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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사도신경 무용론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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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사도신경 무용론에 대한 비판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1.01.25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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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가 칼빈의 입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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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Ⅰ. 서론

1. 연구동기

2. 연구 범위와 방법

Ⅱ. 본론

1. 신천지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

1-1. 사도신경은 주기도문(마 6:9~13)과 달리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것으로 가톨릭의 로마신조로부터 탄생했다.

1-2.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이 아닌데 그 책임을 모두 빌라도에게 떠넘기는 사도신경은 성경적이지 않다

1-3. 예수 죽이기를 밤낮으로 공모한 공회를 일컬어 ‘거룩한 공회’라 고백하는 것이 문제다

1-4. 신천지를 ‘영생’을 말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영생’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2. 사도신경의 성경적 근거

3. 칼빈과 종교개혁가들의 사도신경 이해

3-1. 칼빈(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3-2. 루터(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 독일의 종교개혁가)

3-3. 츠빙글리(1484년 1월 1일 ~ 1531년 10월 11일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3-4. 하인리히 불링거(1504년 7월 18일-1575년 9월 17일).

3-5.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1534년 7월 18일 - 1583년 5월 6일, 독일의 종교개혁가)

4. 신천지의 사도신경 폄훼 이유와 그에 대한 반론

4-1. 사도신경이 성경에 없는 내용이고 개신교회에서 부정하는 로마 가톨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하여

4-2.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이 아닌데 그 책임을 모두 빌라도에게 떠넘기는 사도신경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4-3. 거룩한 공회, The Holy Catholic Church, 가톨릭교회를 믿으란 말인가에 대한 반론

4-4. 신천지를 ‘영생’을 말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영생’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1. 연구동기

사도신경은 많은 공격에 직면했다. 밖으로는 이단들의 공격, 안으로는 사도신경 무용론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단들, 특히 신천지는 사도신경이 가톨릭에서 비롯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거짓을 가르치는 것이라며 사도신경은 성경에 맞지 않는 ‘사람의 가르침’이라고 비난한다. 기독교 안에서의 공격도 존재한다. ‘역사적 예수’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자들을 통해 사도신경의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완상은 그의 저서 “예수없는 예수교회”에서 “역사적 예수, 실물 예수의 감동적인 모습은 찾아 볼 수 없고, 교리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표현은 상대적으로 길고 자세하다”면서 사도신경을 향해 “예수 없는 신앙고백”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기독교회 안팎에서 공격받고 있는 때, 종교개혁가들은 사도신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쳐 왔을까. 그들은 신천지측의 주장처럼 ‘사람의 주장’으로 용도폐기해야 할 인습일 뿐으로 여겼을까, 아니면 기독교를 바르게 정의하고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돼야 할 신앙의 기초이자 초석으로 생각했을까. 박상봉은 “처음부터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구원과 믿음에 관련된 ‘믿어야 할 것’과 ‘행해야 할 것’을 규정해 왔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명확한 표현과 이해로 구원과 믿음에 대한 진리를 충실히 드러내고 동시에 잘못된 경우들을 피하면서 가장 적절한 언어로 체계화시켰다. 전체 성경의 내용을 모든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적인 교리와 신조(신앙고백)으로 정리한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도신경은 전체 성경의 내용을 핵심적이고 명확하게 정리한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이다. 따라서 전체 성경이 요약된 핵심적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이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고백되지 않고, 나아가 사도신경을 부인까지 하는 곳이라면 이곳은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교회의 일원이 아닐 수도 있다.

박상봉은 “교회는 역사의 첫 시작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가르치는 많은 이단들이나 거짓 선생들도 등장했다. 성경만 강조할 때에는 모든 교회가 한 보편교회(Catholica Ecclesia)의 일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바른 교리적인 기준 없이 해석되고 가르쳐질 때에는 다양한 유사종교들처럼 확인된다.”고 말한다. 사도신경은 기독교회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고백일뿐 아니라 ‘오직 성경’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래서 보편교회의 일원인 것처럼 보이며 성경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 속에서 성도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파괴하는 유사종교인들, 즉 옥석을 가려내는 바로미터, 다림줄의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신앙고백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세력 중 가장 적극적인 집단은 단연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만희 총회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사도신경의 무용론은 신천지뿐 아니라 일부 구원파와 세대주의에 입각한 일부 침례교회 등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계에 가장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단체는 신천지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에 제한해서 반박해 보겠다. 만일 신천지측의 사도신경 무용론을 종교개혁가, 특히 칼빈이 직접 목도했다면 그는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이 작업을 제대로 정리해 놓는다면 이는 신앙인 스스로는 신앙의 자산이 될 뿐 아니라 느닷없이 사도신경을 깨버리면서 들어오는 신천지측의 도전에 어렵지 않게 응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박의 논리가 방금 급조된 것이 아니라 종교개혁사, 아니 그 이전, 기독교 역사 2천년에 이르도록 견디어 온 신앙의 유산을 이어 받는 기독교 역사와 전통 속에 검증된 내용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뜻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2. 연구 범위와 방법

신천지측의 저술 중 Big3는 이만희 교주가 쓴 '요한계시록의 실상', '천지창조', '예수그리스도의 행전'을 꼽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에는 사도신경을 직접 비판한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천지측 원자료들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사도신경을 비판한 자료들은 ‘주제별 요약해설’(신천지 총회 교육부, 2009), ‘신천지 정통교리와 부패한 한기총 이단 교리 비교’(신천지 총회 교육부, 2017.12), 신천지 베드로지파 교육부 1권 천상의 나팔소리(2005년) 등에 충분히 등장한다. 또한 신천지측 기관지로 비판받고 있는 ‘천지일보’가 써낸 기사들도 연구 자료로 채택하는 데 손색이 없다. 천지일보 검색 란에 ‘사도신경’이라고 치면 31개의 기사가 검색된다. 그중 사도신경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룬 주요 기사 5개를 선별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신천지측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를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그들이 사도신경을 오히려 ‘이단적’, ‘마귀적’이라고 폄훼하는 이유를 제시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종교개혁가, 특히 칼빈의 사도신경 이해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신천지측의 주장에 반론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 종교개혁가, 칼빈, 루터, 츠빙글리, 불링거, 우르시누스의 사도신경에 대한 입장과 해설을 통해 500여년, 나아가 2천년의 세월 동안 신앙의 기초로 자리해 온 사도신경에 대한 건강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신경은 한국교회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한 때, 이런 작업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것으로 사려된다.

