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의 오성삼 목사(한우리교회)가 설교 중에 “여러분 자신이 다 예수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분배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도록 하셨다”, “우리가 서로서로를 볼 때 그리스도로 보기를 축원한다”, “여러분의 형제·자매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는다”는 등 황당한 발언을 오랫동안 해왔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소위 사람이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가 된다는 ‘신화(神化)사상’을 기침 소속 목회자가 설파해온 것이다. 그러나 오 목사는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사상은 잘못됐다”며 “잘못된 것은 지적하면 모두 고치고 수정하고 버리겠다”고 밝혀 향후 그의 진정성에 대한 교계의 주시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자는 최근 오 목사의 설교 파일, 테이프 등 100여 개의 자료를 입수했다. 오 목사가 2003년부터 2007년 경까지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한우리교회 교인 중 20~30대의 결혼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모임), 화목회(오성삼 목사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화요일에 성경공부를 시키는 모임, 현재는 월요일에 모임) 수련회 장소에서 진행한 요한복음·에베소서 강해 파일과 테이프다.
그는 이 설교들에서 △신약성경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문자적인 주님·이론적인 주님을 믿는거다 △2천년이 흘렀지만 그 당시 예수님의 생명이 오늘날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실현되는데 그 사람을 받을 때 예수님을 받을 수 있는 거다 △사람인데 하나님이 될 수가 있는가? 성경에서는 ‘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인데 그를 내 주로 고백할 때 교회가 된다고 주장했다(녹취록 참고).
오 목사가 설파한 신화사상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주장으로서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예수의 형상을 닮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야 한다’는 성화를 위한 가르침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신화사상’과 관련한 그의 주장을 직접 들어보자.
“‘하나님의 나라’하면 누가 삽니까? 하나님이 사는 거예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되게 하신 겁니다. 굉장히 놀라운 섭리예요. 우리를 하나님 되게 하셨다! 그것을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아멘입니까?”(오성삼 목사, 2003년 화목회 수련회 5강 강의 자료).
“사람인데 신이 될 수가 있는가? 사람인데 하나님이 될 수가 있는가? 성경에서는 ‘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5강).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들어와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그대로 들어오셔서 예수님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와 진리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7강).
‘신화사상’을 토대로 그는 교회안의 구성원들을 ‘주’ 또는 ‘그리스도’로 표현해도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것처럼 설교해 왔다. 그 구성원에는 교회안의 어린아이, 셀리더, 남편, 아내 등 다수가 포함됐다. 그리고 오성삼 목사 자신도 ‘주’ 또는 ‘그리스도’가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빠트리지 않았다. 그의 말을 빌리면 그래야 생명의 속성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보고 있으면 내게 주님이 누구인가를 알아요. 이 관계성 속에서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요. 아내는 ‘아, 내 남편이 주님이구나!’, 이걸 알아요. 셀 안에 있을 때, ‘아, 셀 목자가 내 주님이구나’를 알아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여러분 안에서 죽음을 거쳐 부활한 그 사람이 보여지길 바랍니다. 누군가 그 사람이 보여져야만 해요. 내가 메시지를 하니까 ‘접니다’ 하는 게 아니예요. 정말 형태가 달라져요. 어떤 어린 아이가 믿음으로 서서 갈 때 ‘아 정말 저 아이가 주님이구나’ 이렇게 고백된 적이 있어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우리 교회도 200여 명의 사람이 있는데 이 안에서 교제를 하다보면 이 분이 주님이고, 그 사람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 이 말이에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그런데 제가 ‘내가 주입니다, 여러분 몰랐죠? 내가 메시아예요, 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에게는 가능한가 하면 조 목사와 나와의 관계(아비와 자녀같은 관계에서는 가능하다는 의미다: 녹취자주)에서는 가능해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오 목사는 이러한 자신의 설교가 결코 한국교회와 함께 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설교 중에 “이 테이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제가 이단됩니다”라며 신도들에게도 주의를 줄 정도였다.
