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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무게 중심은 사탄꺾는 ‘사탄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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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무게 중심은 사탄꺾는 ‘사탄신학’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3.03.0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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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6-1)

다락방 출신 목회자가 밝히는 류광수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올립니다. 이 원고는 이광은 목사(우리주님의교회)가 2008년에 다락방 신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촉구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목사는 2004년까지는 평범한 다락방 목사였으나 2005년부터 다락방 신학의 문제점을 알게 되어 고통스러워하다가 2009년 류광수 목사에게 다락방 메시지 수정을 촉구하며 신학 질의를 하고 탈퇴한 목사입니다. 이 목사의 문장은 쉽고 짧고 간결합니다. 더 큰 장점은 그러면서도 다락방의 핵심적 문제점을 파고 든다는 점입니다. “다락방이 왜 이단인가?” 궁금한 독자 여러분들도 이 글을 읽다보면 다락방 이해에 큰 도움을 받으리라 사려됩니다. 이 원고는 복음의 수호자 안티 다락넷(cafe.naver.com/antidarak)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본 지(www.kportalnews.co.kr)에는 총 10여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편집자주>

다락방 복음과 십자가 복음(6-1):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
다락방 복음을 사탄신학이라고 하면 다락방 측에서 거북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아마도 다락방 내의 모든 분들은 다락방 복음이 베뢰아 사탄신학과 같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다락방 분들은 자신은 철저한 개혁 보수신학 위에 강력한 영적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의 보수신학은 이론적으로는 맞는데 실제 능력이 없는 이론신학이고 다락방은 이론신학뿐만 아니라 실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사탄신학이라는 것은 사탄만 말하는 신학이 아닙니다. 만약 다락방이 십자가 없이 사탄만 말한다면 그것은 아예 기독교도 아닐 것입니다. 사탄신학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대속을 사탄을 꺾는 것에 집중하는 가르침이란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 사건을 개인의 죄사함을 위한 것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고, 사탄 꺽는 것에 두는 것입니다. 다락방에서 말하는 영적문제 치유, 흑암세력 결박이 바로 사탄을 꺾는 것입니다.

저의 이 말에 대해 다락방에서는 우리도 개인의 죄사함을 이야기한다고 말하겠지요. 저는 지금 무게중심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만약 류 목사가 복음 설명의 90%를 칭의와 성화를 통한 개인의 죄사함으로 강조하고 나머지 10%정도를 특수한 사람들 곧 귀신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불신자들을 전도하기위해 십자가의 왕적 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어떤 신학자도 다락방에 대해서 거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설명했다면 십자가 복음, 다락방 복음이라는 용어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다락방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대속의 능력을 귀신들리지 않은 일반적인 불신자의 영역에서 귀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 적용범위를 넓히는 아주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실천신학적인 측면에서 복음을 개인의 칭의와 성화로 설명할 때보다 영적문제로 설명하는 것이 지금 당장 고생하고 있는 귀신들린 사람들에게 훨씬 피부적으로 와 닿아 이해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 내용의 변형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적용과 설명 차원에서 이해하기 쉬운 불신자의 용어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또 그 신학의 결과로 다락방 성도의 삶은 모든 자들에게 칭송받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다락방이었다면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초창기 다락방에 동참했던 많은 분들은 류 목사가 이런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동참한 것이고, 지금까지 다락방에 계신 모든 신실한 분들도 류 목사가 이런 복음을 주장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대로 계신 겁니다. 그러나 류 목사는 이런 순수한 모든 분들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다락방 복음은 절대로 칭의와 성화를 통한 죄사함이 아닙니다. 죄사함은 그냥 다 아는 용어로 지나가고, 그 핵심 내용이 사탄 꺾는 것(90%이상)입니다. 그래서 다락방이 사탄신학이라는 것입니다. 다락방 내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잡음들은 사탄신학의 결과가 열매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열매가 다락방을 사탄신학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이 사탄신학이니 다락방의 그 열매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락방 복음에는 위험한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베뢰아의 귀신론과 구원파의 도덕폐기론입니다.

