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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영 목사 "생사여탈권 주장은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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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영 목사 "생사여탈권 주장은 실수"
  • 정윤석
  • 승인 2005.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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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기자 만나 '불신자 사후 영 귀신설' 등 해명

한만영 목사가 비로소 8월 17일 서울순복음교회(구, 서울부활의교회) 당회장실에서 기자를 만나 <교회와신앙>의 보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교회와신앙>은 “'천국 못간 영혼 기도했더니 승천'- 한만영 목사, '내게 생사여탈권 있다' 주장", "신도 회개 안하면 자손에 저주 대물림" 이란 제목으로 7월28일, 8월8일 두 차례에 걸쳐 한만영 목사의 주장이 담고 있는 문제점을 보도한 바 있다. 많은 고민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는 한 목사는 생사여탈권, 가계저주론, 불신자 사후영 귀신설 등에 대해 2시간에 걸쳐 상세하게 해명했다.

"착각에서 비롯된 잘못된 발언" 시인

성도들의 생명을 주고 빼앗을 수 있다는 취지의 생사여탈권 문제에 대해 한 목사는 분명히 자신이 잘못된 주장을 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한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그레이스 아카데미의 31기 테이프에서 “하나님이 내게 생사여탈권을 주셨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한 목사는 인터뷰에서 “생명을 주고 빼앗고는 오직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이라며 “당시 생사여탈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당시 남·북한 간의 정세가 불안하고 많은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을 때였다. 교인들 30여 명과 함께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전쟁을 통해 많은 사람이 죽을 바에는 차라리 김일성을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적이 있다. 그런 기도를 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김일성이 죽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한 것인데 이것을 신앙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 ‘내게 생사여탈권이 있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생사여탈권 발언배경에 대해 설명하며 한 목사는 그 후에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레이스아카데미를 하는 장소에서 이를 시인하고 문제 발언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기자가 그 취소발언을 입증할 만한 테이프가 있는지 질문하자 한 목사는 일일이 녹음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아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한 목사는 그 일이 있은 후 생사여탈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전혀 없음을 강조했다.

"공식적으로 해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생사여탈권 주장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 목사는 “그레이스 아카데미는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의미가 있는 자리”라며 “설교시간에 말씀으로 선포한 것도 아니고 지나가면서 스스럼없이 체험한 것들을 한마디 한 것”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해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생사여탈권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 ‘주보 내용’에 대해서도 한 목사는 빼놓지 않고 해명했다. 즉 모 장로가 사망한 후 짙은 안개 속에 있는 환상을 한 목사가 봤는데 자신이 기도하니 천국으로 갔다는 2005년 5월22일자 주보 내용을 두고 설명한 것이다. 한 목사는 이에 대해 “성경에 입각한 체험일 뿐 생사여탈권과는 관련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는 “만일 ㅇ장로가 지옥에 있는 것을 내가 기도해서 천국으로 보냈다고 한다면 생사여탈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단지 안개 속에 있는 ㅇ장로를 위해 기도했더니 천국으로 가더라는 환상이었다”며 “다니엘 10장13절 말씀에 천사가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지고 왔으나 마귀에 의해 방해 받아 21일만에 도착한 이야기가 나온 바가 있다”며 영들의 왕래에 마귀의 훼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저주론' 발언도 "회개 강조한 것" 항변

‘예수를 믿는 신도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이 받을 저주가 대를 이어서 내려가고 자손에게는 더 크게 내려간다’는 ‘가계저주론’ 발언에 대해 한 목사는 “회개를 강조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예수를 믿었다고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자신의 죄에 대해 내버려두고 그냥 넘어갈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갖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인간이기에 죄인 줄도 몰라서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에 대한 저주를 자손들이 받게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목사는 “저주에도 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구분을 지어 설명했다. 그는 “‘하는 일이 형통하지 못한 것’, ‘마음의 평화가 없고 불안한 것’, ‘불신자의 심정으로 사는 것’ 등을 넓은 의미에서 저주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저주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다’는 김기동 씨의 귀신론과 관련하여 한 목사는 “그것은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목사는 “성경 3만절 중에 귀신론을 명백히 보여주는 구절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며 “한국교회가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귀신=타락한 천사설’조차 성경에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귀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떤 것도 옳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란 뜻이다.