그러나 오 목사는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를 만난 자리에서는 “사람이 예수가 된다는 사상은 완전히 신성모독적인 것이다”고 말해 기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이런 해명은 자신이 지금까지 설교를 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화사상’ 설교를 한 데 대해 “정말 내 마음 중심에서 ‘당신이 예수다’ 이렇게 얘기했다면 신성모독죄다”고 전제하고 “그런데 나는 셀목회적 개념에서 크리스천의 속에 주님의 생명이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다는 개념으로 얘기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관계 가운데 있을 때 상대를 사람이라고 보는 게 아니라 주님처럼 대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다”며 “사람이 예수다라는 것은 표현상으로 잘못된 것이지 나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실제로 ‘신화사상’이었다면 자신의 교회의 신도들이 서로를 향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오 목사는 자신의 설교와 관련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께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자칫 잘못하면 사람이 예수님처럼 된다는 주장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게 발견됐다”며 “잘못을 지적하면 모두 고치고 수정하고 버리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공개사과 성명을 발표하라는 지적이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수용할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화사상’을 오랜 세월 설파했던 오성삼 목사가 비록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잘못을 시인하고 문제점들을 고치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소속한 기침 교단은 물론 교계는 그가 말한 내용이 실제로 잘 지켜지는지 철저하게 검증하고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한편 기침 중부연합지방회 소속인 오성삼 목사는 1988년 서울에 한우리교회를 개척했다. 그 후 경기도 용인에 집회 장소를 건축했고 현재 경기도 죽전, 서울 자양동 등에도 교회를 세웠다. 오 목사의 한우리교회는 현재 장년 200여 명, 죽전 한우리교회는 30여명, 서울 자양동 한우리교회는 40여 명의 신도들이 모인다. 그리고 오 목사는 ‘화목회’라는 모임을 갖고 목회자를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키기도 한다.
교계에서 그는 ‘셀목회’ 전문 사역자로도 알려져 있다. 오 목사는 한 교계 월간지에 ‘전원공동체로서의 한우리교회’를 기고한 것을 비롯, 또다른 월간지에는 ‘한국교회를 위한 셀과 소그룹 목회’라는 주제의 좌담자로 나서기도 했다. 자신이 담임으로 있는 한우리교회의 셀사역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침례신학대학교가 부설로 세운 전신자사역원이라는 곳에서 캠퍼스 셀 여름 수련회의 강사로 초빙되기도 했다.
오성삼 목사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주장은 신성모독” |
오성삼 목사 설교 자료 주요 녹취 오성삼 목사, 2007년도 한우리교회 마리아 모임 설교 “내게 주님이 누구인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그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에 오라고 한 거예요. 우리 교회로. 이건 뭐냐하면 바람이 임의로 부는 역사인거 같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성경 말씀을 보고 하나님을 좇아가는 시대에서 니고데모가 산다 이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니가 말한 하나님이 나다 이 말이에요. 니가 말하는 하나님이 바로 나다. 이것을 니고데모가 받을 수 있었을까? ‘여러분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오성삼이다!’하면 여러분 받을 수 있습니까? 받을 수 있어요, 없어요? 굉장히 극단적인 말이죠. 이건 이단 중에 이단이고 이단 중에 괴수죠. 그런데 그런 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니가 말하는 거듭남의 새로운 종자가 바로 나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뭐를 믿고 있었습니까?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게 요한복음의 주제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믿어요 안 믿어요. 요한복음 3장까지 공부하면서 이것을 믿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분이 그리스도입니다. 참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게 보여지는 사람도 있고, 안 보여지는 사람도 있으니까 어쩔 수 없어죠. 이게 보여지면 내게 주님이 누구인줄 알아야 해요. 이게 보여 지는 사람이 있고, 보여지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까 할 수 없어요. 이게 만일 여러분들이 보고 있으면 내게 주님이 누구인가를 알아요. 이 관계성 속에서 주님이 누구인지를 알아요. 아내는 ‘아, 내 남편이 주님이구나!’, 이걸 알아요. 셀 안에 있을 때, ‘아, 셀 목자가 내 주님이구나’를 알아요. 교제할 때 두 사람이 교제할 때 어떤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이 사람이 주님이구나 이걸 알아요. 아멘? 그런데 제가 ‘내가 주입니다, 여러분 몰랐죠? 내가 메시아예요, 저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에게는 가능한가 하면 조 목사와 나와의 관계에서는 가능해요.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는 가능합니까? 가능하지 않아요. 일만 스승이 있어요. 아비와 자녀의 관계에서는 가능해요. 이 주관적인 관계를 객관적인 관계로 말해서 이러면 이단이 되는 거예요. 주관적인 부분으로는 가능하다는 말이에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여러분은 신약성경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 이 예수님은 문자적인 주님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은 신약성경 속에서 나오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을 믿고 있어요. 그런데 이 예수님은 문자적인 주님이란 말예요. 이론적인 주님이란 말예요. 