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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예수께서 감람산에 재림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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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 예수께서 감람산에 재림하시는가?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2.08.0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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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KSB 왕국의 역습 5
박성업의 이야기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소설로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박성업의 이야기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소설로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1. 박성업의 주장에 대한 비평

1) 박성업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이 ‘두 증인’에게 요한계시록의 모든 재앙들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가르쳐 준다.

* 요한계시록 13장의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잡고 성도를 이기면 세상의 끝이 온다.

* 스가랴 14:4에 의하면 예수님은 감람산이 있는 예루살렘에 재림한다.

* 에스겔 39:29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음을 말한다.

2) 성경적 비평

박성업은 요한계시록 11:3의 ‘두 증인’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의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이 재앙들을 알고 각성시켜 대비하게 하는 임무를 맡은 자라고 주장한다. 두 증인이 이 종말적 심판의 정황들을 미리 알고 이를 세계 각 지역에 있는 예수의 증인들에게 알려주어 대비하도록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박성업은 2018년 10월 14일 ‘말세 대환란 3부’ 설교에서 아모스 3:7을 인용하며 하나님이 지역마다 배치해 둔 예수의 증인들로 하여금 그 지역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게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예수의 증인들은 세계 각국에 포진된 예언자들인 셈이다. 먼저 두 증인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재앙들이 일어나기 전에 이를 미리 감지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감지한 정보를 세계 각 지역의 예언자들에게 전송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예언자들이 받은 정보를 다시 자기 관할 지역으로 전송해서 재앙을 대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연 두 증인에 대한 박성업의 설명이 요한계시록과 관계있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11:3은 ‘두 증인’을 가리켜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함으로, 두 증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렇다면 두 증인을 나타내는 감람나무가 무엇일까? 감람나무는 스가랴서를 배경으로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순금으로 된 촛대와 감람나무 환상을 보는데(슥 4:1-14) 여기서 두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상징하며 이 환상은 장차 이 두 사람이 파괴된 성전을 재건할 것을 보여준다. 스가랴의 환상 속에서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은 성전(교회)과 관계있는 인물로 나타내고 있다. 두 증인은 교회와 관련된 인물이라는 의미이다. 요한은 스가랴서를 인용하여 두 감람나무를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나타낸다(박수암, 『요한계시록』 151-152)

그렇다면 두 촛대는 무엇일까?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는 사실은 이미 요한계시록 1:20 자체가 알려주고 있다. 촛대도 교회를 상징한다.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두 증인도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증인 앞에 붙은 ‘두’ 즉 ‘2’라는 숫자는 증인의 수이다(신 17:6; 19:15 참고). 두 증인은 ‘증언하는 교회’이다.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교회 사역의 속성을 말한다. 굵은 베옷은 회개 시에 입는 옷이다(왕하 1:8; 렘 4:8; 욜 1:13 참고). 두 증인은 세상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가 이 사명을 다할 때 능력이 뒤 따른다. 하늘을 닫아 비가오지 못하게 했던 엘리야의 표적과 물을 피로 변하게 했던 모세의 표적이 뒤 따른다(5-7절). 하지만 이 교회(두 증인)는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7절). 요한은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증언 사역을 감당할 때 필연적으로 악의 세력의 저항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두 증인의 ‘죽음’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통해 묘사한다. 이는 복음을 증언하는 증인들의 순교를 암시한다.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두 증인의 시체가 대로에 마구 버려진다(8절). 두 증인의 시체를 조롱하며 구경하던 사람들은 사흘 반 동안 그 시체들을 방치하며 무덤에서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9절). 그러나 저자 요한은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두 증인을 목격한다(11-12절). 이 장면은 비록 1세기의 소아시아 교회들이 핍박과 환란을 받지만 궁극적으로 얻을 영광을 나타낸다. 두 증인은 박성업이 말하는 요한계시록의 재앙들을 미리 감지하여 세계 각지로 송출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성업의 이야기는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종교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박성업의 뜬금없는 소설 이야기는 요한계시록 13장에서도 계속된다. 그는 13장은 적그리스도 이야기인데 이 적그리스도가 세상 권세를 잡으면 세상은 마지막이 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소위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절)이 적그리스도이며, 이 적그리스도는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보이므로(3절) 더욱 숭배의 대상이 되고 또 적그리스도가 짐승의 표(16절)를 통치 수단으로 삼아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한 일이 일어나는데 이 때가 곧 종말이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박성업의 설명들이 신빙성 있는 이야기들일까?

