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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음성’ 비판적 읽기[1]‘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말하며 사적 계시 추구
정윤석  |  unique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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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03  00: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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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는 하지만 결국 <왕의 음성>은 '내가 들은 음성'에 강조점을 둔다

유튜브에 재정강의를 올려서 1,400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 김미진 강사가 홍성건 목사(한국예수전도단대표)와 함께 <왕의 음성>(부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 2015년, NCMN 규장刊)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강조한다. 이에 대해 시비를 걸 마음은 전혀 없다. 기독교 역사에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생생한 교제 가운데 살아온 증인들의 얘기들이 넘쳐난다. 저자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말씀하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뿐 아니라 그대로 사는 삶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40페이지).

달라스 윌라드도 <하나님의 음성>(IVP)이란 책에서 “성경은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단지 한쪽에서 다른 쪽의 필요를 책임지고 채워주는 사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친구나 가족관계로 묘사하고 있다”(27페이지)고 썼다. 고금을 통틀어 어거스틴,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스펄젼 등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와 대화를 일생을 바꾸는 사건이자 매일의 양식으로 떠올렸다고 한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에 대한 체험담은 그리스도인들의 경험 가운데 적잖이 나온다. <왕의 음성>도 사실 그 전제하에 그분과의 교제를 강조하고 있다.

그 방법론도 적잖이 다뤘다. 특히 세븐업(7up)으로 정리해 놓은 저자의 하나님의 음성듣기 연습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과 어떻게 교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제시됐다(102페이지). 저자의 세븐업은 “하루에 2시간씩 기도하자”는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하루 7분, 내 상태가 최고조에 있을 때, 30분만 일찍 일어나 7분의 시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새벽기도를 하라는 게 아니라 “오늘도 주님 제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듣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과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103페이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강조하고는 있지만 이 책에는 '이래도 되는 걸까'라고 의아심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들이 다수 등장한다. 홍성건 목사와 김미진 강사가 공동저자이지만 특별한 분류를 하지 않고 이하 ‘저자’로 표기해서 <왕의 음성>을 비판적으로 살펴봤다.

저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음성의 개념
홍성건 목사와 김미진 강사의 <왕의 음성>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절대적인 요소를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인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했을까? 아쉽게도 책 서두에 정확하게 밝혔으면 좋았을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정확하고 선명한 개념이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저자 서문 15페이지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뭔지 표현돼 있긴 하다.

“에덴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시고, 에녹과 아름답게 동행하시고, 모세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시며, 사무엘을 부르시어 앞날의 모든 일들을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런 일들이 정말 기독교 역사에서 지극히 예외적이고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난 것일까?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획하신 정상적인 생활의 모습일 것이다.”(15페이지).

지금 저자는 성경에 기록된 인물들이 하나님과 만나고 대화하며 ‘모든 일들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하나님의 음성’의 정당성을 찾는다.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경험하는 삶은 예외적이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계획하신 정상적인 ‘생활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 인물들처럼 저자들은 다른 인격체가 나에게 말하는 듯한 ‘하나님의 음성’을 개념화하고 있다.

   
▲ 성경의 인물들처럼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눌 수 있다고만 한다면 비판을 비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일상생활, 설교·상담·강의를 통해, 매스컴을 통해, 타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포괄적 해석을 하기도 한다(229, 230페이지). 그렇더라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이 책의 전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성경의 인물들과 성경에 나오는 방법을 내세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음성 듣기와 환상 등을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하루 7분, 하나님과 교제하라는 세븐업이란 방법도 결국 직접 하나님께 어떤 음성과 말씀을 듣고 기다리는 시간으로 따로 떼어놓으라고 제시된 것이었다(103페이지).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성경인물들과 동일하게 음성을 듣는 방식으로서의 ‘하나님의 음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게 자명해진다. 이런 음성을 듣는 삶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31, 33페이지)는 게 저자의 신념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의 인도, 하나님의 뜻, 성령의 감동하심, 내적 감화 등 그리스도인이라면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인도와 뜻을 표현하는 무수히 많은 용어를 선택하지 않았다. 논란이 될만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용어를 선택해서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 대한 실례보다는 이론적 바탕에 강조점을 뒀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그것을 듣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유익 등이 아주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이론서 같은 이 책자는 어떤 점에서 주의가 필요할까?

   
▲ 왕의 음성의 공동저자인 홍성건 목사와 김미진 강사

성경계시를 사적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근거구절로 오용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쳐보자. 어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나타나 제 자식을 남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쳐보자. 그리고 “미쳤냐?”고 사람들이 말리자, 그가 창세기 22장을 근거로 들며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것처럼 내게도 나타나 말씀하셨는데 뭐가 문제냐?”며 반박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우리가 그에게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뭔가?

