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두려웠을 듯하다. 인터넷에 올라간 프리메이슨 류의 자료를 상당 부분 베껴서 책을 낸 것으로 보인다. 2003년 개설했다는 ‘빛과 흑암의 역사’ 사이트와 동일한 내용이 적지 않다. 이 사이트의 글 중 ‘미국의 건국’, ‘조지 워싱턴의 그림 설명’ ‘1달러 지폐에 대한 설명’, ‘프리메이슨의 경제’, ‘로스차일드 가문’ 등 다수의 내용과 동일하다. 그대로 퍼서 책으로 옮겨 놓고 저자 이름만 바꿔 놓았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했습니다”라는 경어체를 “~했다”라는 평어체로 바꾸는 정도의 변화만 줬다. 그리고는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그림자 정부>(이리유카바 최, 해냄, 1999년)에서 빌려온 내용도 눈에 띈다. 프리메이슨, 시온의 칙훈서(시온의정서라고도 함), 300인 위원회, 검은 귀족, 일루미나티, 해골종단, 원탁회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외교문제 협의회, 타비스톡 인간관계 연구소, 로마클럽, 빌더버그 그룹 등 세상을 움직이는 배후세력으로 이리유카바 최 작가가 지목한 단체에 대한 이야기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책 한권이 소위 말해 대박이 났다. 기자가 갖고 있는 2011년 10월 15일자 책자가 이미 3판 8쇄다. 이 책자가 어려운 출판사 살림에 ‘효자’노릇을 했다는 얘기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 저자 자신이 가장 놀랐을 것이다.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 신호>(예영커뮤니케이션) 얘기다. 인기리에 팔리며 유명세를 탔던 <마지막 신호>, 그런데 표절 시비가 웬말인가?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신호>에 일고 있는 ‘표절 시비’
마지막 성도의 삶을 강조하며 ‘주되심’을 역설하고 다니는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신호>에 대한 표절 시비가 <빛과 흑암의 역사> 인터넷 카페에서 일었다. 이 카페에 ScentOOO라는 회원이 2012년 6월 25일에 ‘데이비드 차의 마지막 신호란 책이 있던데 혹시 장화진 형제님이 데이비드 차 아닌가요?’라는 질문을 올렸다. 장화진 작가는 이 카페의 운영자다. 장화진 작가(<신세계질서의 비밀>의 저자)는 이 질문에 “데이비드 차는 2년 전 <마지막 신호>를 쓴 형제”라며 “‘빛과흑암의 역사’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다 책을 썼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빛과 흑암의 역사’의 내용이라 함은 그가 운영하는 동명의 인터넷 사이트의 글을 말한다. 2003년에 개설했다는 이 사이트에 올라간 상당수의 글이 <마지막 신호>의 내용과 상당부분 똑같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장화진 작가와 데이비드 차를 동일인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장 작가의 글과 데이비드 차의 글이 유사하다. 장 작가는 2012년 7월 5일 “얼마 전 데이비드 차 형제를 만나 사과를 받았다”며 “자신(데이비드 차를 의미함)이 27세에 경험없이 책을 써서 실수했다고 해명했다”는 주장을 자신의 카페에 기록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장화진 작가는 데이비드 차가 자신에게 사과를 했다고 말할까?
기자는 2013년 7월 2일, 7월 18일 두차례에 걸쳐 장화진 작가와 통화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몸이 불편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통화한 내용은 이러했다.
기자: <마지막 신호> 내용과 장 작가의 사이트에 올라간 글이 너무 똑같다. 혹시 데이비드 차의 글을 사이트에 옮겨 놓은 것은 아닌가?
장화진 작가: <마지막신호>에 나오는 내용을 모아보니 약 50p 정도를 내 사이트의 글을 베껴서 썼다. 내가 그 사람 것을 베낀 것은 전혀 없다.
기자: 데이비드 차가 장화진 작가에게 사과했다는데? 무슨 말인가?
작가: 개략적으로 말하겠다. 2010년도에 나온 <마지막신호>가, 내 사이트는 2003년도에 만들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등에 관련한 부분을 그대로 베껴서 출처도 밝히지 않고 게재했다. 그래서 작년인가 따지니까 ‘자기가 어려서 미숙해서 그랬다’며 사과했다.
기자: 작가께서 (데이비드 차에게) 직접 따졌나?
작가: 그렇다.
