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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하나님의 음성 듣기, 왜 위험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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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논문]하나님의 음성 듣기, 왜 위험하다 하는가?
  • 정윤석
  • 승인 2014.06.16 06: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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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 3학기 조직신학 과제로 제출된 논문입니다. 

서론

하나님(예수님 혹은 성령님, 이하 하나님으로 통칭)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유명인사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그이름’이란 복음성가로 알려진 송명희 시인도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 중에 하나다. 세계적 예언 사역자라는 신디 제이콥스도 마찬가지다. 베스트 셀러 <마지막 신호>(예영)를 출판하며 한국교회의 인기 강사가 된 데이비드 차도 그렇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이다. 이름을 열거하면 이보다 더 많다. 책자를 통해, 간증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기라는 방법과 그 형태들이 알려지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관심을 갖고 이를 추구하는 현실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참된 영성’의 보편적인 대세가 돼가는 추세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통해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실존과 살아 계심을 체험하기도 하는 듯하다. 삶의 변화도 있다고 한다. 그분이 살아 계심을 체험하는 가슴 떨리는 경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위험성이란 없는 걸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아무런 경계없이 받아들이기만 하고 누구나 그래야 하는 것인양 보편적으로 추구하면 되는 건가? 본 논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문제점과 부정적 영향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음성듣기 현상’에 분별력있게 접근하는 기회를 가져보자는 제언을 하고자 한다.

전제해야 할 게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왜 비판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때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성도들이 살면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인도, 기도하며 마음 속에서 떠오르는 내적 확신이나 깨달음, 강하게 들어오는 영적인 느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체험을 성도들이 경험할 수 있다고 믿고 체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물론 위와 같은 경험조차도 상시 체험하고 마치 그것을 보편적인 것인양 주장하고, 지나치게 특수화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 언급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라 실제로 친구나 연인이 귀에다 대고 말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리는 현상, 하나님께서 뭔가 직접 보여주시는 어떤 영적 환상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에 대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하는 ‘예언’ 등으로 제한하고자 한다.

실제로 위에 들리는 현상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수 있고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심지어 사탄의 속삭임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명명하는 것으로 통일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지라도 성도들의 신앙생활현장에서는 모두 다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용어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런 류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부정적 측면만 논하고자 한다.

본론
1. '유행성' 하나님의 음성 듣기란 무엇인가?
요즘 유행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이냐에 대해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론에서 간략히 정의했듯이 귀로 대화하듯 들리는 하나님 또는 어떤 영적 존재의 ‘음성’이라고 정의한다. 몇 몇 사람들의 체험을 보면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마치 친구가 말하듯이 듣는 사람들이다. 복음성가 작사가이자 시인으로 유명한 송명희 시인은 그의 책 <표>(드림북, 2006년, 11~12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주의 음성을 들어 귀찮고 시달린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나 불안하거나 공포감은 없었다. 하루는··· 주님이 내 옷깃을 잡고 흔들며 속삭이셨다. ‘얘야! 내 말 좀 들어봐라! 이야기 좀 하자!’ ‘나, 자야 돼요.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아니, 넌 들어야 한다!’ 그러시면서 계속 중복되는 내용의 음성을 들려 주셨고···주의 음성을 듣고 있노라면 화도 나고 짜증도 났다.”

송명희 시인처럼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은 여럿 있다.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서 몽골 선교사로 가면서 유명해진 <내려놓음>의 저자 이용규 선교사도 그렇다. 그의 책 <내려놓음>(규장, 2006년) 92페이지~93페이지에 보면 이용규 선교사가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94페이지에는 하나님이 보여주셨다는 환상이 등장한다. 161페이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내용이 나온다. 167, 168페이지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저자의 모습이 나온다. 소위 예언사역자로 알려진 ‘신디 제이콥스’도 그렇다.

“중보집회 도중 주님이 내 마음 속에 말씀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9살 때보다는 좀더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신디, 나는 오늘 밤 너를 이 나라의 여선지자로 세운다.’ 잠시 후, 기도를 인도하던 인도자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는데, 그때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완전히 압도되었다.”(신디제이콥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죠이출판사 1996, p.261).