Ⅱ. 본론

신천지와 종교개혁자들의 사도신경 이해를 전개하기 전에 먼저 신천지가 어떤 단체인지, 약술하는 것으로 시작하겠다. 신천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교단 2003년 88회 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한국사회 최대 이단이다. 신천지는 1984년 설립, 전국 12개의 체인을 가진 한국 최대의 신흥 종교다. 신천지의 총회장은 이만희(1931년생)다. 그는 1984년 신천지를 설립한 후 지금까지 36년간 총회장 직함을 가진 후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총회장직을 인계한 적이 없다. 신천지 교인 수는 전국 2020년 기준 23만9353명, 12개 지파의 체인에는 본점과 연계돼서 지점(지사)역할을 하는 지파 교회가 있다.

전국 본부는 경기도 과천에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슈퍼 전파자 역할을 하게 된 대구는 다대오지파라고 한다. 전국 12개 지파가 개별적으로 예수님의 12제자, 베드로(광주), 안드레(부산), 요한(과천) 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신천지는 중국·일본·필리핀·캄보디아 등 아시아 16개국,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 9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2개국, 남아공 등 아프리카 5개국 등 전 세계 40개국에 33개 교회, 109개 개척지(소규모 조직)를 두고 있다. 전국 교회 및 부속기관은 1100개이고 특히 위장교회를 운영한다는 점이 여느 이단과의 차이점이다. 위장교회는 신천지의 히든카드로서 겉으로는 정통교회 간판을 걸고 있다. 위장교회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교단 명칭은 ‘대한예수교 장로회’다. 합동 측 마크를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그래서 외관상 구별이 어렵다. 그런데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사도신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치는 지를 보면 간단하게 식별이 가능하다.

1. 신천지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

신천지의 사도신경에 대한 평가를 딱 한 단어로 축약한다면 ‘혐오’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사도신경을 혐오하고 비방하고 폄훼하기를 그치지 않아왔다. 그들은 사도신경에는 틀린 내용들이 있다, 거짓말하면 마귀이다(요 8:44), 없는 것을 더하면 거짓말하는 마귀이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물론 “한국교회가 목숨처럼 여기는 ‘사도신경’이 있다. 이는 그들이 이단시 여기는 가톨릭의 로마 신조로 탄생됐다”, “가톨릭은 이단시 하면서 사도신경은 신주 모시듯 외우고 있으니 일차적 모순이다”는 주장도 한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아니며, 성경에 맞지 않는 ‘사람의 가르침’이다”는 비판은 물론, 사도신경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고백을 하고 받아들이면 이단이라는 식으로 힐난한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맞지도 않고 자의적인 다른 복음으로서 이단의 주장인 것이다”라고도 한다. 거짓말을 만들어 교리화하고 이를 세뇌한다고도 비판한다.

"문제는 이 같은 거짓말을 만들어 교리화해 가리키고 세뇌화 한다는 것은 살리는 것이 아니요, 독을 먹여 죽이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쳐온 신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 그 뒤를 이은 칼빈의 교리, 오늘날 이 시대 또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뒷전이고 사람의 배를 채우기 위해 만든 온갖 설과 론, 즉 주석에 깔려 죽이고 죽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신앙세계를 다시 한번 반성해 보는 계기가 참으로 요구되고 있다."

사도신경을 가르치는 것을 ‘독을 먹여 죽이는 것’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서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종교개혁가들이 이단과 정통을 나누는 기준이라고 사도신경을 이해한 반면 이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이단 판정의 기준과 하나님이 말씀하는 이단 판정의 기준에서 사도신경을 ‘사람들이 말하는 이단의 기준’ 항목에 넣어 폄하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이단의 기준. - 사도신경을 고백하지 않은 곳. ‘정통과 사이비 이단을 심판하는 기준은 천국법전 성경입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며 예수님 말씀으로 마지막에 심판하신다 하셨기에 정통과 이단에 대해서는 성경을 바르게 아는 자가 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정리하겠지만 신천지의 사도신경을 이해하는 방식과 종교개혁가들의 이해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종교개혁가들은 사도신경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요약적이고 압축적인 진술,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본 반면, 신천지측은 오히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마귀 소리이자 참 교회를 망치는 독이라고 비난한다. 그렇다면 신천지측이 사도신경을 이토록 맹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은 신천지의 주장을 요약적으로 진술한 것이다.

1-1. 사도신경은 주기도문(마 6:9~13)과 달리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것으로 가톨릭의 로마신조로부터 탄생했다.

이지솔은 총신대학교 이재서 총장이 취임사에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있다. 바로 사도신경적 신앙고백이다’고 말한 것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 총장의 말대로 기성교단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예배 도중 사도들의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사도신경(使徒信經)’을 합송한다. 그렇다면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사도신경’이 과연 성경에도 나와 있을까? 천지일보가 팩트체크를 해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도신경은 주기도문(마 6:9~13)과 달리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이는 ‘로마신조’에서 유래한 개신교인들의 신앙 고백문에 불과하다.”

천지일보의 이상면 발행·편집인 또한 동일한 내용으로 비판한다.