기자: 작가는 그 (베낀)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작가: 누군가 <마지막신호>를 보라고 선물을 해줘서 그걸 봤다. 많이 익숙한 표현들이 있었다. 그래서 보니까 요약한 것도 아니고 본문을 그대로 카피를 했더라.
기자: 도덕적인 문제인데··· 사과를 한 후 책임있는 자세를 취하진 않았나?
작가: 그 다음부터는 출처를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확인은 못했다. 그의 말을 믿고 있을 뿐이다.
<마지막신호>가 ‘빛과 흑암의 역사’라는 사이트 글을 그대로 베껴서 썼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50페이지 정도를. 기자가 확인한 결과 <마지막 신호>에 나오는 ‘미국의 건국’, ‘조지 워싱턴의 프리메이슨 관련설을 보여주는 그림’, ‘1달러 지폐 설명’(이상 <신호> 186~188p), ‘프리메이슨의 경제’(<신호> 188p), ‘로스차일드 가문’(188~190p), 프리메이슨의 상징(191~195p) 등 다수의 글들이 ‘빛과흑암의 역사’ 사이트에 올라간 글과 일치했다. 쉽게 말해 그냥 누군가 한명은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퍼다 옮겼다고 보면 된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퍼왔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마지막신호>의 약 40p에 이르는 내용이 '빛과 흑암의 역사'에 나온다.(<마지막신호>와 빛과 흑암의 역사 비교 자료 바로가기).
이뿐 아니다. <마지막신호>는 <그림자 정부>라는 책도 일부 인용 표시 없이 사용했다. <신호> 58p의 피라미드 구조는 변형하긴 했지만 <정부> 22p와 유사하다. 그림 최상단에 <신호>는 ‘JESUIT’을 넣고 <정부>는 ‘일루미나티’를 넣은 것 외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신호> 76p의 빌더버그 회의에 대한 내용은 <정부> 403~404p, <신호> 104p~105p의 해골종단에 대한 설명은 <정부> 351~353p; 354p, <신호> 109p는 <정부> 329~331p와 유사하거나 같다. 프리메이슨에 대해 설명하는 <신호> 185p는 <정부> 32p를 차용, <신호> 187p는 <정부> 90; 93; 95p 일부와 유사한 내용이다.
표절시비 책에 입혀진 ‘신적 권위’
10년 전에 출판된 <그림자정부>에는 <마지막신호>에서 거론한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 세력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 나온다.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림자정부>는 <마지막신호>와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내용이 구체적이고 치밀하고 호소력 있다. 그러면서도 <그림자정부>는 겸손하다. 왜냐하면 ‘서문’에 이 책이 ‘이면사’(an inside history),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 중심으로 서술한 내용이라는 것을 밝힌다.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라고 여유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데이비드 차는 자신의 책에 ‘신적 권위’를 입혀 놓았다. 교회의 초청을 받아 강단에서 간증을 할 때면 예수님이 써달라고 해서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예수님께서 “책 한권 써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주님, 책으로 쓰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Final sign(마지막 신호)라는 제목을 딱 주셨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꿈 얘기를 하면서 “꿈 속에서 책의 목차를 외우고 꿈에서 깨자마자 목차를 메모지에 적고 그날부터 21일만에 책을 다 썼습니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예수님이 사인해 줬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다. “(예수님께서) 책을 쭉 보시면서 무슨 무슨 내용은 지금 공개하지 말라고, 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용을 빼고, 사진도 빼라는 거예요. 그래서 빼고, 사인을 해주시길래, ‘야, 예수님이 사인도 다 해주시는구나, 감사하구나’.”(이상 2010년 12월 15일 세계등대중앙교회 집회 메시지)라고 말했다.
<마지막 신호>에 대해 마치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쓴 책인 것처럼 신적 권위를 부여했다. 예수님이 뺄 내용과 뺄 사진까지 지적하고 사인까지 해줬다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데이비드 차의 주장처럼 계시 받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간 글과 15년 전 출판한 책자에서 사용해 온 개념·내용이다. 이는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다. 성령사역, 임파테이션, 마지막 성도의 삶, ‘주되심’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데이비드 차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제기다.
