섞어 놓은 이유는 루시퍼를 혼란케 하여 메시아 왕국을 방 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2) 성서적 해석

제니퍼는 ‘예수 대 루시퍼 5’ 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마태복음 4:17, 10:5, 15:24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께서 처음부터 어떤 왕국을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초림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는 예수께서 세우려고 했던 이 왕국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독립된 왕국, 유대인을 백성으로 삼는 왕국, 하늘의 권위로 세워지는 왕국, 영계가 아닌 이 땅에 실재하는 왕국 등으로 규정한다. 즉 유대 땅에, 이런 특징을 가진 왕국을 건립하기 위해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은 추측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후의 방송에서 그녀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는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니라(마 4:17)에서 이 ‘천국’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나 영계에 있는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왕국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이는 이 왕국이 곧 국가라는 것이다. 그녀는 마태복음 4:17을 예수께서 장차 유대 땅에 어떤 국가가 세워지게 될 것을 여기저기 전파하고 다닌 것으로 해석한다.

제니퍼는 이런 까닭에 예수님이 초창기에는 유대인 중심의 사역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마태복음 10:5과 15:24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마태복음 10:5은 예수께서 파송 받아 마을로 들어가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방인이 사는 길이나 고을로는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24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은 이스라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는 결코 보냄 받은 적이 없다고 천명한 사실을 기록한다. 얼핏 보면 이 세 구절이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초림하신 이유가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왕국 이야기를 여기 저기 하고 다니셨으며, 그리고 이 계획을 유대인들에게만 알리도록 제자들에게 당부했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오직 이 일에 부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공포하고 다니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세 구절에 대한 그녀의 해석을 종합해보면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세우려 했던 왕국은 유대적 뿌리에 기반을 둔, 유대적 색채가 매우 강한 왕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대 땅에 세워지고, 유대인을 백성으로 하고, 로마의 압제를 벗어난 독립된 왕국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런 왕국을 세우기 위해 초림 하셨을까?

먼저 살펴볼 것은 마태복음 4:17에 등장하는 ‘천국’이다. 천국으로 번역된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뇬’(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에서 ‘바실레이아’는 나라, 주권, 통치를 의미한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자신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이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인간을 배후에서 지배하던 사탄의 통치가 종결되었음을 선언하신다. 이 바실레이아라는 단어의 의미와 용례를 고려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이 결코 물리적인 왕국, 실제적인 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방인의 집이 아닌 이스라엘 집으로만 가라고 명하셨을까? 과연 이 명령이 이방인들을 선교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명령이 유대인의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것일까? 예수님의 이 명령은 예수님의 사역의 일차 대상이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마 9:36)으로 은유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방문해야 할 대상을 모든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스라엘인 중 “잃어버린 양”(마 10:5)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의 초창기 사역이 유대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을 유대인으로 구성된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제자들이 방문해야 할 대상을 유대인으로 지정한 사실을 왕국 건설과 결부시키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 땅으로 지나가실 때 어느 가나안 여인으로부터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간절한 청원을 듣고 이를 두 번 거절하신 말씀 중에 첫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은 끈질기게 자비를 구하는 이방 여인에게 자기는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만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개 즉 이방인에게는 나누어 줄 은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과연 이 거절이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가르는 표현일까? 이방인은 무의미하며 유대인만 유의미하다는 말씀일까? 만약에 이것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라는 감탄사는 무엇이며, 즉각적으로 베푼 그 자비는 또 무엇인가? 예수께서 자기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다른 지역의 양에게로는 결코 보냄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정도를 시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제니퍼가 제시한 마태복음 4:17, 10:5, 15:24을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유대인이 중심이 된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초림 예수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단 한 번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유대주의와 연관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8)고 하시며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을 통치자가 아닌 섬기는 자, 즉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할 메시아로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바칠 대상을 특별히 유대인이라 지정하지 않고 단지 “많은 사람”이라 하시므로 유대주의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으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그토록 혐오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도 아닌 성령과 진리 안에 있는 자라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요 4:21-24)고 하시며 유대 중심적 사고의 틀을 와해시키셨다. 오병이어를 일으킨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했던 군중들의 강청을 뒤로 하고 홀로 산으로 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실제적 왕국을 세우려 했다는 예수님의 모습과 상충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모세가 유대인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하시며(요 5:45-46) 유대주의를 건드리셨다. 유대인들이 가장 추종하는 모세가 유대인들을 하나님께 고소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그들은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며 이는 예수가 유대주의를 능멸하는 자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과연 예수님이 유대주의자들을 백성으로 하는 왕국을 세울 의도를 가지셨을까?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성전 파괴 발언을 일삼으며 도처에서 유대주의와 충돌했던 예수님이 과연 유대주의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유대적 왕국을 건설하려는 의도를 가지셨을까?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적 전통에 가장 강성인 유대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얼마나 유대적 전통에 대립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수님이 유대주의의 심벌 곧 성전을 재건하려 했다는 그녀의 주장은 수용하기 쉽지 않다. 그녀는 방송을 제작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제니퍼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절했으므로 메시아 왕국은 재림 후로 연기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메시아 왕국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늦추어지고 예수님은 이때부터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이방인들까지 끌어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성경은 너무 담담하게 기술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초림 예수님께 처음부터 십자가를 염두에 두시고 오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녀는 예수께서 처음부터 십자가를 염두에 두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왕국 건설이 지연되면서부터 십자가를 염두에 두었다고 주장한다. 초림 예수께서 염두에 둔 것은 왕국 건설인데 유대인들이 이를 안 받아들이니까 이 계획이 연기되었고 그 때부터 이방인들까지를 끌어안는 복음 사역에 치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

