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0-27 06:45 (수)
오독·오역으로 얼룩진 손계문의 나팔 심판 해석 비판
상태바
오독·오역으로 얼룩진 손계문의 나팔 심판 해석 비판
  • 박유신 전문연구위원
  • 승인 2021.06.24 12: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유신 목사의 유튜브 쟁점진단 - 11HN 성서연구원 4편
유튜브 성서연구원의 손계문 목사
유튜브 성서연구원의 손계문 목사

1. 손계문 목사에 대한 비평
1) 손계문 목사의 주장

손계문 목사가 2019년 3월 30일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 16부: 요한계시록 8장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심판이 시작되다(일곱나팔)'는 네 가지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하단 녹취록 참고)

* 첫째 나팔은 AD 70년에 발생한 유대의 멸망을 나타낸다.
* 둘째 나팔은 AD 476년에 발생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나타낸다.
* 셋째 나팔은 루시퍼의 침입으로 비성서적 가르침이 만연된 중세 교회를 나타낸다.
* 넷째 나팔은 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16세기의 교회를 나타낸다.  

2) 성경적 비평: 
스스로 종교개혁자의 후예를 자칭하는 손계문 목사는 요한계시록 8:7부터 시작되는 나팔 재앙 해석도 일곱 인과 마찬가지로 교회사 시대에 등장했던 일곱 교회 유형에 접목하고 이 때에 임한 심판이나 경고의 메시지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첫째 나팔은 1세기의 사도시대에 발생했던 심판 사건을 나타내고, 둘째 나팔은 2-3세기의 박해받는 교회 시대에 임한 심판 사건을 나타내고 셋째 나팔은 세속화된 중세 교회에 주는 하나님의 경고를 나타내고 넷째 나팔은 신학적 오류에 빠져있는 16세기의 유럽 교회를 경고하는 내용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하단의 손계문 목사 설교 녹취록 참고). 즉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은 시대적 동시성을 가지고 있지만 일곱 나팔에는 특별히 심판과 경고가 부가되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은 동일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곱 나팔에는 그 시대에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나 경고가 첨가되어 있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과연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이 그러한 구조로 연관되어있을까?

요한계시록 본론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시리즈의 중심 주제는 심판과 재앙이다. 일곱 인은 이 심판에 관한 대략적인 개관을 소개한다. 그리고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은 일곱 인의 더욱 심화된 심판의 내용을 보여준다. 일곱 인에서 일곱 나팔로, 그리고 일곱 대접으로 진행할수록 심판의 성격은 더욱 무섭고 광범위해진다. 예를 들면 나팔 재앙에서는 땅, 수목, 바다, 강, 해와 달의 삼분의 일이 피해를 입지만 대접 재앙에서는 그 범위가 전체적으로 확대된다. 이러한 면에서 이 세 시리즈의 구조는 반복과 전진이다. 즉 이 세 시리즈는 서로 맞물려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재앙을 보여줄 뿐 시대적 동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이 동일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다는 주장은 일리가 없다. 이러한 전제를 가진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해석이 저자의 의도에 얼마나 벗어나 있을지 짐작이 된다.

손계문 목사는 첫째 나팔 장면을 AD 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그는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8:7)라는 장면이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유대민족이 멸망된 AD 70년의 사건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근거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교회와 첫째 인은 계시록을 쓴 요한이 아직 생존해 있던 1세기의 기간에 성취되었죠. 그래서 첫째 나팔도 의심할 여지없이 서기 70년에 발생한 유대 국가의 멸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사도 요한의 생존 기간 안에 발생했던 사건들이 첫째 나팔 장면의 후보군에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 많은 후보군 중에 있는 AD 70년에 일어났던 유대민족 참사를 최종적으로 낙점한다. 도대체 누가 그러한 규칙을 정했으며, 그것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기록되어있는지 궁금하다.

