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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단체의 가학 행위, 왜 근절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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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단체의 가학 행위, 왜 근절되지 않을까?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0.05.08 0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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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에 대한 부실한 인식, 영육 이원론, 리더십 절대 권력화의 합작품

이미지 디자인: 최주호
예장 합동측에 소속한 빛과진리교회(빛진교회, 김명진 목사)가 신앙 명목 훈련으로 가혹행위를 했다는 주장이 다수의 언론을 통해 제기됐습니다. 2020년 5월 5일에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주최하고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주장의 요점은 신앙훈련이란 미명하에 빛진교회에서 훈련을 받으며 인분먹기, 공동묘지에서 매맞기, 차량 트렁크에 갇혀 있기, 찜질방 불가마에 들어가 견디기 등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각들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은 “교회가 비상식적이고 가학적인 훈련을 통해 신도들을 길들이고 착취해왔다”며 “일종의 ‘그루밍 범죄’를 저질러온 김명진 담임목사를 법적으로 처벌하고 교회 역시 강제 해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근 2~3년간 언론은 상식 이하의 가혹 행위들이 소위 개신교를 표방하거나 ‘예수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단체들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만큼 ‘예수교’라는 이름을 건 곳에서 고강도 신앙훈련으로 포장된, 성도들에 대한 가학적인 행위들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이는 최근 언론에 보도된 빛진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괴이한 일들이 지속되는 근본적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는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몫입니다. 건강한 종교인으로 한 개인이 살아가는 건 자신뿐만 아니라 다음세대와도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를 위해 왜 종교 단체 내의 가혹, 가학행위가 지속되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최근 2~3년간 소위 종교단체라는 곳에서 벌어진 비정상적 가학·가혹행위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신천지에서 2012년 경에 행한 ‘빛의군사훈련’이 있습니다. 일명 빛군 훈련이었는데요. 돌을 들고 신새벽에 산을 오르고, 사람을 땅에 묻고,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운 후 나무에 묶는 등 가혹행위가 있었죠. 신새벽에 산을 오르며 이 훈련을 받던 여성 한명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면서 이 훈련은 중단됐다고 합니다. 신옥주 교주의 타작마당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교주가 신도들을,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신앙이란 이름으로 구타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가혹행위가 벌어졌습니다. 타작마당을 당하다가 뇌를 다친 사람이 죽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이처럼 매우 비인간적·반인권적·반인륜적·비상식적 행위들이 신앙 훈련이란 이름하에 벌어지는 게 현실인데요.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소위 이단·사이비 단체에서만이 아니라 빛과진리교회같은 소위 정통교단, 그것도 예장 합동이라는 비교적 건전한 교단에서까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세가지로 정리하고 싶습니다.

2020년 5월 5일 빛진교회 피해자란 사람들이 주최한 기자회견(천막으로 가린 상태에서 진행됐다) 사진 CBS 유튜브 영상
2020년 5월 5일 빛진교회 피해자란 사람들이 주최한 기자회견(천막으로 가린 상태에서 진행됐다) 사진 CBS 유튜브 영상

첫째, 가혹·가학 행위는 대다수 예수교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에 대한 망각 또는 부실함에서 비롯됩니다.

예수교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 중 하나가 구속 곧 죄사함에 대한 신앙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근원부터 죄인입니다. 뼛속 깊숙이 죄인입니다. 목사도 죄인이고, 장로도 죄인이고, 집사도 죄인입니다. 신구약에 등장하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신앙의 위인이자 모델로 제시됐던 모든 사람들이 죄인들이고, 그뿐 아니라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해결되지 않은 인간의 죄 문제를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흠없고 점없는 삶을 사시다가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청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마치 모든 율법을 이룬 것처럼, 우리를 의로 삼아 주신다는 게 예수를 믿는 겁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처럼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것으로 산다는 게 예수를 믿는 겁니다(고후 5:21).

내가 받아야 할 죄의 대가와 모든 저주가 예수로 인해 사라지고 우리는 새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다는 사실성, 그것을 믿는 게 예수를 믿는 겁니다. 따라서 내 행위로, 뭔가를 얹어서 죄를 덜거나, 내 선행을 통해 저주를 풀거나 할 수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믿음이 사람이 세상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지혜입니다. 인간이 예수님 이상의 선한 사람일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이 예수님 이상의 찔림·상함·채찍·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까? 단연코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 유세비우스(팔레스타인 가이사랴 태생의 신학자 263-339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 사함의 원인이 되셨다. 곧 그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자신에게 돌리셔서 죽음과 채찍과 비난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돌리셔서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되셨다. 그가 우리의 영혼을 속량하는 대속물이 되신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격 안에서 값없이 자신을 우리에게, 우리를 자신에게 연합시키셔서 우리의 죄나 고통을 자신의 것이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Demonstrat, Evangel. lib. x. cap.1; 존오웬, 칭의론, 서울: 처음과나중, 2020년, 312p. 재인용).

