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0-28 07:21 (수)
류광수 목사는 괘변론자 소피스트처럼···
상태바
류광수 목사는 괘변론자 소피스트처럼···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3.03.19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6-2)

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올립니다. 이 원고는 이광은 목사(우리주님의교회)가 2008년에 다락방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촉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목사는 2004년까지는 평범한 다락방 목사였으나 2005년부터 다락방 신학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다가 2009년 류광수 목사에게 다락방 메시지 수정을 촉구하며 신학 질의를 하고 탈퇴한 목사입니다. 이 목사의 문장은 쉽고 짧고 간결합니다. 더 큰 장점은 그러면서도 다락방의 핵심적 문제점을 파고 든다는 점입니다. “다락방이 왜 이단인가?” 궁금한 독자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다보면 다락방 이해에 큰 도움을 받으리라 사려됩니다. 이 원고는 복음의 수호자 안티 다락넷(cafe.naver.com/antidarak)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본 지(www.kportalnews.co.kr)에는 총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주>

(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6-1)에 이어서)

(7) 십자가 복음 - 우리 죄를 사하심으로 거룩하게 하심
정결케 됨은 죄사함에서 오는데 그것은 오직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로 얻게 된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느니라"(히9:22).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거룩함은 죄사함에서 오는 것이다. 더러움을 벗어남, 죄 사함, 의롭게 됨, 정결케 됨, 거룩해짐, 구원받음, 하나님의 자녀됨.... 모두 같은 용어이다. 그래서 오직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이 된다. 인간이 거룩해질 수 없는 것,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죄 때문이다. 사탄 때문이 아니다.

사탄은 원죄에 빠진 인간을, 인간 밖에서 유혹하고(고후11:14) 위협하며(벧후5:8) 참소하는(계12:10) 존재이다. 원죄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되는데(루이스벌콥 조직신학 상 P464) 첫째,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죄책(=죄값)이 우리에게 법적으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고 둘째, 아담의 부패한 본성을 가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스스로는 의로워지고 거룩해 질 수 없다. 우리가 갚아야 할 법적인 죄값은 “정녕죽으리라”(창2:17)는 사망형벌이다. 이 값을 치룰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우리가 값을 치루려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죄 값이 중상 정도라야 혹시 가능성이 있지··· 죄 값 자체가 사망인데··· 내 스스로 죄 값을 갚을 수도 없고, 만약 갚는다면 사형 집행으로 모든 상황이 끝이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는 법적 형벌인 사망의 죄책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절대 불가능하지만 혹시 인간이 법적 죄책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도 원죄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실제적인 문제로 지금 우리 속에 가지고 있는 아담의 부패한 본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은 인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이 바로 원죄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원죄가 아담이 지은 것으로 나와 상관없는 옛 범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아담의 옛 범죄는 지금 내게 그대로 본성적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원죄이다. 나는 아무 문제없는데 아담 때문에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내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아담의 부패한 죄의 본성 때문에 죄인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우리가 처한 원죄의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첫째, 하나님 앞에 날마다 우리의 법적인 죄책을 참소함으로 죄값을 지불함 없이는 형벌집행 정지를 불가하게 하며 둘째, 우리 개인에게는 부패한 죄의 본성을 유혹함으로 죄의 종노릇 하여 구원의 가능성을 전무하게 한다(롬 6:23).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의 “죄문제 해결”, 지금까지 언급해오던 용어로는 “거룩해짐”, 바울의 로마서 용어로는 “의로워짐” 복음의 일반적인 용어로 “구원받음”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처한 이 죄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심으로 해결하여 주신 것이다.
첫째, 예수의 십자가를 믿는 순간 아담의 죄책에서 벗어난다. 이것이 칭의이다(=법적 문제 해결).
둘째,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죄의 본성을 이기게 된다. 이것이 성화이다(=실제적 문제 해결)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고후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제물로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문제를 해결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고 증거한다. 이제 사탄은 우리를 더 이상 참소할 수도, 위협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보혈이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 우리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다. 그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죽으심 부활을 많이 말하고, 아무리 복음이라 확신하고 강조해도 죄사함을 말하지 않는 십자가는 성경의 십자가가 아니며, 거룩함이 나타나지 않는 복음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다.

