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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당발 장로’의 죽음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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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당발 장로’의 죽음을 접하고
  • 호주 크리스찬리뷰 송기태 편집국장
  • 승인 2015.06.0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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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패러디이다. ‘어느 마당발 장로의 죽음’이라 해놓고 보니 문득 ‘어느 샐러리맨의 죽음’이란 작품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주인공 윌리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가족을 구하려고 한다. 평생 동안 회사 물건을 팔러 다녔던 세일즈맨 윌리는 한 달분의 할부금만 지불하면 자기 소유가 되는 집 한 채를 갖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할부금을 낼 수 없게 되자 그는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행복을 맞바꾸려고 자신이 평소 타고 다니던 차량의 부속품을 빼내며 여러 번의 자살을 시도한 끝에 성공한다. 이 작품은 한 가족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서사시로, 우리의 인생에 대한 성찰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의 ‘마당발 장로’는 스펙보다 스토리가 눈물겹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데려온 ‘술집 여자’가 안방을 차지하면서 인생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집은 술집으로 변했고, 어머니는 쫓겨나 서울의 식모살이(오늘의 입주 가정부)로 떠났다. 단란했던 그의 집은 술지게미 냄새와 술꾼들의 토사물로 악취를 풍겼다. 이에 반항한 열두 살의 어린 소년은 날마다 계모에게 매를 벌었다. 
  

▲ 정국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재 너머 외갓집으로 가출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 마침내 ‘엄마 찾아 삼천리’의 결단을 내렸다. 외삼촌이 쥐어주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110원을 들고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동생들에게는 엄마를 꼭 찾아 행복하게 살자는 다짐을 남겨둔 채.
  
서울역에 내린 그는 어느 용달차 기사 아저씨의 호의로 국밥을 얻어먹고 하룻밤 새우잠을 잤다. 그가 내민 주소를 따라 친절한 아저씨는 영등포 신앙 좋은 의사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엄마를 만나게 해주었다. 그를 본 엄마는 순간 기절했다. 
  
‘엄마!’하며 울부짖고 깨우는 사이에 “아주머니, 저 갑니다”하는 소리를 흘러들었는데, 그에게 은인같은 아저씨와의 작별이었다. 용달 아저씨와의 만남은 그가 “모든 것은 만남에서 비롯된다”는 세계관을 형성하는 첫 단초였다.
  
엄마가 사는 그 집의 호의는 두 번째 만남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그곳도 오래 있을 수 없어 찾아간 곳이 신문배달소였다. 잠자리는 바로 이웃에 있는 교회 전도사 방이었다. 그 전도사는 가방끈 길이가 짧은 그에게 교회에서 운영하는 공민학교를 통해 배움의 갈증을 풀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칼날 같은 세상에 부딪히며 단풍잎 같은 손으로 모은 돈으로 모친과 동생들과 다시 외가 동네에 정착했다. 농사만으로는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마당발의 양에 차지 않았다. 화물차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차가 귀했다. 농부와 농산물을 운반할 화물차를 중개해주는 일이었다. 일종의 운수업이다. 화물 중개 한 건당 1000원의 수수료를 받았다. 성실했다. 사업이 잘됐다. 나중에는 단위농협에서 아예 운수를 통째로 맡겼다. 사업이 더 잘됐다. 다른 운수업자와 함께 반반씩 돈을 모아 트럭을 구입해 자기 차로 운송업을 했다.
  
인생은 만남이다?
  
24살 때, 또 한 사람의 인생의 전환점에 은인을 만난다. 그의 성실성을 보고 있던 농협조합장이 소유한 작은 건설회사 ‘서산토건’의 지분을 인수하라고 권한 것이다. 건설업과 관련해 지식이 전무했지만, 그는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 그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는 그 조합장이 자기를 사업으로 거듭나게 한 장본인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건설업이 자신의 인생 전부를 관통할 사업임은 알지 못했다. 건설업도 성실함으로 올인했다. 주로 경지정리나 개량사업 같은 관급공사가 수익성 좋은 사업이었다. 회사 내의 다른 주주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굵직한 공사를 수주하면서 회사의 과거 6년치 매출에 해당하는 규모를 1년에 경신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드디어 독립을 결단한 그는 처분한 지분의 가치를 팔아 지역 자산 규모 3위인 중견 건설사를 인수한 때가 31살이었다. 그 즈음 제도권 교육 초등학교 중퇴였지만, 그 지역 중학교 국어교사와 결혼했다. 천하를 얻은 것 같았다.
  
