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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닮은 그 사람, ‘손양원’ 옥중서신 발간1941년부터 가족·성도들과 5년간 주고받은 육필 편지, 책으로
정윤석  |  unique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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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23  03: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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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양원의 옥중서신 발간 기자회견을 하는 이성희 목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 이사장, 사진 가운데), 이치만 교수(장신대 교회사, 사진 왼쪽), 최상도 박사

한국 최고의 신앙의 위인으로 사람들은 손양원 목사를 꼽는다. 그의 순교 정신과 신앙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세워진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이사장 이성희 목사)가 ‘손양원의 옥중서신’(넥서스크로스) 발행하고 2015년 12월 21일(월) 연동교회 다사랑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이성희 목사(연동교회)는 손 목사의 일생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손 목사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일제 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살이를 했다. 해방 후 첨예한 이념갈등속에서 두 아들을 잃었으나 그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아들로 삼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때는 피난을 가지 않고 자신이 목회하던 애양원의 한센병 교우들과 끝까지 함께하다가 마침내 공산당의 손에 피살됐다고 말했다.

   
▲ 여수 애양원의 정문에 선 손양원 목사

이 목사는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안위를 내려놓고 올곧은 신앙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양을 단 하나도 잃지 않으려고 목숨도 내놓았던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며 “우리는 그를 순교자로 기억하고 기념한다”고 강조했다. 손 목사의 자기 희생적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한 첫단계사업은 그가 남긴 육필 옥중서신을 전산화하고 책으로 내는 것이었다. 그 노력의 결과가 400페이지 분량의 ‘손양원의 옥중서신’이다.

이 책에는 손양원 목사가 일제 강점기에 옥중(1941~1945년)에서 부모·형제·처자식·교회 성도와 주고 받은 73편의 편지가 현대어로 소개돼 있다. 그중 한 편은 이렇다.

본가를 멀리 떠나 옥중에 들어오니(遠離本家入獄中)
깊은 밤 깊은 옥에 깊은 시름도 가득하고(夜深獄深滿愁深)
밤도 깊고 옥도 깊고 사람의 시름도 깊으나(夜深獄深人愁深)
주와 더불어 동거하니 항상 기쁨이 충만하도다(與主同居恒喜滿)
옥중 고생 4년도 많고 많은 날이나(獄苦四年夥多日)
주와 더불어 즐거워하니 하루와 같구나(與主同樂如一日)
지난 4년 평안히 지켜주신 주님(過去四年安保主)
내일도 확신하네 여전한 주님(未來確信亦然主)

   
▲ 여수를 대표하는 인물에 이순신 장군과 손양원 목사가 꼽혔다고 소개하는 석청교회 박남인 목사(사진 가운데)

손양원 목사가 생전에 개척한 교회 중 하나인 여수 석창교회 박남인 목사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박 목사는 “인요한 박사(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는 가는 곳마다 손양원 목사에 대해 ‘예수님 이후 가장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며 “그는 ‘성 프란시스보다 더 위대한 인물인 손 목사를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만 두면 안된다’고 하는 말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한다. 박 목사는 “여수 세계 엑스포를 앞두고, 여수를 대표하는 두 인물 중 한 분이 이순신 장군, 또 한분이 손양원 목사”며 “그분의 신사참배 거부 등 저항적 신앙뿐 아니라 포용·화해의 신앙을 ‘목회서신’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고 소개했다.

옥중서신 해제 및 편역에 참여한 최상도 박사(영국 에딘버러대학교 Ph.D)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인간 손양원을 볼 수 있었다”며 “손 목사를 너무 크게만 바라봐서 우리 삶과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옥중서신에선 그가 우리의 일상과 동일한 모습으로 다가와 많은 감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박사와 마찬가지로 해제 및 편역에 참여한 이치만 교수(장신대학교 교회사 조교수)는 “손 목사가 인간적으로 얼마나 큰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며 “감옥에서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 아픔을 억눌러가면서 가족들을 위로하고 특히 연로하신 아버지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다”고 소개했다. 이 교수는 “관념적으로만 있던 손양원 목사라는 한국 기독교의 큰 인물이 편지를 통해 인간 손양원으로 걸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 넥서스크로스에서 보급하는 손양원의 옥중서신

<손양원의 옥중서신>은 손 목사가 옥중(1941~1945년)에서 부모, 형제, 처자식, 교회 성도와 주고받은 73편의 편지를 원본 그대로 모두 담았다. 편역 및 해제에는 임희국(장신대 교회사), 이치만(장신대 조교수(교회사)), 최상도(前 영남신학대학교 조교수(역사신학))가 동참했다. 이 책을 간행한 (사)손양원정신문화계승사업회는 손양원 목사 유고집 보존과 전집 발간 사업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사랑하는 아들 동인, 동신에게···
너희가 비록 공장에서 많은 사람과 교제하게 되겠지만 세상 죄악에는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생명이 있는 고기는 더러운 바닷물 속에 있어도 짠물이 살갗을 절이지 못하고, 진흙 구덩이 속에서 자란 연꽃이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 같이, 너희도 아름다운 선행으로 생명의 향기를 발하도록 하라. 작은 악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말고, 작은 선이라고 쉽게 보지 말거라. 작은 악이 쌓여서 큰 악이 되고, 작은 선이 자라서 큰 성현이 되는 연유이니라.”(1942년 12월 7일, 46페이지).

“어머니 기일을 맞이한 나의 추억··· 어머니의 기일을 떠올릴 때 우리 집 정원에 석류 꽃이 붉었던 게 생각납니다. 석류꽃을 볼 때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회상하게 됩니다. 석류꽃은 붉었지만 당신 옷은 순백이었고, 오월의 여름 날씨였지만 눈서리가 세차게 불었습니다. ··· 우리집 정원에 피었던 석류꽃은 올 봄에도 피었건만, 본양을 찾아 낙원에 가신 내 어머니는 다시 오실 리가 없겠지요··· 지상의 향락보다 천상의 영광이 더 좋다는 것을 확신하는 내 신념이 오늘, 이 눈물을 그치게 합니다.”(1944년 6월 22일 편지, 1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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