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강조한다. 만일 자신의 사역이 ‘성공’을 위해서 였다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서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녀의 선교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승리였다. 그리스도안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복음화시키고 제자로 훈련할 수 있다면, 그래서 훈련 받은 현지인을 통해 필리핀 선교를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싸움이고 그것을 쟁취해내는 것이 최고의 승리라고 생각하며 사역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15년을 해왔을 때 하나님은 그녀에게 단 열매까지 허락하셨다. 현재 그녀는 디모데기독교교육선교회와 길거리 천막 교회인 아가페교회, 홀리라이트교회, 디모데기독교교육신학교 등을 설립해 2천여 명의 현지인을 양육하고 있다.
그녀가 단신 홀몸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필리핀에 가게 된 이유는 뭘까? 그것은 서원 때문이었다. 그녀는 37살이 되던 해 문득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된다. 분명 기쁘게 달려 온 길이었다. 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과정을 마친 다음 예장 개혁측 홍은동 신학교에서 교수 생활도 했던 그다. 그런데 마음 깊은 곳에서 참된 기쁨이 나오지 않았다. 어렴풋이 하얀색 칼라를 한 학생이 ‘선교사가 되겠다’며 헌신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선교사역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고 선교사가 되겠다고 서원하며 헌신을 다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그녀를 통해 원하시는 일은 선교라는 소명이 다시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결국 41세 되던 해 한국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필리핀 선교를 간다. 가기 전 현 선교사는 비장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하나님, 선교는 돈에 의해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주님의 사역을 위한 것이니 주님의 시간에 주님의 필요에 따라 알맞은 물질을 공급해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돈을 꿔야 하거나, 빌리거나, 사역지와 관련한 공과금을 내지 못해 연체되거나 부족한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할부를 사용할 처지가 되면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끊긴 것으로 알고 선교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현 선교사는 15년 사역하는 동안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처음 필리핀에 갈 때 챙겨 간 것은 어린이 교육 강의안밖에 없었다. 필리핀의 한 가정집에서 처음 교회를 열었다. 교회 앞을 지나가는 어린이 4명을 불렀다. “얘들아 나에게 너희 나라 말을 가르쳐 주면 간식을 줄게.” 4명의 아이들에게 얘기했는데 그 다음 주일에 이 아이들이 10명의 아이들을 더 데리고 왔다. 간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간식을 준다는 소문이 퍼져 그 다음 주에는 28명의 아이들이 교회로 왔다. 또 간식을 줬다. 소문이 또 퍼져 그 다음 주에는 56명의 어린이들이 왔다. 이렇게 3개월만에 300여 명의 현지인들이 교회에 모였다. 기적이었다.
그런데 현 선교사의 마음이 별로 기쁘지 않았다. 100명을 넘기 전까지 하나님께 감사했었는데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자 걱정으로 변했던 것이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매주 간식을 주는 것이 염려됐다. 이날 그녀는 기도하던 중 자신의 수입 장부를 찢어버린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기 위해 몰려 든 아이들이 부담됐던 것은 예산 때문이었는데 그 예산으로 인해 사탄이 시험을 준다면 그것 자체를 없애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수입 장부를 없애는 대신 지출 장부는 십원 한 장도 누락하지 않고 철저히 기록하기 시작했다. 선교는 돈에 의해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15년 동안 끊임없이 체험했다고 고백한다. 단 한 주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중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일 성공적인 선교를 위해 이 나라에 왔다면 스스로 좌절하고 포기할 만한 상황이 많았어요. 그러나 저는 성공이 아니라 승리를 위해, 매순간 승리하기 위해 싸우려 왔어요. 다른 선교사님들과 나의 사역을 비교할 이유도 없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었어요. 오로지 저에게 주어진 몫의 거룩한 싸움을 감당하기 위해 이 나라에 왔습니다. 매순간 승리하다보면 더욱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사역자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현재 14명의 필리핀 현지인 스태프를 훈련해서 또다른 현지인들을 양육하고 있다. 본드와 마약에 절어서 방황하던 현지인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면 현지인들의 반응은 확연히 다랐다. 현 선교사는 “그들이 강단에 서서 ‘얘들아, 나도 너희들처럼 똑같이 죄짓고 살았는데 지금 주님 은혜로 이렇게 변했다’고 말하면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조용히 하고 집중하게 된다”며 “그들이 이제는 ‘선교사님이 믿던 하나님이 선교사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저희들의 하나님이 됐습니다’라고 고백할 때야 말로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이제는 그들로부터 사례비도 받고 있다. 현지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의 십일조 정도의 액수를 받는다. 첫 사례비는 한국 돈으로 1천200원이었다. 현 선교사는 현재는 매주 교회에 들어오는 헌금이 15만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녀의 한달 사례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매주 필리핀은 물론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훈련을 시켰다. 그녀의 선교센터에 가면 한국교회와 한국민을 위해 목놓아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필리핀 현지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역이 힘들고 외로울 때면 15년 동안 꾸준히 써 놓은 일기장을 들춰본다. 그리고 가장 힘들었을 것으로 기억되는 때의 일기장을 들춰본다. 그리고 그 때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현재의 어려움들을 이겨간다. 지금 이 어려움을 통과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새롭게 다짐한다.선교사역에 있어서 현 선교사의 가장 큰 다짐은 첫째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자는 것이다. 큰 교회의 인정을 받고, 또는 후원자들의 인정을 받는 선교사역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둘째는 선교사가 인정하는 선교사가 되자는 것이다. 선교사를 가장 잘 아는 선교사는 또다른 현지인 선교사다.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선교사역을 그녀는 꿈꾼다. 마지막으로 모국으로부터 인정받는 선교사를 소망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선교사역에 없는 것이 있다. 흔하게 거론되는 비전이 없다. 그리고 장래의 프로젝트도 없다. 프로그램도 없다. 그녀는 간단히 말한다.
“주신 사역에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살고 있을 뿐예요. 그러나 살면서 열어주시는 사역에 대해서는 생명을 걸고 포기하지 않고 쟁취해갑니다. 그렇게 하자 하나님이 더욱 지경을 넓혀 주시는 것을 체험해 왔습니다.”
종종 그녀의 선교사역에 대한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얻어 가기 위해 목사님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프로그램과 계획이 없다. 그저 지금까지 자신을 통해 역사해 오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사역해 오면서 누려온 사역의 보람은 과연 무엇일까? 현 선교사는 보람조차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시며 누리시는 그분의 것이라고 겸손히 말한다.
선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녀가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녀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현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가장 인정받는 신앙인으로서 자라가라는 지적이다. 그녀는 말한다.
“하나님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찾지 않으십니다. 프로그램을 탁월하게 운영하는 사람들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도 찾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야 할 곳에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져야 할 때 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낼꼬’라고 하실 때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나서는 사명자에게 하나님은 필요한 제물과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함께 주십니다.”
15년동안 필리핀에서 싱글로서 사역해온 현 선교사의 고백은 5월 중순, 내리는 비처럼 기자에게도 절절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