저는 예수교는 물론 그 언저리에서, 예수교를 빙자한 이단·사이비 단체에서 가혹·가학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를 위에 언급한 형벌적 대속이론을 부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해도 빈약하게 이해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 형벌을 예수께서 대신 받아주셨습니다. 그 예수를 믿는 사람마다 죄의 저주와 형벌에서 해방됩니다. 물론 형벌적 대속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가학·가혹 행위를 한다는 건 아닙니다. 또한 형벌적 대속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모두다 가학·가혹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뭐가 또 문제일까요? 다음의 요건이 충분조건으로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사진 CBS 유튜브 영상
사진 CBS 유튜브 영상

둘째, 영은 선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영육 이원론이 가학·가혹 행위를 만들어 냅니다.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원론은 영혼을 물질세계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며 영혼의 해방과 영적 세계로의 귀환이 구원의 최종 목적이라는 이론입니다. 물질, 즉 인간의 육체를, 해방돼야 할 악이자 가장 저급한 단계로도 봅니다. 이들을 영지주의 또는, 이원론자들이라고도 부르는데요. 3가지 특징을 보입니다.

1) 영지주의는 ‘특별한 지식’(신비한 영적 지식)을 가진 자가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을 갖게 됩니다. 영혼을 물질세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특별한 지식’, 곧 ‘영적인 지식’, 신비적인 차원으로 들어가기 위한 ‘신비 예식’이 발달하게 돼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교회는 썩었고, 진리에서 완전히 벗어났으며 자신들이야 말로 가장 모범적이고,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완전히 다른 가장 탁월한 집단임을 강조합니다. 일부 이단·사이비 단체들에서 늘 자신들은 ‘특별하다’, 영적 엘리트 의식을 심어 주는 것도 영지주의의 한 단면입니다.

2) 금욕적 태도로도 나타납니다. 영적인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육체는 이를 방해하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금욕을 통해 육체를 제어해야만 영적 씨앗이 성장해 충만한 상태(플레로마)로 들어가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가르친 게 영지주의이고 영육 이원론자들입니다(라은성, <정통과 이단>, 그리심, 2006년, 40페이지 참고). 육체 자체를 죄악시하는 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생각’을 갖는 것에 대해 혐오하고 비난하고 부정하도록 가르친다는 점입니다. 생각·이성 자체를 죄악시합니다. 아니, 여러분, 생각 자체를 멈출 수 있나요? 아니, 나를 나라고 여기는 자아 자체를 죽일 수가 있는 건가요? 아니, 죽여야 할 정도로 자아는 몹쓸 것이기만 한 건가요?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자아로 인식할 수 있는 ‘나’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주신 겁니까? 하나님 아닙니까? 그런데도 계속적으로 자아를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비하하기만 하는 목적이 뭘까요? 그건 간단합니다. 참된 신앙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직에 맹종하는 아바타를 만들어 내기 위한 비열한 목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아를 죽여야 할 존재로 처절하게 비하하고, 생각을 정죄하며 무뇌아가 된다면 그만큼 비인격적 주종 관계 성립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비인격적 연합이 아니라 인격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3) 영육이원론은 자유방임적 특징, 방종적 태도로도 나타납니다. 금욕적 태도와 정반대의 현상인데요, 영혼이 물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전제에서 사람의 외적 행동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경향으로 흐르는 겁니다. 즉, 죄를 아무리 많이 지어도 그 죄는 육체에 관련한 것이고, 영은 선하니, 아무리 육체가 죄를 지어도 그 죄와는 무관하다는 개념이 방종으로 흐르게 하는 겁니다. 

저는 빛진교회를 비롯한 일부 영성훈련 단체에서 사람의 육체를 학대하는 행위가 피해자의 주장대로 있었다면 이는 반드시 이런 영육 이원론적 기반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단추를 더 꿰야 할 거 같습니다. 가혹·가학 행위를 그 무엇보다 가능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비신앙에서 비롯됩니다.

MJ로 표기된 김명진 목사에게 사랑합니다라는 펼침막을 든 신도들
MJ로 표기된 김명진 목사에게 사랑합니다라는 펼침막을 든 신도들

바로 셋째 문제인데요. 지도자의 교주화·절대권력화입니다.