그의 길은 비단길이 깔린 ‘만사형통’처럼 보였다. 20여 년 후엔 2003년 경남기업을 차례로 인수하며 외형 2조 원대의 대기업 총수 자리에 올랐다.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수만의 인재가 그의 장학재단 수혜자로 국가의 동량이 되었다. 크고 작은 교계 단체에도 음으로 양으로 후원했다.
  
그의 풍운아적 면모, 눈물겹도록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기자들에겐 좋은 기삿감이었고, 매력 포인트 만점이었다. 아, 여기까지였다면, 우리의 마당발 장로는 ‘우리 시대의 영웅’이었을 것이다.
  
▲ 성완종 리스트.     © 국민일보

인생은 인맥이다?
  
결국 정글 같은 세상에 편승하면서, 마당발의 변신은 해마다 ‘진화’했다. 그 시대를 살아온 사업가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세상을 역류하거나, 시대의 사조에 과감히 도전하는 기개를 펼칠 의향조차 없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대로’ 살아갔다. 좋은 게 좋은 살기 위해 그가 제일 역점에 두었던 것은 인맥관리였다.
  
그는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그에게 도움준 사람 은인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은덕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인맥의 소중함을 알았다. 인맥을 형성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녔다. 그리하여 ‘마당발’이란 코스프레가 덧씌워졌다. 
  
주변에 고등학교, 대학 동창회를 통해 자기 이익과 영달을 위해 잘나가는 친구나 선배들을 쫓아다니거나, 인맥을 만들어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방끈이 짧은 그에게 ‘학연’ 인맥 대신 기독교계 인맥을 쌓아갔다. 교계와 교단의 굵직한 모임마다 그의 이름은 임원으로 등재됐다.
  
우리의 마당발은 1천 명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수십 년 동안 거르지 않고 조찬모임을 다녔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은 또한 조찬모임의 나라가 아닌가? 아침을 두 탕 뛰는 때도 부지기수였고, 세 탕 뛰는 때도 드물지 않았다. 
  
호주에서 그랬다면 정신질환 진단을 받을 것이다. 이런 네트워크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지만 지식이나 공부와도 별 상관이 없다. 그저 지연 혈연 학연에 목말라하는 그들에게 대용품일 뿐이었다. 그 결과 지역 출신들을 중심으로 3만 명이 넘는 ‘포럼’을 결성하는 마당발의 쾌거를 이루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마당발은 만나는 사람을 통해 얼굴에 광택이 나기 시작했다. 명함도 그럴 듯하게 새겨졌다. 말 타면 마부 부리고 싶은 마음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렇게 새겨진 명함은 구체적인 권력을 향한 욕망을 부채질했고, 마침내 그 욕망의 질주를 시작했다. 이 또한 사업을 확장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건설업을 하는 그에겐 선택 아닌 필수처럼 보였다. 
  
특히 주변에 규모가 별로 별 차이가 나지 않은 동업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보고 도전을 받았다. 정통성에 국민적 저항이 거센 5공 군부정권 재정에 가담하는 편을 섰다.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이들에게 줄을 대는 가장 좋은 방법도 관찰했다. 
  
타고난 눈치 덕분에 그들이 달리는 인생엔진의 윤활유는 사과박스에 현금이란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그들 주위에서 맴돌 수 있고, 공천도 받고, 수직으로 신분이 상승하는 것을 무수히 보아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돈의 위력’도 알았다. 
  
그 위력은 배꼽이 배를 삼키는 코미디같은 일을 기업의 합병(지방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삼키는)에서 실제로 경험했다. 그러자 더욱 몸이 달았다.
  
비록 자신은 5만 원짜리 기성복 양복을 입을 지라도, 집안에 침대도 없이 잠을 잘지라도, 싸구려 볼펜을 쓸지라도 경제학의 가장 기본 원칙인 ‘확대 재생산’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함이 없었다. 투자의 위험이 클수록 반대급부로 돌아오는 게 어마마한 것을 경험했다. 
  
