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신앙>(www.amennews.com)은 최근 ‘정통교회와 다르게 가는 십자가의 도’라는 제목으로 복음중앙교회 조종성 목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만민중앙교회 부교역자 출신인 조 목사는 1998년경 그 교회를 이탈한 후 현재의 복음중앙교회를 서울 마천동에 설립하고 교계에 조금씩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사람이다. 교회 내에 ‘그리스도복음신학’을 운영하며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신학교육도 시키고 있다. 그의 활동은 교계 일부 언론에도 소개가 되고 있다.
조 목사의 <십자가의 도>라는 서적과 설교를 통해 기자가 핵심적인 주장을 정리한 것은 △구원의 조건화된 십자가의 도 △인간의 완전성화 △예수와 그리스도의 분리 △정통교회 폄훼 등 4가지였다.
이중 기자가 특별히 더 관심 있게 들었던 부분이 있다. 조 목사가 설교 중에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예수님은 우리 안에 모실 수 없고 그리스도만이 우리 속에 오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음성과 예수님의 음성은 다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그리스도의 구분점을 알지 못한다”면서 반복적으로 예수와 그리스도에 차이를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교회와신앙> 2008년 12월 15일자 ‘정통교회와 다르게 가는 십자가의 도’ 기사 참고).
이러한 조 목사의 주장은 과연 옳은 것인가? 그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살펴보자.
첫째, 일반 상식에서조차 예수와 그리스도는 병용되는 것으로 파악한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본래 '예수'는 그의 이름으로 '야훼가 구원한다' 또는 '야훼가 구원할 것이다'(마태 1:21)를 의미한다. 반면 '그리스도'는 '메시아' 칭호에 대한 그리스어 번역이었다.”
즉 ‘예수’는 사람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이고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그런데 기독교가 여러 민족에 전파되면서 ‘그리스도’, ‘예수’,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가 병용되며 이 모든 용어가 고유명사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신약성서>의 어떤 구절들은 '그리스도'를 칭호로 사용했지만 그 칭호가 매우 일찍부터 고유명사가 되었음을 바울의 용례로부터 알 수 있다. 거의 모든 이방인들은 그것을 고유명사로 받아들였고, 초기 신자들은 '그리스도인'으로 불렸다(사도 11:26).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라는 단어는 주님의 지상 경력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전례자료에 의하면 실제로 '그리스도'라는 이름보다도 예수라는 이름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예수가 거의 병용되었다. 현대에 와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관습적으로 예민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이것은 오직 일부 집단들에서만 그러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G. Bornkamm J.J. Pelikan 글, 윤철호 옮김).
물론 예수와 그리스도의 단어적 의미는 다르다. 예수라고 할 때 인간 예수를 가리켜 사용되고 그리스도는 인명이 아니라 ‘직명’이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는 왕, 선지자, 대제사장 같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가리켰다. 그러다가 후에 구세주를 가리키는 용어가 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조차도 누군가로부터“나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라고 인식한다. 바꿔 말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생각한다.
둘째, 기독교내에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고백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고백과 차이가 없이 사용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헌법 제 21조에는 “그리스도께서 그 몸을 한 번 제물로 드려 전 인류의 자범죄와 원죄를 완전히 속(贖)하시사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은즉 누구든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것이요”라고 돼 있다. ‘그리스도’를 ‘예수’로 바꾸거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바꾼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성기호 교수(전 성결대 총장)는 <이야기신학>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예수님을 위대한 사람으로부터 알았거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것을 먼저 안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는 인간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나 ‘그리스도 예수’는 같은 분을 부르는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예수님은 두 가지의 성품 즉 신성과 인성을 똑같이 가지고 계신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품을 신인양성이라고 한다.”
예수님 자신이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추신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를 믿는 것은 차원이 낮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좀 더 차원이 높은 신앙인 것처럼 표현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는 오직 예수 한분뿐이시다. 스스로 자문해 보자. 이러한 명제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지. 아니 이런 명제조차도 답변하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자신의 신앙이 바른 신앙인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셋째, 성경에서 부활 이후에도 ‘예수’라는 명칭을 사용했고 부활 이전에도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많이 나온다.
조종성 목사는 “사복음서에는 주로 예수, 예수, 하다가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며 로마서부터 거의 모든 기록이 다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가 없는 예수라는 단어가 없다”(조종성, 2006, <영원한 생명 - 십자가의 도>, 32)고 주장한다. 부활 이후에 로마서부터 ‘그리스도 예수’, ‘예수 그리스도’라고 쓰지 ‘예수’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조 목사의 이러한 말도 틀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 6),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 10:9).
로마서 이외의 다른 성경에서도 ‘예수’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나타난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이외에도 갈 6:17; 엡 2:22, 4:21, 골 1:19; 3:17, 4:11; 살전 1:10, 5:10을 보라. 모두 ‘예수’를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그리스도 예수’와 병용했다.
사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라는 표현 또한 적지 않게 나온다. 신약의 첫 페이지 마태복음 1:1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기록했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마 11:2),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 16:20). 예수님은 부활 전에도 그리스도로 불리셨고 부활 이후까지 계속 예수로도 불리셨다. 그리스도와 예수는 병용됐다. 따라서 부활 이후에는 예수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고 ‘그리스도’로 썼다는 조 목사의 주장은 잘못된 말이다.