성경은 예수님이 처음부터 복음을 염두에 두고 왔으며, 처음부터 고난 받고, 죽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성경은 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하나님 자신이며(빌 2:6-8), 그에게는 처음부터 고난과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으며(사 53:1-12), 그 자신도 자기 입으로 자기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했으며(마 10:17-18; 마 16:21; 막 8:27-38; 막 10:32-34; 눅 18:32-33; 요 12:7; 요 12:33), 그리고 자신이 예고한 그 고난과 죽음을 기꺼이 받았으며( 27:28-31; 막 15:29-37; 행 8:32-33)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충실히 완수한 후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포한 분이라고 선언한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신 그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전 인류와 온 우주에 대한 구속 역사이다. 예수님께서 못다 이룬 꿈, 왕국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제니퍼는 왕국 건설의 지연에 따른 예수님의 심정과 계획을 마태복음 23:39이 담고 있다는 듯 인용한다.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는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적들에게 종말에 자신이 영광스러운 인자로 재림할 때까지 그들이 자신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임을 알리시는 말로써, 이 구절은 재림 때에 세워진다는 왕국 건설을 결코 함의하고 있지 않다. 유대 땅에 세워질 뻔 했다는 왕국도 없었고, 재림 후에 세워진다는 왕국도 당연히 없다.

제니퍼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세운 메시아 왕국에 대한 계획을 루시퍼가 눈치 채지 못 하도록 하기 위해 구약 안에 초림과 재림에 관한 모든 정보를 뒤섞어 놓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메시아 왕국이 초림 때 세워질지, 재림 때 세워질지 분간할 수 없었던 루시퍼는 그것을 이 초림 때의 일로 착각하여 결국 초림 예수를 죽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결과 구약의 예언대로 메시아 왕국이 재림 때 안전하게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루시퍼가 성급하게 예수를 죽인 결과 구약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루시퍼의 성급함이 초래한 이 결과를 하나님의 섭리와 지혜로 돌린다.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다. 그녀의 이야기의 백미는 루시퍼이다. 루시퍼가 무대에 올려가면서부터 속고 속이고, 죽고 죽이는 반전이 연속된다. 실제로 루시퍼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영화의 줄거리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그녀가 전개하는 루시퍼 이야기도 그와 같은 한편의 영화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루시퍼라는 소재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실체하지 않는 루시퍼라는 존재를 매개삼아 ‘재림’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성경적 주제에 접근하여 해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넌 센스이다. 성경은 루시퍼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예수의 초림과 재림 예언을 구약에 집중 배치해 두었으며, 판단 착오한 루시퍼가 왕국을 건립을 저지하기 위해 예수를 조기에 죽였으며, 그 결과 왕국 건립이 재림 이후로 연기되었지만, 이 모든 과정은 재림 시에 이루어지는 왕국을 예언한 구약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나리오였다는 보고를 하지 않는다. 이런 터무니없는 보고는 예수와 루시퍼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처음부터 전제하고 성경에 접근하면서 생겨난 기형적인 해석의 결과이다.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가서 기존의 설교와 가르침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우려된다. 

기독교포털뉴스 이단문제 전문 연구위원 박유신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과 대학원(M.A)을 졸업한 후 계명대학교 신학과에서 조직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안산공과대학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와 계명대학교 교양강좌부 초빙 교수를 역임했고 안산 제일교회 협동 목사로 있다.

저서로는 「미국 장로교 신학사: 축자영감교리 형성사」(한국학술정보사), 「한국장로교성서관 칼빈적인가」(한들출판사), 「사복음서 단락별 설교핸드북」(베드로서원), 「바울서신」(베드로서원), 「신약성서 속의 편지들」(베드로서원), 「신천지 대해부」(기독교포털뉴스), 「안상홍 대해부」(기독교문서선교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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