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복협, 회장 김명혁 목사)가 5월 13일 서울 강변교회에서 100여 명의 회원 목회자들이 모인 가운데 지난 4월에 이어 “제가 잘못했습니다”란 주제로 두 번째 조찬기도회와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회개기도와 회개발표를 담당한 진행자들은 공개적으로 회개하는 데 대해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시종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과오를 구체적으로 털어놓았다.
기도를 진행한 이중표 목사(한신교회)는 “한국교회의 세속화와 분열의 아픔이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기도했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 화합하는 모습보다는 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남을 시기하고 질투한 적이 많았다”며 “지체간의 분열과 상처를 입힌 죄를 용서해 주소서”라고 기도했다.
손봉호 장로(한영교회, 동덕여대 총장)는 △주님 이름으로 출세했지만 감사치 못했고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았고 △거짓과 정욕으로 가득하면서도 겉으로 거룩한 척했고 △내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티끌을 비판했고 △가난한 자 편에서 고난을 받기보다 편한 생활에 안주했고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를 보는 비겁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기도 후에는 주선애 교수(장신대 교수 역임)와 홍순우 목사(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 총회장)가 한국교회 세속화에 대해, 이종성 목사(예장 통합 총회 전 총회장, 한국기독교학술원장)와 이성택 목사(예장 합동총회 전 총회장, 한기총 대표회장 역임)가 한국교회의 분열에 대해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준곤 목사(CCC 전 대표)는 한복협의 회개기도회에 대해 “죄를 은폐하기 급급한 현대사회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내 잘못입니다’라고 고백하고 나선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며 “이러한 운동이 평신도들에게도 파급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복협은 지난 4월 8일에도 동일한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당시 한복협의 발표회에는 강원용 목사(경동교회 원로), 조용기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김창인 목사(충현교회 원로) 등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해 교계 안팎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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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세속화 제 잘못” 주선애 교수
목회자를 키우는 선지동산의 목자라는 의식보다는 교수라는 명예에 더 매력을 느끼고 그 지위를 유지하는 데 마음을 쏟았습니다. 학생들이 데모하면 스승답게 일러 줄 용기를 갖지 못했습니다. 게시판에 ‘주선애 교수 실력없다 나가라’는 글이 뜰까봐 벌벌 떨며 산 사람입니다. 주님이 회개의 영을 부어 주셔서 앞으로 더 진실하고 순수한 회개가 있도록 기도하면서 제 잘못을 고백합니다.”
“생각해 보니 난 양 도둑” 홍순우 목사
“1954년 춘천에 교회를 개척하며 1년 만에 100여 명이 모이는 부흥을 이뤘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과연 그 때의 부흥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대로 부흥한 것이냐 되묻게 됩니다. 사실 교회 다니며 불평불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교회로 많이 오게 했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책벌 받은 장로들을 저희 교회에서 해벌시키고 장로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사람들은 ‘목회성공’이라고 봤지만 사실 저는 양도둑놈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갖고 하나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면 눈이 캄캄해집니다. 대형교회가 되면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전도를 해서 부흥한 것이 아니라 2층 교회, 지하 전세교회들의 성도들을 끌어와 부흥시킨 잘못에 저도 동참한 사람임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1985년 기성총회의 부총회장 선거가 있었습니다. 당시 선거전은 ‘네가 떨어져야 내가 당선된다는 식’이었습니다. 돈 많이 내면 표를 주는 타락한 총회 선거운동의 세속화에 나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뉘우치며 참회합니다.”
“교회분열 막지 못해” 이종성 목사
제가 1957년 3월 영락교회 부목사로 한국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할 때 장로교회가 셋이요, 감리교와 침례교는 각각 하나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도 통계에 의하면 교파수가 135개요, 그 중 장로교회가 98개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신학교의 난립상태입니다. 정부가 허가하는 정식 신학대학교가 58개, 무인가신학교가 151개 정도입니다. 한국교계는 완전히 난맥상태에 있으며 소영웅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상태에 대해 책임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분열과 파벌주의가 전부 제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기간인 1960년부터 1985년 사이에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분열과 신학사조의 혼돈과 신학교육의 난맥과 신비주의의 창궐과 사회와 민족의 대립과 분열에 대해 아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신학교육의 책임자로 한국교호의 신학교육을 성서적이고 복음적인 신학교육으로 통일하지 못하고 내가 속한 장로교회 통합측의 목사양성에만 치중하다 보니 이렇게도 신학교육에 난맥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진심으로 나의 우매함과 무력함을 자인하면서 자의 잘못을 하나님 앞과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잘못을 고백하면서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며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런 잘못을 범치 않게 되길 먼저 기도합니다.
다윗이 자기 죄가 머리털보다 많다고 고백했는데 나 또한 그렇습니다.
저는 후배들에게 본이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옛사람의 속성이 마음 가운데 남아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데 마음을 두고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것은 외면했습니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사람이 욕심으로 후배들에 덕이 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계연합의 암초 중의 하나였음을 자백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외식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사람을 사랑하되 인색하지 않게 해 주소서 교회를 사랑하되 화합과 연합의 기수처럼 여생을 살다 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