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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내 부모를 사탄의 도구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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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내 부모를 사탄의 도구로 여겼다"
  • 정윤석
  • 승인 2007.03.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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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상)

얼마 전 전화가 왔다. 이단에 빠진 아내와 가정에서 갈등을 겪는 한 집사님이다.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에요. 아무 일도 못하겠어요. 도대체 그 사람들 마음 속에는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그는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굉장히 궁금해 했다. 그리고 긴 터널과도 같은 극과 극의 대치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했다.

좌담회를 마련했다. 교주를 극단적으로 신격화하는 일부 이단단체에 다녔던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단체에 빠진 사람들이 가족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 그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주 신격화 단체에 빠져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심리를 가졌으며 어떻게 사회와 가정과 정통교회에서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소외시키게 됐을까?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춰서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리고 그 단체에 나오면서 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심리적 변화를 갖게 됐는지와 나온 후 심리적 공황 상태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서도 답변을 들어보았다. 이 좌담회를 통해 교주를 신격화하는 이단에 빠진 가족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정보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번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녔던 이단단체와 나이와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하다. 좌담회 참석자들은 교주를 하나님으로 믿으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A단체에 각각 3년 반, 1년 반 동안 빠졌던 40대, 30대의 여신도 두 명, 교주를 이긴자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B단체에 4년, 1년 반 정도를 빠졌던 20대의 남녀, 교주를 재림주로 믿으며 신격화하는 C단체에 6개월 동안 다녔던 20대의 여성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복음으로 치유하는' 안산 상록교회(진용식 목사, www.jesus114.net)에서 신앙상담을 통해 정통교회로 개종했다. 좌담회에 참석한 회심자들의 교주 신격화 단체는 물론, 이들의 이름 등은 모두 이니셜로 처리했다. <편집자 주>

진행: 정윤석 기자
참석자:
J 씨(44, A단체 3년 반 출석),
K 씨(32, A단체 1년 반 출석)
C 씨(26, B단체 4년 출석)
G 씨(22, B단체 1년 반 출석)
M 씨(23, C단체 6개월 출석)


- 이단단체와 관련해 자신을 소개해 달라.
C 씨: 나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인천의 한 장로교회에서 대학생까지 신앙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가 먼저 이단단체에 빠지게 됐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단인지 아닌지 네가 판단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어서 들어갔다가 나도 그곳에 빠져 4년을 보냈다.

G 씨: 나도 모태신앙이다. 더구나 가족 전부가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신앙생활에 갈급해 있을 때 선배를 통해 이단단체를 접하게 됐다. 말씀을 들으면서 너무 이해가 잘돼 빠지게 됐다. 1년 6개월을 다녔다.

J 씨: 나도 모태 교인이다. 열심히 교회 생활, 기도 생활하면 천국에 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구원 문제에 대해 깊게 알고 싶었지만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고 미적지근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런데 이단에 빠졌을 때 그들은 틀렸지만 어떻게 내가 구원받는지 확실하게 길을 제시해줬다. 그래서 ‘와 정말 이 때가 구원받을 만한 때구나’라고 생각하고 열심을 다해 이단단체에 다녔다. 너무 너무 좋았어요. 내 체질에 맞는 단체였어요.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어 3년 반 정도를 다녔다.

이단을 접한 계기는 내가 하던 사업체에 드나드는 손님 중에 이단단체 신도가 있었다. 그 사람이 작정을 하고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그의 ‘밥’이었다. 사람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태가 됐을 때 말씀을 듣기 시작했고 빠져가게 됐다.

M 씨: 교회를 어렸을 때부터 다녔다. 대학교에 가면서도 학교 근처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 갈망하고 말씀에 대해 갈급했다. 교회에선 그걸 채울 수가 없었다. 개척교회에선 봉사하기에 바빴다. 피아노 반주부터 식당봉사 등이 너무 버거웠다. 4학년 2학기에 같은 학부 선배가 성경공부하는 것을 알고 갈급한 마음에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렇게 이단단체를 접해서 6개월을 다녔다.


“성경은 교주 신격화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 좌담회에 참석한 사람들

- 자신이 빠졌던 단체의 특성을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 무엇을 믿어야 구원이 된다고 배웠나?

