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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신천지가 내 삶의 모든 것이었다"신천지 입교부터 탈퇴까지, 그들의 삶의 이야기
정윤석  |  unique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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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6  07: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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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지측의 전도특전대로 살았던 김효은 씨

김효은 씨(가명, 30세)는 열혈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다. 줌바 댄스를 추며 화려한 모습으로. 하지만 그녀에겐 다른 사람이 모를 격정의 시기가 있었다. 2014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사이비종교단체 신천지에 빠졌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그녀는 신천지 입장에서 볼 때 최적의 조건을 가진 포섭대상자, 즉 ‘열매’였다. 신천지 전도특공대에 포섭된 뒤 김 씨는 한 해 동안 온 생애를 압축하다시피 인생을 바쳐 살았다. 부모님께는 모든 걸 속이고 비밀에 부쳤다. 온갖 거짓말과 연기를 하며 신천지 포교를 위한 시간을 확보했고 직장도, 미래도 내팽개치고 신천지에 모든 걸 걸었다. 이미 5년 전의 일이지만 그녀는 마치 어제 일처럼 신천지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김 씨와의 대화 중 매우 중요한 정보들이 나왔다. 특히 신도들이 이만희 신격화외에 지파장과 전도특전대장, 센터 강사 등 중간 간부들에게도 충성 경쟁을 한다는 대목에선 이만희 교주 사후에 신천지의 극단적 내분을 예고하는 듯했다. 복음방에서 센터로 보내기 위해 ‘열매’들에게 신천지임을 커밍아웃할 때가 있다. 이때 일부 열매들은 소리소문없이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탄다. 그럴 때 이미 개인정보를 모두 파악한 신천지 신도들은 당번을 짜서 열매를 되찾기 위해 4~5시간이고 열매의 동선에서 기다리는, 거의 스토커 같은 행태를 했다고 한다. 결국 그런 끈질긴 설득 때문에 신천지임을 알고도 다시 돌이키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김 씨의 인생을 세차게 할퀴고 간 사이비 신천지에서의 경험담을 정리했다. 김효은 씨와의 인터뷰는 2019년 4월 3일 서울의 구로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다.

효은, 신천지 교인되다

- 신천지와 관련한 자신의 이력을 소개해 주세요.
2014년 1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교에서도 판소리를 전공했어요.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과 각종 단체에서 공연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을 무렵이었어요. 대학교 4년간 친하게 지냈던 동아리 친구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하다가 신천지에 빠지게 됐어요. 당시 친구는 이미 신천지 신도였고, 수료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전도 열매(신천지는 1명을 전도해야 수료를 할 수 있다. 수료 통과를 위해 전도대상으로 삼는 사람들을 ‘열매’라고 부른다)가 필요했던 상황이었어요.

저는 인문계고를 나온 후 예술대학을 진학했어요. 그러다보니 대학에서 인맥이 부족했지요. 적응하기도 힘들었어요. 선후배 관계에서 오는 상처도 있었구요. 부모님께서 뒷바라지를 해주셨는데 그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어요. 친구와 만나서 얘기를 하다보니 그 친구에게는 제가 열매로 적합해 보였던 거예요. 사람들에게 위로받기는 어려웠고, 어릴 때 어머니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교회를 다닐 뿐 신앙은 없었어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은 있었거든요. 신천지 입장에서 볼 때 거의 알곡 수준이었죠. 친구가 마음이 힘드니 상담을 받지 않겠느냐고 권유했어요.