근데 2천년이 흘렀지만 그 당시 예수님의 생명이 오늘날 그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실현됩니까? 실현된단 말예요. 실현되고 있어요. 그 사람을 받지 못합니다. 그 사람을 받지 못하면 누구를 받지 못하는 겁니까? 2천년 전의 예수님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받을 때 그 사람 속에 있는 2천년 전의 예수님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아멘? 그런데 그 사람이 저와 오랜 동안 있었던 사람은 제가 그 사람의 영적 아비가 되죠. 그런데 이제 교회 처음 온 사람은 아니죠?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관계를 가져야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게 받아지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게 안 받아지는 사람도 있죠”(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어떤 어린 아이가 믿음으로 서 갈 때 ‘아, 정말 저 아이가 주님이구나’ 고백된 적이 있다” 내가 메시지를 하니까 ‘접니다’ 하는 게 아니예요. 정말 형태가 달라져요. 어떤 어린 아이가 믿음으로 서서 갈 때 ‘아 정말 저 아이가 주님이구나’ 이렇게 고백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케이스 바이 케이스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우리 교회는 그런 거 가르치지 않지만, 목자와 양 이런 거 가르치면서 모든 영역에서 자기가 목자인 사람을 조심하라는 거예요.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에요.” “···2천년 전에 있는 주님 믿을 거야. 그 말도 맞는 거 같아요. 니고데모에게 말한 것을 보면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만질 수 있다는 거예요. 경험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도 그리스도의 어떠함을 만지고 경험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것을 요한이 본 바요, 만진 바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말이에요. 만지고 나니까 이 생명이 창세전부터 있었던 생명이구나 ···나중에 목자와 양의 관계가 나오는데 목자는 설교 잘하고 목회 잘하고 하는 사람이 아닌 양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사람이에요. 삯꾼은 이리가 오면 도망간다 이 말이에요. 우리가 영적 관계를 가지면서 ···여러분 안에서 보여져야 독생자가 보여야 해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그러면 오성삼 목사를 주로 받으란 얘기인가?’ 이렇게 오해가 될 소지가 있다는 걸 안다” 흘러가는 것은 절대로 지식이나 교리가 아니라 그것이 실현됐을 때,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실현됐을 때만 가능한 거예요. 김 모 목사님이 이걸 보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은 절대적으로 독단적이거나 혼자 서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자기를 증명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이 위험한가 하면 니고데모 같은 사람이 위험한 사람이에요. 왜 그렇습니까? 자기 자신을 고상하게 지킬 수 있으니까. 기도할 수 있고, 말씀도 어느 정도 알고, 사회적인 지위나 종교적인 지위도 그렇게 뒤처지지 않는 모습이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해도 그래도 고상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우리 교회 안에서 교제를 하다보면 이 분이 주님이고, 그 사람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 그러면 2천년 전에 있는 옥수수를 인정하는 것은 지금 현재 내게 실체로 오신 옥수수를 인정하는 겁니까, 아닙니까? 인정하는 거란 말예요. 그러니까 실체로 오신 옥수수를 내가 인정하므로 2천년전의 옥수수를 인정하는 거란 말예요. 이 얘기를 니고데모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니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을 믿느냐, 그러면 나를 받으면 네가 하나님을 만질 수 있다 이 말을 하는데 나는 2천년전의 그것은 인정해도, 너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얘기란 말예요. 그래서 사람의 관계는 받아들일 수 없고, 지식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러니까 뭡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개념이 실종하는 거예요. 지금 내가 메시아라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그 속에는 생명의 속성이 흐르고 있다는 거예요. 아멘이죠? 그러니까 이 부분이 가면 갈수록 천국은 침노가 돼서 우리 교회도 200여 명의 사람이 있는데 이 안에서 교제를 하다보면 이 분이 주님이고, 그 사람을 내 안에 받아들인다 이 말이에요. 또 내가 나를 풀어서 내가 그 사람 속에 들어간다 이 말이에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가 그대로 실현될 줄로 믿습니다”(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여러분 자신이 다 예수다” 그래서 내가 옛날에 학생 때, OO학생 때 작은 예수들, 이것을 가르쳤어요. 작은예수라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그 때는 모르고 들었잖아요. 그리고 이 말을, 내가 예수라는 말을, 그냥 이렇게 하면 이단이 되고 그럴까봐, 예수의 신이 들어왔다, 예수의 신이 들어왔다, 내 안에 예수의 신이 들어왔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뭡니까? 크리스천이에요, 크리스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내 안에 예수 신이 들어왔다 이 말이에요”(오성삼 목사,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설교 이 모 목사처럼 다 할 수 있어요. 그런 건 진짜로 찢어버려야 해요” 그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OO형제가 간증을 했어요. 형제들의 심판을 거치는 거예요. 그러면 막 ‘다음에 안 써야지!’(사람들이 간증을 듣고 판단을 하니 마음이 상해 다음에는 간증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녹취자주) 그게 마귀예요. 또 하는 거예요. 또 거치고, 또 거치고, ··· 한 사람의 간증에 전부다 형제들이 개입해서 심판이 거쳐지고. 아주 정결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돼요”(오성삼 목사, 2007년 6월 29일 금요일, 한우리교회 마리아모임). 