C 씨: 가장 중요한 것은 새노래와 비유의 말씀을 아는 것이었다. 비유의 말씀을 알면 결국 한사람을 알게 된다. 그 목자를 알아야 구원이 된다고 배웠다. 그들은 이런 비밀이 6천년 동안 감춰졌던 것인데 이제 밝혀졌다고 가르쳤다(이 말을 할 때 다른 단체에서 나온 M 씨가 계속 웃었다. M 씨도 자신이 다녔던 이단 단체에서 동일하게 그런 주장을 했다고 말한다: 편집자 주). 비유풀이를 공부할 때 내 입장에서는 너무 신기했다. 성경을 이렇게 쉽게 풀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지금까지 어렵게 헤맸구나. 성경공부를 하자 내가 걸어다니는 성경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적 욕구가 충족되는 것도 느껴졌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요한계시록에 들어가자 한 목자가 등장했다. 그 사람 안에 있어야 구원이 되고 14만 4천에 들 수 있다고 배웠다. 그곳을 떠나면 구원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단체 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멸망하는 곳이고 이곳만 영생한다고 가르쳤다.

G 씨: C 씨와 같은 곳을 다녔는데 요약하면 약속한 목자와 약속한 성전이다. 약속의 목자는 예수님이 초림 때 약속의 목자였던 것처럼 재림의 시대의 약속의 목자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약속의 목자를 믿어야만 구원이 된다. 그리고 그 약속의 목자가 있는 성전. 곧 이 단체를 다녀야 구원이 되는 구조였다. 초등교육 과정은 중등교육을 위한 것이고, 중등은 고등, 고등은 계시록을 풀기 위한 기초가 됐다. 결국 이 두 가지를 믿어야 구원이 있다고 가르쳤다.

반면 예수님의 시대는 지나간 것이고 전 시대이다. 이 시대에는 그 약속의 목자와 성전을 믿어야 한다. 따라서 다른 곳에는 구원이 절대 있을 수가 없다. 모두 흑암 가운데 있고 오직 빛은 한 곳만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 3절 말씀을 토대로 모두 흑암 가운데 있다가 하나님의 신이 수면을 운행하시다가 빛을 택했는데 그 빛은 바로 약속의 목자라고 주장했다. 온 인류 가운데서 구원은 오직 이곳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것은 절대적이었다.

▲ 교주를 하나님이라고 추앙하는 단체에 3년 6개월을 다니다가 나온 J 씨
J 씨 : 다녔던 곳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 참 많다. 사실 내가 다닌 단체에서 주장한 율법주의는 미끼 밖에 되지 않았다. 다른 교회에서 안 지키는 율법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유인하고 결론은 하나님의 둘째 아들인 O 씨를 하나님으로 믿게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다. 예수님은 첫째 아들이고 이 시대에 둘째 아들로 온 O 씨를 재림예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 가서는 내가 다닌 단체는 또 다른 하나님인 X 씨도 신이라고 주장했다. 여자 없이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며 X 씨도 하나님으로 믿게 했다. 그 둘을 믿어야 구원이 되고 다른 곳은 구원이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성경을 갖고 포교를 하지만 이들은 결국은 성경을 인정하지 않았다. X 씨가 하나님이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최종적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마지막에 덮어 버렸다. 성경을 덮고 X 씨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모든 것을 휘두른다. 살아 있는 하나님이 있으니 성경이 필요 없었다.

G 씨: 우리는 말씀을 조금 더 인정하는 척은 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을 성경을 다 빗대어서 했다는 점에서 결론은 비슷하다.

M 씨 : 우리는 중요한 교리서가 있다. 그것을 두고 6천년만에 비밀이 풀렸다고 말한다(다들 웃음). ‘그럼 이것을 푼 사람이 누구냐? 바로 OO라는 사람인데 그를 육적으로 보면 안된다, 영적 예수다라면서 직접적으로 그가 구원자다’라고 했다. 그가 메시아다라고 정확하게 말한다. 그 사람이 직접 하는 얘기도 들었다. 수료식을 하면서 말씀을 전하다가 맨 마지막에 ‘내가 구세주다, 메시아다’라고 표현하더라.

처음에는 교리서를 중요하게 여기다가 나중에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 사람을 알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달으면 교리서고, 성경이고 필요가 없다. 나중에는 그 단체를 갈 때 성경을 갖고 가지도 않는다. 성경의 중요성은 없어진다.

