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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땅의 절대적 지배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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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땅의 절대적 지배자인가?”
  • 정윤석
  • 승인 2013.11.0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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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권위자 이필찬 교수의 신천지 해석 해부하기 3-1강(계 4장)

독자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합니다. 이필찬 교수의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꾸준히 듣고 연재할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10월 18일 진행된 2강을 부득이한 사정으로 듣지 못하게 됐습니다. 2강을 빼고 3강을 정리해서 먼저 올립니다. 2강은 차후에 이 교수님의 팟캐스트를 링크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계획입니다. 2013년 10월 25일 지구촌교회 그레이스홀에서 진행된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 3강에서 이 교수는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해설했습니다. 강의 내용 중 먼저 4장 해석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이 교수님의 주장을 전달하면서도 여타 주석들과 자료를 참고해서 기자의 방식으로 살을 붙인 것입니다. 아무쪼록 요한계시록 이해에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미흡한 부분이나 지적할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의견 주십시오<편집자주>

2013년 10월 17일 엘지와 두산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렸다. 전날 1패를 안은 엘지로선 반드시 잡아야 할 경기였다. 이날 레다메스 리즈가 LG의 선발투수로 등장했다. 그는 8회까지 무실점 피칭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완전히 경기를 지배했다. 가을날, 기온은 낮았다. 사람들은 도미니카 출신의 그가 추위에 약할 것으로 예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리즈에게 가을 날씨는 의미가 없었다. 이미 몸이 완전히 풀린 듯 1회부터 시속 163Km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강속구를 던져 상대 선수들의 혼을 다 빼놨다. 그는 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이 결코 넘을 수 없었던 그 경기의 지배자였다. 그날 엘지는 두산에 ‘완봉승’을 거뒀다.

▲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 강의를 듣는 청중들

요한계시록에 대해 성도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다가가기 어려워하고 설령 읽는다 해도 상징적 표현들에 무슨 말씀을 하는지 종잡지를 못한다. 이단들이 수없이 계시록을 악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정통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을 풀어주는 일에 활발하게 나서지 못했다. 설령 한다 해도 많은 수의 요한계시록 강해가 세대주의적 강론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이필찬 교수의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 세 번째 강의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줬다. 그리고 세대주의적, 전통주의에 입각한 내용 중 부적절한 부분을 효과적으로 거둬내 시야를 넓혀 줬다. 그의 해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심어주는 계시록이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왕이시고 영원히 왕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계시록을 읽으며 카타콤 지하동굴에 숨어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왜 죽음 앞에서 의연할 수 있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이 땅의 절대적 지배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요한계시록은 정확한 답을 내려주는 환희에 찬 희망의 성가였다.

요한계시록 4~5장을 풀이할 때 갑작스레 두산과 엘지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생각난 이유다. 경기를 지배하는 지배자처럼 이 교수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면서도 이 세상의 절대적 지배자가 누구인지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듯했다. 그 지배자는 당연히 그리스도 예수였다. 그것도 천상의, 3차원 공간 어딘가, 은하수 너머에 있는 왕권을 가진 예수가 아니라 철저히 이 땅의 예수, 이 땅의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했다. 이 교수는 강의 전 두손을 모으고 “하나님, ‘신천지의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같은 강의가 불필요한 시대가 되도록 해주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고 악용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내용으로 마구잡이로 조작하고 그 성경 해석을 갖고 성도들을 도탄에 빠트리고 가정을 파괴하고 개인의 인생을 낭비하게 만드는 현실입니다. 이제 강의를 할 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되도록 인도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계시록 4장의 ‘이 일 후에’
본문: 4장 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신천지측의 주장
이 교수는 먼저 4장 1절~3절을 해석했다. 신천지측에서는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일 후에’를 요한이 일곱 교회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계시록 2~3장)를 보낸 직후라고 본다. 하늘의 열린 문은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의 문’, 천상의 하늘, 사차원의 공간에 위치한 하늘의 열린 문으로 보는 것이다. 사도요한의 영이 하늘로 올라가서 영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는 것이다. 사도요한의 위치에 있는 그 목자는 초림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하늘 영계에서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실상으로 증거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신천지는 사도 요한 - 목자 - 예수님을 하나의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이상은 요한계시록의 실상, 108~110페이지 내용이다).

계시록 4장에 대해 신천지는 사도 요한이 천상에서 보고 온 천국의 설계도이고 장차 이 영계가 이 땅에 강림할 것을 요한에게 들려준다는 것이다. 육계의 보좌가 있고 영계의 보좌가 있는데 이 땅에서 영·육이 하나되어 온전한 보좌를 이룸으로 영생이 있게 된다는 영육합일사상으로 이어진다. 이 패턴은 요한계시록 해석의 면면에 흐르고 있다. 지금 세상은 첫장막이다. 그러나 니골라당에 의해 침략을 당해 타락·배도했고 그래서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약속의 목자의 실상 계시를 듣고 그것을 좇고 따라야 영육 합일의 때, 영생을 얻게 된다는 패턴을 신천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신천지측은 “요한이 본 것은 하나님의 보좌와 계열이며 들은 것은 이 영계의 나라가 장차 이 땅에 온다는 것이다. 이 보좌 계열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둘러 있는 24장로와 일곱 등불의 영과 유리 바다와 네 생물과 가득한 눈들이다”고 주장한다(이상 고등교육 자료, 17p).