오성삼 목사, 2003년 화목회 여름수련회 에베소서 강해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말은 분배라는 말입니다” “내 자신을 나누면 하나님이 된다는 거다”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요한 웨슬레는 자기를 분배한 거예요. 자기를 나눠준 거예요. 다시 말해서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 웨슬레가 복음을 통과하고 요한 웨슬레를 통로로 사용해서 하나님이 복음을 당신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말하면 기능밖에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에베소서는 그런 말씀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 속에 당신을 충만케 하셔서 우리 존재를 변화시켰다 이 말이에요. 우리 존재를 변화시켰다는 말은 뭐냐하면 인성의 변화다 이 말이에요. 우리 인성이 변화되신 거예요. 인성이 변화되니까 요한 웨슬레가 하는 말은 전부다 하나님이 돼 버린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요한 웨슬레 자신이 하나님이 돼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게 이해가 되십니까? 내 자신을 나누면 하나님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 제자들은 요한 웨슬레 자신을 나눈 것인데 그 다음 제자들은 뭘로 했느냐 하면 요한 웨슬레가 전했던 지식이 남아 있단 말예요. 그 지식을 그대로 전했어요. 어떤 사람은 지식을 그대로 전하는 대도 안 바뀌어요. 어떤 사람은 그 똑같은 지식을 전하는대 바뀌어요. 이 차이가 뭐냐 하면 한 사람은 지식을 지식으로 전달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지식이 인격으로 증명돼서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에베소서에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들어와서 우리 존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존재를 변화시켜서 그 존재 자체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행위가 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는 거죠. 그 사람이 다음 사람을 만날 때 다음 사람이 이 사람을 사람으로 봅니까, 하나님으로 봅니까? 뭘로 봅니까? 하나님으로 봅니다. 사람인데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신성과 인성에 대한 부분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여름 화목회 수련회 3-1강 강의 자료). “사람인데 그를 내 주로 고백하는 거다. 이럴 때 교회가 된다” 조 목사님이 내 안에서 다시 나지 않으면 우리 관계는 하나가 안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목사님이 거기서 빛이 딱 나게 되면 ‘당신이 내 주님입니다’ 하고 고백하게 돼 있단 말이에요. 신비합니까? 여러분. 이 말이요? 사람인데 그를 내 뭘로 인정합니까? 주로 고백하는 거예요. 사람인데 주로. 이럴 때 교회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에게 빛이 비춰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어두우면 니고데모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아니 예수님이 들어와야지. 예수님이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오성삼 목사, 2003년 여름 화목회 수련회 4강 강의 자료). “내가 양 모 목사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가 안된다” 이 목사님은 침례교고, 조 목사님은 에이 감리교로 가야겠다. 감리교로 가버려. 틀리니까요. 어떤 사람은 독립침례교로 가 버리고. 이렇게 해서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육체가 되셨다는 것은 그 때 당신만 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에게도 적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양 모 목사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양 목사님하고 안된다 이 말이에요. 하나가 안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가 서로서로에 대한 교류 가운데 그를 주로 받아들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이도 없어지고, 권위도 없어지고, 모든 종교적 요소가 다 빠져 버린 겁니다. 빠져 버리고 주님으로 만나는 것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여름 화목회 수련회 4강 강의 자료). “우리를 하나님되게 하셨다!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 말씀하신 거다” 하나님을 계속해서 확장시키시는 거예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뭐가되냐 하면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거예요. 교회 다니는 사람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불렀던 별명이죠. 그것은 뭐냐하면, ‘예수 귀신 들린 자다’ 이 말입니다. 크리스천이란 말이”(오성삼 목사, 2003년 여름 화목회 수련회 5강 강의 자료).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주셔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되도록 하셨다” “이 테이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주면 안된다, 그러면 내가 이단된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늘 구약의 성경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말은 말씀되신 생명이 빛이 사람 육체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의 육체에 오시면 육체는 더 이상 육체가 아니라 하나님과 한몸이 되었잖습니까? 하나님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육체인데도 그가 하나님이 되었다. 신이 되었다는 말을 네가 들어 본 적이 없느냐? 이렇게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정말 값진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독생자의 영광이 우리에게 들어왔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 하나님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육체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육체 속에 들어오셔서 인격이 될 때만이 그분이 정확하게 표현되어집니다. … OOO 집사님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가서 육체 가운데 거하십니다. 성육신이 일어났습니다. OOO 집사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계속 자랐습니다. 그분 속에 하나님이 그대로 표현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표현되어 질 때 이OO 집사님이 진OO 집사님과 마음과 마음을 나누다가 보니까 아, 저 분 속에 나타난 분이 하나님이구나. 이렇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9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5강). “우리 육체 가운데 예수가 들어오셔서 우리 자신이 돼 버린게 은혜와 진리다”
