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은 작은 계시록으로도 불린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 시간을 뛰어 넘어 역사의 종말과 재림까지 이어서 말씀하여 주셨다는 의미로 곧잘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에 대해 한국교회는 예루살렘 멸망보다는 말세와 재림의 징조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세를 떨치고 있다. 그중 한 구절을 다뤄보고자 한다. 매우 유명한 말씀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마 24장 32~34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
위 구절 중 “그(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라는 구절을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는 이 주장을 1983년경 J목사의 마태복음 24장 강해를 통해 처음 들었다. J목사의 강해는 매우 흥미진진했다. 말세의 현상을 파노라마를 펼치듯 생생하게 설명했다. 처처에 기근과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고, 무화과나무로 상징된 이스라엘이 가지가 연하여진 것처럼 독립(1948년)을 해서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것처럼, 한 세대 안에 재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J목사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이런 해석은 예전의 J목사에게서만 보였던 게 아니다. 3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하다. 한이성경연구소의 대표 송만석 장로(온누리교회)는 2016년 4월 19일 ‘한·이성경연구소’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http://kibi.or.kr/92/?idx=2848031&page=2&search=YToxOntzOjk6Imxpc3RfdHlwZSI7czoxMjoiZ2FsbGVyeV9saXN0Ijt9)는 제목으로 칼럼을 올렸다.
“주님께서 감람산 위에 앉아 계셨을 때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여쭈어 봤습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일어날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세상 끝 날에 일어날 여러 가지 징조들을 설명하신 다음에 마지막으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내용은 첫째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질 날’이 온다는 것과 둘째, 가지가 연하여지고 새 잎이 나기 시작하면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리는 여름’이 곧 온다는 것 그리고 셋째로 그렇게 되면 ‘여름 즉 끝’이 온다는 내용 입니다. 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주신 여러 가지 징조들이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어서 우리는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비유만큼은 실제로 별 의미가 없었고 우리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1900여 년 동안 이스라엘이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끝나고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이 약속하신 터 위에 자리 잡고 다시 일어나 가지가 연하여지고 새 잎사귀를 내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곧 이스라엘을 의미한다며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가 무성해지고’를 이스라엘의 국가적 변화에 그대로 꿰어 맞춘 해석이다.
이광복 목사도 마태복음 24장 32절의 무화과나무 비유를 1948년의 이스라엘 독립으로 본다. 즉,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이스라엘의 독립(회복)을 예언한 것이라고 보면서 이때를 출발점으로 하여 종말의 징조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보는 것이다(고신측 2014년 64회 총회 이광복 목사 연구 보고서).
미국의 벤자민 오 목사의 사랑과진리교회 사이트 게시판에도 관련 글이 올라가 있다(http://ltchurch.com/new/?p=35319).
민병석 목사(인터넷 사이트 ‘밤중소리’는 “무화과나무 비유에 나타난 징조”라는 제목으로 2016년 11월 14일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예수님은 이(무화과나무) 같은 비유를 통하여 종말의 전조를 알아볼 수 있는 영적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징조로 말씀하시고 이스라엘의 회복이야말로 주 재림의 징조임을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황폐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 시기가 그의 재림 시기에까지 이를 것임을 시사하셨습니다.”