베스트셀러 <마지막신호>의 저자 데이비드 차는 <마지막 신호>(예영, 2011년)를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고 전국 교회에 집회를 다니고 있는 데이비드 차도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간증한 바 있다. “그날 새벽에 새벽 기도를 드리고 막 울고 있는데 처음으로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뭐, 이게 주님 음성인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가 아니라 제가 여러분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제 이름을 딱 부르시면서···. ‘울지 마라!’ 이렇게 얘기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라서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데이비드 차, 2010년 12월 15일 LA 세계등대중앙교회에서의 메시지).

이외에도 데이비드 차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음성은 다양하다. 높은뜻푸른교회 담임목사 문희곤 목사도 그런 경험을 말한다.

“예수전도단 지도자들이 모여서 올림픽 때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때 하나님은 LA 올림픽에 2백명의 한국 젊은이를 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약속의 증거로 여러 개의 성경말씀까지 받았다”(문희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예수전도단, 2009년, 198페이지).

릭조이너는 자신의 경험과 관련 “주님이 가까이 오시자 흰옷을 입고 계신 것과 앞으로 묶여져 있는 금띠를 두른 것이 보였다. 옷의 밑 가장자리와 소매 끝은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해가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한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한 곳에서 해가 뜰 때 다른 곳에서 해가 진단다. 너는 한 시대의 황혼과 다른 시대의 새벽에 살고 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도 네가 살고 있는 시대의 마지막과 다가오는 시대의 시작에 관하여 배우기 위해서이다’”(릭조이너, <21세기를 위한 예언적 비전>, 김병국 역, 바울출판사, 2006년, 12페이지)라며 자신이 본 환상을 언급한 바 있다.

2. 유행성 하나님의 음성 듣기, 왜 문제인가?
하나님의 음성을 귀로 직접 듣는다는 주장에는 어떤 문제점과 위험성이 있을까?

1) 직통 계시의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한국교회 주요 교단에서는 ‘직통계시’로 정의하며 비판적으로 분류해 왔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귀에다 직접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의미에서다. 예장 통합측이 이단으로 규정(1999년 84회 총회)한 이재록 씨에 대한 연구 보고서에 ‘직통계시’란 용어가 등장한다. 이 내용을 보면 이 씨가 지나치게 직통계시를 강조하여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언제나, 무슨 일이나 계시를 받는 것 같이 말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치유한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기독교 신앙을 무속적 신앙으로 오해하게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통합), <이단·사이비 연구 보고집>, 한국장로교출판사, 2011년, 195페이지). 어떤 영적 존재의 직접적인 지시를 받고 그것을 신앙의 지침으로 삼는 행위에 대해 ‘직통계시’라고 정의하며 비판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 <성경에 대하여> 10절을 보면 “우리가 의지할 만한 판결을 내시는 최고의 재판장은 어떤 누구도 될 수 없고 오직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직통계시자들은 성경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이 아니라 개인의 귀에 대고 직접 말씀하시는 영적 존재를 언급하고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 언급하고 있다.

김용복 교수는 침례신학대학교 목회연구원 3월 17일 조직신학 강연에서 “예수의 성육신 사건은 가장 완전한 형태의 계시라 할 수 있다”며 “예수의 사건을 통해 계시가 완전히 이뤄졌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그 계시가 성경을 통해 완전히 보전됐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새로운 계시, 특별 계시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계시를 주장하며 직통으로 뭔가 계시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구원의 충족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고도 지적했다.

2) 주관적 체험일 뿐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주관적 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떤 영적 존재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것을 들려 주신 분이 성경이 말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는가? 송명희 시인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분이 하나님인가? 어떤 근거에서인가? 데이비드 차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들은 음성의 리스트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나를 정말 사랑하면 여자친구랑 헤어져라’
- ‘전단지를 돌려라’
- ‘팥빙수를 갈아서 팔아라’
-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어느날 주님이 찾아오셔서)‘이제 그만 테스트가 다 끝났으니 직장에서 나오라’
- (하나님께서)‘프리메이슨이라는 단어를 머릿 속에 넣어 주셨어요.’
-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온 다음날 주님께서)‘서점을 가라’, ‘여러 권의 책들을 사보라’
- ‘이번 참에 은혜 갚아라, 책 한 권 써 달라’(이래서 나온 책이 마지막 신호)
- “‘주님, 책으로 쓰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final sign(마지막 신호)이라는 제목을 딱 주셨습니다.”
- “꿈 속에서 책의 목차를 외우고 꿈에서 깨자마자 목차를 메모지에 적고 그날부터 21일만에 책을 다 썼습니다.”(데이비드 차, 2010년 12월 15일 LA 세계등대중앙교회 메시지)

데이비드 차가 들었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모두다 주관적 확신만 있을 뿐이다. 자신에게 말씀한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어떤 객관적 방법이 없다. 신디 제이콥스를 여자 선지자로 세우신다고 어떤 영적 존재가 말했다고 그녀가 주장한다. 그분이 하나님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이용규 선교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삶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인가?