C 씨: 우리도 비슷한데 우리는 대놓고는 하지 않았다. 뒤에서 은근히 몰아간다. 말은 성경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성경은 한 사람을 이 시대의 구원자로 세우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K 씨: 맞다. 교주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가르치지 않았다. 처음에는 율법에 대해 배웠다. 그 끝에 교주가 나오는데, ‘맞구나!’라고 했다. 그냥 성경 안에서 율법이 맞으니 그 뒤에 나오는 교주도 맞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나에게 ‘그가 하나님이다’라고 먼저 가르쳐 주고 율법을 가르쳤다면 당연히 안 믿었을 것이다. 생뚱맞게 한국인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순서를 바꿔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조목조목 가르치다가 이 말씀을 가르쳐 준 사람이 바로 ‘OOO’이다고 가르쳐 주니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나님 밖에 없을 것이다는 생각을 하며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가 어디서 출생했으며 부인까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까맣게 지워졌다. 그 때부터는 자료가 필요 없었다.

“포교돼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경쟁자로 느껴졌다”

사회자: 공통적이면서도 단체들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제 이단단체에 다닐 당시의 심경에 대해 듣고 싶다. 모두들 최고의 진리라는 곳에 다녔는데 남모를 말 못할 가장 큰 고민이 있었을 거 같은데?

C 씨: 말못할 고민이니 말을 못하겠다(모두 웃음). 간단한 건데···. 이단단체에서 믿음으로 행한 적이 있다. 내가 주인 삼은 것을 내려 놓으면 모든 게 형통할 줄 알았다. 내가 중요시하는 것, 학교 공부, 여자친구, 좋아했던 술·담배를 한꺼번에 모두 끊었다. 4년을 만난 여자친구랑 헤어졌다. 이단단체에 다니기 위해 그렇게 결단했다. 그게 무척이나 큰 고민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나면 하나님이 평안을 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고 하는 일은 더 안 되고 마음이 더욱 피폐해져갔다. 믿음으로 행했는데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해주셨다는 고민이 있었다.

학점도 신경을 안 쓰고 이단단체의 스케줄에 맞춰 변경하고 휴학을 하면서까지 이단단체에 몰입하고 싶었다. 아버지의 반대로 하지 않았지만 모든 용돈과 시간 등을 그 단체에 바치면서 살았었다.

G 씨: 채울 수 없는 강박관념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이만큼 하면 잘한 거 같은데 더 잘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늘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외치고 살았다. 나는 더 욕심을 부리고 더 높아지고 싶은 데 그 마음을 채울 수가 없었다. 일종의 강박관념 같기도 했다. 늘 높은 단계만 지향하니 잠도 안자고 성경공부를 하게 됐고 대학에서 강의 시간에 이단단체의 성경공부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밤을 새며 ‘더, 더’를 외쳤지만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마음 속에 자리했었다.

J 씨: 성경공부가 초·중·고급으로 3단계가 있다. 공부를 했는데 안 믿어지는 게 사실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인간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육체로 예수님이 재림했다는 것을 배우는데 한 사람의 한국인 이름이 나왔다. 그가 생명과라는 것이다. 너무 이상했다. 그것을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다 똑같이 공부를 하는데 다른 사람을 보니 믿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믿음없는 사람처럼 여겨지기는 싫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믿고 있나보다, 그러니까 나도 믿어야지’라고 생각했다. 뭔가 물어보는 것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거 질문하면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 숨기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면 그것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면서 궁금증을 풀고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털어 놓지 못하고 말을 못했다. 위로도 받고 싶고, 나같은 사람이 있다더라 하면서 서로 돕는 분위기가 없었다. 그러니 사람이 폐쇄적이 됐다. 누군가 포교를 통해 우리 단체에 들어오면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했는데 내 자리를 제가 뺐나보다’라는 생각에 마음속에는 미움이 싹트기도 했다. 이렇게 말 못할 고민이 생겼지만 교회안에서 얘기를 못했을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이단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외로웠다. 안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분위기고 밖에서는 이단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대화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사회자: 서로 얘기를 나눴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있는가?

B 씨: 나도 밖에서 항상 떳떳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이단이라고 알게 될까봐. 내가 혹시라도 이단이라는 거 알까봐 굉장히 의식하고 항상 숨겨야 하고 움츠러들었다.