표절 시비와 관련, 기자는 예영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예영측은 “데이비드 차 씨와의 3년간의 저작권 계약 기간이 지나 더 이상 (마지막신호를) 출판하지 않기로 했다”며 “더이상 이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다만 표절에 대해서는 “프리메이슨에 대한 내용들의 상당수는 인터넷 등에 공개되어 와서 유사한 책이 많다”며 “1980년대부터 있었으니까 누가 원조라고 주장하기도 어렵고 인정받기도 힘들다”고 반박했다. 베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최초의 작성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프리메이슨 관련 자료들이 너무 산재해 있기에 표절 시비 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 1980년대부터 이미 떠돌던 글을 데이비드 차가 짜깁기했음을 인정하는 말로도 들린다.
핵심 당사자인 데이비드 차는 기자에게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데이비드 차에게 기자(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마지막성도>라는 책에 나온 저자 이메일 주소로 표절 문제를 비롯, 그의 본명, 출석 교회 등을 묻는 10여개의 질문을 보냈다. 그러나 인터뷰를 요청한 지 일주일이 될 무렵까지 연락이 없었다. 기자가 2번째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을 때에야 그는 특정 국가로 출국하기 전이라며 답장을 보냈다.
그는 “반대쪽의 입장에서 조언하시는 글들을 통해 제 안에 부족함이 있다면 저도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결국 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바르게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등 원칙적인 답변만 했다. 하지만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이 없었다. 본지는 혹시라도 데이비드 차가 표절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전달해 오거나 인터뷰에 응할 경우 기사에 반영할 계획이다.
인기 강사·베스트셀러 작가 데이비드 차의 위험성 시리즈 기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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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차가 계시 받았다는 책 <마지막 신호>와
이리유카바 최의 <그림자 정부> 유사성 비교
빌더버그 그룹
“빌더버그의 초대회장을 지낸 베른하르트 왕자는 1911년 독일왕가의 후손으로 태어나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현 베아트릭스 여왕의 어머니)과 1937년에 결혼하였다. 네덜란드 왕가의 오렌지 가문으로 유럽 유태계 갑부 로스차일드 가문이 소유한 셀 석유회사와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 가문 소유의 세계 메이저 석유 회사 엑손 모빌의 대주주이기도 하다.”(<신호>, 78p).
“빌더버그의 초대 회장을 지낸 번하트 왕자는 1911년 독일의 왕자로 태어나 줄리아나 여왕(현 베아트릭스 여왕의 어머니: 300위원)과 1937년에 결혼했다. 줄리아나 가문은 오렌지 가문으로 알려진 돈 많은 왕가이며, 로스차일드 소유의 셀 석유 회사와 록펠러 소유의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엑손 회사의 대주주기도 하다.”(<정부> 403~404p).
해골종단
“이들은 본부를 미국 예일대학에 두고 엄격한 비밀을 지키고 있으며, 회기 중에는 ‘모소리움’이라고 부르는 ‘납골당 무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신호>, 104p).
“이들은 본부를 미국 예일대학에 두고 엄격한 비밀을 지키고 있으며, 회기 중에는 ‘모소리움’이라고 부르는 ‘무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모인다.”(<정부>, 351p).
“미국에서 윌리암 러셀 장군과 한때 미국 국무장관을 지냈던 알폰소 태프트가 1832년 창설하였다. 1856년에 코네티것 주의회에서 직접 정관을 만들어서 러셀신탁이란 이름으로 등록했으며 활동내용이나 회계 감사 등 모든 면에 대해서 보고할 의무가 면제되었다. 러셀 신탁이 해골종단의 법적인 명칭인 것이다. 이 조직은 애초부터 심한 인종편견을 갖고 있어서 유색 인종이나 다른 인종을 상대로 마약장사를 해온 조직이기도 하다. 19세기 터키의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입하는 아편장사를 해서 막대한 돈을 벌기도 했다.”(<신호>, 104p).
“미국에서는 윌리엄러셀 장군과 알폰소 테프트가 1832~1833년경에 창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 조직은 1856년에 코네티컷 주의회에서 직접 정관을 만들어 ‘러셀신탁’이라는 이름으로 등록했으며, 활동 내용이나 회계 감사 등 모든 면에 대해서 보고할 의무가 면제되었다. 그러므로 러셀신탁이 해골종단의 법적인 명칭이다. 이 조직은 애초부터 심한 인종편견을 갖고 있어, 유색 인종이나 열등 인종을 상대로 마약 장사를 해온 조직이기도 하다. 이들은 러셀공사라는 회사를 만들어 19세기에 터키의 아편을 중국으로 밀수입하는 아편 장사를 해서 막대한 돈을 벌기도 했다.”(<정부>, 352~353p).