영화 <회복>, <용서>, <제 3성전>의 김종철 감독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김 감독은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며 "요즘은 유대인들이 복음에 대해서 들을 때 열린 마음으로 듣는 자들이 많아졌다. 이것이 바로 가지가 연하여진다는 것이다"고 해석한다(김종철, <회복- 영화에 못다한 감동실화>, 2010년, 이스라엘 사역 출판, 192쪽).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이단 중에도 상당수가 있다. 특히 1992년 시한부 종말을 주장해 한국교회의 혼란을 가져왔던 이장림 씨도 그랬다.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나라를 재건하였다. 바로 이 때가 무화과나무의 잎이 돋은 때라고 보는 것이다. 챨스 테일러 박사도 그렇게 보았고, 랄프 얼도 그렇게 보았으며 그밖에 수많은 종말론 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그러므로 1948년도에 태어난 사람의 일생이 끝나기 전에 예수께서 강림하실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948년 이후 유태인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인류의 파멸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 성경의 해석대로 보아도 그리스도의 강림이 2천년 안에 일어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45~46쪽, 1988년, 그루터기). 이미 불발이 돼서 그렇지 이 얘기를 듣고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사람과 그 영향권안에 있던 사람을 300여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구원파의 한 분파인 이요한 씨(서울중앙교회)도 동일한 주장을 한다. “(마 24장 32절을 강해하며)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 말라 죽은 거 같았던 가지가 부들부들 연해지면서 잎사귀가 싹 나옵니다. 그러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아는 것처럼, 다 죽어 없어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거든, 그 말이에요. 1948년 5월 14일에 1900년 동안 죽은 거 같았던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뾰족이 나왔습니다. 지금 잎사귀가 무성합니다. 열매 맺을 일만 남았습니다. 열매를 맺으면 민족적으로 그 조상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믿게 되는 그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열매입니다. 열매 없어서 저주를 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열매를 맺을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이요한, 무화과나무의 비유, 2016년 4월 7일 유트브 동영상)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남자 하나님으로 추앙하는 안상홍 교주까지도 동일한 해석을 한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왜 하셨으며 또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대게 나라마다 짐승이나 혹은 나무로 표상하기도 한다. ··· 한국나라는 무궁화로 표시하듯이 이스라엘 나라는 무화과나무로 표상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무화과나무는 옛적 에덴동산에서부터 있던 나무로써 지금까지 존속해 내려온 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창 3:7) 또 이스라엘 나라도 에덴동산에서부터 아담의 계통이 이어 내려와 있음으로 무화과나무와 이스라엘 나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가 1948년에 독립하여 지금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이 무성한 시기에 놓여 있다. ··· 그렇다면 1948년에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하였으니 40년이 지나면 1988년이 된다. 그때에 과연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인가? 아니면 옛날의 역사와 같이 이스라엘 나라가 약간의 변동만 있고 말 것인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셨으니 분명코 그 때가 끝날이 될 것이다.”(안상홍, <신랑이 더디오므로 잘쎄>, 하나님의교회, 1980년, 23페이지).
이 해석을 취한 안상홍 교주는 1988년을 종말의 때로 보기도 했다.
예장 합동측이 1998년 이단으로 규정한 말씀보존학회 이송오 대표도 동일한 해석을 한다(이송오, 월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994년 6월호, 16페이지, http://www.biblemaster.co.kr/bbs/board.php?bo_table=B43&wr_id=27).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마태복음 24장 31~32절의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의 1948년 독립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2. ‘무화과나무 = 이스라엘 독립’ 해석의 폐단
2-1. 해석상의 문제가 생긴다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 독립으로 해석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 특히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목회자들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니 익숙해져서다. 그러나 이 해석은 먼저 안상홍 증인회의 남자 하나님이라는 안상홍 교주, 시한부 종말론을 일으켰던 이장림 씨가 주장했던 것이라는 것을 되새겨야 한다. 이 해석은 역사속에서 재림 날짜 산출을 하며 물의를 빚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도 되짚어 봐야 한다. ‘무화과나무 = 이스라엘’로 해석하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정확히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도 이런 해석을 통해 종말의 때, 마지막 때라며 입박한 재림론을 통해 성도들이 삶을 어렵게 하는 단체·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다가 배가 고파졌다.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먹고 싶으셨지만 잎사귀밖에 찾지 못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마태복음 21장 19절)고 말씀하신다. 영원토록이다. 무화과나무를 정치적인, 혈통적 이스라엘로 해석한다면 그 나라는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의미가 돼 버린다. 일부 인사 중에는 마 21:19절은 이스라엘이 2천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것을 의미하고 다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지고(마 24:30)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2천년만에 옛땅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독립한 사건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다. 예수님은 분명히 마 21:19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선언하셨다.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그 나라는 ‘영원토록’ 열매를 못 맺는다는 왜곡된 해석이 나오게 된다.