(8) 바울이 거부한 율법 -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의식법
바울이 설명한 복음을 한마디로 정의해보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대속적 죽음을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음(=죄사함, 거룩해짐, 의로워짐)” 바울의 사역은 언제나 이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부딪혔고 그의 서신은 이들의 공격에 맞서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바울과 유대주의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똑같다.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되는 방법에 있어서 다르다.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을 우리 힘으로 지키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바울은 그것은 불가능하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대속제물로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만 인간은 거룩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줄여서 오직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거룩해지는 것을 배제한 오직 믿음이 아니라 거룩해지기 위한 오직 믿음이다. 오직 믿음으로 거룩해지는 이유는 앞에서 이미 설명하였다.(법적 죄사함, 실제적 그리스도와 연합)

따라서 기독교의 거룩은 영적인 거룩, 또 실제적인 삶에서의 거룩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삶의 거룩은 이 땅에서 완전 거룩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울이 오직 율법이 아닌 오직 복음을 주장하는 내용이다.

“율법은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거룩하게 못하나, 복음은 죄 문제를 해결함으로 거룩하게 하신다.” 따라서 복음은 율법과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할 수 없던 일을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옛언약 복음을 새언약이라 말한다.(렘31:33) 율법은 통상 세가지로 구분된다(서철원. 복음과 율법의 관계 P94). 첫째, 구약의 종교 의식법(제사법), 둘째, 시민 사회법(당시 이스라엘백성에게 해당되는 희년법 토지법) 셋째, 윤리 도덕법이다.

이중 바울이 거부했던 율법은 의식법이다. 구약의 의식법을 지켜야 하나님 백성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유대인들과 교회내의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에 맞서서 바울은 끝까지 율법(의식법)을 거부하고 오직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만 구원된다는 십자가 복음의 핵심원리를 강조한 것이다. 구약의 의식법은 폐지되고, 시민법은 그 정신만 남아있으되, 도덕법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9) 바울이 주장한 복음 - 그리스도인의 삶을 거룩하게 하는 복음
복음은 율법을 거부하는가? 가장 율법을 공격했던 바울은 도덕 폐기론을 주장했는가? 절대 아니다. 도덕 폐기론자들은 바울이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유대교의 의식법을 거부한 것을 바울이 구원 얻은 성도의 생활규범으로서의 도덕법까지 거부했다고 주장하는 오류에 빠져있다. 간단하게 몇 구절만 들어보겠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2-14)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9-10)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9-21)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4:3.7)

그 외의 일반서신에서 몇 구절 적어보면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2:1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13:12)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벧전3:15)

이러한 거룩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또 할례같은 율법의 종교의식법을 지킴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칭의를 얻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성화를 통해 점차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 이외에 인간은 절대로 죄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거룩해질 수 없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오직 예수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룩해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적으로 이미 거룩해졌고, 육적으로는 지금 거룩해져가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죽으면 당연히 천국가는 것이다.

(10) 마지막으로 신실한 다락방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저는 한번도 여러분의 믿음을 의심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은 순수한 동기로 따라가는 것이고, 최소한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다락방은 십자가 복음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절대로 이단이 아니고 또 이단이 될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가르쳐지는 내용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 책임이 아니라 류 목사와 거기에서 이익을 취하는 일부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여러분들이 실제로 따라가고 있는 다락방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다락방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다락방은 십자가 대속, 칭의 성화, 여기에 영적문제를 해결하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따라가는 다락방은 절대로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사탄 꺽는 사탄신학입니다. 류 목사에게서 한 번이라도 칭의와 성화를 통한 죄사함을 들어보셨습니까?

내 모든 죄를 위해 담당하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에 대한 감사 감격을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적문제 해결하셨다는 말은 수도 없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영적문제 해결하신 그리스도를 깨달았으니 다른 사람 영적 치유하자(=전도)라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그 전도가 내 개인의 죄 사함과 성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한번이라도 들어보셨습니까? 다락방에서 복음 깨달았다는 것은 사탄을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영적 능력을 깨달았다는 것이지 죄인된 나를 위해 대속제물로 돌아가시고 지금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나를 새롭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깨달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래서 다락방 복음의 깨달음은 확신과 교만으로 나타나지만, 십자가 복음의 깨달음은 확신과 감격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다락방 복음의 확신과 십자가 복음의 확신은 미세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까지는 지적하며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류 목사는 설교 때마다 은연중에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하나님이 세우신 한국교회를 복음 없다고 비난하고 다락방만이 아니 자기만이 유일한 복음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뭔가 깨닫기는 깨달았나봅니다. 깨달았다는 단어는 사실 초대교회 영지주의 이단들의 대표적인 용어입니다.