첫째, 다락방 복음은 베뢰아 귀신론과 구조가 똑 같습니다. 베뢰아 귀신론은 사탄신학의 대표입니다. 김기동 목사의 대표구호가 “예수 내 구주”입니다. 예수 보혈을 얼마나 강조하는지···. 류 목사가 그리스도를 강조하는 것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가 베뢰아 귀신론을 거부합니까? 예수 십자가 보혈을 귀신 쫓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류 목사는 틈나면 불신자 죽어 귀신된다는 베뢰아 귀신론이 틀렸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귀신이 불신자 영혼이 아니고 범죄한 천사라는 것만 다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목적을 사탄을 직접 꺽기 위해서라고 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모든 질병은 귀신이 준 것이다”, “귀신은 불신자 죽은 영혼이다”라는 베뢰아의 거북한 내용만 살짝 바꾸었지 그의 근본 사상은 요일 3:8절을 마귀 자체로 보는 베뢰아 귀신론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류 목사의 근본 신학사상입니다.

한가지 더 류 목사는 창1:2절의 흑암과 혼돈, 공허를 사탄의 타락으로 봅니다. 이것은 신학계에서는 Gap Theory(간격이론)라고 부르는데 베뢰아에서 바로 이 간격이론을 주장합니다. 즉 창1:1절과 창1:2절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1:1절의 첫 창조때 이미 완전하게 창조하셨지만 사탄이 타락함으로 온 세상이 흑암 혼돈 공허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1:3절부터는 하나님이 사탄 타락으로 혼동되어진 세상을 다시 창조한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류 목사는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베뢰아와 똑같이 Gap Theory(간격이론)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개혁신학은 사탄의 타락을 여섯째 날 인간창조 직후로 설명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이해되고 특히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타락한 세상 속에, 사탄과 같이 위험한 존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방비 상태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또 사탄에 대한 주의를 전혀 주지 않으신 상태에서 인간의 범죄 책임을 물으신 악한 하나님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류 목사가 사탄신학인 것은 Gap Theory(간격이론)를 주장해서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개인의 칭의와 성화를 통한 죄사함에 두지 않고 사탄을 꺾는 것에 두기 때문입니다.

둘째, 다락방 복음은 구원파의 도덕폐기론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초창기 류 목사 메시지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가 구원을 강조하니 구원파로 몰아갔다고 하면서 “그래 나는 구원파 할테니 너희는 멸망파 해라”라고 비꼬면서 말합니다. 그런데 구원파의 핵심은 구원을 강조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원파의 구원이 “구원에 대한 확신” 특히 “(신비한) 깨달음”에 있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중요한 요소인 의지적 회개· 결단은 무시하고, 피동적 깨달음만으로 구원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구원파의 구원은 도덕폐기론으로 흘러갑니다.

내가 지금 죄를 지어도 그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구원의 증거는 내게 있는 확신,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나는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죄를 짓는 것은 죄가 아니다. 이유는 의인인 내가 하는 행동은 죄가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결론입니다. 개인의 자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류 목사 메시지와 그에 따른 열매들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초대교회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의 가르침이 오늘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락방 복음은 한국교회의 위험한 이단사상인 베뢰아 귀신론과 구원파 도덕폐기론에 대해서 표면적으로 몇 가지 용어를 바꾸었지만 그 내면적으로는 위험 요소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베뢰아와 구원파에 대한 경각심을 해제시키고, 그 내용을 받아들이게 하는 아주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십자가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언약의 관점에서 복음과 율법을 설명해 보려합니다.

