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10:52 (목)
[반론]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입장
상태바
[반론]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의 입장
  •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
  • 승인 2016.11.02 0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중 제사' 악의적 표현... "영원한 제사는 십자가에서 드렸다"

본 사이트(기독교포털뉴스 www.kportalnews.co.kr)는 10월 28일(금) 정이철 목사가 김성로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기자회견을 통해 지적한 것을 최근, 기사화했습니다. 이에 춘천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가 반론을 보내왔습니다. 독자들의 균형잡힌 판단을 돕기 위해 전문을 그대로 게재합니다[편집자주]. 

거친 표현 문제 정중히 사과··· 신학적인 자문을 받으며 한국 교회 섬기겠다

지금 일부 교단에서 본인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어 한국교회 앞에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이단대책협회(기이협)’, ‘기독교한국침례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한명국 목사)’와 ‘박형용 교수’를 통해 이미 발표하였지만,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다시 한 번 본인의 입장을 정확히 표명하고자 합니다.

▲ 최근 재개정판이 나온 김성로 목사의 책자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1. ‘하늘 성소의 영원한 제사’에 대한 입장

본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 드린 단 한 번의 제사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드린 속죄제사가 온전한 제사임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며, 십자가와 하늘성소에서 두 번 제사를 드려야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중제사’라는 말은 본인이 아니라 본인의 설교 의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표현입니다. 본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드린 제사가 곧 하늘성소에서 드린 제사이며 이것은 분리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 후에 하늘 성소에 올라가 제사를 드렸다는 부분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린 시점에 대한 착각이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본인은 “부활 후에 하늘성소에 들어가 속죄 제사를 드렸다”는 주장에 대해 2016년 4월 11일 이후, 기독교이단대책협회(기이협)과 박형용 교수님의 제언을 받아들여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로 수정하였습니다.

본인은 ‘영원한 제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수정하였습니다.
본인의 저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초판)” 187쪽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는 성막이 아닌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활하셔야 하기 때문이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개정 증보판(2016.09.10)에는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참 성막에서 영원한 제사(히 10:12)를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히 9:12)를 단번에 이루셨다”는 표현은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라고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는 주제로 국민일보에 칼럼(2016.07.25)으로 기고하였고, 그 내용을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 개정 증보판(2016.09.10.)에 추가하였습니다. 2016년 6월 30일 제4회 부활 복음 목회자 세미나에서도 공개적으로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렸다”고 발표하였습니다(https://youtu.be/U97JBd8_iWk) 또한 한마음교회 성경 공부 교재도 이미 다 수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성소가 실제냐 또는 상징이냐 하는 문제는 여러 신학적 견해가 있지만 본인은 영원한 제사는 십자가에서 드렸다고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은 악의적 의도가 있다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본인은 이 문제를 한마음교회 홈페이지와 본 교회에서 개최된 초교파 목회자 세미나, 국민일보 칼럼 등을 통해 이미 공개적으로 수차례 수정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일로 인해 복음에 대해 오해를 일으킨 부분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2. ‘영원한 제사(속죄), 십자가’에 대한 입장

예수님의 영원한 제사(속죄), 십자가에 대한 저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하신 방법은 ‘십자가’이다. ‘대속제물의 피흘림을 통한 구원’은 하나님이 정하신 도(道)이다(고전 1:18).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의 죽음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실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속죄의 유일한 근거는 ‘피’다(레 17:11).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온 세상 죄를 대속하실 것을 계획하셨고, 그 예표로 구약의 성막을 주셨다. 성막 제사는 구약시대에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달은(롬 3:20)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구약시대에 죄를 지은 사람은 양이나 염소와 같은 희생 제물을 제사장 앞에 가져와 자신의 손으로 안수하고 그 제물을 직접 죽여야 했다. 그리고 제사장은 그 제물의 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 죄 사함을 이루었다(레 4:27-31).

그러나 이러한 제사는 일시적인 것이며 죄를 지을 때마다 매번 반복해서 드려야만 했다(히 10:11). 성경은 이러한 구약 제사의 한계를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구약의 제사는 불완전한 제사로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성취될 완전한 제사의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했다. 그리고 드디어 구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의 불완전한 제사가 아닌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죄 제사가 성취되었다!

구약에서는 ‘짐승의 피(레 4:34)’로 제사를 드렸지만, 신약에서는 성육신(成肉身)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히 9:12)’로 단회적이고도 영원한 속죄 제사를 이루셨다(히 10:11-12).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지금도 영원한 효력이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사람이며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처럼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로 드려진 제사이기에 단 한 번에 영원하고도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회개하고 예수를 주인으로 믿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의 속량, 곧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엡 1:7).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모두를 만족한 사건이며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신 분명한 근거이고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이다. 십자가는 나의 죄가 영원히 사함 받은 장소이며 나를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게 한 헌신의 장소이다. 또한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담대히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히 10:19). 즉 이제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껏 그분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죄인인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담대히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죄를 회개할 때마다 깨끗함을 받는 것도(요일 1:7),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은혜 가운데 이루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아멘! (국민일보 김성로 목사 칼럼 2016.7.25.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다”)

▲ 춘천 한마음교회 김성로 목사(사진 교회 홈페이지 캡쳐)

3. ‘구속의 완성으로서의 부활’에 대한 입장

십자가와 부활은 구속적 사건입니다. 본인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 또한 구속적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활은 구속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함께 구속의 완성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복음의 핵심 사건으로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했다. 십자가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하고(롬 6:23 “죄의 삯은 사망”), 반드시 피 흘려야 하기 때문이다(히 9:22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고린도전서 15:17). 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활이 전제된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되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다.” (김성로, 「하나님의 승부수 부활(개정증보판)」 , 도서출판 요단. p.25)

본인은 분명히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동전 양면과 같이 분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본인의 주장과 같이 부활이 구속적 사건이며 구속의 완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는 「국제신학」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라는 글에서 “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합니다.