"김기동 씨 귀신론은 비성경적인 것"

“김기동 목사의 교회를 나온 후 20여 년 동안 그를 만난 적도 없고 대화를 한 적도 없는데 사람들이 나를 ‘김기동 씨의 아류네’, ‘이단이네’ 하는 것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분명히 나는 소위 귀신파에서 주장하는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다’는 주장에 대해 ‘성경에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설령 내 경험상 귀신을 많이 쫓아냈다 하더라도 성경에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경험을 옳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귀신론과 관련, “나, 개인적으로는, 한만영 개인적으로는 불신자의 사후 영이 귀신이라고 생각한다”(1998년 영들의 세계 11번 테이프 <귀신>)고 분명히 말한 것에 대해 한 목사는 “설령 경험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도 성경으로 뒷받침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이론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외에도“태풍이 오다가 내 말 한 마디에 물러갔다”는 주장에 대해서 한 목사는 “예수님도 ‘바람아 잠잠하라’고 무생물을 인격화해서 명령하셨는데 태풍을 인격화해서 물리쳐지는 환상을 보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환상과 실제는 다른 것이고 환상을 보고 말하는 것은 여담으로 한 것이기에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와 목사는 삼위일체다’라고 한 말에 대해 그는 “영어 공부를 할 때 ‘읽기, 쓰기, 말하기를 삼위일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며 “뜻하고자 하는 바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지 신학적으로 삼위일체를 혼동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목사를 욕하고 모함하는 것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다'라고 한 주장에 대해서는 “성령충만한 사람이 목사를 욕하고 교회 욕하는 것을 봤느냐”고 반문하며 “교회를 욕하고 목사를 모함하면 하나님께 불만이 있다는 표시라는 것을 좀 심하게 표현하다 보니 그렇게 말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 목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와는 별도로 <교회와신앙>의 보도에 대한 해명서를 작성해서 보내왔다. 이 해명서는 8월 3일에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가계저주론', '귀신론' 등(8월 8일자 보도)에 대해서는 제외하고, 주로 '생사여탈권'(7월 28일자 보도)에 대해 해명했다. 다음은 한만영 목사의 해명서 전문이다.

<교회와신앙>이 제기한 문제점에 대한 해명

2005. 8. 3

1. ‘생사 여탈권’에 대하여
한 마디로 인간에게는 생사여탈권이 없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김일성을 놓고 기도했을 때 1개월도 못되어 죽은 것을 보고 초대교회 때 베드로와 바울이 행했던 그 능력을 우리에게도 주신 것이 아닌가 하여 착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곧 그것은 저의 큰 실수였음을 깨닫고 그 말을 취소했으며 그 후로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습니다.

문제의 Tape은 1994년에 녹음된 것으로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지금의 나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전 13:11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2. 환상과 계시에 대하여
저의 환상을 통한 신유사역은 1992년 여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축사를 통한 신유사역을 해 왔지만 이것이 교계에 문제가 많고 이단정죄까지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ㅇㅇㅇ목사처럼 영안을 열어 주시고 이것을 통해 신유의 은사를 주소서’하고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교인들을 위한 여름 수양회를 위한 준비기도 중에 주님은 왕하2:10 ‘네가 어려운 것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리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영안이 열리고 그것이 신유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 환상을 통하여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 사적(私的)으로 또는 제자들에게 저의 체험을 어쩌다 한 번씩 간증삼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슨 지식적으로 체계화한다든지, 가르친다든지, 설교를 한다든지 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 나를 옭아매는 덫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사도바울도 이러한 신비체험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가 ‘14년 전에 셋째하늘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래서 그 신비체험을 자랑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가져올 영향을 생각해서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말’을 하면 반드시 그로 말미암은 심각한 후유증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런 환상과 계시를 통한 사역을 1~2년 하면서 이 사역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① 환상과 실상을 혼돈함으로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환상 속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서 남에게 말을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아무 변화가 안 일어날 때 그 사람은 불가불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허풍을 떠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환상이 실상이 되려면 상당한 믿음과 기도와 인내가 필요하지요. 그래서 히 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② 같은 사람이나 사건을 놓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나쁜 상태로 보이고 좋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상태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순수한 객관성을 띄기가 어렵습니다.