먼저 박성업의 이야기는 요한계시록 13장을 주의 깊게 읽는 독자라면 누구든지 쉽게 그의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 13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절)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11절) 두 짐승이 등장한다. 엄연히 구분 되어 있는 두 짐승이다. 박성업의 실수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가 설명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보이는’ 특징은 첫 번째 짐승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적용하는 것이 맞지만 ‘짐승의 표’ 이야기는 두 번째 짐승인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 해당된다. 하지만 박성업은 13장이 분리하고 있는 두 짐승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여 ‘한 짐승’으로 여기고 있으며 또 두 짐승을 나타내는 각각의 특징들을 ‘한 짐승’에게 몰아주고 있다. 박성업이 요한계시록 본문을 한번이라도 정독하고 설교에 임하고 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13장의 짐승이 적그리스도라는 그의 주장은 정당한가? 우선 첫째 짐승인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살펴보자. 결론을 미리 말하면 이 짐승은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를 상징한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3절)라는 문장은 네로 황제의 귀환을 소재로 한 이야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자살로 생을 마감한 네로가 환생하여 다시 나타난다는 설과 관련이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네로를 상징한다는 사실은 18절이 확정해 준다. 이 구절은 ‘짐승의 숫자=짐승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알파벳 곧 철자가 ‘숫자’였고 사람의 이름도 숫자로 표기했다. 이를 게마트리아 관습이라고 한다. 헬라어로 된 네로 황제 이름을 히브리어로 음역해서 히브리어로 된 철자의 수를 합하면 육백육십육이 나온다(M. Eugene Boring, 『요한계시록』 236-238).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육백육십육은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 이 네로가 두 번째 짐승인 ‘땅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모든 자기의 권세와 권한을 위임하고 행사하게 한다(12절).

이 두 번째 짐승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고 첫째 짐승을 숭배(네로 황제 숭배)하도록 그의 형상을 만들고(13-14절) 이 형상을 숭배하지 않는 자는 처형하고 숭배하는 자에게는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게 한다(15-18절).

요한계시록 당시 소아시아 전 지역에는 황제 예배가 행해지고 있었고 이를 관장했던 제사장들이 있었다. 황제 예배가 처음 행해진 곳은 AD 29년 버가모 지역이었지만 이후로는 전역으로 확장되었다(박수암, 『요한계시록』 180-181). 황제 예배는 당시 교회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황제 예배에 참여한 자에 한해서는 조합원의 자격을 주어 정상적인 매매를 할 수 있도록 했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자격을 주지 않았으므로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David E. Aune, 『요한계시록 6-16』, 692-693).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요한계시록 13장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본 장의 짐승을 적그리스도와 동일시하여 황당한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박성업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성경을 우스갯거리로 여기지 않을지 걱정된다.

박성업의 황당한 시나리오는 다음 이야기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스가랴서를 근거로 제시하며 예수님의 재림 장소를 감람산이라고 주장한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슥 14:4)라는 문장에서 박성업은 ‘그의 발’을 재림하는 예수님의 발로 본다, 그리고 ‘감람산에 서다’를 감람산이 있는 예루살렘에 재림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박성업이 2018년 10월 24일 ‘말세 대환란 4부’ 설교에서 말했던 내용 즉 에스겔서, 스가랴서, 요엘서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종말적 약속들이 세상 마지막 순간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펼쳐진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더 나아가 박성업의 소설은 에스겔 39:29을 인용하여 종말 때에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구원에 도달한다는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렇다면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이러한 종말적 약속들을 문자 그대로 인정하는가 아니면 재해석하는가? 신약 성경은 구약 선지자들의 혈통적 이스라엘, 물리적 예루살렘에 대한 종말적 조망들을 사실대로 받아드리는가 아니면 새롭게 해석하는가? 이 주제는 앞 장에서도 다루었지만 몇 가지 예를 더 추가하겠다.