우리가 절대적 표준으로 삼는 성경조차도 공인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되기까지 근 400여년에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397년 카르타고공의회에서 신약정경을 27권으로 선언함으로써, 정경은 완료되었다. 역사 전체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이 현재 성경의 문서들에 자리잡고 있는 본문들의 영감성을 시인하고 고백했던 것은 신자들이 자신의 독특하고 항상 변화하는 상황들 속에서 직면했던 문제들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그 본문들 속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다(스탠리 그란즈, <조직신학: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한 신학>, 신옥수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560페이지).

정경화 작업에 많은 세월이 필요했던 이유였다. 그런데도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즉시, 곧바로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관적 체험을 한 자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검증이나 시간적 여유, 분별력을 대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잣대를 대면 곧잘 “성령을 훼방한다”는 정죄나 경고를 당하기 때문에 두려워서는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주관적 체험을 곧 하나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바른 그리스도인들의 자세가 아니다.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조차 ‘이것이 그러한가?’라고 묻고 깊게 생각하는 자세를 칭찬하고 있다(사도행전 17:11 상고: 자세할 詳, 생각할(살필)考). 우리는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인지 분별하고 검증하고 확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3) 왜곡된 신앙을 만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주의 음성을 들었다는 송명희 시인은 <표>라는 책에서 이미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시도하다가 실패했던 성경해석을 되풀이한다. 시한부종말론자들이 이미 주장했던 ‘휴거’, ‘안전칩(베리칩)=짐승의 표’ 등을 소설 속에 등장시킨다. 송 시인은 이 책에서 등장인물들의 주장을 빌어 “미국 주도하에 전세계적으로 시행되는 안전칩(일명 베리칩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의 표”라며 “그리스도인은 그 표를 분별없이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송명희, <표>, 드림북, 2004, 79페이지).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어떤 인체에 삽입하는 물리적인 표를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등장하는 짐승의 표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이장림 등 시한부 종말론자들이었고, 그리고 구원파적 사상의 영향을 받은 극단적 세대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해왔다. 역사적으로 이미 실패로 끝난 성경해석법을 송 시인은 계속 고수하고 있다.

데이비드 차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지막 신호>를 집필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책 <마지막 신호>는 인터넷에 여기저기 떠도는 프리메이슨과 관련한 음모론을 인용표시도 하지 않고 표절한 내용만 40~50여 페이지에 이른다. 표절해 놓고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집필했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신호>에선 마치 2020년이 세상의 종말인 것처럼 주장한다(데이비드 차, <마지막 신호>, 예영, 2011년, 220; 232; 236~237페이지).

이용규 선교사는 2007년 3월 4일 nomadlove.org라는 사이트에 “은혜를 사모하거나 은사의 기름부으심을 원하는 분이 있다면 장바울 목사님의 집회에 참석하시면 어떨까 합니까”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런데 장바울 목사는 마네킹을 세워 놓고 머리의 어떤 부분에 신호가 오면 가정에 우환이 생시고 친척 중에 사고가 생긴다고 하는 등 매우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던 사람이다(정윤석, 장바울 목사의 황당한 레이더 영분별 특강, <교회와신앙>, 2011년 7월 4일자 기사).

이 선교사는 이러한 장 목사가 몽골에 집회할 때 참석하고 그의 아내와 한국에 왔을 때는 장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는 이 선교사의 신앙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사건으로 봐야 한다. 이 선교사가 자극적이고 체험적인 신앙, 표적과 기사를 추구하는 건 아닌지 한국교회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격적 신앙이라 함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지혜, 의지, 감정’을 갖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발견하며 신앙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도들은 이를 통해 더욱 성숙한 신앙으로 발돋움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을 만나면 이런 인격적 신앙이 무너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거부하면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의 말을 순종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신앙인 개인의 인격적 선택의 자유는 없어진다. 신앙의 기준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에 의해 좌우되는 왜곡된 신앙으로 변질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듣는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인격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왜곡을 반드시 만들어 낸다.

