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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보다 강한 사랑, 숱한 상처 잊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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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보다 강한 사랑, 숱한 상처 잊게해”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3.11.05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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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상교회 은퇴한 정주채 목사, 원로목사직은 정중 사양

향상교회 정주채 목사가 11월 3일 오후 3시30분 향상교회에서 문화행사를 한데 이어 은퇴식을 하고 담임목사직을 내려 놓는다. 임기제를 실현했던 그는 65세 자원은퇴를 함으로써 교인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교인들의 원로목사제 제안도 평소의 소신대로 정중히 사양했다. 다음은 기독교뉴스(www.기독교뉴스.com)에 올라간 정주채 목사의 글이다. 전문을 그대로 게재한다. <편집자주>

▲ 금년 11월 3일 은퇴한 정주채 목사(사진 손우진 작가)

은퇴를 앞두고 이런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지나간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떠오른다. 웃고 울었던 이야기들, 정들고 헤어지고, 또 새로운 사람들 만나 정들면 옛 사람들은 점점 잊혀지고, 그러면서 수십 년이 순식간에 흘렀다. 정(情) 표현을 세련되게 잘 못했던 시골뜨기인 나, 유달리 기억력이 약해서 헤어지기도 전에 벌써 이름을 잊어버렸던 나는 “박정희처럼 냉정한 사람”으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실제로 박 전대통령이 그랬는지는 나도 모른다.) 이름은 대부분 잊었지만 그래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분들은 많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처럼 키가 작았던 어느 집사님, 연세가 70이 다 되신 그분은 말끝마다 나를 “귀여운 하나님의 종, 나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불렀다. 이 모순된 표현을 나는 한참 후에야 그 뜻을 알았는데, “귀여운”은 전라도 방언으로 본뜻은 “귀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1988년도에 안식년으로 영국에 있을 때 그 어머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연필로 또박또박 쓴 편지에는 “나의 영적 아버지”란 말이 군데군데 들어있었다. 나는 그 편지를 읽다가 결국 울어버렸다.

나는 부목사 시절 교회 분란기에 몇몇 교인들로부터 미움도 멸시도 많이 받았었지만, 사랑은 미움보다 강하다. 이런 분들의 사랑은 내 마음의 상처들을 쉽게 씻고 아물게 만들었다. 사랑은 묘약이란 말처럼 말이다.

나의 목회초기에 울타리가 되고 지지대가 되었던 몇몇 동료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그분들은 대부분 장로가 되었고, 그 중에는 선교사로 나간 분들도 있다. 내가 담임목사로 취임했을 때의 나이는 만 37세였다. 그야말로 새 파란 청년이었다. 내 주위에 있었던 그 친구들은 나보다 대개 1-2세 아래였다. 그들은 꼭 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나를 도운 나의 동역자들이었다.

당시는 지나간 싸움판에서 나이 많은 어른들이 밀려난 바람에 그 친구들이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되어 충성스럽고 유능하게 일을 했었다. 그 때 우리는 일부러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통했다. 이것이 아마 젊음의 특징인 것 같다. 그때 교회는 매우 빠르게 회복되어 갔고, 내가 1차 안식년을 갔다 온 후에는 부흥하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내 뒤에서 “아버지, 저 어린 종을 장중에 붙들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두 권사님들을 잊을 수가 없다. 항상 모든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야 일어섰던 기도의 어머니들이었다. 내가 몸이 약하다고 이런저런 민간 보약들을 자주 챙겨주시던 분들, 돈이 몇 푼 생기면 가만히 나의 손에 쥐어주시던 분들, 명절이면 생닭을 몇 마리씩 이고 오셔서 교역자들에게 나누어주시던 분들, 내가 아내와 너무 다정한 것 같다며 몸을 위해 가끔씩은 방을 따로 쓰라고 이상한(?) 충고도 해주셨던 나의 영육간의 진짜 어머님들이셨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가슴이 자꾸 울컥거려서 그만 써야 할 것 같다. 또 다 쓰려면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아무쪼록 나를 사랑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헨리 나우웬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런 감상적인 글을 이쯤에서 끝내려 한다.