자연 배팅의 규모는 천문학적인 숫자로 불어났다. 그렇게 하여 기업을 키우고 몇 번째 도전 끝에 ‘국회의원’이란 권력도 얻었다. 세상에서의 성공처세술을 철저하게 돈이 성공엔진을 가동시키고 있음을 경험하면서 그는 그 ‘경험의 오류성’을 보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잘나가는 듯했지만 어떤 미운 털이 박혔는지, 어떤 선거법 위반으로 그 어렵게 얻은 국회의원직을 2년 남짓만에 상실했다(비슷한 불법을 저지르고 선거에 당선된 사람들 가운데 아직도 건재한 사람이 열손가락을 꼽아도 남는다). 마당발 장로는 이에 대하여 마지막 인터뷰에서 경상도 출신이 아니라서, 정통 한나라당 출신이 아니라서, 차기 대권주자로 다른 사람을 밀어서 등등 자의적으로 해석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이리하여 우리의 마당발 장로는 한국의 정치가 '인간관계'라 부르는 '비리 사슬'로 움직이는 걸 처절하게 체험했다. 어떤 풍자만화에 남녀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정치인이야. 정직해.” “저는 몸을 팔아요. 그런데 처녀예요” 한국 정치가 딱 이런 상황이지만, ‘장로답게’ 기존의 패러다임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저 조찬으로 맺어온 인맥은 이해에 따라 등 댔다가 배 댔다가 하는 속빈강정에 불과한 것임을 보지 못했다.
  
인생은 인정이다?
  
우리의 마당발은 인간관계를 주고받는 관계로 묘사했다. 그가 마지막 인터뷰에 그토록 ‘신뢰’를 강조한 것도 찬찬히 뜯어보면 자신이 투자한 돈을 떼먹는 사람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그 양반한테 한 10만 불을 내가 달러로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내가 전달해 드렸고. 뭐, 수행비서도 따라왔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게 서로 신뢰관계에서 오는 일이잖아요. 서로서로 돕자 하는 이런 의미에서."
  
이쯤 되면 ‘신뢰관계’는 자신의 부정이 어떠하든지 ‘서로서로 도와야 하는 끼리끼리 커넥션’을 하자는 말과 다름 아니다. 그렇게 마당발로 발품을 팔며 뿌린 돈이 20여 년 간 정치권에만 100억 원 이상을 뿌렸다는 증언까지 나온 마당이다. 그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의리남’이 돼버린 의원 4명은 그의 투자에 ‘확대재생산’으로 이익을 내주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마지막 리스트에 기록된 ‘배신남 8인’보다 훨씬 나쁠 소지가 없지 않다.  
  
‘조건 없는 정치자금’은 말이 좋아 그렇게 세상에 조건 없는 돈이 어디 있는가? 일단 유사시에 ‘구원’해 줄 생명줄인 보험금인 것을. 지속적 금품로비와 폭넓은 인간관계 구축이 성공과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어왔는데, 그 인생철학이 인생의 가장 힘든 위기 상황에서 통하지 않았고 그때 싱크홀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유력인사들과 두루 친목을 다진 부지런한 마당발!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사재를 털어 장학금을 준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미지와 악취 풍기는 돈으로 정관금융법조계를 누비며 부당 이득을 취한 비리 기업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교차한다. 이같은 양면적ㆍ다층적 캐릭터인 마당발 장로의 영혼은 이 무서운 인생의 위기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난 기업가적 리더십 카리스마는 강철 같아 보였지만, 그것을 떠받드는 자기 안의 내면세계 힘은 의외로 연약했다.
  
결국 그토록 인맥을 더 넓히기 위해 크고 작은 조찬모임마다 발품을 팔아가며 인맥을 쌓고, 구두밑창이 닳아진 우리의 마당발은 침몰 일보직전에 SOS를 보내며 그들의 인정에 의지했지만 하나같이 모른 척했다. 이로써 그가 아무리 ‘발 평수’ 넓다 해도 결국 세상에 없는 것 4가지를 확인시켜 준 것은 살아남은 자에게 주는 커다란 교훈이다. 그 4가지란, 세상엔 공짜가 없고, 비밀이 없고, 정답이 없고, 믿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벼랑길에서, 인생의 나락에서, 인생의 절벽에서. 그동안 꼬박꼬박 보험금을 불입했던 이들에게 원금에도 못 미치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모두들 외면했다,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마당발만 몰랐던 걸까? 필요할 때 이용하고, 단물 다 빨아먹은 다음 필요 없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잔인한 먹이사슬 법칙보다 더 추악한 세상, 정치권의 현실을! 그곳에서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인간을, 특히 정치권에서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좋을 때만 ‘하하허허호호껄걸’하며 친분과 행위만 있을 뿐임을! 이 사실을 뼛속 깊이 새긴 우리의 마당발은 마지막 가는 길에 택시비까지 포함 8만 원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부패동맹, 네트워크!
  
자신을 숨긴 채 인욕(忍辱)하고, 웃음 지으며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깊은 내상을 안긴다. 그것은 지독한 감정노동이다. 그렇게 살아왔던 그가 마지막 순간에 내민 구원의 손길을, 어제까지 동지라고 생각해왔던 인간들이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의 개요다. 지금은 후폭풍의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 사회, 이민사회는 전근대성에 매몰돼 더는 탈출구가 없는 것 같다. 공정된 규칙은 없고, 사적 은밀성만 존재하는 것같다. 공적인 친교가 아니라 개인들의 은밀한 부패망이 지배하는 원시부족 사회다.
  