“미국의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48년 학생 시절에 가입했으며, 이 조직의 도움으로 CIA국장까지 올라갔다. 그의 아버지 프리스코트 부시는 1918년 5월 5일 다른 단원들과 함께 미국의 유명한 아파치 인디언의 지도자였던 제로니모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해골을 도굴해 왔고, 그것을 예일대학에 있는 자신들의 모소리움에 갖고 와서 제식을 올리는데 사용하면서 이때부터 해골종단의 상징이 해골이 되었다. 이들은 미국 남북전쟁 때 로스차일드 가문과 결탁하여 남부와 북부에 전쟁자금을 대주었다.”(<신호>, 105p).
“그의 아버지 프리스코트 부시도 아주 유명한 해골종단단원이었다. ··· 그는 1918년 5월 5명의 다른 단원들과 함께 미국의 유명한 아파치 인디언의 지도자였던 제로니모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해골을 도굴해 왔다. 그것을 예일대학에 있는 자긴들의 모소리움에 갖고 와서 제식을 올리는 데 사용한 것이다. 이들은 미국남북전쟁 때 로스차일드 가문과 결탁하여 남부와 북부 양편에 전쟁 자금을 대주었고···.”(<정부>, 354p).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 창시자 아담 바이스하우프트는 당시 바이에른대학의 총장으로 있던 숙부의 영향으로 15세에 예수회가 운영하는 잉골슈타트대학에 입학한다. 1772년부터 이 대학에서 교회법을 가르치며 가톨릭교리에 어긋나는 진보적 사상을 강의해 주목을 받았다. 27세의 나이에 종교철학과 주임교수의 자리에 오른 그는 당시 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 후원자는 자본주의 왕조를 이룩한 암셀 로스차일드였다. 그들은 1773년 ‘시온의 12현자’ 회합을 갖고 이 자리에서 세계를 지배하기 위한 정치, 경제 전략에 대해 논의하며 새로운 세계질서의 청사진을 그리게 된다. 이것이 오늘날 알려진 ‘시온의정서’이다.”(<신호>, 109p).
“이 조직의 창시자는 아담 바이샤우트로, 1748년 독일 바바리아 지방 소재 대학의 한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 ·바이샤우트는 남작의 경제적 도움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며 15세에 예수회 사제단의 장학금을 받고 예수회 대학에 입학했다. ···그후 그는 자신의 인기를 바탕으로 종교철학과의 주임 교수로 추대되었다. 당시에는 종교(예수회)가 현실 생활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기에 ‘종교철학과 주임 교수’는 일반학과 교수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중요한 자리였다.··· 한편 1770년 그는 다른 유대인처럼 금융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야심이 대단했던 마이어 A. 로스차일드와 상봉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세계를 통치하는 거대한 일을 꾸미자는 데 의기투합하여 ‘시온의 칙훈서’를 현대화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단 로스차일드는 표면에 나서지 않고 경제적인 지원만 하기로 했다.”(<정부>, 330p~331p).
기타
“수도 워싱턴 D.C에서 D.C는 District of Colombia로 컬럼바 여신의 이름을 딴 컬럼버스파(프리메이슨 조직)의 지역이란 뜻이다.”(<신호>, 187p).
“콜럼버스는 컬럼바 여신의 이름을 변형시켜 붙인 가명이며,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역시 ‘컬럼비아 사람들의 지역’(District of Colombia)이란 단어에서 나온 이름인데, 이 역시 컬럼바에서 나온 이름이다.”(<정부>, 90p).
“미국 뉴욕(New York)도 영국 프리메이슨 요크(York)파의 새로운 근거지란 뜻이다.”(<신호>, 187p).
“우리가 잘 아는 뉴욕(New York)이라는 지명 역시 단순히 영국 ‘요크’(York)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새로운 요크’란 뜻이 아니고 프리메이슨 요크파의 새로운 본거지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정부>, 93p).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 중 53명이 프리메이슨이었고 위싱턴 이후 연속으로 17명의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이었다.”(<신호>, 187~188p).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56명 중 53명이 메이슨이었으며, 초대대통령 워싱턴부터 시작해 연속적으로 17명의 대통령이 메이슨이었다.”(<정부>, 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