   
▲ 성경에 나오는 사건이 다시 반복된다고 한다면 벌거벗고 북한의 침략을 외치는 신도들이 나올 수도 있다(해당 사진 왕의 음성과 무관).

이사야 20:2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했다는 말씀이 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 동안 그렇게 다녔다고 한다. 이처럼 누군가 벗은 몸으로 다니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며 길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이 역시 “미쳤다!”며 말리자 그가 이사야 20:2을 근거 구절로 제시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면 성도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김정일이 남침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십자가 형상을 차에 달아 놓고는 나체로 길거리를 다니던 사람들이 경찰에 붙잡혀 간 건 우리 사회에서 아예 없는 일이 아니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호세아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라는 말씀을 따라 고멜을 아내로 맞이한다(호세아 1:2~3). 여기서 음란한 아내는 אֵ֤שֶׁת זְנוּנִים֙(에세트-a wife 제누님-of prostitutions)으로서 매매춘하는 여성을 가리킨다. 이 말씀을 근거로 누군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성매매하는 여성을 아내로 맞으라고 말씀하셨다”면서 결혼을 하려 한다면, 정말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이유로 ‘NO!'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왕의 음성>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위의 황당한 예부터 먼저 언급한 것은 성경을 대하는 가장 큰 오류가 발생해서다. <왕의 음성>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성경의 계시 사건들을 개인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 행위의 실제 예들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다윗과 블레셋이 전쟁을 치를 때 다윗은 하나님께 치러 갈 것인지 아닐지에 대해 물어보고 음성을 듣는다(대상 14:10). 전쟁할 때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인 것을 두고 하나님의 음성 듣는 것을 제한하지 말라!(34페이지)고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기독교는 자연 종교가 아니라 계시종교다”며 “하나님께서 직접 스스로를 우리에게 나타내신다”는 말도 한다(45페이지). 계시종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할 때 말씀하셨고 역사하셨던 방식 그대로 지금도 내게 말씀하고 음성을 들려 주실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정당성을 위해 저자는 이외에도 수많은 사례들을 성경에서 찾아서 제시한다. “성경속의 인물들에게 말씀하신 방법으로 오늘날도 말씀하신다!”(179페이지)는 전제에서 나온 이 주장은 책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호렙산에서 세미한 소리 가운데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듯이(186페이지), 다메섹에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듯이(187페이지), 느브갓네살이 본 환상을 다니엘에게도 보여주셨듯이(221페이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듯이 현재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넬료(환상, 219페이지), 아브라함(환상, 220페이지), 야곱(꿈, 222페이지), 요셉(꿈, 223페이지), 사가랴 제사장(천사의 메시지, 226페이지), 예언가 아가보(예언, 228페이지, 행 21:10) 등이 실례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나님과 대면하듯 이야기를 나눈 모세(239페이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부름받은 사무엘(260페이지) 등을 언급했음은 물론이다.

이 말씀들이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근거 구절이 될까? 이 구절이 차라리 포괄적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류가 가능함을 설명하는 범위였다면 논란 소지는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하나님과 대화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매일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별계시인 성경에 나타난 계시적 방편들인 꿈, 환상, 천사를 통한 전달, 하나님과 대면하듯한 대화, 이런 성경의 사건들을 사적 하나님의 음성듣기의 근거 구절로 사용해도 괜찮은 걸까?

먼저, 성경에서 계시적 방편들로 사용했던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 계시를 전달했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날의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 저자들의 주장은 즉각,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최종적 계시이며 그 후에는 구원을 위해 사용했던 여러 모양과 방법으로서의 계시 사건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는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구약 시대와 신약 초기에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계시를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천사를 보내셔서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환상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죠. 그런데 이 모든 계시의 방식이 요한계시록을 완결함으로서 이제 그쳐졌다. 중지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건전한 신앙의 고백입니다”(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음성을 들려 주시는가’, 바른미디어, https://youtu.be/Sq80MDzOUrI 2017년 4월 12일).

성경에 나타난 계시의 방편들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특별계시의 수단이었다. 인간 구원을 위한 계시사건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로 완성되었고 완료됐기에 더 이상 이런 방편을 사적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근거 구절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 방법들은 모두 특별계시의 수단으로서 그쳤다는 설명이다.

