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18 12:38 (목)
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성경론
상태바
기독교 2천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성경론
  • 교회와신앙
  • 승인 1994.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영 목사(장로회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 새문안교회 담임)

한국교회의 이단문제는 그 심각성이 이미 공지된 사실이다. 그러나 심각성에 비해 대처와 처방이 미흡하고 적절하지 못했다. 이단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다각적인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 또한 대처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이단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는 교리적인 문제의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올바른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이단 사상에 대한 현실 인식을 위해서는 과거에 어떤 교리에, 어떤 이단들이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본지는 이단이 발생할 수 있는 전 교리를 고찰, 오늘날의 이단 사상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제시하고자 '기독교 2처년 교리 속에 나타난 이단 사상'을 기획했다.
필자마다의 다소간의 학문적 차이점이 있고, 전문적인 용어 때문에 독자들에게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도 집중해서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이다. <편집자 주>

 

계시와 신앙
신약성경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알려 주시는 계시를 통해서만 우리는 그를 알 수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신앙은 이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이 계시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이 계시로부터 나오지 않는 종교는 거짓 종교일 수밖에 없다.

계시와 말씀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와 그 다스림을 통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계심을 틀림없다. 구약성경 시편 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고 말하며, 사도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고 말한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에 관한 자연의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르고 분명하게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인간이 자연의 증거를 통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신적 존재가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나 신에 관한 흐릿하고 부정확한 지식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들에게 말씀을 통하여 직접적이고 보다 분명하게 자신을 알리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고 말씀 안에 거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일 수 없다.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말씀을 통하여 직접적이고 보다 분명하게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말씀 자체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가르치고 능력을 베푸시며 영원한 언약을 주심으로써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분명하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계시성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니라"(히1:2-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2:9).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상치하는 모든 자칭 계시는 거짓된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고 그와 함께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일 수 없다.

계시와 성령
하나님께서는 자연과 말씀, 특히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완벽하게 계시하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인간들이 이제는 누구나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의 눈이 멀어 있는 인간들은 스스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눈이 먼 사람에게는 촛불 하나의 밝기 아래에서나 전기불의 밝기 아래에서나 보지 못하는 형편에는 아무 차이가 없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아무리 눈부시게 비추었어도 영의 눈이 어두웠던 유대인들은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연과 말씀을 통해 외적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알리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내적으로 우리의 영의 눈을 밝히 뜨게 해 주셔야만 한다.

성령의 내적 조명이라고도 부르는 이 성령의 역사가 하나님의 계시에 있어서 결정적인 요소임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써 잘 증거하고 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고전 2:9~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임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계시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계시된 진리들이 어리석고 온전치 못한 인간의 실수나 게으름에 의해 손상되거나 변질됨이 없이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온전하게 전해지고 알려지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그들이 듣고 받은 계시의 말씀들을 기록하게 하셨다. 또한 그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서 그 기록된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 내려오게 하셨다. 그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진리의 기록이다. 따라서 성경은 계시의 진위를 분별하는 기준이다.

영원불변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실 뿐, 시시때때로 변하는 새 말씀, 다른 말씀을 주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받았다고 하는 계시는 반드시 성경의 증거와 일치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 계시로서 인정될 수 있다. 성경을 무시하거나 성경의 증거와 다른 모든 자칭 계시는 거짓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종교개혁자 깔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성령은... 일종의 검토를 받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 대하여 자신의 위엄을 확립하고자 하시는 검토인 것이다....  사탄의 영이 성령의 이름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성령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형상대로 인식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그는 변하실 수도, 자신과 다를 수도 없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분명히 그는 성경 안에서 일단 자신을 나타내 보이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하실 것이다"(기독교 강요 1권 9장 2절).