넷째, 예수님은 부활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조 목사는 예수와 그리스도를 다르다고 할 뿐만 아니라 여기에 더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때는 부활의 주 그리스도가 되실 때”라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그 때서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주장이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로마서 1:4에 언제 아들로 인정되셨습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십자가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그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것이 바로 주님이 시편 1:7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사도행전 13장에 바울은 다시 말해준다 이 말이에요. 내가 너를 낳았으니 내 아들이라 칭하는 때가 바울 사도가 행 13장에서 언제라고 말해 줍니까. 그 때가 바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때라고 말해 준다 이 말입니다”(조종성 목사, 2007년 11월 26일 목회자 대상 강의).
바꿔 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으셨다는 의미가 아닌가?
조 목사의 이러한 주장도 문제가 있다. 성경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35에서 예수님은 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천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신다. 세례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변화되실 때(막 1:11;9:7)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음성이 들렸다. 이 사건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을 받으신 게 아니고 무엇인가?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 의해(마 16:16), 로마의 한 백부장에 의해(막 15:39)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다. 심지어 귀신들에 의해(막 5:7)서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불렸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나님과 자신과의 부자(父子) 관계를 무수히 많이 말씀하셨다(마 11:27;막 13:32)”(후크마 주석).
이런 사실을 안다면 부활 이후에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면 로마서 1:4의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먼저 전제할 것은 부활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정되셨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호리스텐토스”로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 앞에서 영광(人性을 취하신 후 없었던 영광)을 얻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뜻이다(행 2:36).
이렇듯 명백한 성경의 증거가 있음에도 조 목사는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믿어서는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다음과 같은 주장도 있다.
“그래서 진리를 알지니라고 할 때 요한복음 8장에 그들이 누구를 믿고 있습니까? 이미 31절, 32절에 이미 예수를 믿고 있어요. 예수를 안 믿는 게 아니라 그들이 예수를 믿고 있어요. 8장에.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진리를 알면 아들이 너희를 죄에서 자유케 한다’고 돼 있어요. 예수를 믿는다고 여러분 죄에서 자유케 된다구요? 그러면 오늘날 교회들이 다 온통 거룩하게요? 봐봐요!!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는 아버지가 말한 대로 너무 무지한 때예요. 믿음의 본질이라는 자체도 뭘 믿는지 기준점도 모르는 거예요”(조종성 목사, 2007년 11월 26일 목회자 대상 강의).
그는 “예수를 믿는다고 죄에서 자유케 된다구요?”라고 반문한다. 이렇듯 조 목사의 극단적 주장은 많다. 정통교회에 대한 폄훼도 지나치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는 조 목사의 주장을 들으면서 이와 유사한 주장을 하는 또다른 사람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측에서 이단, 통합측에서 비성경적이라고 규정한 박무수 목사(부산제일교회)와 <교회와신앙>이 2005년 8월 비판적으로 문제제기한 김상배 목사(한나라교회)다.
박무수 목사는 “오늘 여러분과 저의 지도자는 그리스도입니다. 분명히 하세요. 예수가 아니고 그리스도요!”(1997년 5월 12일 부산제일교회 세미나), “내가 어느 쪽에 서야 하느냐. 예수 쪽이냐. 그리스도 쪽이냐. 이걸 갖다가 몰라 가지고 전부 지옥갈 귀신 노릇해”(1997년 5월 13일)라고 설교한 바 있다(<교회와신앙> 1998년 1월 ‘박무수 목사의 어록’ 참고).
김상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교회와신앙> 2005년 8월 ‘김상배 목사 황당한 설교 녹취록’ 기사 참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하고 예수 안에서 죽는 것하고 차이점이 뭐냐고 했을 때, 그리스도와 예수는 분명히 다릅니다··· 바울이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다, 이것 이상의 은사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차이점이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은 따르다가도 뭡니까? 감람나무 갖고 흔들었다 해도 나중에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질렀던 사람들이거든요. 예수님을 믿었던 무리들이 그랬잖아요. 아니, 베드로가, 유다가 예수님을 안 믿어서 전부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갔습니까?
3년 반 동안이나 같이 살았는데.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내가 죽으면 죽었지 예수님을 죽이지 않고 내가 고난당하고 고문당하고 고난을 겪었으면 겪었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절대로 부인하거나 저버리지 않습니다”(한나라교회 김상배 목사 2005년 7월 10일 휴거(5)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약간 어감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은 공통점 한 가지를 갖고 있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고 마치 다른 것처럼 설명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진실하고 예수를 믿는 것은 뭔가 잘못되거나 부족한 것처럼 설명하기도 한다. 결국 한국교회의 보편적 신앙과 다른 길을 선택하거나 한국교회의 신앙을 아주 수준 낮은 것으로 폄훼하며 어떤 유익을 의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에게 차이점이 있다면 박무수 목사에 대해 한국교회가 문제의 인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조 목사는 박 무수 목사가 왜 그런 규정을 받았는지 마음에 새겨봤으면 좋겠다. 기자는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는 조 목사의 복음중앙교회를 취재한 후 항의 전화를 수차례 받았었다. 이 중에는 격앙된 어조로 반말을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번 글을 올린 후 십자가의 도를 전한다는 복음중앙교회측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자는 주목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