③ 자기가 본 환상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④ 더욱이 평신도가 이런 사역을 할 때 영적교만이 생기기 쉽고 성도들에게 덕을 끼치지 못할 뿐 아니라 성도 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저 자신만 해도 초기의 사역에서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음으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저는 그 후로 이러한 사역을 버렸습니다. 또 직통계시 운운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임을 말씀드립니다. 그것들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일과 목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유를 위한 기도 중에 가끔 보이는 것은 예외로 치고 그 밖에는 나는 물론이요 성도들도 절제시켜 왔습니다.

3. 모 인사의 죽음에 대하여
모 인사와 저는 70년대 초에 회현동에 있는 성도교회(합동)에서 함께 집사로 섬겼습니다. 저는 당시 성가대 지휘자였기에 맨 앞좌석에 앉는데 그는 언제나 저의 바로 뒷자리에 앉기에 피차에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는 가끔 자기 연구소(당시의 명칭은 기억나지 않음)에 놀러 오라고 청했지만 당시의 저는 보잘것없는 엉터리 신앙이었기에 종교문제니 이단문제니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의 청을 묵살했었습니다.

어느 해(73~74?) 여름에 성가대 수양회를 동해안으로 갔는데 김 모 목사와 모 인사가 함께 따라왔습니다. 저녁 식사 후 성가대원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들려주겠다며 한방에 모은 후 모 인사가 녹음기를 틀었습니다. 그것은 귀신이 곡하며 떠들어 대는 소리와 함께 목이 잔뜩 쉰 사람이 물으면 귀신이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참 문답이 끝난 후 “나가라!” 명하니 꽥 소리가 나고 잠잠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 속에 들어와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으면 귀신들은 “병을 주었다”, “가정을 풍비박산 나게 했다”, “사업을 망하게 했다” 등 온갖 소리를 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너무 무서워 잠을 못 잤습니다. 그 귀신 쫓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니 자기 연구소에 오면 가르쳐 주고 여러 가지 재미있는 다른 자료들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뿐이지 좀 지나니 다 잊어버리고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랜 후(그 이듬해였던가?) 예배 끝난 후 인사하면서 한 번 놀러 오라는 말을 듣고 귀신소리가 생각나 며칠 후 충무로 5가(?)에 있는 그의 연구소를 찾아 갔습니다. 그는 저를 반기며 여러 가지 이단들에 관한 자료들을 보여 주면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기동 목사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저는 김 목사라는 사람이 계룡산에서 도 닦고 나온 허연 수염달린 그런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모 인사는 김기동 목사를 잘 아는데 굉장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제가 성령으로 거듭난 후 김기동 목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80년대 말경에 김기동 목사가 이단으로 정죄되면서 모 인사가 발행하는 월간잡지의 이단 명단에 내 이름도 올라갔습니다. 당시 나는 평신도였고 모 인사의 소개로 김기동 목사를 알게 되었는데 그런 그가 나를 정죄하니 참으로 당혹스럽고 억울했으나 평신도인 저는 변명할 적절한 방법을 몰랐기에 말 한마디 해 보지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습니다.

모 인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습니다. 얼마 후 기도 중에 뜻밖에도 그의 모습이 환상 중에 보였습니다. 그 때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한 것도 아니었는데 뜻밖에 그가 안개에 싸여 앉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저분은 믿음 있는 목사가 아닌가? 지금쯤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면류관 쓰고 있을 사람이 왜 이런 모습으로 내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저의 구원 문제는 어찌되는 것인가? 매우 착잡한 심정으로 가까운 몇 사람에게 제가 본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를 참소하는 이들이 제가 “지옥에 있는 모 인사의 영혼을 불러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꾸민 이야기이거나 전달자들이 잘못 전한 것입니다. 그것도 사담 중에 한 말입니다. 저는 분명히 “안개 속에 있는 모 인사를 보았다”했습니다. 그곳이 음부인지 지옥인지 세상인지 낙원인지는 당시의 저의 영적 실력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이 문제가 풀리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우리교회 박 모 장로가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장례절차에 대해 여러 가지 잡음이 들렸습니다. 성도의 장례식은 교회가 맡아서 행하면 아무 흠 없이 깨끗하게 치루어지는 것이 상례지요. 약간의 걱정이 되어서 한 1주일 후 그 유족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박장로가 안개 속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왜 천국 안 가고 여기 있느냐고 물으니 “나도 몰라요. 꼭 가야겠는데 이 안개 때문에 갈 수가 없어요”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안개를 치워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더니 안개가 차츰 걷히고 천사들이 내려와 그를 도와 승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도 이상한 체험이라 얼마 후에 “이것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하겠습니까?” 기도하니 단 10:13 말씀을 주셨습니다. 천사가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지고 왔으나 마귀에게 방해받아 21일만에 도착한 이야기입니다. 영들의 왕래에도 마귀의 훼방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의 죽음 앞에서는 울거나 곡하지 말고, 찬송과 기도를 많이 하고 예배를 자주 드리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 인사나 박 장로를 ‘안개 속에 있었다’했는데 참소자들은 이것을 ‘음부’또는 ‘지옥’으로 말을 바꾸어 저를 음해했습니다. 심지어는 음부에 있는 박 장로를 자기의 힘으로 천국가게 했다고까지 극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신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의 경험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지 오랫동안 성도를 붙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라 확신합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 천국에 바로가고 어떤 이는 안개 속에 잠시 막혔다가 가는지 저는 모릅니다.