첫째 나팔 장면이 유대민족의 멸망을 나타낸다고 주장하는 손계문 목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증거들을 제시한다. 시편 1:3에서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했고, 시편 52:8에서도 사람을 감람나무라 했고, 예레미야 11:16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푸른 감람나무라 했고, 마태복음 21:19에서도 유대민족을 무화과나무라 했기 때문에 본문에 등장하는 “수목”(7절)도 유대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며 “수목이 불탔다”는 표현도 유대민족의 멸망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이는 분명히 AD 70년의 전쟁 참패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러한 구절들이 ‘사람=나무’ 혹은 ‘이스라엘 백성=나무’라고 정의하는가? 이 모든 표현은 비유일 뿐 풀과 나무가 사람 자체 혹은 민족 자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풀과 나무는 인간을 상징할 뿐이다. 이런 방식대로라면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합 1:14)에서 물고기나 벌레가 인간 자체라고 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 3:16)에서 새를 성령 자체라고 해야 한다. 손계문 목사의 단어 풀이는 매우 비상식적이다. 단어의 의미는 문맥이 결정하며, 문맥 안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상식을 크게 벗어나 있다. 비유와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이러한 유형은 천부교의 박태선, JMS의 정명석, 신천지의 이만희에게서 주로 발견된다.

사도 요한은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떨어져 땅 삼분의 일, 나무 삼분의 일, 풀 삼분의 일이 모두 타버리는 장면을 본다. 우박과 불에 대한 묘사는 출에굽기 9:13-35에 언급된 애굽 전역에 내려졌던 재앙과 병행을 이룬다. 이 장면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에 대한 심판은 자연계에 대한 심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종말론적 재앙을 의미하는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땅에 쏟아졌을 때 땅의 삼분의 일이 모조리 불살라졌다. 전소된 땅 삼분의 일은 요한계시록 6:8의 묘사와 비교해 볼 때 심판의 강도가 명백히 강화되어있다. 재앙을 맞은 땅의 범위가 사분의 일에서 삼분의 일로 늘어난 것은 자연계에 임한 이 종말론적인 재앙의 혹독함을 나타낸다. 이 장면은 AD 70년에 발생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무관하다.

손계문 목사의 기이한 주장은 둘째 나팔 해석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8:8-9)는 장면을 AD 476년에 발생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로마 제국을 빗대어 바벨론이라 호칭한 베드로전서 5:13과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했던 예레미야 51장을 끌어들인다. 그는 왜 여기에서 로마를 바벨론이라 칭한 베드로의 말과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전하는 것일까? 혹시 로마 제국의 멸망이 오래전 구약이 예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그러한 의도가 있다 해도 바벨론은 이미 페르시아의 고레스에 의해 멸망당하였기에 뜻을 이루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 8:8-9이 보여주는 둘째 나팔 장면은 매우 단순하다. 불타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 바다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의 삼분의 일이 파괴되는 명료한 장면을 그러한 공정 과정을 거쳐서 파악해야할 필요가 있는가? 이 장면 어디에서 AD 476년에 발생한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나타내거나 암시하는 단서를 찾아 낼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큰 산처럼 보이는 것이 이글이글 타면서 바다 속으로 던져지는 광경을 본다. 산을 본 것이 아니라 산처럼 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의 생물 즉 물고기와 기타 어류 삼분의 일이 죽고 선박 삼분의 일이 파괴되는 장면을 본다. 여기서 바다, 피, 생물, 배들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들이다. 이 둘째 나팔 장면도 자연계에 내려진 종말적 심판과 결부되어있다. 자연계에 대한 심판은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심판은 인간이 사용하는 선박이 파괴되는 것을 통해서 보여준다. 이 장면은 AD 476년의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무관하다.