상담심리를 하는 분이 계시다며 아는 언니를 소개해 준 거예요. 그런데 그 언니가 성경을 갖고 심리 상담을 해줬어요. 의심없이 성경을 공부하게 됐지요. 나중에 OO지파의 전도특전대원(특전대)이었던 거죠. 각 지파별로 특전대가 있는데 한 30~40명이 됐어요. 이들은 용산을 점령하자고 하면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전도만을 위해 일하는 팀이었어요. 정신교육, 세뇌교육이 아주 철저히 된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제가 있었던 지파는 청년들로만 만들어진 팀이었어요. 일반적으로는 초중고 6개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저는 한 달 만에 그룹 복음방에서 신천지화 돼서 센터로 옮겼어요.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 복음방 과정을 밟다가 신천지란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배신감이 느껴졌어요. 친구가 이미 신천지 공부를 했으면서도 자신도 처음 공부한다고 속여서 같이 들었거든요. ‘이 친구가 나를 속였구나’라는, 뒤통수 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거에 대한 배신감이 컸지만, 신천지임을 오픈하고 기도회 하는 모습을 봤는데 이만희 교주 사진을 놓고 기도했어요. 열매들을 놓고.

충격인 동시에 나를 위해 이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하며 노력하는구나란 묘한 감동도 있었어요. 신천지에 빠진 후 그들은 나를 위한 맞춤식 모략을 짜줬어요. 직장을 그만두고, 남자친구와도 헤어지도록 거짓말을 짜줬고 부모님께도 성대 결절이 와서 판소리를 못하는 상황이 왔다며, 눈물을 흘리며, 어떤 타이밍에 연기를 하라는, 얘기를 해줬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판소리 공연을 많이 했던 사람이기에 연기하는 것이 익숙하게 잘됐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신천지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짜 준대로 그대로 따라 거짓말과 연기를 했어요.

- 짧은 시기에 그런 생각이 들어갔네요.
분별력이 없을 때였어요. 짧은 시기였지만 그곳이 진리라는 생각에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 모략은 누가 짜줬나요?
특전대원들이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짜줬어요. 직장생활 및 각종 공연을 가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판소리를 잘 못하는 것처럼 연기도 했어요. 죄책감도 없지 않았어요. 그러나 신천지에 모든 걸 바쳐야 한다는 생각에 전도를 해야 하니까, 그렇게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후 모든 시간을 신천지에 올인하면서 살기 시작했어요. 제가 있던 곳은 복음방에서 신천지임을 이미 오픈하고 센터로 보내는 특수한 복음방이었어요. 저는 그곳에서 열매들이 오면, 그들의 인성이나 신앙심, 가정환경 등을 파악해서 보고하는 잎사귀 역할도 했어요. 그룹 복음방 프로그램 도구들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돌리고, 연세대학교 강의실, 학생회관을 그 학교에 다니는 신천지 신도 학생의 도움으로 빌려서 신천지 위장 행사를 했어요. ‘빛의 축제, 평화의 축제’ 등의 이름을 내걸고 무용과 노래, 악기연주, 말씀 뮤지컬도 하고 저의 재능인 판소리도 공연을 했었는데, 제가 있었던 곳은 특히 예술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 어떤 예술이요?
주로 뮤지컬 배우 지망생, 음악전공자, 댄서도 있었고, CCM, 힙합 등 실용음악 밴드그룹으로 활동 하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았네요?
네. 제가 있었던 특전대에서 특별하게 했던 것 중에 하나가 복음방에서 신천지를 오픈하는데, 그걸 오픈하는 날을 정했어요. 신천지임을 오픈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열매들만 추려서 ‘너네는 특별 교육을 받는 거다’며 환경 정리를 시켜 줬어요. 고3학생들에게도 엄마,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시켰죠. 부모님께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캠프에 참석할 수 있도록 모략을 짜주는 거죠. 그래서 이태원이나 용산에 있는 찜질방에 열매들을 데려다 놓고 휘황찬란한 신천지 수료 영상, 만국회의, 이만희 교주 동성서행 영상을 밤새도록 보여주며 세뇌교육을 시켰어요. 특전대장이 그걸 보여주면 잎사귀인 우리들은 바람잡이 역할을 했죠. ‘이곳이 진짜 천국이구나, 너무 좋다’ 이러면서요.

- 커밍아웃 타이밍에 신천지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있죠.