장운철 목사(만나교회,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이야기> 저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정경이 형성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거나 꿈, 환상, 천사들을 통해 계시를 전달하셨으나 지금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명료하게 들을 수 있다”며 “만일 지금도 하나님과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음성을 듣고 환상을 봐야 한다며 근거 구절로 성경의 사건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계시 방법이 현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장 목사는 “하나님과 직접 만나 음성을 듣고 환상과 꿈과 예언을 받는다면 목회자들이 수많은 시간을 들여 성경을 연구하고 설교 준비를 하는 의미가 뭔가”라며 “예수님께서 사두개인들을 꾸짖을 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고 하신 의미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들은 되새겨야 한다”고 비판했다.

만일 <왕의 음성>의 저자의 말대로 성경에서 제시하는 계시의 방편들이 지금 현재에도 계속 반복된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으로 옮긴 계시적 행위들도 현재 반복돼야 마땅하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결과는 은혜가 아니라 한없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것은 서두의 황당한 예를 통해 언급했다. 심지어 자신이 받았다는 ‘계시’를 글로 써서 ‘새로운 시대의 성경’이라고까지 과장·왜곡하는 현상까지 이런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재성 교수(국제신학대학원 대학교 조직신학)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새로운 선지자, 예언자가 없으며, 사도들이 주신 말씀으로 그친다는 것은 결국 현재 우리가 받은 성경을 최종계시로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신앙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개혁주의 성령론>, CLC, 375페이지).

“인간의 타락과 부패에 대해서 철저히 파헤치지 않으면서, 계시연속을 주장하게 되면 그저 탐욕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질 수 있다는 신앙은 인본주의적으로 참담하게 변질되고 만다.”(위의 책, 382~383페이지).

“캔사스 예언가 집단에 소속한 폴케인, 마이크 비클, 밥 존스 등의 예언이 어떤 내용인가를 들여다보면, 분명히 성경적인 예언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청소년의 죽음,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 어느 교회의 혼란과 대립, 어느 목회자의 앞날, 지진현상, 대통령의 회심 등이다. 대부분 공포와 두려움의 선포였다. 그런데 이런 예언들도 정확성이 별로 없었다. 마이크 비클은 크게 잡아도 예언 성취율이 20% 정도 될 것이라 짐작했다.”(김재성, 위의 책 386페이지).

"어떻게 되어서 교회는 성경이 종결되었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가? 유일한 증거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기록으로 주신 계시 등은 항상 역사적으로 전개된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단번에 영원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구원사역을 완성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말씀도 역시 단번에 영원하도록 주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목격한 자들에게만 그러한 특별계시를 기록하고 전파하게 하였고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셨다(히 1:1~2; 2:3, 4; 마 16:15~19; 요 14:26;엡 2:19~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지면서 계시의 중단이 단행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오직 성경으로만’을 권위의 원칙으로 세워서 지금까지 구원의 소식을 전파해오고 있다.··· 다시 날마다 주어지는 계시를 따라야 한다면, 무엇이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인가? 지금 예언을 받는다는 자들은 복음의 충분성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 계시의 최종성과 완결성에 완전히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김재성, 위의 책 393페이지).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계시와 관련, 다음과 같은 지침을 준다.
“주께서는 여러 때에 여러 방식으로 자기의 교회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하시며 자기의 뜻을 여러 방식으로 자기의 교회에 대하여 자신을 계시 하시며 자기의 뜻을 선언하시는 것을(히 1:1∼2, 갈 1:11∼12, 신 4:12∼14), 그리고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시고 전파하시며, 또 육체의 부패와 사단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를 더 견고하게 설립하시고 위안하시기 위하여 그 동일한 진리를 전부 기록에 맡기시기를 기뻐하셨다(눅 24:27, 딤후 3:16, 벧후 3:15∼16). 이것이 성경을 가장 필요한 것으로 만드니(눅 16:29∼31, 히 2:1∼3, 딤후 3:15∼16, 벧후 1:10),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그의 뜻을 계시하신 이전의 방법은 지금 정지 되었다(이 진술은 주로 교회의 경험과 관찰로부터 인출되나, 성경으로부터 추론될 수도 있다(눅 16:29, 요 20:29, 31).”

   
▲ 제목은 왕의 음성이지만 결국 내가 들은 음성을 믿으라는?

신구약에 나오는 계시적 사건을 무분별하게 개인의 하나님의 음성 듣기의 근거 구절로 삼고 있는 <왕의 음성>은 계시론적 오해를 불러 일으킬 내용으로 넘쳐난다. 마음으로 깨닫든, 귀로 듣든, 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에 있어 내가 들은 음성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278페이지)고 말한다. 결국 내가 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가라는 의미다. 이쯤되면 저자들이 과연 믿음의 대상을 ‘왕’이신 하나님으로 삼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가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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