“나에게 상처를 입혔던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시오. 내가 중심으로 그들을 용서한다고. 그리고 나한테서 상처를 입었던 모든 사람에게도 말해 주시오. 부디 나를 용서해 달라고”

당부의 말1 – 교역자들에게
지난 둘째 주간에 교역자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나는 네 번의 경건회를 인도하면서 몇 가지 권면과 당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특별히 준비하여 전한 말씀은 아니었지만 공적으로는 마지막 한 권면이었으므로 나로서는 요긴한 내용을 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계속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간단히 정리하여 여기에 올립니다.

1. 범사에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을 인정하고 충성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고 행하는 일은 크리스천 신앙생활의 근본이고 중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영접함으로써 성도가 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고 그 주재권이 우리 각자의 삶에 확립될 때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주의 몸 된 교회에서 사역하는 교역자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필수불가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 성도들이나 교역자들이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받들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충성하면 우리에게 용기가 생기고 담대해집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권위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통해 큰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세상 보지 말고 주님을 주목하십시오. 교인들의 눈치 살피지 말고 주님의 눈치를 살피십시오.

2. 범사에 주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순종하며 충성하십시오.
주님의 주되심에 충성하는 일은 바로 그의 뜻을 찾는 것이고, 그것을 주목하며 순종하는 일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는데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거기에 순종하며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좀 더 직접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더 확실하고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요 6:40a)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교역자는 무엇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증언하여 사람들이 그를 믿고 영생을 얻게 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이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본이 될 수 있도록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이란 인격과 삶이 예수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교역자들은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고 – 감사는 삶의 동력입니다 – 기도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3. 동역자들끼리 서로 화목하며 사랑하십시오.
어느 공동체나 그 구성원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면 그 공동체는 힘을 잃고 맙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비생산적인 일에 낭비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지막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b)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우리 교역자들은 연합과 일치로 교회공동체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담임목사의 입장에서 부교역자들이 서로 화목하며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얼마나 기쁘고 든든한지 모릅니다. 교인들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과 일하면서 정말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 정주채 목사(사진 손우진 작가)

당부의 말 2 – 장로님들에게
바울 사도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밀레도에 들려 에베소 지역에 있는 장로들을 불러 권면하며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저도 지난주일 은퇴를 앞둔 마지막 당회 때 장로님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공동체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당연한 내용입니다만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를 섬길 때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합니다. 무슨 의논을 하든 무슨 일을 하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주님이 요구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주님의 관심은 어디 있을까?’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3대 사역, 곧 교육, 선교, 구제는 교회 지도자들이 늘 명심하고 적극 추진해야 할 일입니다.

특히 부모들이 자녀교육에는 돈을 아끼지 않듯이 교회도 차세대 교육을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저는 그 동안 구부지 문제에 묶여 이 일에 좀 더 투자하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2. 은혜 생활 열심히 하셔서 항상 은혜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직분은 은사입니다. 곧 은혜로 주신 선물이요 은혜로만 감당할 수 있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직분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항상 은혜를 받아야 하고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은혜를 끼칠 수 있습니다. 말씀묵상생활, 기도생활, 경건한 독서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항상 은혜에 젖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분별력이 생기고 은혜로운 섬김이 이루어집니다.

3.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교인들의 본이 되어 주십시오.
언젠가 저는 우리 교회에는 왜 헌신예배를 드리지 않는가를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헌신예배는 교회당에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신예배는 드리면서 헌신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근년에 이르러 교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현저하게 약해졌습니다. 주의 나라와 그의 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현저히 식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분들은 장로님들입니다. 장로는 명예직도 권세직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압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라고 부름 받은 하나님나라의 일꾼들입니다. 그래서 이 일에 본이 되어야 합니다.

4. 목회자를 앞세우는 우리 교회의 좋은 전통을 계승해주십시오.
이런 권면은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신뢰받는 목회자가 그리 많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원칙과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다스리실 때 말씀으로 하십니다.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을 세우시고 올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해 교회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말씀을 맡은 목회자가 앞서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회를 하다가 어떤 문제가 생겨 오래 의논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목회자에게 최종 결정을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목회자가 잘 못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진정 주의 뜻을 찾는 목회자라면 누구보다도 많이 살피고 많이 기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저를 도와주시고 동역해주신 모든 장로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기독교뉴스> 2013년 11월 3일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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