1. 다락방 복음
다락방 복음의 특징은 율법에 대한 지나친 거부에 있다. 마치 율법을 공격하는 것이 복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류 목사 메시지의 근저에는 언제나 한국교회 비판이 들어있는데 그것은 한국교회가 복음 없이 율법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수의 일부 다락방 목사와 신자들도 류 목사와 똑같이 한국교회를 율법주의 바리새인으로 공격한다. 다락방 복음에 확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한국교회가 율법에 묶여있다고 더욱 강조한다. 이것은 자신들은 율법에서 빠져나와 복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바울, 신약성경이 율법을 버려야할 것으로 가르치는 것일까?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십자가를 죄사함으로 보고, 개인의 칭의와 성화에서 출발하여 모든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십자가 복음과 십가가를 사탄꺾는 영적인 힘으로 보고, 개인의 변화없이 영적치유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사탄신학으로 나눠지게 된다.

2. 십자가 복음
복음과 율법은 언약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1) 언약 - 하나님이 범죄한 우리에게 다시 우리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 언약이란 하나님이 아브라함 직계자손들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레26:12).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의 피조물됨을 거부함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사탄과 함께 죄로 인한 사망의 형벌을 받아, 사는 동안의 극심한 고난과 고통, 죽음 이후 육체의 파괴, 그리고 그 이후의 영원한 지옥 형벌을 향해 끌려가고 있는 절망에 빠진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를 그대로 형벌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다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이다. 다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회복됨으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그분께 순종하는 삶이 회복되는 것, 다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하나님 자녀가 되는 것, 구원받는 것, 이 약속이 바로 언약이고 기독교의 구원이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2) 아브라함 - 하나님 백성 만드시기 위한 믿음의 조상.
창3:15절 여자의 후손으로 예언된 인류구원의 시작은 창5:3절 아벨의 축복을 받은 셋의 후손으로 연결되어지며 창9:26-27절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실 것을 말씀하시고 창12:1-3절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셈의 후손 가운데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무조건으로 선택하셔서 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는데(창12장) 자식이 없던 그에게 네 자손이 땅에 편만해질 것과 네 자손이 거할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15장) 또 하나님은 아브라함 자녀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 백성인 증표로 할례언약을 주셨고(창17장) 아브라함의 후손은 인간의 자손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백성임을 나타내시려, 100세인 아브라함과 경수가 끊어진 90세 사라에게서 이삭을 낳게 하셨다(창21장)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출생을 한 이삭은 육적 이스라엘 백성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 되는데 여기서 아브라함 자손 곧 이삭의 혈통을 따라 출생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백성을 혈통적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육신적 아브라함 자손)으로 보는 것이 유대교이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영적 아브라함 자손)으로 보는 것이 기독교이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장의 대주제이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알지어다”(갈3:7).

(3) 할례 - 이방인과 구별된 거룩한 하나님 백성의 흔적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된 표징으로 할례를 주시어 하나님의 언약을 그 살에 있어 영원히 있지 않게 하셨다(창17:13).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언약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지니며 날마다 하나님 백성임을 확인하게 하신 것이다. 우상 숭배하는 이방 백성들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몸의 흔적을 통해서 확인시키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방인과 구별됨”이다. 하나님의 특별 섭리로 태어난 아브라함 자녀, 이삭의 직계 후손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점차 번성하였는데 야곱은 이스라엘을 12지파로, 요셉은 12지파가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는데 사용된 인물들이다. 애굽에 내려가서야 비로소 이스라엘은 70여명의 가족형태에서 벗어나 대략 200만명이 넘는 큰 민족을 이루게 된다.

(4) 율법 -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을 위한 구체적 규범
하나님은 이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시내산에서 “자신이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언약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출19:5-6).