“한국교회가 목숨처럼 여기는 ‘사도신경’이 있다. 이는 그들이 이단시 여기는 가톨릭의 로마 신조로 탄생됐다. 가톨릭은 이단시 하면서 사도신경은 신주 모시듯 외우고 있으니 일차적 모순이다.”

“사도신경은 2세기경 로마 가톨릭의 로마신조가 그 기원으로, 이후 여러 회의를 거쳐 8세기경 현재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즉, 사도들이 아닌, 그 당시 사람들이 이단성 규명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회의를 거듭해 만든 것이다.”

신천지측 신문인 천지일보를 통해 가톨릭은 이단시하면서 성경에도 없는 사도신경을 인정하니 그것은 곧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도신경 인정은 곧 성경에 대한 불인정이라며 성경과 사도신경을 완전히 다른 대척점에 선 이단적인 행위로 폄하한다. 성경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회의를 거듭해 만들어낸 ‘사람의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다.

1-2.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이 아닌데 그 책임을 모두 빌라도에게 떠넘기는 사도신경은 성경적이지 않다

신천지가 사도신경을 부정하고 폄하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고백 때문이다.

“실제로 짧게는 1500년 길게는 1900년이 가깝도록 거의 모든 개신교인에게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고난 받게 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은 악독한 로마 총독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예수 당시 사건을 기록한 신약성경 사복음서 등 성경 여러 곳에서는 빌라도가 예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며 손을 세 번이나 씻고, 그를 놓아주려 애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지솔은 성경구절에서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 놓아주려고 한 반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한 것은 유대인이라고 했다는 것을 제시한다(요 18:31, 38; 눅 23:20~23; 마 27:24~25, 19). 그러면서 사도신경에선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이 빌라도인 것처럼 나와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예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빌라도에게 전부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내용이 있다. 사도신경이 잘못된 데는 바로 이 같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빌라도에게 죽음을 당한 게 아니다. 빌라도는 그들이 들고 다니는 성경에 기록돼 있기를 ‘예수는 죄가 없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다(눅 23장 4, 14, 22절). 나아가 우리 죄 값을 우리가 받겠다고 당시 유대인들은 자백하고 있으니, 예수를 죽인 자들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었다(마 27장).”

1-3. 예수 죽이기를 밤낮으로 공모한 공회를 일컬어 ‘거룩한 공회’라 고백하는 것이 문제다

신천지측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조항에서 ‘거룩한 공회’를 대제사장과 예수 죽이기를 밤낮으로 공모한 공회라고 동일시 한 후 비난한다.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중세 암흑 시대의 산헤드린 공회는 그리스도인을 5천명 이상 죽였다. 이 공회는 절대 공회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공회가 거룩한 일을 했는지, 공회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 ··· 마태복음 27장 1절을 본 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들 곧 온 공회가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에게 끌고 가려고 의논한 곳이다. 또 사도행전 5장 12-27절에도 사도들을 능욕하고 잡아들인 곳이 바로 이 공회이다.”

“‘거룩한 공회’라고 했는데, 공회는 예수님을 죽이라고 거짓말하고 사도들을 능욕한 곳이므로 거룩한 곳이 될 수 없다(마 26:59, 행 5:12~27).”

“또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천년 전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 및 안나스 등은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이 율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야간 불법 공회’를 열고, 거짓 증인들을 세워 예수를 ‘신성모독죄’로 정죄하고 사형을 언도한 뒤 예수를 곧바로 빌라도 법정에 넘긴 역사가 생생하다. 시대의 구원자 예수를 없는 죄도 죄 있다 뒤집어 씌워 죽음으로 몰고 간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임이 결코 거룩한 공회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죄한 예수를 기소하고 죽음으로 내몰아간 산헤드린 ‘공회’를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라고 고백하니 사도신경은 하자가 있다는 지적이다.

1-4. 신천지를 ‘영생’을 말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영생’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신천지가 비판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영생’을 주장하기 때문인데 사실 사도신경에서는 ‘영생’을 고백하면서도 신천지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도 한다. 이제까지는 사도신경 자체의 모순과 결함을 얘기했다면 ‘영생’과 관련해서 신천지는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면서도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기독교 자체의 모순을 지적한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누가 ‘영생’을 말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이단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그들이 사도신경을 통해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를 주문 외우듯 외우고 있으니 네 번째 모순이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하는데, 죽은 몸이 다시 살 수 없는 것이며, 또 신천지에서 영생을 증거하니 이단이라고 핍박한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맞지도 않고 자의적인 ‘다른 복음’으로서 이단의 주장이라는 신천지의 사도신경에 대한 입장을 확인했다. 이제 종교개혁자들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는 물론 신천지가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종교개혁자들은 500년전에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를 살펴보기 전에 간략하게 사도신경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진술인지를 약술하고 종교개혁자들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로 넘어가겠다.

2. 사도신경의 성경적 근거

1)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고백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성경 첫장을 펴자마자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목도한다. 창 1:1, 시 33:6, 9, 요 1:10에서 충분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서술한다.

2)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독생하신, 유일하신 아들에 대한 서술은 요 1:14; 3:16, 골 1:15, 18, 롬 8:32 등에 풍성하게 나타난다. 동정녀 탄생은 사 7:14, 마 1:18, 20, 23, 눅 1:35에 설명된다.

3)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막 15: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요 19: 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요 19: 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요 19: 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 요 19: 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 행 4: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행 4: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본디오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알았음에도 민란을 두려워하여 그를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허락한다. ‘본디오 빌라도’가 고난을 직접 준 것은 아니나 성경은 사도들조차 그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거스른 책임이 없다고 면죄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4)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마 27:50, 60, 28:6; 눅 23:46, 53;24:7, 26

5)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눅 24:51; 행 1:10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 ~심판하러 오십니다 마 25:31~46, 막 14:62, 16:19, 행 1:11, 롬 8:34, 골 3:1, 히 1:3, 계 1:7, 20:11-12

6)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성령: 눅 12:12, 행 13:2, 16:7, 고전 2:11, 12, 3:16, 12:11.