손계문 목사의 황당한 기조는 셋째 나팔 해석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8:10-11)는 장면을 루시퍼의 침입으로 비성서적 가르침이 만연하게 된 중세 교회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특이한 점은 셋째 나팔 장면은 심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오염되어있는 상태의 중세 교회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은 루시퍼(루시퍼에 대한 내용은 필자의 비성경적인 손계문 목사의 요한계시록 4장 설교 참고)로, 강물과 물 샘은 교회로, 큰 별이 강과 샘으로 떨어지는 것은 루시퍼가 교회로 침입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를 중세 교회에 접목한다. 큰 별을 존재하지도 않는 루시퍼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맥을 이탈해 있다. 그렇다면 셋째 나팔에 대한 손계문 목사의 해석은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없다. 전제가 이미 ‘거짓’이기 때문에 결론은 보나마나이다.

사도 요한은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쑥이라 이름하는 큰 별이 강들 삼분의 일과 여러 샘에 떨어져 물 삼분의 일이 쓰게 되어 그 물을 먹은 많은 사람들이 죽는 장면을 본다. 독을 품은 이 별이 물에 떨어졌을 때 물은 쑥같이 쓰게 되었고 이 물을 먹은 사람들이 죽는다.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과 독한 물을 마시게 된다는 것도 종말적 심판의 정황을 설명하는 표현이다. 셋째 나팔 장면에서도 땅과 바다에 이어 강물, 샘 등 자연계에 대한 심판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타락한 중세 교회를 보여주지 않는다.

손계문 목사는 넷째 나팔 장면을 가리켜 자유주의 사상에 물든 16세기의 교회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8:12)를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의 지배를 받게 된 16세기의 유럽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도 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빌려와 ‘해’를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달’은 성장하게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별’은 천사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이 해와 달과 별이 타격을 받아 삼분의 일이 어두워진 것을 16세기의 유럽 교회가 암흑 상태에 빠진 것으로 해석한다. 도대체 해, 달, 별에 대한 이러한 조합들이 어떻게 16세기의 유럽 교회와 직통 연결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중간 연결 고리 부분에 대한 설명이나 증거 제시가 없는 일방적 선언이다. 해, 달, 별에 대한 이러한 조합이 16세기 유럽 교회와 연관될 만한 유사성은 전혀 없다.

손계문 목사의 성경 해석 방법은 문제가 매우 많다. 사실 성경 해석이라 할 것까지도 없지만 그는 해석에 앞서 먼저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그 가설의 정당성을 이런 저런 구절을 끌어들여 입증한다. 그리고 가설을 다시 본문으로 가져와 최종적 의미로 매듭짓는다. 말하자면 자기의 가설을 성경을 차용하여 인증하고 결론으로 채택하는 방식이다. 대다수 사이비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사도 요한은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해와 달과 별의 삼분의 일이 충격을 받아 어두워지고 낮의 삼분의 일의 빛이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해와 달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충격을 받아 천체들이 빛을 잃게 되는 재앙이다. 낮 삼분의 일도 빛을 잃고 밤의 달과 별들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냈다. 이러한 어두움은 단순히 천체의 이상 현상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종말적 심판과 결부되어 있다(암 5:18; 욜 2:2; 사 13:10). 그리스도께서도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막 14:24)라고 하시며 종말의 징조를 언급하셨다. 넷째 나팔 장면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세상에 대한 종말적 심판이 천체계의 변이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16세기의 유럽 교회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상에서 살펴 본대로 손계문 목사의 네 개의 나팔 장면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오독과 오역으로 얼룩져 있다. 이러한 그가 한국 교회가 진리를 오염시키고 있고 성도들을 영적으로 죽이고 있다며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여러분 셋째 나팔이 말하는 것은 이방 종교가 아니라 슬프게도 기독교를 통해서 그 독성 많은 그 사탄의 비성서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진리가 오염되는 사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중세 시대뿐입니까?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쓴 풀을 먹이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또 다른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여러분 그것은 그리스도 교회에게 타격을 가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사상에 점령당한 신학을 마치 고상한 진리인양 선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빛을 발해야 할 교회가 심각히 어두워진 오늘날입니다.” 손계문 목사는 회의주의, 세속주의, 자유주의에 빠져 있다는 현재의 한국교회를 이렇게 타박한다.