“여러분의 형제·자매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안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리스도를 맛보지 못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 형제와 자매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지고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만질 수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만질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믿습니다. 2천년 전의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습니다. 거기서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전부다 가짜입니다. 거의 대부분 가짜입니다. 2천년 전에 계신 분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것은 2천년 전에 죽은 그리스도가 오늘날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되셔서 임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2천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2천년을 초월해서 지금도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형제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자매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8강). “여러분의 형제를 향하여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이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은 지금 현재 지금 여기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구나. 그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속에서 서로 하나님의 생명을 만질 수 있는 관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관계가 부부 안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남편에게 그렇게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 내가 있습니다. 당신이 가는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 당신이 머물면 나도 거기 머물겠습니다. 당신이 일어서면 나도 일어서겠습니다. 죽는 일 외에는 내가 당신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남편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때 그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룻은 자기의 시어머니 나오미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형제를 향하여 그리스도로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항상 마음에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이 내 마음에 있구나. 여러분 마음에 그리스도가 항상 마음에 있기를 원합니다. 형제들이 항상 있다. 이 말과 똑같은 것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8강).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은 바로 내가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분이 내게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운명이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내가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죄가 용서되어진 것입니다.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은 그분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내 운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할 때 항상 누구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행동합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10강). “‘예수님이 바로 나’, ‘예수님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갔다는 것은, 내 죄가 예수님에게로 넘어 가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은 교리적이고 지식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어린양이다, 우리의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은 어떤 세력이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세계가 오셔야지만 그 죄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생명이 오지 아니하면 떠나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이 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교리적으로 아 죄용서가 되었구나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적 허위입니다”(오성삼 목사, 2003년 10월, 한우리교회 요한복음 10강).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했다, 수백번 이야기해도 안된다, 그렇게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