거룩한 공교회: 롬 8:30, 엡 5:25~27.

성도의 교제: 엡 4:15, 고린도전서 12:12

죄를 용서 받는 것: 롬 8:1, 33~39, 골 2:13, 히 10:17, 18.

몸의 부활과 영생: 마 25:31~46, 요 5:29, 고전 15:44

사도신경은 성경의 지지를 풍성하게 받는다. 종교개혁자들도 이에 따라 사도신경은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한 최적의 신앙고백서라고 공통적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칼빈과 종교개혁가들의 사도신경 이해

종교개혁가 칼빈은 사도신경에 대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는 다른 종교개혁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들이 사도신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 박상봉은 종교개혁을 진행하는 교회가 “성경적으로 옳다는 것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새롭게 탄생된 교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즉 개혁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 분리돼 나옴으로 이단으로 비판을 받자 개혁교회는 교회-교리사적으로 진정한 성경적·사도적 가르침이 무엇이었고, 그것을 벗어나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다른 길을 선택한 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증명해 보여야 했다. 이를 위해 천착한 것이 바로 ‘사도신경’이었다. 이를 통해 종교개혁가들은 “종교개혁 사상이 몇 몇 사람들에 의해서 주장된 자의적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한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를 위한 정통 신앙의 내용임을 각인시킨 것이다.” 종교개혁가들에게 사도신경은 성경적 신앙의 정수였다. 먼저 칼빈이 사도신경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제시하겠다. 그 다음 참고로 루터·츠빙글리·불링거·우르시누스의 이해를 제시해 보겠다. 그 후 신천지측이 사도신경 중에서 문제 삼는 항목에 한정해서 반론을 해보겠다.

3-1. 칼빈(1509년 7월 10일 ~ 1564년 5월 27일 프랑스의 종교개혁가)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판(1536년)에서 “이 믿음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점인데, 우리는 이를 신경(소위 사도신경)으로부터 신속히 배울 수 있다. 이 신경은 공교회가 합의한 믿음의 요약이요 총체이다.”라고 평가한다.

“사도들의 신앙의 고백, 이른바 ‘사도신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흐름이 최상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그곳에는 구원의 완전한 요체가 존재한다.”

“사도신경은 몇 마디 짧은 말로써 구속의 핵심 주제들을 요긴하게 압축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명료하게 통찰할 수 있도록 마치 일람표와 같은 구실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의 처음 원천 바로 그곳으로부터, 즉 사도시대 바로 그때로부터, 사도신경은 그것이 끝내 어디로부터 나와서 어떻게 전개되었든지 간에 공적이며 모든 사람의 가표를 받고 채택된 고백의 형태를 띈 것이라는 점을 결단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사사로이 작성되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오랜 기억까지 거슬러 반추해 볼 때 그것이 모든 경건한 사람 가운데 신성불가침한 권위를 갖고 있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권념해야 할 유일한 사실은 다음에는 어떤 논란의 여지도 없다는 점이다. 즉 사도신경에는 우리 믿음의 모든 역사가 간략하고도 분명한 순서에 따라 열거되어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성경의 증언들로 인증되지 않은 것은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칼빈에게 있어서 교리의 요체는 사람의 생명, 즉 목숨과도 다를 바가 없게 여겨졌다. 그는 교리가 전복되고 파괴된 교회를 마치 사람의 목이 관통되고 심장에 치명적인 위해가 가해진 사람의 생명으로 비유한다.

“마치 사람의 목이 관통되고 심장에 치명적인 위해가 가해지면 사람의 생명이 끝이 나듯이 교회의 멸망이 어김없이 초래된다. ···진정 교회를 유일하게 지탱할 수 있는 종교의 요체가 소멸되면 교회는 필히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참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일진대, 거짓과 허구가 가득차서 압도하는 나라에는 교회가 없음이 확실하다.”

칼빈은 사도신경을 구속의 핵심 주제들을 요긴하게 압축하고 있는 것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가표를 받고 채택된 고백의 형태를 띈, 신성불가침한 권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한다. 이토록 기독교의 근본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칼빈에게 사도신경은 그 핵심 중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3-2. 루터(1483년 11월 10일 ~ 1546년 2월 18일 독일의 종교개혁가)

루터는 "매우 짧지만 지극히 풍성한 말씀으로 묘사된 신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분의 뜻과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한 밑그림입니다"라고 평가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지혜와 생각과 이성을 뛰어넘는 완전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온 세계 사람들이 '육'으로 하나님의 존재 유무와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분의 생각과 뜻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은 이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신조를 들고 있습니다."

루터는 사도신경을 이 땅위에 사는 그리스도인과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해 주는 기준점이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베푸신 은총이 과연 무엇인지를 밝혀 주는 열쇠와도 같다고 봤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집약되어 있는 밑그림으로도 표현한다.

3-3. 츠빙글리(1484년 1월 1일 ~ 1531년 10월 11일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1522년 취리히에서 활동한 츠빙글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설명서로도 표현되는 사도신경에 대해 ‘믿는 바를 몇 마디 말로 압축한 신앙고백서’라고 설명한다.

“지금 자신이 어떤 내용을 믿고 있는지 또는 안 믿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믿음은 진리의 딸이기 때문이고,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가 자신의 믿음을 인정하고 있는지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 고백의 기초와 원천 그리고 근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사 하늘과 땅을 만드신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틀리지 않는 믿음을, 곧 유일한 창조주에 근거하고 있는 믿음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3-4. 하인리히 불링거(1504년 7월 18일-1575년 9월 17일).