필자가 만난 한 성도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령 음성을 듣는다는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며 화장실 가기, 식당 가기, 먹는 메뉴 결정하기 등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결정했다고 한다(정윤석, ‘성령님이 저 남자랑 자라고 하신다’, <기독교포털뉴스>, 2014년 2월 2일자 기사). 이런 게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일까? 화장실은 어떤 영적 존재가 설령 가지 말라고 음성을 들려 주시는 것 같아도 변의가 느껴지면 가야 되는 거다. 그게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다. 그런 것까지 직통계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결정하더라는 것이다.

4) 사람을 특수화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특수화된다. 인간 관계는 상호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돈독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어떤 공동체에 있을 때면 그 커뮤니케이션적 질서는 파괴된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을 말하고 청중들은 그것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구조를 만든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특수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용복 교수는 침신 목회연구원 3월 17일 강연에서 <계시론 목회적 적용>을 주제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목회자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시’라는 용어를 남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목회자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시’라는 용어를 남발한다. 그런 유혹도 많이 받는다. ‘계시받았다’는 것은 욕심과 유혹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목회자들은 이런 유혹을 버리고 섬김의 권위를 보여줘야 한다. 목회자의 권위를 기적이나 표적으로 보여 주면 안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나중에 도망갔다. 섬김과 희생의 권위가 무엇인지 목회자들은 배워야 한다. 목회하면서 성도에게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고 싶어서 ‘계시 받았다’는 방법을 쓰면 반드시 탈이 난다.”

그는 이는 성령의 소욕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욕심과 유혹일 뿐이다고 지적했다. 다른 성도들을 지배하고 싶은 욕구에서 가장 쉽게 선택하는 것이 ‘성령의 음성, 또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지적이다.

박정근 목사도 “신비적 현상에 수많은 성도들이 몰려 들 수도 있다. 내게도 교인들이 몰려와서 묻는다. ‘사업을 할까요, 말까요?’ 이 현실에 휘둘려 목사들이 양복입은 무당이 될 수 있다. 무당이 별건가? 하나님과 인간의 매개인으로 나서는 게 무당 아닌가? 목사가 하나님과 교인 사이를 가로막고 매개체로 자리하려고 한다. 성도들에게 말씀을 충실히 가르치면 기어오른다. 그래서 신비한 영성으로 확 찍어 눌러 버리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이 욕망을 목회자들이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박정근 목사, 침신목회연구원 3월 24일 영성수련회 강연). 하나님의 음성, 직통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기보다 남들보다 우위에 서려는 인간의 욕심과 유혹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며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목사’, ‘전도사’,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무수히 활동하고 있다. 모두 다른 성도들의 돈이나 기타 다른 것을 끌어내기 위한 욕심과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다. 자신이 말하면 상대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성령)의 음성’, ‘하나님(성령)의 말씀’을 들었다고 빙자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움직이는 신도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하면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 분별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마귀가 틈탄다’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통해서는 아닌가? 심창섭 교수는 “직통계시자들 중에는 자신이 영적으로 직접 받은 것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절대복종과 순종의 대상으로 특수화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비판한다(심창섭, <이단 식별론과 유형들>, 예장총회 출판부). 하나님의 음성을 추구하고 여기에 노출된 사람은 자신을 특수화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구조속에 들어가게 돼 있다.