필자는 목사이다. 지난 30년 동안 여러 교회에서 목회했고, 현재는 여러 교회의 초청을 받고 강의를 한다. 여전히 많은 목사들과 성도들을 만난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보수적이다.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이다. 대다수 목사들은 자유주의 신학에 극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독일의 슐라이에르마허에서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 그 이후 등장한 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에밀 브루너, 폴 틸리히 등등의 이름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 중에는 이런 신학자들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손계문 목사는 이런 풍토의 교회가 지금도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자유주의를 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뚤어진 야망을 버리고 진정으로 회개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자가 누구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 다음은 손계문 목사가 2019년 3월 30일 유튜브 채널 ‘성서연구원’에 올린 ‘요한계시록 강해 16부: 요한계시록 8장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심판이 시작되다(일곱나팔)'를 녹취한 것입니다. 

일곱 교회와 일곱 인이 기독교 역사의 전 기간을 망라하면서 첫째 교회와 첫째 인은 계시록을 쓴 요한이 아직 생존해 있던 1세기의 기간에 성취되었죠. 그래서 첫째 나팔도 의심할 여지없이 서기 70년에 발생한 유대 국가의 멸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 보면 푸른 풀이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고 있고요(사 44:3-4) 나무 역시 하나님의 백성을 대신하고 있습니다(시 1:3; 52:8; 9:12).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대민족을 감람나무라고 일컬었고요(렘11:16-17).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민족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라고 말씀하셨죠(마 21:19). ···

둘째 나팔은 AD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뜻합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1세기 말 경에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이 바벨론에게 고통을 당한 걸 빗대서 로마를 뭐라고 불렀어요? 바벨론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라고 상징적으로 말했습니다(벧전 5:13). ···이 바벨론은 하나님의 성도를 박해하는 나라를 상징합니다. ···예레미야 51장에 보면 바벨론은 멸망의 산, 불타는 산으로 부르면서 멸망당할 것을 예고했습니다. ···둘째 나팔은 이방 나라인 로마에 내리는 심판으로 적용했습니다. ···셋째 나팔입니다. ···성경에서 별은 천사들을 상징하거든요(욥 38:7; 계 9:1; 12:4). 별이 크다는 것은 중책을 맡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이 큰 별은 하늘 천사들의 삼분의 일을 타락시켜서 반역해서 그들과 함께 쫒겨난 그 우두머리 루시퍼 사탄을 가리킵니다. ···.

강물과 물 샘은 하나님의 진리를 간직해서 가르치는 교회를 가리키는데 하늘에서 큰 별이 그 강들과 물 샘에 떨어지는 것은 하늘에서 쫒겨난 사탄이 어디로 들어왔다는 얘기에요? 교회 내부에, 진리에 침입해서 활동할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여러분 셋째 나팔이 말하는 것은 이방 종교가 아니라 슬프게도 기독교를 통해서 그 독성 많은 그 사탄의 비성서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의 진리가 오염되는 사태를 말합니다. ···여러분 중세 시대뿐입니까? 오늘날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에서 쓴 풀을 먹이고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 ···여러분 여기서 해는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고(말 4:2),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시 119:105). ···

달은 신명기에 보면 성장케 하는 것을 상징합니다(신 33:14). 별들은 하나님의 사자들, 천사들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어두워졌다”는 것은 영적 이해력과 통찰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넷째 나팔은 교회가 심각한 암흑에 덮일 것을 가리킵니다. ···셋째 나팔의 중세 시대를 묘사했다면 넷째 나팔은 그 후에 더욱 어두워진 영적 흑암을 말하고 있습니다. 중세의 암흑시대에 뒤이어서 16세기부터 유럽은 인간의 이성을 한 없이 높인 계몽주의, 이성의 시대를 거처서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그리스도 교회에게 타격을 가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주의와 세속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러한 사상에 점령당한 신학을 마치 고상한 진리인양 선포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빛을 발해야 할 교회가 심각히 어두워진 오늘날입니다(손계문, 2019년 3월 30일 설교, “요한계시록 강해 16부” https://www .youtube. co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