“사도신조는 사도들로부터 설교되거나 보편교회로부터 수용된 믿음을 규범과 요약으로서 제시하기 위해 사도적인 가르침의 모음에 근거하여 작성되거나 기록된 것이다.”

박상봉은 “이 진술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불링거는 사도신조를 사도들이 가르친 ‘믿음의 규범과 요약’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적인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단순히 인간적인 측면에서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중심적인(Bible-centered) 정통신앙을 고려한 표현이다. 구약 성경의 역사성과 예언적 성취를 보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직접적으로 목격하면서 참된 구원의 도리를 증거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체 성경을 대표하는 중심내용으로 강조한 것이다.”

3-5.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1534년 7월 18일 - 1583년 5월 6일, 독일의 종교개혁가)

전쟁시에 우리는 아군과 적군을 한눈에 구별할 수 있다. 그 증표처럼 우르시누스는 “교회적인 의미에서는, 그것은 교회와 그 회원들을 온갖 다양한 이단들과 구별해 주는 간결한 요약된 형태의 기독교신앙을 뜻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Symbol’(신조), 혹은 ‘Creed’(신경)라는 용어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구별하는 하나의 증표 혹은 표시를 의미한다. ···이를 신조라 부르는 것은 이 조목들이 모든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의 특정한 형식 혹은 규칙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를 사도적(Apostolic)신조라 부르는 것은 이것이 초신자들이 믿고 고백해야 할 사도들의 가르침의 골자를 포함하기 때문이요, 혹은 사도들이 이 기독교교리의 요지를 그 제자들에게 전해주었고, 그 후 시대의 교회가 그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보편적(Catholic)신조라 부르는 것은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유일한 신앙이기 때문이다.”

우르시누스는 사도신경이 사도들이 한 사람씩 특정한 일부분을 작성하여 한데 모아 놓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것은 사실여부를 입증할 수 없다고 하면서 사도신경에 대해 사도들의 가르침의 골자를 담고 교회가 교회에 전해 준, 그래서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보편적 신조’라고 불린다고 정의한다.

종교개혁가들의 사도신경에 대한 이해를 요약한다면 전체 성경의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적으로 압축한 신앙고백서라고 설명할 수 있다. 박상봉은 이에 대해 “성경 전체의 내용을 명확한 표현과 이해로 구원과 믿음에 대한 진리를 충실히 드러내고, 동시에 잘못된 경우들을 피하면서 가장 적절한 언어로 체계화시켰다. 전체 성경의 내용을 모든 신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적인 교리와 신조(신앙고백)으로 정리한 것이다. 특별히 사도신조는 그 첫 번째 열매라고 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칼빈을 위시한 종교개혁가들은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장 기초적이고 가장 적절하게 요약된 소중한 신앙의 유산을 신천지는 왜 그토록 혐오하고 폄하하는 데 집중할까?

4. 신천지의 사도신경 폄훼 이유와 그에 대한 반론

신천지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완전히 전복시켜야 성립이 가능한 곳이다. 1931년생 이만희 교주를 이 시대의 구원자로 믿게 하기 위해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통 신앙을 송두리째 없애버려야 한다. 기존 기독교에 대한 신앙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만 신천지교리가 들어갈 수 있어서다. 유영권은 이를 잘 간파해서 설명했다.

“사도신경이 만약 교회로서 절대로 믿을 수 없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형성 배경을 가지고 있다면서 조작된 자료 제시를 통해 확인해 주는 과정을 거치면 성도들을 자신의 신앙과 교회 그리고 목회자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다. 성도들이 사도신경에 포함된 내용의 배경과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없을 문제이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의문과 의심이 일어나고, 결국은 기독교와 교회의 가르침을 부정하게 된다.” 신천지의 사도신경 혐오와 폄훼는 결국 기독교의 모든 체제, 교리는 물론 그것을 기반으로 일어나는 활동, 조직, 교회 등 모든 걸 공교회의 모든 걸 부정하고 신천지식으로 세워가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을 뿐이다. 그들의 대표적 주장을 하나하나 반증해보겠다.

4-1. 사도신경이 성경에 없는 내용이고 개신교회에서 부정하는 로마 가톨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대하여

“주기도는 성경에 있으니 교회가 함이 마땅하지만, 사도신경은 성경에 없는데 왜 성경에 없는 고백을 하는가? 사도신경에는 ‘사도’라는 말이 붙었으나 사실은 사도들이 정하거나, 만든 것이 아니다. 사도들이 가르치지도 않은 고백서를 ‘사도신경’이라는 말을 붙여서 암송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신경은 로마 가톨릭의 산물이다. 2세기에 로마 가톨릭이 만들었다.”

신천지는 사도신경의 기원에 대하여 ‘성경이 아닌 로마 가톨릭의 유산’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주기도나 십계명과 달리 성경에 없는 내용을 외우거나 사용하는 것은 합당치 않음으로 폐기돼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런데 말끝마다 ‘성경 성경’ 강조하면서 사도신경이 성경에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정작 성경 첫장을 펼치기만 해도 우리는 사도들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사도신경의 내용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이는 2. 사도신경의 성경적 근거 항목에서 충분히 진술했다고 여겨진다. 반면 ‘성경, 성경’이라고 하는 그들이 오히려 이만희 교주가 이 시대의 목자라는 근거를 성경에서 근거를 대보라고 하면 그들은 사도신경만큼이나 명시적인 성경적 근거를 댈 수 있는 근거 구절을 단 한구절이라도 댈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사도신경이 성경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신천지가 성경을 부정하며 엉뚱한 사람을 이 시대의 구원자로 믿고 있다.