5) 도덕적·사회적 문제를 쉽게 허용한다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따랐다가 패가망신하거나 거액의 헌금을 바치고 나중에 이 문제로 법정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주지방법원 사건번호 2003고단 442 사기와 관련한 판결문에 따르면 A 목사는 1996년 자신의 사택에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내가 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이 2천 2백만원을 헌금해야 산다”며 헌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 뿐 아니다. A 목사는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수명은 47세까지인데 앞으로 45년의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는 1년에 1백만원씩 계산해서 총 4천 500만원을 헌금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A 목사는 결국 피해자의 고소로 사기 혐의 죄목을 받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벌을 받았다. 충격적인가? 안타깝게도 이런 예는 하나만이 아니다. 죽은 남편을 하나님이 살리신다고 했다며 사체와 120일간 동거한 사람도 있다(정윤석, <교회와신앙> ‘다시 살아난다며 남편 시신과 120일간 동거’ 2010년 7월 9일자 기사). 하나님의 음성을 악용한 도덕적 문제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로널드 인로스는 미국의 사회학자로서 사회병리적 현상을 안고 있는 기독교단체들의 비리들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접근한 사람이다.
그가 쓴 <영적학대>(생명의말씀사)라는 책에 부도덕한 교주들의 행각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음성’을 빙자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샌드포드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중심으로 ‘성령과 우리성경학교’를 세웠는데 그 안에서 아동학살, 납치 등이 있었다(로널드 인로스, <영적 학대>, 김기찬역, 생명의말씀사, 1997년, 58~60페이지). C-U선교회라는 곳의 지도자에게 어느날 ‘아론’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수음’을 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지도자를 비롯, 부모를 포함한 신도들은 아이에게 ‘수음’을 했다고 고백할 것을 종용했고 이를 아론이 부인하자 고백할 때까지 나무 방망이로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는 사망했다. 이는 1988년 6월 21일자 시카고 트리뷴지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한다(위의 책, 148~149페이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이 사회적·도덕적 규범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게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은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할 ‘진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진리이기 때문에 순종 이외의 선택은 없다. 그 순종이 때로 상대를 사기를 쳐야 하는 것이고, 폭행해야 하는 것이고, 사체를 유기해야 하는 것이고, 성행위를 하는 것임에도 관계없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은 도덕을 뛰어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6) 이단들의 출발점이 된다
많은 이단의 교주들이 자신은 신적 계시를 받은 사람이라고 특수화하며 출발한다. 이단 교주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성령으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분류된 2세기의 몬타너스는 ‘성령이 불러주는 말을 그대로 받아 말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성령의 새로운 시대를 알린다고 했다(강문석·김일천, <기독교이단제설>, 칼빈서적, 1994년, 97페이지)
통일교도 직통계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36년 4월 17일 부활절 아침에 기도하던 중 예수가 나타나 ‘인류구원사업의 소명이요 공식하명’이라는 메시아 사명을 맡겼다고 한다. 그가 몇 차례 거절했으나 예수는 ‘그대가 아니고서는 이 중대한 책임을 감당할 사람이 없다’고 거듭 당부하여 큰 사명을 맡겼다고 한다(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건강한 성결인 건강한 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2007년).

자칭 재림예수라는 구인회 씨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구인회 씨가 부여중학교 3학년 재학중이던 16세 되던 12월 어느날 새벽, 하늘에서 노란 광채가 보이면서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음성이 들렸다고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다! 너는 신앙촌에 들어가라’”(현대종교 편집국, <자칭 한국의 재림주들>, 국제종교문제연구소, 235페이지). 몰몬교도 마찬가지다. 설립자인 요셉 스미스가 모로나이라는 천사를 만나면서 몰몬교도 출발했다(몰몬경, 1967년판, 예언자 요셉스미스의 간증 편).

1992년 시한부 종말론자들도 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이 땅에 하늘의 메시지를 계속 받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당신은 믿으시겠는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비밀에 속한 것을 펼쳐보이는 것을 말한다.··· 계시는 자기 암시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만 미래를 알게 되는 경우이다. 그 방법은 환상을 통해 보여 준다든지 하늘의 음성을 직접 들려준다든지 하늘의 사자를 보내 지시 내지 명령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엔 기도나 묵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언제나 하늘의 창이 열려 있음을 의식하게 되고 신비스러운 영적 파동을 느끼면서 초월적 존재와 접하게 된다.”(이장림,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그루터기, 1988년, 11쪽).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사람들의 실례를 나열하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많다. 이토록 문제가 심각한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영성이 아니라 언제든지 이단이나 사이비로 변질될 수 있는 위험성을 상시 내포하고 있는 뇌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추구하려는 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3. 하나님의 음성 듣기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단·사이비, 심지어 사기꾼들조차 애용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왜 사그라지지 않고 인기를 끄는 것일까? 이는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계시론적 신학의 부재가 편만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명 출판사가 앞장서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와 관련한 위험성 경고나 제대로 된 지침도 없이 책을 내는 데 앞장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류의 책을 많이 내는 메이저급 출판사로는 규장, 예수전도단, 죠이 선교회(신디제이콥스의 책자를 출판해왔다)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이 펴내는 책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문제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내용을 보편적 신앙의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심성에 무속신앙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유행시키는 원인이다. 박정근 목사(부산 영암침례교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싫어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그게 심성이다. 말씀을 죽어라고 가르쳤더니 기도원 가서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원장을 만나서 휙 돌변하는 게 성도들이다. 내가 보기엔 기도원 원장이 사기치는 게 보이는 데도 성도들이 빠져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서만 확인하는 것을 싱거워하는 신도들이 적지 않다. 눈에 보이는 뭔가, 가슴 속에 팍 박히는 뭔가가 필요한 신도들이 많다. 그런 무속적이고 사적인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형태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는 결국 한국교회에 이런 류의 유행을 쉽게 그치게 하지 못하는 요소다(박정근, 침례신학교 목회연구원 영성수련회, 2014년 3월 24일 강연).