"지적인 확신"입니다. 뭔가 흔들리지 않는 "신비한 확신." 실제 삶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다락방 복음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류 목사는 자신의 어렸을적 교회생활을 이야기하며 교회의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데 그 여섯 교회가 한국교회의 전부입니까? 저는 정말 귀중한 목사님들과 성도들을 많이 만났고, 류 목사가 복음 못 깨달았다고 말하는 그분들 때문에 복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류 목사는 설교중 주기철 목사, 손양원 목사, 링컨, 존 워너메이커, 쉬브 등은 복음의 사람으로 칭찬합니다.
그러면 이들은 다락방 복음을 깨달은 사람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분들은 류목사가 그렇게 복음 못깨달았다고 말하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사람들입니다.

논리적인 오류이지요. 다락방 복음을 못 깨달은 사람들이 응답을 받았다고 말하니요. 류 목사는 아마 주기철 목사님이 살아계셨으면 설교 중에 절대로 응답받은 예로 들지 않을 것입니다. 주 목사님이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기에 자기 필요에 따라 다락방의 유리한 예로 드는 겁니다. 주 목사님을 복음의 사람으로 칭찬하면, 주 목사님이 나는 다락방이 아닌데 라고 말씀하실 때 할 말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류목사가 응답받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품으로 가신 믿음의 분들입니다.

류 목사는 말에 능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선동적이고 자극적인지 일반인 여성신도들은 금방 감동받습니다. 마치 서양 고대철학사에 나오는 궤변론자 소피스트처럼 수사학과 웅변의 기술을 가졌는데 그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보다는 자기 목적을 위해 자기가 원하는 데로 화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 속에 소피스트들의 윤리 없는 기능을 거부하고 참된 인간의 도덕성을 가르친 사람이 소크라테스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를 인류의 스승이라고 합니다.

분명 류목사는 보기 드문 천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은 성경의 중요한 내용을 발견해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사실로 믿도록 말로 전달하는데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사람의 어눌한 말속에 있는 성경의 진리 자체가 능력이 있음을 여러분은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될 것입니다.

다락방에서 세계복음화를 수도 없이 말하지만 그것은 십자가 대속으로 개인의 변화를 통한 영혼구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역사하는 사탄을 꺾고 영적치유해서 구원한다는 다락방 복음화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것입니다(언젠가 다락방 20가지 전략에 대해서 반드시 이야기 할 것입니다). 다단계와 유사합니다. 성공사례는 많으나 내 주변에서는 볼 수 없고(=성공은 언제나 내가 확인할 수 없는 먼 곳에만 있습니다).

계속 강의를 듣고 자기 암시를 해야 지속되며, 결과는 결국 피라미드 상층부에게 돌아갑니다. 구원받은 성도들, 특히 이단 소리 들어가며 다락방에 계실 정도면 전도 대한 거룩한 사명감이 불타실 것입니다. 전도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거룩한 음성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를 많이 하고 생명이 영접된다고 해도(저는 영접되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의 죄인됨과 십자가 대속을 알고 영접하는지 의문입니다), 그 전도의 내용이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전도일까요? 전략상 불신자들을 다락방 식으로 영접시켜 교회에서 십자가 복음을 가르치는 것까지는 좋습니다.

실천신학측면에서 얼마든지 인정하고 장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 대속없는 사탄신학만 말하고 가르친다면 과연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도일까요? 다락방 복음으로 인해 여러분들 주변에 아름다운 열매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거짓열매들이 아닌 참된 열매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의 확신이 넘친다는 것, 삶의 방향이 전도에 맞춰졌다는 것, 육신적인 추구보다 복음을 더 생각하게 된 것, 그러나 다락방 전체를 살펴보고 복음의 내용을 성경으로 깊이 확인해보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님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덧 복음의 우월성에 빠져 남을 비판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발견되고 아무리 그리스도 이름을 불러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영적문제들, 갈수록 차가워지는 교회의 생활, 성경은 전혀 읽지 않고 류 목사 강단메시지를 하나님 말씀이라고 강요받고 있는 모습, 특히 자기 교회 목사님조차 성경의 하나님 말씀이 아닌 류 목사 메시지를 그대로 앵무새처럼 전하고 주일학교 아이들이 우리 믿음의 형제들과 단절되어 십자가 대속은 전혀 모르고 성경에는 렘넌트 7명만 있는 줄 아는 참담한 현실 앞에···.

다락방에 계시려면 한국교회를 비난하지 말고 다락방 복음을 근본적으로 십자가 복음으로 바꾸도록 촉구해 주시고, 다락방을 나오시려면 한국교회와 함께 십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