- 그 분위기에서 어떻게 거부를 하던가요?
그 상황에서는 못해요. 커밍아웃하는 걸 듣고는 집에 간 후 연락을 끊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리고는 카톡이 오는 거죠. ‘내가 알아봤더니, 거기 이단이라고 하더라.’ 이렇게 거부의사를 보내는 사람들은 신앙이 있거나 크리스천들인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말씀에 갈급하거나, 목사님이나 교회에서 상처 받은 친구들···.

- 반감이 있는 친구들이요.
그런 친구들은 잘 받아들였고, 교회를 잘 다니고, 목회자에 대한 신뢰감이 있던 친구는 ‘내가 목사님에게 물었더니 거기 이단이라고 하더라.’

- 입막음이 안 된 친구들이네요.
네. 맞아요. 연락이 두절되면 그냥 두는 게 아니예요. 저희는 그 아이들 집 앞으로 가서 기다렸어요. 집은 물론 아르바이트 하는 장소, 학교, 모든 정보가 파악이 됐으니까요. 지나가는 동선 파악하고 퇴근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랬어요.

- 몇 시간까지 기다려봤어요?
올 때까지!

- 대략
5시간, 6시간 기다릴 때도 있었구요. 버스 정류장에서 열매가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있었어요.

- 그 사람을 살린다는 마음으로요.
잎사귀 2, 3명이 같이 가서 교대로 돌아가며 감시하기도 했어요.

- 거절의사를 표시했다가 그렇게 해서 돌아온 사람도 있어요?
네 있어요. 그래서 다시 특전대 대장에게 가서 그런 친구들은 1:1로 교육받아요.

인생의 모든 것이었던 신천지

- 미혹됐을 당시 신천지는 효은 자매에게 무엇이었나요?
그냥 신천지는 제 삶이었어요.

   
▲신천지측 만국회의에 참석한 신도들

- 삶의 모든 것?
네. 제가 14만 4천 안에 들고, 나라와 제사장이 되기 위해 기를 쓰고 전도에 힘썼지요. 그것밖에는 안 보였던 거 같아요. 신천지의 특징을 보면, ‘이 시대의 구원자가 이만희이고, 신천지만이 진리이고, 정통교회와 세상은 모두 비진리이다’라고 가르치죠. 그래서 모든 매체를 보지 못하도록 차단 시켰어요. 비진리이니까, 보면 안된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해서 저는 인터넷도 보지 않았어요. 검색도 하지 않았고, TV도 안 봤어요. 더러 의심하는 친구들도 몇 명 있긴 했어요. 그런데 저는 무조건 신천지가 진리라는 걸 믿었기 때문에 전혀 그런 걸 보지 않았던 거 같아요.

신천지가 이 땅에 이뤄지고,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갈 수 있다는, 그 육체 영생 교리를 실제로 믿었어요. 그래서 뭔가, 제사장이 되면 신천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가족을 구원할 수 있다는···.

- 구원되는 사람은 직계가족까지죠?
아, 근데 제가 있었던 곳은 친척까지 흰무리로 데리고 올 수 있다고 했어요. 그래서 내가 뭔가, 영웅같은, 우리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희망을 갖고 있었죠.

- 가족들이 나중에 ‘고맙다’라고 할 때가 올 거라는.
맞아요. 신천지 배도하고 나가면 악령이 들어오니 절대로 배도하면 안 된다.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는 겁을 많이 줬지요. 기성교회를 진짜, 무지막지하게 비판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장로교가 세계 최고의 이단이다, 특히 이단상담소 가면 강제개종이라고 해서 부모가 개종목사에게 돈을 바쳐서 감금 폭행한다는 교육을 계속 받았어요. 그리고 이단상담소를 가면 도망쳐 나와야 한다고 했어요. 전도를 해서 실적을 쌓아야지만 생명책에 녹명될 수 있다는 걸 믿었기 때문에 전도를 위해서 모든 시간을 바쳤어요. 전도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면, 먹지도, 자지도 말라는 말로 정신 교육을 받았어요. 그게 이긴자 정신이고, 선생님(여기서 선생님은 이만희를 뜻함)도 라면 먹고 전도하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봉고차를 끌고 다니며, 검소한 생활을 하신다고 했고 그렇게 믿었어요. 그런데 동성서행 영상에서 외제차 끌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의아하긴 했지만요.