J 씨: 일부러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고 모범을 보이려고 하니까 더 어색하다. 한마디로 이단이라는 것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가장하며 살았던 것이다.
B 씨: 보여지는 것에 신경을 너무 썼다.
C 씨: 그것을 억지로 해야 하니까 너무 힘든 것이다. 지금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우러나와서 하지만 그 때는 억지로 만들어서 가장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생활을 했다.
M 씨: 그런데 나는 달랐다. 선민의식을 느꼈다. 내가 최고의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쌍하게 느껴졌고 우월감을 느끼며 생활했다.
C 씨: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데···.
G 씨: 맞아요.
C 씨: 시간이 지나면 아, 이거 정말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자: D 씨는 그곳을 6개월 동안 다녔는데 그 당시에는 움츠러들지 않고 떳떳하고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겼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들도 첫 6개월 동안은 같은 마음이었나?
G 씨: 그 정도 기간에는 움츠러드는 게 절대 없다. 아무것도 무서운 게 없다. 기간에 따라 느낌에 차이가 있다.
J 씨: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기간이다. 영광스러운 때다. 목사님들과도 대적하게 된다. 자신감이 가장 고취돼 있을 때다.
G 씨: 목사님들 설교 들으면서 앉아서 다 판단하고 그런다.
M 씨: 부모님이 나를 이단에서 빼내려고 어떤 목사님을 데리고 오셨다. 나와 얘기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하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속으로 그랬다. ‘내가 너보다 더 성경을 잘 풀어주는 데 있으니까 좀 힘들 것이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다. ‘너도 언젠가는 이곳으로 와야 할 텐데’라며 겁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사회자: 시간에 따라 처음에는 우월의식에서 강박관념, 움츠러드는 것으로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이단이라는 말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쓰는 모습도 보인다.

G 씨: 사실 굉장히 신경 쓰였다.
C 씨: 집에 가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학교도 그렇다. 이단 신앙에만 신경을 쓰니 친구들도 불만이 생기고 정을 붙이고 마음 둘 곳은 이단단체밖에 없게 된다.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가족은 사탄의 도구라고 생각했다”

- 모두 20대 이상의 성인이었을 때 소위 이단단체에 빠졌다. 이단에 빠지기 전 내 가족과 사회와 정통교회에 대한 인식이 이단에 빠진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 말해 달라.

▲ 교주를 신격화하는 단체에 1년 6개월 정도를 다니다가 나온 G 씨.
G 씨 : 이단단체 들어가면서 가족을 포함해서 말씀을 듣지 않은 사람은 모두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근거는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말씀 등이다. 미가서 7장 5~6절, 마태복음 10장 36절이 가족을 적대시하는 대표적 구절이었다. 가족을 내가 사랑해야 하는 정상적 관계로 보지 않았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 나를 방해하고 대적하는 사탄이 들어 쓰는 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다닌 단체는 나와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사탄이 더 역사하기 때문에 가족들을 가장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완전히 2분법적 사고를 강조해서 말씀을 들은 사람과 안 들은 사람으로 나눈다. 그 중에 가족이 가장 가깝기에 가장 조심해야 하고 내 마음을 가장 약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교육을 시켰다.

이런 생각이 형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우리 단체에는 ‘선악분별’이라는 과정이 있는데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1시간 안에도 그런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이 내용을 2시간 들으면 엄마가 엄마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이 빨리 형성된 편이다.

집을 가출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부모님이 시위를 했다. 우리 부모가 우리 단체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게 됐다. 부모님이 그런 행동을 함으로 우리 단체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 너무나 밉고 원망스러웠다.

C 씨: 가정이 돈독한 사랑으로 뭉쳐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들어가자 마자 인식이 바뀐다. 말씀을 듣자마자 그것을 듣지 못한 사람을 배척하게 된다. 한마디로 ‘니 네가 뭘 알어?’라는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니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지게 됐다. 매형이 전도사였다.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은 모두 비웃음으로 넘겼다. 가족들이 말하는 것, 모여서 말할 때도 사람을 무시한다. 교만해지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낮게 본다. 가족들과 거리가 생기게 됐다.

내가 먼저 천국 말씀을 알고, 저들은 모르기 때문에 얘기를 해봤자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바뀌기까지는 ‘선악구분’이라는 거 하나면 충분했다. 우리 단체는 영이 육을 들어서 역사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나님의 한 목자를 추종하는 사람과 거짓 목자를 추종하는 사람으로 나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육계에 있는 것이고 나의 가족들은 거짓 목자 속에 있다고 생각했다. 영이 육을 들어 역사하니까 사탄의 영이 가족의 육을 들어서 역사하고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족들이 미워지게 되고 방해자로 생각하게 된다. 자연스레 가족관계가 변하는 것이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오래 걸리는 사람은 가족관계가 정말 돈독한 경우에 해당한다.