“문제의 무화과나무는 그리스도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는 선언으로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이 줄거리가 암시할 만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그 무화과나무가 다시는 싹을 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이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 국가를 직접적으로 가리키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무화과나무는 ‘이제부터 영원히’ 싹을 내지 않을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계시도 함께 인정해야 한다(윌리엄 킴볼 저, 김재영 옮김, ‘성경이 말하는 대환난의 진실’, 새물결플러스, 2013년, 197쪽).
2-2. 마 24장 본문에서 무화과나무를 이스라엘로 볼 근거가 없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32,33절). 즉 (환란에)적절히 대비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들은 (말세의 징조들에 대한)사실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배우라는 말씀이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있어서 그 나무의 싹과 꽃은 여름의 전조라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은 없다.”(메튜헨리 주석).
유사 구절을 보면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이라는 말씀이 이스라엘의 독립과 무관하다는 것은 명백해진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눅 21:29~31).
나무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아는 것처럼 이런 일(거짓 선지자, 천재지변, 전쟁 등의 징조)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으로 해석해야 문맥상 정확해진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공동번역).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그 밖의 모든 나무를 보아라. 새 순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지 않느냐?‘ 이와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것을 알아라.”(현대인의성경)
특히 위 구절에서 ‘이 모든 일을 보거든’에서 ‘이 모든 일’이 가리키는 것은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아니라 그 32절 전에 언급하신 이 땅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의미한다. 그 징조들을 보면 나무에 새순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마태복음 24장 33절에선 인자)가 가까이 온 것을 알라는 의미다.
“이 모든 일을 보거든”(마 24:33)에서 ‘이 모든 일’은 무화과나무를 뜻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언급한 거짓 선지자의 미혹, 난리와 난리 소문,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간의 대적, 기근, 지진 등 재난, 불법, 복음 전도와 그에 따른 핍박 등 마 24:3~31까지 그리스도께서 언급하신 징조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그 징조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파괴되는)이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예루살렘 멸망을 제자들은 세상 끝으로 알았고 그 때가 주의 임하시는 때라고 생각했다)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것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으로 봐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마 24:15). “너희가 예루살렘(마 24장에선 거룩한 곳)이 군대들(마 24장에선 멸망의 가증한 것)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 21:20).
누가복음은 이 말씀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로마의 타이투스 장군이 황제의 형상을 그린 깃발을 들고 이 거룩한 성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이 깃발은 그 당시 로마인들에 의해 경배되었던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이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보아야 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산으로 피신해야 했었다.”(안토니 후크마 저, 유호준 역, 개혁주의 종말론, 1986, 기독교문서선교회, 217쪽).
이필찬 소장(요한계시록 연구소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먼저 무화과나무 비유의 넓은 문맥으로서 24장의 처음 부분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이라는 주제로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마 24장(다른 두 복음서도 동일하게)의 시작부터 언급되는 내용은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이 아니라 성전 파괴를 중심으로 하는 격렬한 심판이므로 이 문맥의 흐름 속에서 심판의 맥락에서 접근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양용의 교수도 이에 동의하면서 ‘성전 파괴 사건 자체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야기의 전개상 가장 자연스럽다’라고 분석하고 있다(양용의, 마태복음 어떻게 읽을 것인가, 441)”고 썼다.
2-3. 종말 시기를 예측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왔다.
재림과 종말의 때와 시기는 베일에 가려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숫자를 이용해서 재림 날짜를 추산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시대의 징조를 보면서 날짜를 짐작한다. 유대 절기를 따라 재림의 시기를 예측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메시아닉 쥬(유대인들 중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람들을 의미함) 중에는 유대인들의 절기를 따라서 예수께서 사역을 성취해가셨다며 유대인들의 나팔절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팔절은 유대교의 새해로서 ‘로쉬 하샤나’라고 한다. 유대력 새해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것이다(르네 로이드, 브래드TV, 2016년 1월 12일, https://www.youtube.com/watch?v=TdsabsqB73k).