칼빈은 사도신경에 대해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모든 경건한 신자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이며, 사도들의 입에서 나왔거나 사도들의 글을 통해 충실히 모아진 것”이라고 진술한다. 로마 가톨릭에 의해 갑작스레 시작된 게 아니라 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충실하게 진술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도신경은 몇 마디 짧은 말로써 구속의 핵심 주제들을 요긴하게 압축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마땅히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조목조목 명료하게 통찰할 수 있도록 마치 일람표와 같은 구실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의 처음 원천 바로 그곳으로부터, 즉 사도시대 바로 그때로부터, 사도신경은 그것이 끝내 어디로부터 나와서 어떻게 전개되었든지 간에 공적이며 모든 사람의 가표를 받고 채택된 고백의 형태를 띈 것이라는 점을 결단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 사사로이 작성되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가장 오랜 기억까지 거슬러 반추해 볼 때 그것이 모든 경건한 사람 가운데 신성불가침한 권위를 갖고 있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권념해야 할 유일한 사실은 다음에는 어떤 논란의 여지도 없다는 점이다. 즉 사도신경에는 우리 믿음의 모든 역사가 간략하고도 분명한 순서에 따라 열거되어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완전한 성경의 증언들로 인증되지 않은 것은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1)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지만 전체 성경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진술하는 것과 같이 사도신경라는 용어가 성경에 없지만 그 진술 내용 중 성경의 증언들로 인증되지 않은 것은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이 없다는 것이 칼빈의 주장이다.

2) 신천지는 2세기 로마 가톨릭의 산물이라며 사도신경을 평가 절하하는데, 당시는 로마 가톨릭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때이다. 신앙의 역사성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진술이다.

3) 또한 최초의 신조는 이그나티우스가 107년에 작성한 것이며, 중요한 신조로서는 동방교회를 중심으로 니케아 신조(325), 아타나시우스 신조(359), 칼케톤 신조(451) 등이 있다.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고백한 사도신경의 원형으로 가장 중시되는 것은 4세기 말 루피누스(Lufinus)가 작성한 라틴어 본문이다. 그 동안 교회들은 서로 다른 세례고백문을 사용해 왔지만, 390년경에 루피누스에 의해 작성된 로마교회의 신앙고백은 가장 영향력이 있었다. 비록 그 후에도 어느 정도의 첨가와 변화(예수의 음부행, 공적인 교회, 성도의 교제)가 있었지만, 최종 본문이 750년에 형성된 이후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있는 것과 거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렇게 확장된 이유는 로마 가톨릭이 변질시킨 것이 아니라 이단을 배격하기 위해 좀 더 세밀한 고백이 추가된 것뿐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시대는 동방을 중심으로 니케아 신조가, 서방에서는 사도신경이 대표적으로 공인된 교회신조로 인정되었다.

칼빈은 역사성을 가진 사도신경의 저자가 실제로 사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고 진술한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들의 저술로 보기도 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요약해서 전달됐다고도 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믿음의 전 역사가 그 속에 간결하고도 명확한 순서로 정리돼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처럼 사도신경이 성령의 특별한 증거로 사도들의 전수를 통해 교회에 전달된 성경의 표준적 안내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신한다고 주장한다.

4) 사도신경에서 ‘사도’라는 용어는 사도들이 직접 썼다기보다 사도들이 저술한 신약성경 등 성경의 핵심 진술을 요약해서 사도들의 신앙적 전통위에서 성도들이 고백한다는 의미에서 사도신경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도가 쓰지 않았는데 ‘사도신경’라는 거짓말을 하고 거짓의 아비는 마귀라는 식으로 사도신경을 왜곡된 전제를 깔고 비난하는 것은 정통교회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 위한 진술이지 역사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4-2.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이 아닌데 그 책임을 모두 빌라도에게 떠넘기는 사도신경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한 사도신경의 내용이 정말 성경에서 말한 바와 같은지 살펴 보았다. 예수님을 죽인 자가 진정 누구인가? 빌라도인가? 성경대로 말하면 빌라도가 아니고 유대인들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이었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라 했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후 모든 죄를 빌라도에게 떠넘긴 거짓말이다(행 3:13~15). 이 거짓된 말을 시인하는 자도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다.”

칼빈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는 기독교강요 2.16.5에서 ‘역사성’과 ‘대속성’과 ‘무죄성’의 3가지 차원에서 설명하고 이를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라고 번역해서 사용한다.

1) 역사성이라 함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진공상태에서 전설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로마 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의 군인으로 AD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 속주 행정장관(프라이펙투스 유다이아, Praefectus Iudaea)이었던 유대의 총독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기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역사에 대한 믿음의 공고함을 입증하게 해준다.

2) 대속성이라 함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만일 강도들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예기치 않은 폭도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은 것이었다면, 즉 아무렇게나 우발적으로, 죽는 죽음은 세상의 죄와 저주를 그리스도에게로 가져가기 위한 공식적인 의미로서의 죽음으로서는 충분치 않은 것이었다고 해설한다. 구속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죽음의 종류는 선택되어야 했고 피고로 법정 앞에 불려 세워져 여러 증언들을 내세운 심문과 협박을 당하고 담당하는 재판관의 입을 통해 죽음의 선고를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 총독의 엄숙한 선고에 따라서 그리스도는 범죄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3) 무죄성이라 함은 본디오 빌라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요 18:38)는 선포에서도 드러난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고유한 죄가 아니라 타인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사실이 동시에 분명해질 것이다. “형벌의 노예가 된 우리를 묶고 있던 죄책이 하나님의 아들의 머리로(사 53:12) 옮겨졌다. 무엇보다도 으뜸으로 우리는 이 대신갚음에 착념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그 자신에게로 옮기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보복이 마치 아직도 우리 위에 임박해 있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전생애 동안 두려워하고 근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번역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책임이 빌라도에게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물론 그가 통치자로서의 책임을 면키 어렵지만 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칼빈 또한 줄곧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고난을 받으셨으며’, ‘그 총독의 엄숙한 선고에 따라서 범죄자들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는 표현을 따라 공식적으로는 범죄자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은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 아래에서 있었던 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성경에서 ‘본디오 빌라도’가 면책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는 것 또한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요 19:1~3).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행 4:27~28). 본디오 빌라도는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알았음에도 민란을 두려워하여 그를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한다. ‘본디오 빌라도’가 고난을 직접 준 것은 아니라 해도 성경은 사도들조차 그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거스른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다.