박형용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는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서 구속의 성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리차드 개핀 「부활과 구속」 추천사 中).

한천설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장)는 목회와 신학 2000년 4월호 <죽은 자의 다시 사는 것이 없다면>이란 칼럼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행해진 주님의 구속사역인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사건들이다. 구속의 완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죽음은 그의 부활이 그런 것처럼 동일하게 그가 승리한 사건으로 보여지며, 부활 또한 그의 죽으심과 동일하게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그리고 부활을 단지 구원을 확인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우리에게, “부활 없이는 어떠한 죄의 용서함도 없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롬 4:25참조). 이제 우리는 이 두 사건을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이 둘은 모두 그리스도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것들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이중적 관점은 바울 사고의 모든 관점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사건으로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바울에게 있어서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대칭시켜서는 되지 않지만,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보다는 부활을 통하여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이것이 17절에서 바울이 성도의 구원과 관계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강조하는 이유인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그 외에도 웨인 그루뎀(트리니티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 모두 부활 칭의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신학 교수인 리차드 개핀(Richard B. Gaffin, jr.) 박사의 저서 「부활과 구속」에서도 “엄격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아닌 그의 부활(즉 승귀)이 단번에 이룬 구속의 성취를 완결 짓는 것이다.” 즉 부활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건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존 머레이(John Murray)는 “그가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강조하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부활 없이는’ 죄가 아직도 초절하였을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정죄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벌콥(Berkhof)은 “더욱 중요한 일은 구조상의 한 요소인 부활을 구속사역의 핵심, 나아가 복음의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신학자들은 십자가뿐만 아니라 부활까지 구속적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결론은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시고, 부활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드린 영원한 속죄 제사를 받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롬 4:25). 즉 부활로 구속의 완성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십자가와 부활’을 절대로 분리하지 않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부활하신 예수’를 절대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교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은 한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신앙에 있어 부활의 중요성이 가려져 있음을 안타깝게 여겨 설교 중에 ‘십자가에 머문 신앙’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던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십자가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의 구속 사건을 믿을 뿐만 아니라 부활 신앙을 가져야함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본인은 복음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신 것이라 믿습니다.

위에서 말한 것 같이 본인은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부활을 통해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통해 십자가를 바라보자!(국민일보 2016년 2월 22일자 칼럼)” 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부활을 통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확증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부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피’ 용어사용에 대해서

‘예수의 피는 하나님의 피’라는 표현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전에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한 견해를 먼저 밝히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이 나오게 된 배경이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란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 하나님이 각각 독립된 위(位, person)로 존재한다. 따라서 성부는 결코 성자나 성령이 아니며, 성자는 결코 성부나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결코 성부나 성자가 아니나 삼위 하나님의 본질은 같고, 본질적으로 다른 위(位)보다 못하거나 낫거나 하지 않은 하나(一體, unity)이시라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과 기능은 다르나 각 위(位)는 동등하시다. (한마음 제자훈련 시리즈 4, 「예수님은 누구신가」, p.32)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인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다. 신성(神性)에 있어서는 성부(聖父)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本質)이시며 인성(人性)에 있어서는 우리 사람과 동일한 본질이시다. 그분은 이 두 속성을 가졌으나 상치(相馳)되거나 나누어지지 않고 참되게 연합하고 있는 한 인격체이다. 각 속성의 고유성들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며 두 속성은 함께 구체적인 실체인 한 인격을 형성하며 두 인격으로 분할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분을 사람으로 가장한 하나님이나 신적인 자질을 가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분은 사람이 된 하나님이다. (한마음 제자훈련 시리즈 4, 「예수님은 누구신가」, p.39)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죽음’ 이런 표현은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기초한 신앙적 고백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완전한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희생과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의 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죽음’과 같은 표현은 영이신 하나님이 물리적인 피를 흘렸다거나 영원하신 하나님이 죽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초대교회 당시 양태론자였던 사벨리우스와 같이 성부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주장하는 ‘성부수난설’을 의미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의 하나님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피’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5. 본인은 26여년 목회하면서 침례교 신학과 신앙에 기초한 목회를 하였다고 자부합니다.

본인은 혹자들이 말하는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친 적이 없고, 정통신학을 부정한 적도, 십자가의 영원한 속죄를 부정한 적도 전혀 없습니다. 본인이 부활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확증이 되면 십자가 사건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통해 십자가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https://youtu.be/HtHJVRdJVEE).

최근 기독교한국침례회(기침) 소속 목사이고, 26여년 오직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는 본인을 마치 안식교의 조사심판교리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평가하는 혹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의 거친 표현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부분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추후 교계의 신학적인 자문을 받아 한국 교회를 더욱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