매형이 우리 단체를 찾아와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버린다고도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단단체 출석을 중단한 적이 있다. 그런 일이 있자 나만 몰래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럴 때면 사람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우리 단체에 내가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앞에 가서 불지른다고 했으니 마음이 어땠겠는가?

가족들이 핍박할 때, 교회 못 나가게 하고, 나를 앉혀서 얘기하고 뭔가 캐묻고, 훈계조로 말하면 사탄처럼 여겨지게 된다.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할 때가 그렇다.

“남편은 사탄, 이단단체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었다”

사회자: 그래도 가족간의 정이 있는데 그런 마음이 빨리 생길 수가 있나?
G 씨: 가족간에 정이 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C 씨: 가족간에 정이 끈끈한 사람이면 더디게 될 것인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가족간에 서먹서먹하거나 소원한 가운데 있으면 이것이 급속도로 진행된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K 씨: 이단단체 사람들은 교묘하다. 사람마다 개인마다 가족 간에 누군가의 부딪힘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강하게 싸워서 밀고 나가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또는 완곡하게 거짓말로 우회하면서 이단단체를 다니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는 정면승부를 하도록 가르쳤다.

사람마다 눈높이 대응방식을 개발한 것이다. 그런 것을 듣게 되면 이 단체는 나를 너무너무 이해를 잘 해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가족들은 나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이 단체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잘 이해해주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감동을 받았다. 가족들은 미워지고 계속 이 단체 사람들을 의지하게 된다. 가족들을 벗어나 이 단체로 와야 위로를 얻으니 가족과는 멀어지게 됐다. 그것을 참 자상하게 가르쳐줬다.

내가 이단단체에 빠졌을 때 가족들이 한 말은 단 한마디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이야!’ 그런데 나는 달랐다. 나는 처음부터 그 얘기를 들은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라는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결론을 얻은 상태였다. 성경안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온다고 배운 것이다. 나는 이미 그것을 진리라고 믿고 있는 상태였고 남편은 하나님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보고 얘기를 했다. 이렇게 되니 싸움만 되고 남편을 사탄의 도구라고 생각을 했다.

남편이 핍박을 하면, 단체에서는 ‘사람은 미워하지 마세요.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는 거예요. 사탄이 나가면 자신이 왜 미워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에요’라고 가르쳤다. 그래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길만이 천국의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속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막으니 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핍박했다. 덮어 놓고 그것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인터넷 뒤져보고 안티 사이트 찾아보고 하는 것을 보면 너무 속이 상했었다.

싸우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이 나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나를 감싸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벌레 취급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겪고 단체에 가면 그 사람들은 내 얼굴만 보고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나를 안아줬다. 그러면 내가 쉴 곳은 내 남편이 아니라 이곳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된다. 남편은 사탄이 되고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아기도 짐스러웠다. 갓난 아이가 있어서 단체에 오려고 하면 아이를 어디 맡길 수도 없고 기저귀를 갈고 달래주는 등 너무 힘들었다. 신앙 때문에 아이가 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니 그 단체는 아이를 못 낳게 한다. 내가 열매 하나를 얻어야 하는데 아이가 감기가 걸렸다, 장염이 걸렸다. 너무 속상하다. 아이가 아픈 것은 둘째 문제고 내가 열매를 얻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다. 나에게는 상급이 없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 종교에 빠지면서 아이는 내 삶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걸림돌이었다. 심지어 내가 왜 아이를 하나 낳았을 때 부르심을 받지 못했나라는 아쉬움을 가진 적이 있다.

