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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성경공부[기독론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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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성경공부[기독론 4편]
  • 정윤석
  • 승인 2016.03.2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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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Θεὸς)에 정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나?
▲ 요한복음 1:1에 '말씀'은 일반적인 신, 또는 신격을 지닌 존재라는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요한복음 1:1의 말씀을 ‘신’이라고 번역해 놓고 하나님과는 다른 신격을 가진 존재라고 설명한다. “흔히 잘못 적용되는 성서 구절 가운데 하나는 요한 1:1인데, 「개역개정판」에는 그 구절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그리스어, 톤 테온]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테오스]이시니라.’ 이 구절에는 신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명사 테오스의 두 가지 형태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먼저 나오는 테온이라는 단어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의 한 형태인 톤(영어의 the)이 있는데, 이 경우에 테온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뒤에 나오는 테오스 앞에는 정관사가 없습니다. 이 정관사는 실수로 빠진 것입니까?”(여호와의증인, 파수대, 2009년 4월 1일, https://www.jw.org/ko/publications/magazines/wp20090401/is-jesus-god/).

여증측의 주장을 정리하면 정관사+ Θεὸς 라고 돼 있으면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Θεὸς앞에 정관사가 없으면 유일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일반적인 신, 또는 신격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미국 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 작업에 참여한 조지프 헨리 세어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합니다. ‘로고스[즉, 말씀]는 신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느님 자신은 아니었다’”(여호와의증인, 파수대, 2009년 4월 1일, https://www.jw.org/ko/publications/magazines/wp20090401/is-jesus-god/).

여증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요한복음 1:1의 ‘말씀 신’은 헬라어에서 정관사가 붙지 않았다 △정관사가 붙은 형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지만 정관사가 없는 것은 ‘일반적인 신’, ‘신격을 지닌 존재’다 △따라서 요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한 구절은 예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구절이 아니다.

여증의 주장에 성경을 보면서 답해보자. 

1. 요 1:1~5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2 그분은 시초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으며,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에 의해 생명이 생겨났으며, 4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했다(여증 신세계역).

1)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신세계 역본에서 ‘말씀’은 무엇이라고 번역해 놓았나? 윗 구절에서 밑줄 친 부분을 참고해서 답해보자.

2) 여호와의 증인들은 ‘신’이라고 번역해 놓고 이를 두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차별을 두고 있나 아니면 동등하다고 하는가? 만일 동등한 신이 아니라면 여호와의 증인은 일신교인가, 다신교인가?

2. 헬라어 정관사가 있으면 전능자 하나님이시요, 없으면 신격을 가지거나 일반적인 신을 의미할까?

1) 요한복음 3장 2절을 찾아보자
“그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말했다. “랍비, 우리는 선생님이 1)하느님에게서 오신 선생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2)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선생님이 행하시는 이런 표징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여증 신세계역).

여기서 1), 2)에 정관사가 붙었을까 안 붙었을까. 여증의 주장대로라면 1)과 2)에는 정관사가 모두 붙어야 맞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어떻게 기록돼 있을까?

Nestle GNT 1904
οὗτος ἦλθεν πρὸς αὐτὸν νυκτὸς καὶ εἶπεν αὐτῷ Ῥαββεί, οἴδαμεν ὅτι 1)ἀπὸ Θεοῦ ἐλήλυθας διδάσκαλος· οὐδεὶς γὰρ δύναται ταῦτα τὰ σημεῖα ποιεῖν ἃ σὺ ποιεῖς, ἐὰν μὴ ᾖ 2)ὁ Θεὸς μετ’ αὐτοῦ.

1)에는 정관사가 안 붙었다. 반면 2)에는 ὁ 정관사가 붙었음을 볼 수 있다. 헬라어에선 정관사를 붙이고, 안 붙이고에 따라 전능한 하나님이거나, 단순히 신격을 가진 존재라고 나누는 게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하나님을 정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서로 다른 존재로 본다면 요한복음 3:2는 이상한 구절이 돼 버리고 만다.

2) 요한복음 1:6을 보자.
하느님의 대표자로 보냄을 받은 사람이 왔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신세계역).
여증들 주장대로라면 위의 ‘하느님’에는 정관사가 붙을까, 안 붙을까? 답해보고 나서 헬라어 원문을 보자.

Nestle GNT 1904
Ἐγένετο ἄνθρωπος, ἀπεσταλμένος παρὰ Θεοῦ, ὄνομα αὐτῷ Ἰωάνης·역시 하나님 앞에 정관사가 붙지 않았다. παρὰ는 ~로부터(from)의 뜻을 가진 전치사지 정관사가 아니다.

3) 요한복음 1:12을 보자.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받아들인 사람들 모두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신세계역).
먼저 답해보자. 여증들 주장대로라면 밑줄 친 ‘하느님’에 정관사가 붙을까, 안 붙을까. 이 질문에 역시 답을 하고서 헬라어를 보자.

Nestle GNT 1904
ὅσοι δὲ ἔλαβον αὐτόν, ἔδωκεν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ν τέκνα Θεοῦ γενέσθαι,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εἰς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그들(여호와의 증인)의 말대로 하면 요한복음 3장 2절의 니고데모가 말한 하나님은 분명 그들 말로 전능자 하나님이어야 할 터인데 정관사가 없는 것이다(요 1:6,12,13 등에서도). 왜일까? 그런가 하면 반면에 요한복음 3장 3절의 하나님은 그들 말로 전능자 하나님이요, 위의 3장 2절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인데, 여기에는 또 정관사가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관사가 있으면 전능자요, 없으면 대능자란 공식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최삼경, 여호와의증인 비판1: 자가당착식 삼위일체관, <교회와신앙> 1995년 7월 1일자,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88).

다시 요한복음 1:1로 돌아가자.
1) 다음 번역본을 참고해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개역개정).

‘말씀’ 대신에 ‘예수’, ‘그’ 대신에 ‘예수’를 넣어서 읽어보자.

태초에 예수가 계시니라 이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예수는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개역개정).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는 맨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은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인류의 빛이었다. 이 빛이 어두움 속에서 빛나고 있었으나 어두움이 이 빛을 깨닫지 못하였다(현대인의 성경).
결론 요 1:1에서 ‘신’을 뜻하는 헬라어 Θεὸς에 관사가 붙었다 안 붙었다로 전능하신 하나님, 신격을 가진 존재로 나누는 여증의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다.

호크마 주석에선 요한복음 1:1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혹자는 본문에서 '하나님' 앞에 관사 '호'(ὁ).가 없기 때문에 말씀이 절대적인 신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볼 경우 '말씀'은 단지 종교적 신성(神性)을 지니고 있는 막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풍미하던 영지주의의 학설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된 존재로서 하나님보다는 하등의 신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내포할 수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이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표현된 것은 헬라어 문법상의 특성을 관찰하면 잘 알 수 있다. 헬라어 문장은 주어와 술어의 어순(語順)을 바꾸어 쓸 수 있다. 따라서 헬라어에서는 주어와 술어의 구분을 어순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헬라어에서 주어와 술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관사이다. 따라서 주어는 관사를 가지고 있고, 술어는 주어와의 구분을 밝히기 위해 관사를 취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문 '카이 데오스 엔 호 로고스'(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에서 '말씀'이 주어, '하나님'이 술어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본문은 성자 하나님의 신성에 대한 간결하고도 명확한 선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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