소위 네트워킹의 정체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패 동맹이나 부조리의 결사를 우리는 종종 네트워킹이라는 묘한 말로 불러왔다. 적이 없는 사람은 친구도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람과 호형호제하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우애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소셜 네트워킹은 결정적 순간에 삼류 영화 속의 도적 떼처럼 서로를 배신한다. 
  
이번 사건이 그런 경우다. 한때나마 기독교인 대선후보로 거론 되던 이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책을 썼지만 우리의 마당발들은 아예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우리의 마당발이 발을 디딘 곳은 깊은 늪이요 소용돌이였다. 갈수록 전근대적 배타성이 지배하는 협소한 조직체였다. 동료들의 출판 기념회에 다니며 책값의 100배씩이나 주고, 차명으로 정치후원금을 댔지만, 이념도 정강정책도 진정한 동지의식도 찾기 어려운 난장의 희극무대였다. 두 번이나 옮겨다닌 정당은 봉숭아학당이 된 지 오래여서 무엇이든 고참순이다. 
  
조폭을 방불케 했다. 뇌물 전과자도 수두룩했다. 그 전과자들이 위세도 등등했고, 그 ‘사과박스’로 뭐든지 거래할 수 있는 인간시장이었다. 우리의 마당발도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두 번씩이나 사면을 받은 분이시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법망이 촘촘해질수록 법치는 사라지고 그것을 우회하는 사적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중요해지는 역설의 국가다. 그것을 잘 이용하면 능력이 출중해 보였다. 무법자를 경멸하는 게 아니라 특권층으로 보며 모두가 선망의 대상으로 추앙한다. 그러니 기회만 되면 그런 것을 이용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게 어디나 통용되었다. 그래서 법으로는 안 풀리는 무언가의 문제를 풀어줄 ‘알라딘 램프 같은 거물’은 환영받기 마련이다. 또 누구나 그런 거물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모두들 알라딘 램프로 착각하는 부귀영화는 아침 이슬이요, 아침 안개같은 것임을 성경이 증언한다.

권력과 배신, 조연들의 거짓말 퍼레이드
  
드라마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로는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 맛깔 나는 조연, 스피디한 전개, 절정으로 치닫는 대립과 갈등, 짜릿한 반전 등이 꼽힌다. 지금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마당발 장로’는 이런 흥행 문법에 충실한 비극적 정치 드라마다. 최근 한 달 동안 한국사회의 블랙홀이다.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날마다 새로운 뉴스를 뿜어냈다.
  
조연 8인의 면면도 화려하다. ‘영원한 2인자’ JP의 한을 풀어줄 충청 대망론의 선두주자 이완구 전 국무총리, 6공의 황태자를 구속시킨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탄 홍준표 경남도지사, 아버지 대통령도 주군으로 모신 박근혜의 장자방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출연한다.
  
2012년 대선 때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이들보다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신 스틸러’로 주목 받고 있다. 홍 의원은 국회조찬기도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권력욕은 강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임명 당직으론 당 사무총장이란 사다리꼭대기까지 올라갔지만, 선출직으론 최고위원, 원내총무 등에 줄줄이 출마하여 떨어지기를 밥 먹듯 했다.
  
이들과 ‘주거니 받거니’ 사이가 좋은 듯 했던 우리의 마당발은 이들과 정치적 셈법과 욕망이 충돌하면서 대립과 갈등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분노의 칼을 마음에 품고 마지막으로 한 신문사에 그 칼을 다 쏟아내었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영화 ‘식스 센스’와 같은 기막힌 반전이다. 마당발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며 남긴 56자 메모가 ‘보험료’를 원금도 돌려주지 않고, 꿀꺽한 8명의 조연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부쳤다. 56자 메모는 정밀타격 유도탄을 거꾸로 돌려 정권의 심장부를 폭발케 했다.
  
왕눈이 눈알을 부라리며 꽉 다문 입으로 외모의 카리스마를 자랑했던 전 총리는 ‘한 푼도 안 받았다’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목숨이라도 내놓겠다’고 한 그 다음날 ‘비타500 돈 박스 패러디’ 광고모델이 되었다. ‘전혀 친밀하지 않다’고 했다가 1년에 210회가 넘는 전화통화로 ‘이쯤 되면 부부처럼 사귀는 관계’라며 ‘식물총리가 아닌 동물총리’로 조롱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 드라마에서 대한민국 국회조찬기도회장 홍문종 의원의 거짓말은 금상감이다. “일면식도 없다” 등의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거짓말의 화두를 장식했다. 뻔히 드러날 거짓말도 온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얼굴빛 하나 변치 않고 한 것도 모자랐는지, 종편에 출연하여 주석까지 단 것은 연작 코미디 프로나 진배없었다.
  