J 씨: 이단에 빠졌을 당시에 남편이 낌새가 이상했는지 내 가방을 뒤진 적이 있다. 남편은 말을 못했다. 혼자서 가슴앓이를 했다. 내가 이단단체에 다니는 것을 지적을 하려면 맨 정신에는 못하겠고 술을 꼭 마셔야 했다. 술김에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싸움이 됐다. 남편에게 ‘당신이 직접 우리 단체에 가서 공부하고 얘기해야지 무조건 핍박하면 어떡하느냐’고 따졌다. 그러면 남편은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알아듣고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맞다보면 오기가 생긴다. 남편은 오로지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를 미쳤다고만 생각해서 술 마시고 와서 혼자 집안 살림을 다 때려 부쉈다. 그 때부터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미움은 또 한 순간이고 내가 다닌 단체에서는 이런 얘기를 한다. 집안 식구가 원수라는 얘기를 하면서 집안 식구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권장했다. 내가 열심히 하면 단체의 하나님이 가족을 불러 주실 것이다고 말한다. 내가 잘하면(즉, 포교를 잘하면) 남편은 물론 자녀들을 모두 교주 하나님이 불러 주실 것이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 사람들은 남편한테 맞고 울면서도 ‘당신과 함께 천국에 가고 싶다’고 고백하면서 남편에게 매달린 사람도 많았다. 이런 데 감동해서 남편이 나오고, 남편 때문에 아내가, 딸 때문에 아빠가 감동해서 나오게 되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 가족관계가 안 좋던 사람이 율법주의를 배우면서 가정생활에 조금씩 신경을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천국 가는 데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가르치는 데 그것을 따라하면 가족들이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부부싸움을 많이 한 편이다. 미워지기 시작하니까 기도할 때 '제발 이 아저씨 술 마시고 늦게 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것이 편했다. 늦게 들어오면 잠깐 난리치고 끝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남편이 반대하고 단체에 대해서 반대하고 성경책 불 지르고 단체에 가서 불 지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때가 제일 미웠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교주를 욕하는 것이었다. 남편이 교주의 이름을 저주하면 천국 못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마음에 너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욕이 나오지 않도록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 교주를 재림주라고 주장하는 단체에서 빠져나온 M 씨.
M 씨: 내가 이단에 빠졌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됐다. 부모님이 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굉장히 순종적인 성격의 나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몇 개월만 쉬어 보라고 부탁도 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쉬는 것은 내게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가정이 끈끈한 정으로 뭉쳐 있는데도 부모들을 사탄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다.

어느 날은 엄마가 나에게 제발 그 단체를 가지 말라고 말하다가 흥분해서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졌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나는 거기 가야 하니까 오히려 나 좀 살려 달라고 말했다. 엄마의 몸이 마구 돌아가는 데도 가만히 있자 아빠가 괘씸하다며 때리려고 하셨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사탄이 역사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놈의 사탄들, 이렇게 나를 공격하는구나. 이렇게 핍박하면 부모님은 지옥 가는데···. 메시아를 핍박하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안타까워한 적도 있다.

나는 그 단체를 다니면서 계속 거짓말을 하면서 이단단체에 출석했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는 게 최고의 순종이었다. 교주가 메시아임을 뺏기지 않는 게 최고의 순종이었다. 설교에서도 빼앗기지 말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그 구원의 메시아를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면서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그렇게 핍박 받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납치해서 묻으라고 해도 그대로 했을 것이다”

- 지도자의 지시를 거의 철두철미하게 따른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그 단체에서 본 최고 수준의 순종은 무엇이었나? 그리고 또는 요구받은 최고 수준의 순종은 뭐였나?

C 씨: 교주·지도자는 영생의 말씀을 들고 나온 목자이고 그런 말씀을 정말 가까이서 전달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복종했다. 나는 학생이었는데 수업을 바꾸는 경우의 순종을 하게 된다. 나는 수업을 3일만 수업을 몰아서 듣고 2일은 강의를 듣지 않았다. 그 시간에는 오로지 포교에 전념했다.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알아서 하게 된다. 그리고 전공을 다 빼고 수업을 안 듣고 동영상으로 듣는 강의를 선택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명문대학을 다니면서 임용고시를 볼 계획을 가진 자매가 있었는데 집에 거짓말로 학교를 다닌다고 해 놓고는 휴학을 했다. 그녀는 등록금을 빼서 활동비로 썼다. 그리고 자퇴하고 단체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학생의 측면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순종을 한 것이다. 이성교제도 남자는 30세, 여자는 27세가 넘어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어기면 근신처리 됐다.