그리스도께서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재림의 때와 시기를 예측하려는 시도들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데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라는 구절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해석해 1948년을 시작점으로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한 세대가 이루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34절)으로 재림을 연결해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느냐, 50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그렇게도 금지하신 재림 날짜를 해석자 마음대로 산출하게 된다. 예장합동과 통합 등에서 이단 규정한 이송오 대표(말씀보존학회)는 한 세대를 창세기 15:13에서는 100년, 시 90편에서는 70년, 마 1:12에 의하면 42년이라며 1948년에 이스라엘이 국가로 수립된 것을 본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볼 수 있는 세대에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시한부종말론으로 한국사회를 어지럽힌 이장림 씨도 동일한 해석법으로 예수 강림의 때를 2000년 안에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전술했지만 안상홍 교주도 동일한 해석법으로 적용했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보아 1988년을 세상의 끝날로 봤다.
사람들은 재림의 때와 시기에 집착한다. 이런 시도에 대해 한국교회는 이단으로 규정하며 경계해 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시도를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림의 날짜가 아니라 늘, 재림을 고대하는 신부들의 자세, 믿음을 중요시하신다.
“‘그 날’의 시기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는다. 우리는 예수님이 앞에서 묘사하신 ‘징조들’로부터 그 날을 계산해 낼 수 없다. 사실, 여기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전체 요지는 계산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굳게 해주고, 제자들이 빠질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경고하려는 것이다. ···
소위 말하는 ‘징조들’은 ‘고속도로 끝 1킬로미터’를 표시하는 도로표지판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징조들은 길을 가는 동안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위험경고와 같다. 예수님은 예언을 장려하신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킬 것을 격려하신 것이다. 마가복음 13장은 반복해서 경고한다. ‘주의하라’, ‘겁먹지 말라’, ‘경성하라’, ‘걱정하지 말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깨어 있으라’, ‘계속해서 살피라.’ 그리고 그분은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약속하신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 장들(마 24장, 막 13장을 의미함:편집자주)에서 얻어야 할 메시지이다.”(스티븐 트레비스 저, 황영철 역, ‘종말 종말 종말’, IVP, 1999, 66쪽).
기독교의 전 역사를 통해서 수없이 잘못된 재림 예측의 시도가 행해져 왔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그가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심지어는 인자도 그의 재림의 날과 시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므로(막 13:32, 마 24:36) 이러한 모든 시도들을 질책하셨다. 만약 그리스도 자신도 그 날을 알지 못했다면 그리스도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우리는 누구란 말인가? 시대의 징조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확실히 재림하신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재림의 정확한 날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시대의 징조들이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정확한 재림 날짜보다는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을 말해줍니다. 시대의 징조들이 항상 비정상적이고 특이한 자연 재해로만 일어난다는 생각도 잘못입니다. 세계 선교나 기독교인이 받는 박해나 교회 안에서의 배교 같은 징조들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런 재림의 전조들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때까지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지금까지 역사상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있어 왔고 복음도 계속 전세계에 전파되어 왔습니다.”(백금산 글, 김종두 그림, <만화 종말론>, 부흥과개혁사, 2011년 79~80쪽).
이미 케케묵은 시한부종말론자들의 해석법이 지금 한국교회 일각에서 유행을 타고 있다. 이미 실패한 해석법, 한국교회를 사이비적 유사 종교들과 다를 바가 없는 곳처럼 낙인 찍히게한 출발점이 된 시한부 종말론(박용규,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20년, 비판적 평가, 2012년 10월 발표한 소논문, 25쪽-26쪽)이 채택한 해석법이 왜 한국교회 곳곳에 아직도 적잖은 영향력을 미칠까? 그것은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한부 종말의 실패 후 그것을 가능하게 한 해석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치열한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장림 씨는 물론 안상홍 증인회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반성을 한 기억이 필자에겐 없다. 잘못된 해석법에 대한 치열한 자기 성찰과 해석법에 대한 재평가가 없었기에 지금도 한국교회에는 시한부종말론은 이단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해석법은 난무하고 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를 ‘이스라엘의 국가적 독립(1948년)’이라고 보는 게 대표적이다. 이 해석법이 한국교회 언저리에서 여전히 떠돌며 재림의 시기를 예측하는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필자는 이스라엘문화원에 전화를 해서 확인까지 했다. 한때 이스라엘의 국화가 ‘무화과’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원측은 이스라엘의 국화는 아네모네 코로나리아(이스라엘 국화가 무화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관계없다고 함), 국목은 올리브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