여기서 간과하면 안될 것은 우리의 마당발도 불입한 보험금 중에 못탄 것만 따졌지, 그동안 야금야금 타먹으며 기업을 일구고, 국회의원 자리 꿰찬 것 등등의 반대급부는 꿀꺽하곤 말 한 마디 안한 것이다. 좋은 드라마는 재미와 함께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마당발 드라마의 결말은 미지수지만 특별수사팀이 한국판 ‘마니 폴리테(깨끗한 손)’가 돼 부패척결의 통쾌함과 함께 정치개혁의 희망을 보여주는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우리의 마당발의 비극은 돈과 탐욕이 부른 이 시대의 ‘막장 드라마’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죽은 자에 대한 동정심’이 있어 죽기 전엔 그렇게 입에 거품 물고 욕하다가도 막상 죽으면 ‘의사(義士)’라도 되는 양 분위기가 싹 바뀐다. 이미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고, 현재 우리의 마당발 역시 언론에서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장로로서 자기 목숨을 마음대로 해버린, 자기를 살인한 행위는 그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핵심은 감성적 자기통제 능력
  
아랍의 격언에도 “돈이면 다 된다고 여기는 사람은 돈 때문에 망한다”고 한 말에 그의 삶은 거의 정확하게 대입되고 있다. 특히 그가 장학재단도 돈 세탁소로 활용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그 돈으로 정치헌금이라는 범법행위를 한 게 사실이다. 그럴지라도 그의 죽음은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한다.
  
또 하나 마당발 장로의 발품은 넓고 커서 삶의 마지막 순간에 스님과 역술인을 찾았다는 것도 우리를 경악하게 하며, ‘장로’라는 직분을 무색케 한다. 그는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닌 한 스님을 아버지처럼 모셨으며, 함께 역술인의 집을 찾았다. 점을 다 본 난 다음 복채 줄 돈이 없다며 마이너스 카드를 비서에게 건넸지만, 마이너스마저 바닥 나 돈을 뽑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날 복채 20만 원은 스님이 대신 내줬다고 한다.
  
우리의 마당발은 정치인들에게 대형보험료는 듬뿍듬뿍 낼 정도로 큰돈을 만졌지만, 숨지기 전 며칠 동안은 자장면값마저 내지 못할 정도로 빈털터리 신세였다. 신문팔이 소년이 맨주먹 자수성가로 대기업을 일궜던 우리의 마당발의 마지막 모습은 태어나던 그 순간처럼 빈털터리였다. 이처럼 부, 권력, 명예, 높은 자리… 모두가 바람 앞의 먼지나 겨와 다름 아니다. 한순간 바람이 훅 불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수많은 조직이나 사회에서 완장차고서도 마치 권력심장부에라도 앉은 듯, 십상시 흉내 내는 인간들이 즐비하다. 또 그런 이들에게 줄을 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마당발 장로의 죽음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준엄한 교훈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리더십 학자 디 하크는 “리더가 장기간 건강한 자기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자기 시간과 에너지의 50%를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데 써야 한다”고 했다. 감성지수(EQ)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던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대니얼 골먼은 괜찮은 사람과 탁월한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감성적 자기 통제 능력’, 즉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핑계, 합리화, 책임전가 등의 행태를 보인다.
  
머리 둘 곳도 없었지만 가장 넉넉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신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균형 잡힌 삶의 표본이었다. 군중의 박수갈채에도 흥분하지 않으셨고, 왕으로 추대하려는 민중의 열화에도 냉담하셨다. 제자에게 배신당하고 불법 재판당하며 십자가로 끌려가실 때도 침착하셨고, 온화하셨다. 오직 그분은 하나의 목적,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 인생을 몰입하셨다. 이 사명을 위하여 그분은 십자가의 고난도, 민중의 비난과 비웃음도 개의치 않으시고 오직 한 길만 걸으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과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처럼, 꼭 예수님처럼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하겠다. 우리의 마당발 장로처럼 세상의 부귀영화에 곁눈질 하지 않고!〠
이 기사는 호주 <크리스찬리뷰> 2015년 6월호 송기태 편집국장의 글입니다[해당 기사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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