G 씨: 나를 부모를 고소하도록 시킨 적이 있었다. 실제로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것은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도록 위에서 시키는 대로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지도자로부터 부모님을 고소하라고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시를 받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사랑하는 엄마·아빠가 아니라 사탄이 들어 쓰는 도구일 뿐이다’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그것을 사회적·법적으로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곳에서 다른 심한 것까지 요구한다면 그것마저도 따랐을지 모른다.
사회자: 예를 들면?
G 씨: 심한 것이라면 납치, 묻어버리는 것까지다(모두들 놀란다).
사회자: 정말인가?
G 씨: 그렇다. 상부에서 시키면 생각하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인 복종만이 필요했다. 정말 절대 순종이다. 내가 그 단체에 있을 때에 본 일이다. 어떤 자매에게 다른 형제랑 사귀라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자매가 그것까지는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사람의 감정까지 속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의 일까지 시킨다. 그것을 안하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청년들은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다. 조금만 동기부여를 해도 움직이는 세대들이다. 교주에 대해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이렇게 되니 사회생활에 대한 소망과 꿈은 사라졌다. 싹을 잘라버렸다.

J씨: 그것은 죄라고 가르친 것이다!
G 씨 : 그렇다. 썩어질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는 것이다. 전도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이상 그것을 위해 욕심을 내는 것은 정욕을 위해서 사는 것으로 치부됐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학교 공부, 취업 등은 모두 뒷전이 됐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단에서 신앙생활하다보니 정통교회 목사님에 대해서는 미워지고 싫어졌다. 그 단체에 가면서부터 정통교회 목사님이 설교할 때 째려보기 시작했다.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뿜을 정도였다(모두 웃음). ‘말씀도 모르면서 강단에 선다’면서 진짜 째려봤다.
J 씨: ‘니가 뭘 알어’하면서 삯꾼 목자라고 생각하는 거다.
G 씨: 맞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이러면서 비판하는 거다.

K 씨: 우리 단체에서는 일부러 아기를 낳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G 씨: 우리는 다 암묵적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애를 낳지 않았다.
J 씨: 아이 밴 자와 젖 먹이는 자에게 화있을 진저라는 말씀으로 그렇게 가르쳤다. 우리는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다.
사회자: 6개월 다니다가 나온 자매는 오히려 여기서 이단단체 교리를 배우게 되겠다(다들 웃음). 정말 절대적 순종이다. 사생활의 영역까지도 단체에서 하라는 대로 했으니···.

C 씨: 수업 시간표를 지도자에게 그대로 갔다 줬다. 그러면 그 사람이 너는 이 시간에 공강하고 어디로 투입돼야 한다고 지도했다. 그러면 그대로 수업 듣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투입장소로 뛰어다니면서 이동했다. 원래 내 꿈은 대학강단에서 교수를 하는 것이었다. 교직이수, 어학연수 등을 하려고 하다가 이단단체에 들어가서 모든 꿈을 접었다. 무슨 소용이냐? 소용없다는 것이다. 어학연수를 하고 교직을 이수하려면 그 시간에 전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학연수도 필요없었다. 모든 세계인이 교주이자 이 시대의 구원자가 있는 한국으로 와서 한국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었다(다들 폭소 터뜨림).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하고 얼토당토않은 것을 믿었다. 군복무를 카투사에서 했다.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는데도 열심히 안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취업도 생각하지 않았다. 4학년 마지막 학기를 휴학을 하고 전도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모든 꿈을 접었다.

"밤에는 요부가 되라"

J 씨 : 부부싸움을 하다 맞아서 얼굴에 멍이 든 적이 있었다. 단체에 가자 사람들이 너무너무 슬퍼해줬다. 근데 우리 교주가 ‘맞기만 하지 말고 너도 때려라’는 메시지를 줬다. 그래서 마음이 평안해졌다. ‘나도 써먹어봐야지’라고 생각하던 차에 정말 기회가 왔다. 싸우게 됐다. 주먹으로 정말 남편의 얼굴을 쳤다. 내가 화나서 맞받아 쳤다기 보다는 교주의 말씀에 의지해서 때린 것이다. 그러자 남편이 너무 어이없어 했다. 큰 상처를 받았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다.

이외에도 순종한 것 중에 1998년도에 성전건축 절기가 있었다. 성전건축할 때 하나님의 메시지가 왔는데 전재산을 적어서 낸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이다고 했다. 결단하라고 해서 전 재산을 적은 적이 있다. 집 보증금, 가게 보증금 등을 적어서 냈다. 그러자 한 달 안에 갚으라고 했다. 작정을 한 것이니 갚아야 할 물질이 되는 것이다. 그게 최고의 순종이었다.

그런데 그 돈을 제대로 갚을 방법이 생기지 않았다. 보증금을 뺄 수가 없었다. 날마다 울면서 단체에 출석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교주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고 말했다. ‘분할로 갚으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래도 복 받을 것이다고 말했다.

