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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테러를 이해하기 위한 세권의 도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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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테러를 이해하기 위한 세권의 도서[3]
  • Narroway
  • 승인 2016.01.07 0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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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책 <진리를 향한 이정표>

필자 Narroway는 이슬람 연구와 아랍어 공부를 목적으로 중동의 한 국가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던 그에게 담임인 A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네가 목회할 때는 이슬람 모르고서는 힘들 거다. 그 중요성에 비해 한국교계에 이슬람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주어진 기간 열심히 공부하고 무슬림들도 많이 만나 보거라.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글로컬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 담임 목사의 이런 염원을 따라 그는 중동의 한 국가에 거주하며 시리아 난민으로부터 아랍어를 배우고 있다. 필자는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며 “세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국제 분야의 뉴스들이 이제 기도제목이 될 것이다.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쓰고 우리 곁을 지나가는 무슬림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고 제안한다. 3회에 걸쳐 ‘이슬람 이해’에 도움을 주는 필자의 추천 도서를 연재한다.[편집자주]

 

이쯤 되면 궁금한 점이 생긴다. 대체 왜 이슬람주의자들은 나라를 넘나들며 전쟁에 참전하고, 전쟁과 아무 관련도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일까? 권력에 대한 야망인가, 서구의 경제적 착취에 저항하는 것인가, 단순한 증오심인가, 아니면 보다 다른 차원의 시각이 있는가?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소개할 [진리를 향한 이정표]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슬람주의의 레닌으로 불리는 사이드 쿠틉의 대표작으로 현존하는 모든 테러단체들의 사상적 교과서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번역자인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국제테러단체 알 카에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탈레반,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인도네시아의 제마 이슬라미야 등 모든 과격 단체들의 이념과 행동지침은 쿠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에 담긴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쿠틉의 [진리를 향한 이정표]를 읽지 않고 이슬람 운동과 테러리즘을 논하는 것은 경전을 읽지 않고 특정 신앙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같다.”

현재 중동 전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무슬림 형제단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1928년 이집트에서 등장한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 역사상 최초의 사회운동단체였다. 하산 알 반나가 방과 후 교실로 시작한 것이 점차 정치운동으로 변하였고, 이스라엘과의 분쟁 속에서 군사적 수단도 사용하게 되었다. 사이드 쿠틉은 미국에서 유학하면서 타락한 서구문명에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이집트로 돌아온 뒤 무슬림형제단의 주력이 된다. 정권의 대한 비판수위가 높아지자 나세르대통령은 사이드 쿠틉을 체포하지만, 감옥에서 [진리를 향한 이정표]를 비롯한 수많은 저작으로 이슬람운동을 주도해나간다. 앞서 설명한 소련의 아프간침공 때 무슬림형제단의 일부가 참전하게 되면서 사이드 쿠틉의 사상과 책들이 중동전역에 소개된다. 동일한 시기 사우디의 오일머니를 모아서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전달하던 오사마 빈 라덴 역시 사이드 쿠틉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알 카에다를 창설하게 된다.

이 책의 번역자가 요약 정리한 것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쿠틉은 사회를 이슬람의 질서와 타락하고 무지한 자힐리야의 질서로 나눈다. 이슬람 국가가 세워지고, 샤리아(이슬람법)의 권위가 서고, 알라가 금지한 것이 지켜지는 곳이 ‘이슬람의 영토’이고 나머지 지역은 타도대상인 ‘전쟁의 영토’이다. 둘째, 현재 중동의 상황은 이슬람의 신성한 가르침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이슬람 본래의 체계와 가치를 따르지 않고 서구의 이념, 우상 숭배, 왜곡된 종교와 문화를 수용한 것이 그 원인이다. ... 이런 현상이 가져온 결과는 비참할 뿐이며 ... 그 안에서 인간은 개인의 욕망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동물적 삶’을 살아갈 뿐이다. 마지막으로, 쿠틉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행동주의다. 지하드를 통해 자힐리야를 일소하고 이슬람 사회를 부활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무슬림들은 이 지상에서 모든 악과 고통과 탄압을 제거하고, 알라의 주권이 지배하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 결단을 내리고 그 길로 계속 걸어갈 전위가 있어야 한다.” 그의 혁명적 논지는 결국 지하드를 통한 이슬람 정부의 구현이었다. 그는 민족이나 국가단위에 머무르는 것도 서구의 개념이라며 전 지구적인 투쟁이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이슬람의 지하드는 초기단계부터 무력투쟁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모든 온건한 형태의 지하드를 패배주의라고 깔아 내렸다. 경제적으로 번영한 서구문명은 도덕적으로 퇴보한 거짓문명일 뿐이니, 무슬림들이 도리어 우월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서구문명 체계가 무너지도록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쿠틉의 말은 타락한 현실의 역사에서 역할을 갈구하는 젊은 무슬림 세대들에게 큰 공명을 일으켰다.

이슬람과 테러는 이미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도 성큼 다가와 있는 현실이다. 김선일씨의 죽음과 아프간 피랍사태를 이미 겪었다. IS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실린 십자군 목록에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다. 동성애에 이어, ‘할랄음식법’이나 이슬람 자본과 관련된 ‘스쿠크법’을 두고 기독교인이 연합하여 정치적 행동을 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백투예루살렘운동’과 ‘이스라엘회복운동’과 관련한 신학논쟁도 다 이슬람과 중동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재 신학생이자 전도사인 필자는 담임목사님의 혜안어린 충고와 공동체의 배려로 중동현지에서 아랍어를 배우며 이슬람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출국할 때 담임목사님이 들려주신 조언은 다음과 같다. “앞으로 네가 목회할 때는 이슬람 모르고서는 힘들 거다. 그 중요성에 비해 한국교계에 이슬람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주어진 기간 열심히 공부하고 무슬림들도 많이 만나 보거라.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글로컬한 리더가 되어야 한다.” 필자의 아랍어 과외선생님은 시리아난민이다. 살던 고향은 폭격당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다. 뉴스는 끔찍해서 볼 수 없게 된지 오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한국드라마를 즐겨보는 친구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 위주로 아랍어를 가르치게 되었단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일자리를 구하기가 몹시 힘들다.) 가족이나 시리아 얘기를 꺼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너무나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다.

더 이상 뉴스 속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가끔 중동관련 이슈에 달린 인터넷 댓글을 보노라면 그 대처가 가볍고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무관심은 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슬람권 선교는 한국교회 앞에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다. 우리는 식민지의 아픔도 알고, 복음의 능력도 체험한 민족 아니던가! 먼저 그들을 이해하기위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이 세권의 책을 읽고 나면 국제 분야의 뉴스들이 이제 기도제목이 될 것이다.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쓰고 우리 곁을 지나가는 무슬림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이사야 2장 4절)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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