문제제기와 반증
이 교수는 하늘의 영계의 모습을 장차 이 땅에서 이루게 된다는 신천지측 주장을 뒤엎어 버렸다. 요한이 계시를 받은 ‘하늘’이 과연 신천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상, 3차원 공간 어딘가의 ‘영계’를 의미하는지 문제제기를 하면서다.

- ‘이 일 후에’
‘이 일 후에’를 과연 시간적으로 해석하여 2~3장과 4장을 시간적 순서로 놓는 것이 합당한가?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이 말은 논리적 관계이지 연속적·시간적 관계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일 후에’보다는 ‘이후에’라는 번역이 더 적당하다며 이것은 앞뒤를 시간적으로 연결하는 문구가 아니라 새로운 문단이 시작될 때 사용되는 관용어적인 표현이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2~3장과 4장을 시간적 순서의 관계로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즉 영화에서 장면의 전환이 나타난다고 그것이 늘 시간적 순서의 전환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요한계시록 4장은 새로운 환상의 전환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묵시 문학의 전형적이고도 관용적 표현방식이라는 것이다(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Morris, Beasley-Murray, Robertson 등이 있다). 이 말은 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7:1,9; 15:5; 18:1; 19:1) ‘내가 보았다’, 혹은 ‘내가 들었다’와 연결되어 나타난다. 이는 환상을 통한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내는 구절로 곧잘 이어진다.

- 요한이 본 하늘과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

▲ ‘신천지 요한계시록 해석 해부하기’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필찬 교수

요한이 본 하늘을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과 일치시켜 영계로 몰아가서 그곳을 그들의 장막성전과 관련시키려는 포석을 갖는 게 신천지의 해석이다. 과연 ‘하늘’(계시록 4:1)이 한국교회에 크게 물의를 일으킨 펄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류나 신천지처럼 ‘영계’, 3차원 공간 속의 ‘하늘’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하늘’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주 공간의 어느 지역으로 생각한다. 구만리 장천의 은하수 너머너머 어딘가에 있는 위치적 장소를 생각한다. ‘하늘’은 3차원의 어느 공간 너머에 있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통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란 개념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배하고 통치하시는 그 공간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늘’에 대해 이 교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3차원의 공간이 아니다”며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신학적 공간으로서의 ‘하늘’을 의미한다”고 재차 말했다. 영적이고 초월적 공간이기에 우리의 실생활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삶과 전혀 무관한 장소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 시퍼렇게 호흡하고 있는 삶의 영역과 밀접하게 겹칠 수 있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을 노크하지 않고 제자들이 숨어 있는 곳에 들어오셨다. 바로 갑자기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비적·영적공간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스도가 공존하는 그곳이 곧 ‘하늘’이라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독자들은 ‘누가 이 세상의 참된 통치자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해 있었다. 로마 황제들의 폭정과 핍박 속에서 당시 기원 후 1세기의 초대교회 독자들은 네로 황제 등 로마의 황제들을 향해 “거룩하고 거룩하시고 영원히 찬양 받으실 황제, 주님”이라고 찬양을 하느냐, 아니면 반대로 영원히 예배 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냐라는 선택에서 전쟁을 치르는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사도요한은 이 영적 전쟁에서 독자들이 오로지 하나님만 선택해야 할 당위성을 하늘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 주며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 맥락에서 ‘하늘’, ‘보좌’라는 핵심 단어들을 풀어가야 한다.

- 하늘의 ‘보좌’(4:2)
하늘에 실제 보좌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줄곧 신비주의 계열의 신도들은 자신의 영체가 하늘나라에 갔는데 보좌의 중앙에 하나님이 앉아 있고, 그 옆에는 교주님이 앉아 있다는 둥 엉뚱한 소리들을 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보좌’는 왕의 자리처럼 위엄있는 ‘의자’가 놓여 있다는 것이 아니라 통치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늘의 통치의 원천이자 절대자이신 분, 왕이신 분, 높임을 받으실 분, 온 우주의 지배자이자 통치자가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가 ‘보좌’다. 이 단어는 그분만 예배할 것을 말한다. 눈앞에 보이는 로마 황제의 절대적 권력 앞에 두려워하며 굴복하고 그리스도를 배신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권력 앞에 무릎꿇을 것을 종용한다. ‘보좌’는 실제 ‘의자’가 아니라 ‘통치자’, ‘절대 권력자’ 하나님을 나타내는 단어다.