요한복음 1장은 제자를 부르는 과정을 소개하는데(1:35) 그 중에 나다나엘을 부르는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이라고 평가한다(1:47).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구약의 야곱과 나다나엘을 분명히 대비한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개명된 사람이며(창 32:28) 야곱의 열 두 아들이 곧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다. 그런데 창세기 27:35은 야곱(이스라엘)을 간사한 자로 묘사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간사하지 않은 이스라엘로 호명한다. 예수님은 간사하지 않는 나다나엘을 통해 야곱의 전통 즉 새 이스라엘 곧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형성될 것을 예고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 저자들의 혈통적 이스라엘, 민족적 이스라엘에 대한 대전환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아듣지 못한다(3-5절). 예수님은 그런 니고데모를 ‘너희’(11절)라는 복수 인칭대명사로 나타낸다. 여기서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11절), 하늘의 일을 믿지 않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12절). 하지만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성령으로 난 자들만이 하늘로부터 난 자들이며 성령에 속한 자들이 된다고 하시며(5-6절) 자기로 말미암아 형성될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을 상대적으로 부각하신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베푼 후 자신의 살과 피를 참 떡이며 참 음료하고 하셨고 이를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셨다(35절, 51절, 54절, 58절). 예수님은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평행적 대조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참 백성에게 생명의 떡과 음료를 주시는 분으로 드러내셨다. 유대인 청중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 곧 믿는 자는 이 떡을 먹고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에게 오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유대인 청중을 꾸짖으신다(36절). 이에 실망한 유대인 청중들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절)라며 예수님을 떠난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혈통적 이스라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구성원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실 때가 언제인지 묻는다(6절). 이 질문은 이스라엘이 현재 나라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 동문서답을 하신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에서부터 땅 끝까지 자신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8절). 여기서 땅 끝은 사도행전 13:47 내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이방 지역을 포함한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예루살렘을 물리적, 지리적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혈통적, 민족적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닌 땅 끝까지의 구원에 집중한다. 이 구원은 유대인을 포함한 이방인까지의 구원이다.

사도행전 2장은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천하 각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하는 설교를 했다고 전한다(14-42절). 베드로는 유대인 청중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꾸짖는다(36절). 마음에 찔림을 받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묻는 그들에게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28절)라고 대답한다. 이 세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상태로는 아무리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에 ‘혈통’을 부가하지 않고 있다. 그 밖에 사도행전은 고넬료 사건, 예루살렘 공회 사건도 이방인을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차별 없는 일원으로 인정하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으로 다룬다. 신약 성경은 이방인이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새 시대의 도래를 보여줄 뿐 물리적 예루살렘, 혈통적 이스라엘 중심적 사고를 하지 않는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에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셨고, 자신을 무할례자 곧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고 말한다(7-8절). 즉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유대인에게 복음을, 자신을 통해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기를 계획하셨다는 것이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이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책망했고(8-9절) 이 2장에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공동체의 와해를 목적으로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4절)이라 칭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베드로와 관련된 사건 하나를 예화로 든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중 유대인들이 식사 현장에 들어오자 베드로는 급히 자리를 떠난다(2:11-14). 구약의 율법적 관점에서 이방인과의 식사는 거룩함을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 베드로의 행위를 비겁한 것으로 간주하고 책망한다. 베드로는 복음이 주는 자유함을 깨달은 이후부터 율법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이방인과 자유롭게 식사를 해왔는데 갑자기 그 식사 현장에 유대인들이 들어오자 이방인과 식사 하지 말라는 규례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유대인들의 시선을 의식한 행위였다. 바울은 이러한 베드로의 행위를 두고 이방인으로 하여금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14절). 즉 베드로의 행위를 보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옛 생활 방식에 다시 빠지게 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거짓 복음’이라고 지적한다. 갈라디아 교회에 나타난 ‘거짓 복음’은 예수를 믿어도 유대인과 이방인을 유지하면서 이스라엘의 혈통적 회복을 강조하는 가르침이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 혈통적 구원을 주장하는 자들을 ‘거짓 교사’로 단정한다.