4. 김일성의 죽음에 대하여
1994년 6월이 되면서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난 기사들입니다. 지금은 하도 많이 들은 말이라 시큰둥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매우 충격적인 보도들이었습니다.

1994.6.3 미, 북 제재 초안 금명간 매듭 / 안보리, 주말께 경제 제재 논의
/ 북 “연료봉 교체 중단 못 한다”/ 주 태국대사, IAEA가 빠르면 3일쯤 북한 핵 연료봉의 추후 계측이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UN에 제출할 것으로 본다.
6.7 실크웜 미사일 실험 / 북 “통상훈련”주장. 북한은 최근 동해상에서 대함 실크웜 미사일을 실험 발사했음을 6일 확인. 북, “제재는 전쟁, 자비 없다.”/ 조평통 경고 성명-조평통은 성명을 발표 “북한에 대한 제재는 전쟁이며 전쟁에는 자비가 없다”고 경고했다.
6.14 북 IAEA 전격 탈퇴 파장 / 파국이냐 대화냐 최대 고비 드디어 북한이 13일 밤 IAEA를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6.17 박사급 전문가 72% “전쟁위기”/ 서울 리서치 여론 조사
6.18 주한미군 3단계 증강 건의 / 페리, 스텔스기 배치, 항모 증파 등

당시 항간에는 6.25 때 무슨 중대한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그 무렵 우리 교회에는 여러 개의 중보기도 팀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특별히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의 생각으로는 김일성만 죽으면 전쟁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요 잘되면 남북통일도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저 한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 날 6월 17일(금) 오후 연합 기도 모임에 약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통성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지금 우리나라가 김일성의 핵 놀이 때문에 심각한 위기에 처했으니 구국기도에 힘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기도 중 문득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죽음에 내어 준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바울도 알렉산더와 후메네오를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

그렇다면 그 권능은 오직 두 사도에게만 주신 것인가 아니면 나도 그 능력을 행할 수 있을 것인가?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습니다.

통성기도 후 우리는 모두 모여 앉았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기도를 들으신 주님, 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으사 응답하여 주소서”하고 기도한 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 핵무기를 만들어 우리 민족의 씨를 말리려고 하는 자여 지옥으로 떨어질찌어다!” 모든 참가자들도 함께 “떨어질찌어다!”고 외쳤습니다.

7월 10일자 조선일보.
김일성 사망 / 49년간 1인 독재 사라지다 / 김정일 승계 시사 /
북한 보도 “7월 8일 오전 2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신에게 알린다”고 발표.

우리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는 말씀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북한 방송들은 김일성의 사망 원인을 “심장 혈관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 오다가 겹쌓이는 과로로 하여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 쇼크가 합병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세상은 82세의 늙은이가 격무를 견디지 못해 죽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 하나님이 섭리와 우리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그 후 몇몇 성도들이 모여 김정일도 그렇게 되기 위해 기도했으나 그날 밤 주님은 “너는 나의 섭리를 거스르지 마라”하시기로 그 기도를 취소했습니다. 주님의 동의 없이는 그가 아무리 우리 민족이나 기독교를 해치는 자라 할지라도 그런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런 기도를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순복음교회 한만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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