- 4장이 천국의 설계도?(계 4:3~10)

▲ 이덕술 목사의 2010년 신천지 관련 논문에 게재한 신천지의 조직도

신천지는 계시록 4장이 장차 영계가 이땅에 어떻게 임할지 보여주는 천국의 설계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4:8의 하나님을 보면 ‘영계가 이 땅에 강림한다는 개념’은 없다. 여기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번역됐는데 실제 표현은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이다”는 의미다. 과거·현재·미래를 통틀어서 역사속에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이게 당시 독자들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통치자 로마 황제가 이 세계 역사의 지배자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한 통치자인가라는 질문에 계시록은 하나님은 역사의 완성자로서 역사 속으로 역동적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팔짱끼고 역사가 흘러가는 대로 수수방관하는 분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것을 영계가 임해 육계와 연합한다고 왜곡하는 게 신천지다. 이건 영계와 육계의 합일의 개념이 아니라 영원히 영광과 예배 받으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다.

- 이십사 장로·일곱 등불의 영(계 4:4~5)
신천지에서는 4절~5절의 이십사 장로에 대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일을 맡아서 주관하는 이십사 영이라며 이들은 행정을 맡은 ‘문관’이라면 6절의 네 생물은 심판을 담당하는 무관이라고 주장한다. 24장로가 입은 흰 옷은 의로움을, 금 면류관은 영광스러움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반증과 문제제기: 24장로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적 묘사인가? 4장의 하늘 자체가 물리적 공간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아니다. 따라서 하늘이라는 실체를 상징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십사 장로를 행정을 맡은 문관으로 해석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바른 의미가 무엇인가? 계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는 말씀에서 ‘24’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그렇다. 12+12가 합쳐진 숫자다. 24란 12의 곱절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에서 '흰 옷'은 성도나 찬사가 입고 있는 것으로 의와 청결을 상징한다.

또한 금 면류관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테파누스 크뤼수스'는 단순한 왕관이 아니라 승리의 화관으로(2:10)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의 존귀와 승리를 상징한다.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쓴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24장로는 황제숭배를 위해 그리스도를 버린 자들, 그리고 황제의 옆에서 아부하며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로마 황제와 그 수하의 사람들이 승리하는 게 아니라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라는 영광된 자리에 앉게 된다는 참 소망과 기쁨과 기대를 주고 있는 장면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참고 마르바 던, <약할 때 기뻐하라>, IVP, 2007, 149p. 그 보좌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올바로 찬양할 수 없다. 찬양이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분이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분이며 우리 삶과 모든 만물의 통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책 151p. 12라는 수는 요한계시록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특히 7장에서 그 수는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과 연관되어 거듭 곱해져 사용된다. 12라는 수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지파가 열둘인 것처럼 예수께서 열두명의 사도를 선택한 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여기서 그 수가 두 배로 된 것은 장로들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 즉 첫 번째 언약 백성(이스라엘)과 두 번째 언약백성(교회) 전부를 나타낸다는 것을 말해준다).

- 네 생물
(4:6~8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신천지는 네 생물에 대해 ‘무관’ 개념으로 풀어간다. 네 생물의 앞 뒤에 가득한 눈은 천천만만의 천사들을 의미하며 천사가 천군이라면 이들은 천사장, 군대장이다. 네 생물의 네 얼굴은 각기 다른 사명을 뜻한다. 밀림의 왕 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짐승 같은 사람을 심판하는 천사장, 송아지는 사람의 마음을 갈고 가라지를 뽑는 천사장,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지각을 사용하여 참과 거짓을 심판하는 천사장, 독수리는 영을 심판하는 천사장이라는 것이 신천지의 주장이다. 네 생물의 여섯날개는 천사장을 돕는 여섯 장로로서 24장로가 한 천사장에게 여섯명씩 배정되어 날개 역할을 하며 돕는다고 한다. 24장로, 7등불, 4생물, 천천만만의 눈은 사명과 직위에 따른 구분이다. 따라서 신천지는 조직 속에 계급이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문제제기와 반증
이십사 장로, 일곱등불의 영, 네 생물과 관련하여 신천지는 계급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이것은 매우 인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4장의 어디에도 계급의 계열을 의미한다고 언급하는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네 생물을 천사장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계시록 5:11(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을 보면 네 생물과 천사들은 분리해서 언급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네 생물을 천사의 우두머리, 천사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네 생물은 하늘의 속성을 설명해 주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이 교수는 네 생물의 의미에 대해 사자/ 사람/ 독수리/소가 대표성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지적했다. 사자는 맹수, 사람은 만물, 독수리는 조류, 소는 가축 중에서도 대표적인 피조물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4’는 사방을 뜻하는 우주적 의미로서 ‘모든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나라’, ‘백성’, ‘민족’, ‘방언’도 사실상 ‘온 세상 온 민족’을 뜻하는 4번의 반복구라는 설명이다. 네 생물, 세상 모든 피조물로부터도 찬양을 받으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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