4-3. 거룩한 공회, The Holy Catholic Church, 가톨릭교회를 믿으란 말인가에 대한 반론

“중세 암흑 시대의 산헤드린 공회는 그리스도인을 5천명 이상 죽였다. 이 공회는 절대 공회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공회가 거룩한 일을 했는지, 공회에 대하여 성경을 통해 알아보자. ···마태복음 27장 1절을 본 바,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들 곧 온 공회가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에게 끌고 가려고 의논한 곳이다. 또 사도행전 5장 12~27절에도 사도들을 능욕하고 잡아들인 곳이 바로 이 공회이다.”

신천지는 공회가 의롭지 않고 거룩하지 않은, 예수를 결박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사도들을 능욕한 곳이라고 비난한다. 신천지의 주장은 기독교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비판이다. 그들은 “중세 암흑 시대의 산헤드린 공회”라고 표현했는데 이 말 자체가 틀린 발언이다. 중세는 대략 6세기 말 그레고리우스에서 시작되는 반면 신천지가 주장하는 산헤드린 공회는 중세 교황과 전혀 상관없는 유대 공동체 최고 의결기관이었다. 둘의 연결점은 전혀 없는데도 그들은 ‘공회’라는 단어의 동일성만 갖고 마치 두 기관이 동일한 곳인 것처럼 연결해서 사도신경을 혐오하도록 조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1) 칼빈은 이를 거룩한 공교회(credere eccleisam)로 칭한다.

2) 거룩한 공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은 초대교회의 사람들에게 논쟁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졌다. 아우구스티누스, 키프리아누스의 이름을 딴 ‘사도신경 해석’을 쓴 고대의 저자도 그러했다.

3) 콘스탄티노플신경(381)은 로마가톨릭이 생기기전에 이미 “그리고 (우리는)한,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Et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ostolicam eccleisam)고 고백한다. catholicam을 건물이나 조직으로서의 로마가톨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신앙고백을 공유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 모두를 의미한다. 칼빈은 이를 제네바교회 요리문답에서 설명한다.

“제 15장 93문: 교회란 무엇입니까? 답: 하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예정하신 신자들로 이루어진 몸이요 연합체입니다. ···96문: 왜 교회를 거룩하다고 말합니까? 답: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셔서 거룩하고 순전한 삶을 살도록 새롭게 변화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사람들 가운데서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십니다. 이는 또한 사도 바울이 뜻한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속하신 교회를 거룩하게 하셔서 영광스럽고 흠어 없게 하신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롬 8:30, 엡 5:25~27).

97문: 교회라는 단어 앞에 덧붙여진 ‘공’ 또는 ‘보편적’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답: 이 말을 통해 배우게 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머리가 하나이기 때문에 몸 역시 하나로 연합해야 하고 세상에 흩어져 있는 교회가 여럿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입니다(엡 4:15, 고린도전서 12:12)”

이처럼 거룩한 공교회는 로마 가톨릭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거룩하다고 여겨진, 다시 말해서 선택받은 자의 전체 수, 그들이 산자이든, 죽은 자이든, 어느 땅에 살고 있든,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 하나님의 한 백성인 것을 믿는 것이 거룩한 공회에 대한 신앙이다.

4-4. 신천지를 ‘영생’을 말해서 이단이라고 하면서 스스로 ‘영생’을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

신천지가 비판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영생’을 주장하기 때문인데 사실 사도신경에서는 ‘영생’을 고백하면서도 신천지를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말도 한다. 4-1에서 4-3까지는 사도신경 자체의 모순과 결함을 얘기하며 혐오를 조장했다면 이제는 ‘영생’과 관련해서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면서도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기독교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신천지는 정통교회의 모든 걸 비난하고 파괴하고 혐오를 조장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즉 성경적으로 옳은 것을 주장해도 일단 모순과 문제를 파헤치는 그들의 실체를 보는 듯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반박해보겠다. 양자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의미는 다르다.

칼빈은 몸의 부활과 영생과 관련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1) 몸의 부활에 대해: 모든 육체가 썩음에서 썩지 않음으로, 죽을 몸에서 불멸의 몸으로, 어떻게 죽었든, 즉 조장·매장·화장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렀든, 죽은 후 사체가 어떤 상태로 산화했든, 벌레가 먹었든, 흙으로 변했든, 재가 됐든, 그들의 몸을 ‘다시 받는다.’는 게 몸의 부활이다.

2) 우리는 영생을 믿는다. 영생은 두가지로 일어난다. 주님께서 그 자신의 백성들, 곧 몸과 영이 영화롭게 된 자들은 복락 가운데로, 경건치 못한 자들과 유기된 자들은 마귀와 함께 영원한 죽음 가운데로 쫓겨날 것이다.”