C 씨: 무이자 할부로 갚아도 된다는 거군?(다들 웃음).

J 씨: 그런데 그 말을 듣고 하나님이 일구이언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전재산 바칠 길을 열어 주시길 바랐는데 분할로 내라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K 씨: 그곳에 있을 때는 왜 이렇게 돈을 강요하나라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 세무 증명서를 띄워 보내 준다든가, 남편의 월급 명세서를 갖다 주기도 했다. 정확하게 바칠 것을 요구한다.

J 씨: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다투니까 이런 명령을 내린 적도 있다. 밤에는 ‘요부가 되라.’ 밤에는 남편이 원하는 대로 해 주라는 거다. 부인이 이단에 빠지면 불안해진 남편은 밤에라도 이 여자가 자기의 여자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단에 뺏긴 여자라는 허탈감에 빠지지 않도록 밤에 ‘요부’가 돼서 성욕을 채워주라는 것이다. 내 남편도 그런 얘기를 했다. 성관계를 통해 ‘아 아직 내 여자구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이다. 만족스런 성관계를 통해 남편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다.

K 씨: 나에게서 최고의 순종은 아이는 뒷전으로 두고 포교활동에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가 나중에는 아이가 걸림돌이었고 심지어 아이를 낳질 말 걸이라는 후회까지 했다. 아기 엄마로서의 최고의 순종은 아기보다 단체에 올인했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스케줄이 있다.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젖을 먹고 몇 시에 변을 봐야 하는지에 대한 스케줄이다.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포교활동에 나서게 됐다. 우리 단체는 이런 신혼부부들도 많았다.

포교할 때는 문밖에 쓰레기 봉투부터 잘 살펴봤다. 신생아의 기저귀가 있으면 신생아를 낳은 아기 엄마를 잘 다루는 사람이 포교를 하러 들어갔다. 쓰레기 봉투의 기저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맞춤 전도를 했던 것이다. 거기에 맞는 사람을 들여 보낸다. 치밀하게 접근한다. 기저귀는 물론 자전거의 크기를 보면서 어떤 연령대의 사람이 사는지 짐작을 하고 들어가며 말씀을 준비했다. 그것을 아니까 내가 이단종교에서 빠져 나온 지금은 집밖으로 자전거를 내 놓기도 무섭다.

나도 사실 TV에서 이단단체가 다뤄지면 ‘어떻게 저런 이단에 멍청하게 빠지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어머 저거 이단이네,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믿을까?’ 뉴스에 나오면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막상 들어가니 문제점이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극소수만이 들어가는 좁은 구원의 문으로 내가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머리에 뿔이 달린 마귀로 보였다. 다 사탄이고 악마였다. 지옥갈 사람이었고.

M 씨: 단상에서 집회를 진행할 때 이상한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의자에는 교주의 사진을 올려 놓고 의자에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유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처럼 음식을 차려 놓고 집회를 진행했다. 의자에 교주 사진을 놓고 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집회를 한다. 그 의자를 건드리거나 만지면 혼났다. 그 의자가 교주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의자의 쿠션도 좋은 것을 썼다. 대학을 순회하는 사람들이 올 때도 늘 의자와 먹을 것까지 갔다 뒀다.

사회자: 먹을 것?

M 씨: 그렇다. 먹을 것을 접시에 담아 의자 옆에 갖다 둔다. 교주가 영으로서 임해 그것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너무 깜짝 놀랐다. 학생이라 돈이 별로 없으니 김밥과 과자를 사 놓고 키위나 이런 과일도 갖다 놓았다. 교주가 학교에 직접 다닐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럴 수가 없게 되자 가는 집회소마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듯이 그렇게 준비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락없는 제사방식인데 그 때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정말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J 씨: 네 믿음이 크도다!(다들 폭소를 터뜨림).
M 씨: 집회소마다 모두 이러한 의자가 있었고 교주의 사진을 비치해 뒀다. 의자도 똑같고 교주의 사진도 똑같았고 그가 쓴 필체도 똑같았다.

M 씨: 우리 단체를 출석하면서 집을 가출하고 부모 말을 듣지 않자 물고문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 이 여자가 자신이 받은 핍박을 교주에게 얘기했더니 핍박이 오래 갈 것이다며 언젠가는 때가 올 것이니 참고 꿋꿋이 견디라고 말한 적도 있다.
<계속>

'이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특별좌담(중) [이후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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