갈라디아서 3:6-14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아브라함의 관계를 논증한다. 바울은 창세기 15:6을 인용하여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실을 밝힌다(6절). 따라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이다(7절). 그리고 바울은 창세기 12:3의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마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장차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될 것을 예시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창세기 12:3의 “땅의 모든 족속”이란 문구를 “모든 이방 민족”(8절)으로 바꾸어 이방인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킨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약속은 혈통적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까지 편입시키고 있다. 신약 성경 그 어디에도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논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1:1-2은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 곧 종말의 시대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포함하는 히브리서의 독자들이다. 넓게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히브리서 4:2-3은 출에굽 1세대는 하나님의 안식처에 대한 기쁜 소식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결합되지 않은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3절의 “이미 믿은 우리들”은 안식에 들어간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출에굽의 은혜를 경험한 공동체를 가리킨다. 이 공동체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포함한다.

히브리서 4:3-5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출에굽 1세대와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안식을 누리지 못한 여호수아 세대를 언급한 후 히브리서 4:6-11에서는 히브리서 독자들에게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것을 촉구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인가?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11절)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가리킨다. 혈통적 이스라엘이 우선적으로 안식을 누리게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신약 성경은 구약 선지자들의 종말적 약속들이 예루살렘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이해하지 않는다. 또한 혈통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나 이스라엘의 민족적 구원을 전제로 하는 구약의 종말적 약속들을 문자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관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구약의 선지자들의 종말적 약속을 재조명, 재해석 한다.

필자는 박성업에게 예루살렘 회복 운동, 이스라엘의 혈통적, 민족적 구원이라는 대전제를 모토로 하는 단체의 설교를 더 이상 모방, 답습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박성업의 무분별한 모방 설교, 마구잡이식 설교, 제 멋대로의 설교는 건전한 기독교 신학이 바탕 되어 있지 않고, 성경 해석의 기본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2. 다음은 ‘말세 대환란 5부’라는 제목으로 2018년 10월 26일 올라간 박성업의 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일곱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어지리라” 무슨 뜻이에요? ···11장의 두 증인입니다. ···하나님이 이 두 증인에게 미리 알려준다는 겁니다. 이 두 명이 예수의 증인들에게 지역적으로 부분적으로 동일하게 얘기해 준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재앙들 있죠. ···그것들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친구(두 증인)에게 가르쳐 주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겠죠. 이제 13장입니다. 땅은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잡습니다. 아까 얘기 했던 것처럼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보이는 그 일들 때문에 더욱더 열렬하게 이 땅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숭배가 있고 짐승의 표를 집어 넣으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죽이기까지 하는 그 일이 벌어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은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적그리스도가 성도와 싸워서 이기게 되고 ···마지막 때는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게 됩니다. 그제서야 끝이 오리니. ···에스겔서 39장 29절을 보면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알아본다는 거에요.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아보는 것으로 인류의 마지막 전쟁이 마무리 되는 것입니다. ··· 스가랴 14장 1절 이 전쟁 후에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4절에 그 날에 그 발이 어디로 온대요? ···“ 예루살렘 앞 곧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 어디서 올라 가셨지요? 감람산에서 올라가시죠. ···천사들이 “왜 자꾸 쳐다보느냐. 예수님은 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감람산에서 올라 가신 분이 다시 스가랴 14장 4절 감람산에 오십니다. ···마지막에 주님이 감람산으로 딱 오시는 거에요(박성업, 2018년 10월 26일 설교, ‘말세 대환란 5부’, https://www.youtube.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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