“나의 독자들이 완전한 구원의 조성자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들 자신을 더 높이 들어올려서, 그가 하늘의 불멸성과 영광으로 옷 입으셔서 온 몸이 머리에 합해져 하나가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성령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인격을 통하여서도 부활의 예를 우리에게 반복해서 제시하신다. 썩어서 소멸된 몸들이 정한 때가 되어 마침내 부활되리라는 것을 믿기는 쉽지 않다. ··· 육체의 부활은 사람들의 지각으로는 가닿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이 큰 장애를 믿음으로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두 가지 방안을 제공한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으심에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권능에 있다. 이제 우리는 부활을 다룰 때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앞에 떠올리도록 하자. 그는 우리에게서 취하신 본성 가운데 인생의 삶의 여정을 다 마치시고 불명성을 획득하셔서 앞으로 우리에게 있을 부활의 보증이 되신다”

사도신경에서 언급하는 ‘몸의 부활’을 설명할 때 칼빈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썩어서 소멸된 몸들을 말한다. 즉 죽음을 전제한다. 두 번째로 완전히 새로운 다른 몸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갖고 있던 몸이 새로워진다’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게 칼빈의 ‘몸이 다시 사는 것’, ‘몸의 부활’과 관련한 개념이다.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창조된 것을 ‘부활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다음 말씀은 설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잔다’라는 말은 그것이 오직 몸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부활과 관련된 함축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잠’이라는 말이 ‘무덤’에 주어진다. ···우리가 부활하여 입게 된 육체는 그 실체에 있어서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와 동일할 것이나 그 특성에 있어서는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지금 입고 있는 육체와 인격적 연속성을 갖고 있으나 그 특성에 있어서 불연속적이다. 예수님의 몸은 운명 전의 몸과 동일하면서도 큰 변화가 있는 몸이었다. 예수님은 운명하기 이전의 모습 그대로 부활을 하셔서 그 몸으로 제자들과 이야기를 하시고, 음식을 드셨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그들의 눈과 손으로 분명하게 확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잠긴 문을 통과하셨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기도 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토록 변화된 모습 때문에,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몰라보기까지 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던 그 몸으로 부활하셨지만 영광스러우며, 강하고, 신령한, 어떤 변화가 현저하게 일어난 부활체였다. 우리가 그런 부활을 맛보게 되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게 사도신경적 신앙고백이다.

반면 신천지의 부활과 영생은 어떤가?

첫째, 그들은 성경과 달리 예수님의 영만 부활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그들은 영에 속한 육신에 성령이 온전히 하나되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 영생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즉 성령과 육체가 하나돼서 합일이 되면 죽음 없이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

셋째, 그들은 14만 4천으로 표현되는 성도의 육신에 목베임 당한 순교자의 영들, 즉 다른 실체를 가진 육체와 다른 실체를 가진 영혼이 결합하면 죽지 않고 살아서 왕노릇한다고 주장한다.

넷째, 14만 4천명의 사람들이 육체영생하기 전에 먼저 성령이 한반도 한국 땅에 있는 육체의 한 사명자에게 임하여 섭리를 이끌어간다. 즉 죽음을 맛보지 않고 육체영생을 얻는 14만 4천에 들려면 이 섭리를 끌어가는 성령이 임한 육체의 사명자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이처럼 신천지는 ‘부활’, ‘영생’을 얘기하지만 성경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면서 이만희 교주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필자는 사도신경에 대한 교회 안팎의 도전과, 특히 한국사회 최대 이단으로 급부상하며 코로나 시국과 맞물려 관심을 끌었던 신천지측의 사도신경에 대한 주장을 살피고 그에 대한 칼빈과 종교개혁가들의 이해를 제시하며 반론을 정리했다. 반론을 정리하면서 신천지는 과연 어떤 목적으로 사도신경의 파괴를 시도하는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사도신조는 기독교가 반드시 보존해야 할 진리의 최후 적정선이다. 결코 넘어서는 안될 신앙의 경계선인 것이다. ··· 사도신조는 기본적으로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의 신비에 대한 이성적인 성찰과 고백이다. 성경과 다른 내용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을 인간의 고백적인 언어로 표명한 것이다.”

이토록 중요한 사도신경임에도 신천지측이 부정하고 폄하하고 혐오하도록 조장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통 기독교관의 파괴를 통해 신천지라는 이단사이비 교리를 주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모든 교회가 암송하는 신앙고백서로 교회는 그 내용에 대해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신뢰하고 있는 내용을 의심하게 할 수만 있다면, 교회와 목회자와 기독교 전체를 불신하게 하고, 부정하게 하여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종하기가 쉽다. 성도들이 사도신경을 암송하는 것만큼 사도신경에 담겨 있는 내용과 관련된 배경이나 의미를 자세하게 알고 있지 못한데 신천지에 의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용을 듣게 되면, 신천지 사람들이 하는 말이 혹 거짓이어도 거짓 여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런 약점을 틈타 왜곡시킨 자료로 집중적으로 질문해 오면 의문이 일어나고 이제까지 확신하였던 생각과 지식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되며 함게 했던 교회와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속았다는 생각과 분한 마음을 품게 되고 결국은 기독교를 버리고 이단을 품게 된다.”

오늘날 사도신경은 예배에서 밀려나고 있다. 공예배 시간을 총 1시간에 맞춰서 끝내야 하는, 3부나 4부 예배까지 드리는 교회는 예배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초 단위로 시간표를 만든다.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하는 현대 예배 속에서도 사도신경에 대한 중요성은 잊혀져선 안된다. 설령 공예배시간에 고백하지 않는다 해도 반드시 사도신경은 공예배의 설교나 성경공부반을 통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익히고 배우는 시간을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학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천지와 같은 아주 교묘한, 거짓된 전제를 깔고 비난하면서 바른 신앙을 무너뜨리는 사기 수법에 당하는 신도들이 계속해서 늘 수밖에 없는 게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이단·사이비에 당해 흔들리는 교회가 아니라 철저하게 종교개혁의 유산과 전통 속에서 성경적 진리위에 굳게 세워지려면 사도신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한국교회는 잊어서는 안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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