하나님은 이미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지킴으로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신 것이다. 베드로는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을 주시며 언약을 직접 맺으신다.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모두 백성 앞에서 낭송한 후 백성들 앞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뿌리며 언약을 맺는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백성된 증표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출20-23장). 이것은 우리가 율법을 지켜 이방인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24:8).
할례와 율법의 공통적 특징은 이방인과 구별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됨이다. 할례는 몸에 흔적을 남겨 “거룩하게 구별됨”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것이고, 율법은 거룩함을 위한 구체적인 규범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이스라엘의 어떤 행위와 조건을 보고 하나님 백성 삼으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약속 곧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였다. 구약의 옛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자녀되었듯이 신약의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은혜로 하나님 자녀가 되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5) 거룩함 - 하나님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율법은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상숭배하는 가나안 이방인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거룩해져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으니 거룩해지는 것이다. 거룩해지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 백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되었으니 그 결과 거룩한 삶이 따라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울이 철저하게 강조하는 칭의와 성화의 관계이다. 일반 종교는 윤리가 구원의 조건이지만, 복음에서 윤리는 구원의 결과이다.

출31:13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
레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찌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니라
레20:26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22:32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요
사62:12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은 필연적으로 사탄을 섬기며 우상숭배하게 되어있고 우상숭배하는 이방인, 아니 죄인된 모든 인간들의 특징은 더러움이다. 여기서 더러움은 영육간의 더러움을 모두 말한다. 이는 사탄은 그 속성이 도덕적으로 더러우며, 인간은 사탄의 속성인 부패한 죄의 본성을 태어날 때부터 원죄로 가지고 있다.

레위기 18장은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이 지켜야할 구체적인 계명들 중 음행과 연관된 부분을 언급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미, 계모, 자매, 손녀, 이복누이, 고모, 이모, 백숙모, 형수, 제수, 조카··· 를 범하지 말고 간통, 동성연애, 수간(짐승과 관계함)등을 온갖 부끄러운 일들을 금지함이 하나하나 언급되어 있다. 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런 이상한 내용을 이토록 상세하게 기록하셨을까? 과연 당시 세계는 의로운데, 하나님은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니 미리 주의하라는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당시 우상숭배하는 이방인들이 이런 문제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하나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와 그 결과인 이러한 범죄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더러운 이방인들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은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성별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더러움(=부패함)은 그 당시에만 있던 내용일까?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거부하여 죄인된 모든 인간세계는 영육간의 더러움으로 꽉 차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전혀 닮을 수 없는 더러운 영이기 때문이며 인간은 아담의 범죄함으로 사탄의 속성인 부패한 본성을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더러움을 주로 도덕적인 타락으로 설명하며(롬1:18-32) 귀신들림은 특수한 상황이다. 이런 범죄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란 누구인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는 백성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 구별된 자, 거룩한 백성 곧 성도(고전1:2)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백성은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 얻어 세상과 구별되어진 거룩한 자이고 그 다음이 복음의 능력과 성도의 거룩함으로 사탄을 꺾는 영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여전히 더러움에 있을 수 있는가? 사탄을 섬기며 죄의 본성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자가 여전히 더러운 생활을 좋아하며 즐기는 것은 과연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바울은 결단코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롬6:1)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6:15)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화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필연적 변화이다. 성령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로 법적 거룩(=칭의) 실제적 거룩(=성화)하도록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6) 율법의 한계 -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백성을 근본적으로 거룩하게 못함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거룩함을 얻도록 기준은 제시해 주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주지 못한다. 이것은 율법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롬8:3) 율법은 사람의 외적인 행동을 어느 정도까지 제어하고 의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룩한 것처럼 잠깐 포장시킨 것뿐이지 실제 그 내면을 전혀 바꿀 수 없다. 율법은 사람들 앞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거룩한 종교행위는 하게 하지만 그 마음에서 솟아나는 미움, 시기, 정욕··· 등의 근본적인 죄의 본성은 전혀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탄식인 것이다.

롬7: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롬7: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롬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율법을 지켜보지만 아무리 율법을 지켜도 외적 행동은 그럴 듯 하지만 육체의 본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계속되는 죄의 본성은 없어지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한 형식주의자만 만든다. 이런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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