빛진교회 사태를 듣고 가장 우려했던 것 중에 하나가 지도자의 절대 권력화입니다. 이단사이비 종파에서 흔히 교주 신격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빛진교회는 예장 합동이라는 정통교단 소속인 건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단사이비 단체와 ‘교리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종이 한 장 차이 밖에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 피라미드적 체계가 있다는 게 심상치 않게 여겨집니다. 평화나무 보도에 따르면 빛진교회는 OT(오리엔테이션반), PT(포스터오티반), FT(퓨처팀), HTC(헬퍼트레이닝코스), LTC(리더십트레이닝코스), DM(10부장), DMC(30부장), DML(50부장), LDM(100부장), 이후 탑리더인 담임목사에까지 이르는 10단계 보직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LTC는 일반 신도로 남을지, 상위 리더십에 도전할지 변곡점에 해당하는 과정인데요. LTC라는 이름의 리더십 훈련을 거친 사람은 교회에서 지혜자로 통하며 결정권을 지녔고 그 아래 하위그룹들은 철저히 복종하는 훈련을 해나갔다고 합니다. LTC훈련을 받은 사람도 이 정도인데, 담임 김명진 목사는 도대체  빛진교회에서 어떤 권력자일까요?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상부에 있는 리더십들이 하부 구조에 있는 신도들에게 절대복종을 요구했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교인의 사생활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신도들은 △10부장 이상급 리더와 모든 것을 나누며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도록 훈련 받았고 △부부성생활까지 낱낱이 고하기도 했으며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 등의 사소한 문화생활에서 부동산 계약과 같은 중대한 사안까지 리더의 조언과 지시에 따랐고 △모든 우선순위가 교회로 향하면서 다른 인간관계는 단절로 치달았고 △교회를 우선에 두기 위해 세상에서 하는 거짓말은 삶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았고 △리더의 의견에 합하지 못한 경우 '멘탈팀'에 보내진다고 합니다(권지연, 평화나무 http://www.logos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991, 2020년 4월 30일).

심리학적 용어로 좀 정리하면 핫리딩(미리 상대방을 조사하여 상대방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하는 용어: 모든 죄를 고백하는 훈련이 핫리딩 기법으로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기법, 로미오와줄리엣 증후군(둘의 사랑으로 엮여 세상에서 고립되더라도 둘만은 진한 동질감을 느끼는 심리상태: 회사생활 등 모든 것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다가 외부와의 관계는 끊어진 반면 교회 활동에만 고립될 수 있다), 가스라이팅(자기에 대한 확신이나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타인의 간섭에 대한 저항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타인의 뜻에 따르거나 의존하도록 해버리는 행동: 리더에 절대복종하면서 때로 반발하면 멘탈팀으로 보내지게 됨으로 점점 타인의 간섭에 저항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등 심리 조작 행위들이 보이고, 이에 길든 신도들은 세상에 알려지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가학적 비인간적 행위들을 신앙의 이름으로, 순종의 이름으로 하게 됩니다. 이걸 그루밍라고 부를 수 있는 거죠. 

절대권력자에게 신도들이 할 수 있는 건 절대 복종 밖에 없습니다. 절대권력자에게 순종하는 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불순종하면 그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여겨졌을 겁니다. 빛진교회 내에서도 유사한 분위기가 나타났을 것으로 봅니다. 

세간의 비판에 대해 김명진 목사의 빛과진리교회는 당회원 및 리더그룹 일동의 이름으로 신속하게 5월 5일 사과 입장을 밝혔습니다. 빛진교회는 입장문에서 “빛과진리교회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라며 “여러분의 아픔에 더 귀 기울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어야 했는데 아직은 부족한 우리의 모습이 죄송할 뿐입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병상에 있는 자매님(훈련 중 1급 장애를 받고 치료 중인 신도: 편집자주)의 일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최대한 돕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또한 CBS와의 인터뷰에서는 ‘훈련이 가혹하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교회 리더십 훈련은 제자훈련을 바탕으로 믿음의 약점을 극복하는 코스”라며 “그 과정에서 참여자들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된 인분 먹기 등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와전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언론에선 인터넷 언론 평화나무측이 악의적 음해와 거짓 보도를 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언론은 △(빛진교회 훈련이)바울의 고난체험을 경험하자는 의도였지만 극단적이고 비상식적인 행위를 제안하거나 강요한 것은 아니다 △언론에 회자된 대로 비상식적인 것을 추구한 적이 없었다 △담임 김명진 목사가 보도된 내용에 대하여 자신이 직접 지휘하지도 않았고 훈련후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공정성과 상호 취재가 기본인 언론사의 기자가 단한번도 빛과진리교회의 공식 루트를 통해 정식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없었다 △새벽 6시에 교회로 불법 침입하여 물의를 일으키는 등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는 한국사회의 이단사이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근본 해결이 이 사회에서 왜 중요한지 일깨웠습니다. 그런데 문제 현상이 신천지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 주변에 건전한 교단 간판을 단 교회에서도 (피해자들의 주장이 맞다면)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우리들의 신앙은 이단사이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 신앙일까요, 아니면 건강한 종교성에 기반한 신앙일까요. 종종 성도들 중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생명과 진리 그 자체다"면서 ‘종교인’이라는 말을 비하적으로 사용하곤 합니다. 마치 자신은 ‘종교인’의 차원을 넘어선 사람인 것처럼 특수화하거나 더 고차원성을 지향하고 싶은 거지요. 그러나 사실 이 세상은 종교가 종교답기만 해도, 종교인이 종교인답기만 해도 욕을 먹지 않을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참 진리, 생명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다가 기독교에 오물을 뒤집어 씌워 대한민국 시민들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이 봐왔습니다. 그래서 일반 상식을 존중하는, 종교인이 되는 정도만 됐어도 한국교회가 이처럼 욕을 먹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하드 트레이닝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기보다 교회는 어쩌면 일상과 평범과 상식의 소중함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을 더 양성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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