이처럼 소위 성령의 직통 계시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성경에서 보여주신 자신의 진리와 아주 굳게 결속하여"(기독교강요 1권 9장 3절)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과 상이한 것을 성령의 직통 계시를 내세워 주장하는 일들은 사탄의 역사이기 때문에 경계해야 한다. 참된 성령의 역사는 말씀에 의해 확인 될 수 있음을 깔뱅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일종의 상호 결속관계를 통하여 말씀의 확실성과 성령의 확실성을 결합... 그 말씀을 따라 그를 인식할 때에 우리는 속는다는 두려움 없이 성령을 마음에 모실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이것은 사실이다"(기독교 강요 1권 9장 3절).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과 자신의 뜻에 관해 알리고자 하신 바를 온전히 계시하신 것이요 그 이상의 새로운 추가된 계시는 없는 것이다. 성령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계시된 것들을 우리가 실제로 파악하고 알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역사를 말한다.

성령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이시며(요14:26),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진리의 영이시고(요15:26), 자의로 말하지 않고(요16:13)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리시는 분으로(요 16:14)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성경의 신언성(神言性)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은 앞에서 이미 설명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의 모든 문장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직접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왔다는 뜻은 아니다. 성경에는 사람들이 한 말도 많고, 더러는 악한 사람들의 말과 심지어는 사탄이 한 말까지도 들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말들도 우리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적 목적에 사용된 것들이고, 그 글들을 쓴 모든 기자들을 성령께서 감동시키셨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전무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며 50% 정도라든가 80%정도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전체가 다 사람들의 손에 의해 기록된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냐는 반문도 통찰력이 없는 질문이다. 왜냐하면 비록 쓰기는 사람이 썼어도 쓰라고 명하신 이가 하나님이시고(출34:27~28, 롬 16:26), 그 내용이 기자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며(벧후 1:21), 앞서 이미 언급한 대로 성령의 감동에 따라 쓴 것이므로(딤후3:16, 벧후1:21) 성경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완전성
계시는 어떤 궁극적 목적을 지닌 하나님의 행위이며, 성경은 그 기록이라 할 때에 우리는 성경의 완전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의 완전성이라는 말  속에서 먼저 무오성을 생각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당연히 무오한 것이어야 한다. 물론 성경은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므로 거기에는 기자들의 경험이나 지식, 사고와 언어의 한계나 불완전성이 드러난다고 보아야 하며, 특히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본 성경에는 오래되고 반복된 필산 과정에서 인간적 착오나 실수가 담겨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이란 바로 불완전한 인간의 유한한 지식과 경험과 사고와 언어를 사용하시면서도 그 인간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전달하시려는 진리가 변질되거나 왜곡됨이 없도록 역사하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의도하신 모든 것에 있어서 무오하다고 보아야 한다.

성경의 완전성이란 말이 의미하는 또 다른 것은 그 내용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하고 우리가 알아서 유익한 것으로서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지식과 인간의 온갖 호기심을 다 만족시켜 줄 답변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완전성은 성경기록의 목적에 따라서 고찰되어야 한다. 요한복음의 기자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은 "성령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니라"(딤후 3;15~17)고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성경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르침에 있어서 더 보탤 것 없이 완전하며, 성경에 기록된 것으로 알아서 유익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이 완전한 것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관하여 침묵하거나 혹은 간략하게 언급하고 그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은 우리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간단히 말씀하신 것은 그 정도만 아는 것이 우리에게 오히려 유익할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계를 넘어서서 더 알려지고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이다.  부분의 이단들이 성경이 침묵하거나 짧게 언급한 부분에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책임하게 근거 없이 주장하는 데서 출발하는 사실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성경의 도구성
앞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됨과 그 완정성을 언급했거니와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성경을 펼쳐 읽기만 하면 저절로 그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완전히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계시와 성령의 관계를 말하면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성경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을 우리가 실제로 듣고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은 성경 자체가 아니라 성령이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성경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의 영원하신 뜻을 알게 하시는 데 외적으로 사용하시는 도구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바르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의존하여야 한다. 성경의 진정한 저자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교사가 되어 주시는 것보다 더 확실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기자들을 감동시키셨던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하시고 그 말씀들의 참 뜻을 깨닫게 하시지 않는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별 쓸모가 없는 한 권의 책에 불과할 것이다.

성경의 규범성
성경이 무오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진리를 위한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학적, 윤리적 사고와 언명 그리고 모든 종교적 체험이나 행동은 성경이라는 규범에 의해 그 진리성과 당위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1994년 1월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