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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교란’ 위해 구약에 초림·재림 뒤범벅 배치했다는 ‘펀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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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교란’ 위해 구약에 초림·재림 뒤범벅 배치했다는 ‘펀토피아’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0.12.29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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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제니퍼의 펀토피아(3) 루시퍼와 사탄의 왕국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펀토피아의 진행자 제니퍼(유튜브 펀토피아 갈무리)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펀토피아의 진행자 제니퍼(유튜브 펀토피아 갈무리)
1. 제니퍼의 주장에 대한 성경적 비평

제니퍼는 ‘예수 대 루시퍼 5’ 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마태복음 4:17, 10:5, 15:24을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께서 처음부터 어떤 왕국을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초림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는 예수께서 세우려고 했던 이 왕국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독립된 왕국, 유대인을 백성으로 삼는 왕국, 하늘의 권위로 세워지는 왕국, 영계가 아닌 이 땅에 실재하는 왕국 등으로 규정한다. 즉 유대 땅에, 이런 특징을 가진 왕국을 건립하기 위해 예수께서 초림하셨을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말은 추측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후의 방송에서 그녀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는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시니라(마 4:17)에서 이 ‘천국’은 하늘에 있는 천국이나 영계에 있는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실재적인 왕국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이는 이 왕국이 곧 국가라는 것이다. 그녀는 마태복음 4:17을 예수께서 장차 유대 땅에 어떤 국가가 세워지게 될 것을 여기저기 전파하고 다닌 것으로 해석한다.

제니퍼는 이런 까닭에 예수님이 초창기에는 유대인 중심의 사역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며 마태복음 10:5과 15:24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마태복음 10:5은 예수께서 파송 받아 마을로 들어가는 제자들을 향하여 이방인이 사는 길이나 고을로는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 15:24에서는 예수께서 자신은 이스라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는 결코 보냄 받은 적이 없다고 천명한 사실을 기록한다. 얼핏 보면 이 세 구절이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초림하신 이유가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였고,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왕국 이야기를 여기 저기 하고 다니셨으며, 그리고 이 계획을 유대인들에게만 알리도록 제자들에게 당부했고 그리고 자기 자신도 오직 이 일에 부름 받은 자라는 사실을 공포하고 다니셨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세 구절에 대한 그녀의 해석을 종합해보면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세우려 했던 왕국은 유대적 뿌리에 기반을 둔, 유대적 색채가 매우 강한 왕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대 땅에 세워지고, 유대인을 백성으로 하고, 로마의 압제를 벗어난 독립된 왕국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런 왕국을 세우기 위해 초림 하셨을까? 먼저 살펴볼 것은 마태복음 4:17에 등장하는 ‘천국’이다. 천국으로 번역된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뇬’(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에서 ‘바실레이아’는 나라, 주권, 통치를 의미한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표현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시작되었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자신의 출현과 함께 시작된 이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인간을 배후에서 지배하던 사탄의 통치가 종결되었음을 선언하신다. 이 바실레이아라는 단어의 의미와 용례를 고려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표현이 결코 물리적인 왕국, 실제적인 국가가 건설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방인의 집이 아닌 이스라엘 집으로만 가라고 명하셨을까? 과연 이 명령이 이방인들을 선교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이 명령이 유대인의 민족주의에 뿌리를 둔 것일까? 예수님의 이 명령은 예수님의 사역의 일차 대상이 ‘목자 없이 방황하는 양’(마 9:36)으로 은유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방문해야 할 대상을 모든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스라엘인 중 “잃어버린 양”(마 10:5)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예수님의 초창기 사역이 유대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을 유대인으로 구성된 국가를 건설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제자들이 방문해야 할 대상을 유대인으로 지정한 사실을 왕국 건설과 결부시키는 것도 무리한 주장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고 말씀하신 것일까?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 땅으로 지나가실 때 어느 가나안 여인으로부터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간절한 청원을 듣고 이를 두 번 거절하신 말씀 중에 첫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은 끈질기게 자비를 구하는 이방 여인에게 자기는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만 보냄을 받았기 때문에 개 즉 이방인에게는 나누어 줄 은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과연 이 거절이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가르는 표현일까? 이방인은 무의미하며 유대인만 유의미하다는 말씀일까? 만약에 이것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마 15:28)라는 감탄사는 무엇이며, 즉각적으로 베푼 그 자비는 또 무엇인가? 예수께서 자기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 다른 지역의 양에게로는 결코 보냄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여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정도를 시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제니퍼가 제시한 마태복음 4:17, 10:5, 15:24을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유대인이 중심이 된 국가를 세우려 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초림 예수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단 한 번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유대주의와 연관지은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 20:28)고 하시며 자기가 세상에 온 목적을 통치자가 아닌 섬기는 자, 즉 많은 사람들을 위해 죽어야 할 메시아로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바칠 대상을 특별히 유대인이라 지정하지 않고 단지 “많은 사람”이라 하시므로 유대주의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으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그토록 혐오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도 아닌 성령과 진리 안에 있는 자라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요 4:21-24)고 하시며 유대 중심적 사고의 틀을 와해시키셨다. 오병이어를 일으킨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했던 군중들의 강청을 뒤로 하고 홀로 산으로 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실제적 왕국을 세우려 했다는 예수님의 모습과 상충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모세가 유대인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하시며(요 5:45-46) 유대주의를 건드리셨다. 유대인들이 가장 추종하는 모세가 유대인들을 하나님께 고소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그들은 매우 곤혹스러웠을 것이며 이는 예수가 유대주의를 능멸하는 자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과연 예수님이 유대주의자들을 백성으로 하는 왕국을 세울 의도를 가지셨을까?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성전 파괴 발언을 일삼으며 도처에서 유대주의와 충돌했던 예수님이 과연 유대주의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유대적 왕국을 건설하려는 의도를 가지셨을까? 예수님이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적 전통에 가장 강성인 유대인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얼마나 유대적 전통에 대립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예수님이 유대주의의 심벌 곧 성전을 재건하려 했다는 그녀의 주장은 수용하기 쉽지 않다. 그녀는 방송을 제작하기 전에 자신의 주장으로 야기될 수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제니퍼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거절했으므로 메시아 왕국은 재림 후로 연기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말을 다시 들어보자.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메시아 왕국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늦추어지고 예수님은 이때부터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사명을 감당하며 이방인들까지 끌어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성경은 너무 담담하게 기술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과론적으로 초림 예수님께 처음부터 십자가를 염두에 두시고 오셨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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