김지철 목사(소망교회)는 2007년 3월 2일 소망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글(국민일보에도 기고함)에서 “누군가가 직통 계시를 받았다고 소문나면, 마치 사울 왕이 답답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아 나선 것처럼(삼하 28:7 이하),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떠돌이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이란 것을 내 귀로 직접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무속적인 호기심과 관심이 결국 하나님의 음성류의 직통계시를 유행시키는 이유인 것이다.

4.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음성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음성’에 나타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위에서 언급했다. 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를 기초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니면 사탄의 음성 또는 불건전한 직통계시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초로 삼고자 한다.

1) 직통계시자는 주로 직접 하나님을 만나서 특정 내용이나 사건에 대해 직접 보고, 들었다고 말한다.
2) 직통계시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절대 복종 이외의 선택이 없도록 몰아간다.
3) 직통계시자는 자신의 말을 거절하거나 듣지 않으면 성령 훼방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사람이라는 정죄를 한다. 직통계시자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상대를 향해 저주를 받는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신도들에게 심어준다.

4) 직통계시자는 처음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계시의 전달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스스로 ‘계시자’가 돼 간다. 직통계시자는 늘 하나님께서 자신을 직접 만나서 뜻과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교만과 독선에 빠지게 되며 ‘계시의 전달자’와 ‘계시자’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게 된다.
5) 직통계시자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받은 계시를 합리화하고 수단화하는 방법으로서 성경을 이용한다.
6) 직통계시자는 진지하고 지속적으로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분의 음성을 늘, 직접 들려주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직통계시자 중에는 설교를 해야 할 때조차 설교를 준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성령이 직접 할 말을 지도하시니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7) 직통계시자의 최종 목적은 자기 뱃속을 채우는 것이다. 따라서 늘 거액의 헌금, 돈을 요구한다. 상대가 가난한지, 부유한지의 사정은 봐주지 않는다. 헌금을 바치지 않을 경우에도 ‘저주’가 내려진다고 협박한다.

위와 같은 직통계시자를 따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신도들이 처음엔 “저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한다”고 생각한다. 신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직통계시자라는 ‘사람’에 얽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의 눈치를 보는 삶, 예속된 삶을 살게 된다. 갈수록 인격적 결단력은 약해지고 삶이 피폐해진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성경을 통해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는 신도들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각양각색의 선택의 상황들이 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지혜를 갖고 선택해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다. 즉 그리스도인은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다. 삶에서 발생하는 온갖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이 두가지를 적절히 활용해 스스로 선택하고 활용하고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죄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때로 슈퍼마켓에 가서 비누 살 때조차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열심에는 탄복할 일이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천하려는 추구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일반은총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신앙이 결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이단·사이비 심지어 사기행각으로 흐르는 현실에 대해서도 살펴봤다. 위험한 데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성경적이어서가 아니다. 교인들이 한국인의 심성 깊은 곳에 자리한 무속신앙을 갖고 그대로 교회를 다니기 때문이다. 이에 영합한 직통계시자들이 성도들을 장악하고 휘두르고 싶은 욕망과 욕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도구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누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곧이곧대로 그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스스로가 어떤 영적 존재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인되기까지 400여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이런 역사적 신앙을 마음에 품는다면 우리의 수많은 일상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렸다고 답답해 할 것도, 어떤 음성이 들렸다고 모두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일 일도 아니다. 자신의 귀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천착할 경우 이는 매우 독선적·독단적 신앙으로 변질돼 왔다는 것을 교회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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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호 2016-11-21 18:52:31
내가 하나님께 말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기도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을 하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미쳤다고 한다. - 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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