- 효은 자매는 실제로 밥을 못 먹고 다닌 적도 있어요?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하루에 진짜, 한 끼만 먹고 일할 정도로 바빴던 거 같아요. 어떤 날은 김밥 한 줄로 하루를 보내기도 했어요. 먹더라도 열매랑 같이 전도를 하기 위해서 먹을 때만 내 돈을 써서 먹는 거죠, 혼자서 돈을 내고 밥을 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고시텔 밥으로 한 끼를 때우기 급급했어요.

- 먹고 다시 전도하러 나가구요.
네네,

- 모든 게 올 스톱이었네요? 직장, 교우 관계 모두요.
다 단절이었죠. 그래서 사람을 만난다면 그 사람의 정보를 파악해서 신천지로 데려오는 것이었을 뿐이에요. 직장 동기, 국악 동기 만나는 모든 목적이 전도였어요.

- (그들을 만난 후) 보고도 했겠네요?
네. 물론이죠. 지시를 받고 복음방을 진행해야 할지의 여부를 파악해야 했으니까요. 친분 관계로 만났던 적은 없는 거 같아요. 14만 4천이 채워져서 나라와 제사장이 되면 순교한 영혼을 덧입고, 제가 예수님의 영이 함께하는 이만희와 12사도의 영이 함께하는 12지파장과 함께 육체 영생해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 것이라고 믿었어요.

- 신천지에서 천국은 이 땅이죠?
과천, 거기를 천국으로 믿었죠. 내가 14만 4천에 들면 내 가족, 내 친척이 흰무리로 올 수 있다고 믿었어요. 우스갯소리로 친구들끼리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라와 제사장이 되면 에버랜드 네 꺼, 인천공항 네 꺼, 그리고 어느 나라는 네 꺼, 이렇게 온 세계 사람들이 몰려 올테니까요.

   
▲ 신천지 포교를 위해 짠 프로그램

-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온다고 믿었죠?
그 돈들이 다 신천지 것이 되니까요. 그래서 뭔가, 그 돈들이 다 내 것이다는. 말도 안되는 걸 믿고, 얘기하고 했지요. 이런 것도 믿었어요. 예수님이 물위를 걷고 기적과 이적을 행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나라와 제사장이 되면 예수의 영이 함께하기 때문에 나도 순간 이동을 하고, 공간 이동을 해서 세계를 막 다니고, 그런 이적과 기적을 내가 실제로 행하는, 마치 내가 신이 된다는 느낌으로 살았어요. 특전대장도 그런 소망을 갖고 살고 저희에게도 영이 임하고 나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 저희는 리액션을 많이 해줬지요.

- 일년에 가장 전도 많이 한 사람은 몇 명이에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매달 복음방에서 오픈을 하면, 3개월 동안에 30명 정도가 목표였는데 실제로 매번 달성을 했어요. 구호도 “지파완성 1만2천, 남산을 정복하자! 30명 목표 달성! 할 수 있다 있다!” 그랬어요. 복음방에서 60명 정도가 오면 30명은 떨어지고 남은 30명은 센터로 갔어요.

- 굉장히 많이 올라갔네요?
한번 물면 놓지 않아요. 특전대원들이 특히 그랬어요.

- 특전대원들이 구성한 복음방과 일반 신천지 신도들이 구성한 복음방의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네 느낌이 달라요. 그래서 제가 나오고 나서 복음방에 있던 일반 다른 지파 멤버들과 대화를 하면 ‘어떻게 그렇게 했냐? 나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는 말을 들었어요. 특히 OO지파가 심했던 거 같아요.

- OO지파에서 만든 전도지를 봤는데 아이디어가 톡톡 튀더군요. 그들이 홍대로 많이 가죠?
홍대, 합정, 신촌, 충무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 혜화를 주로 갔죠. 복음방에서 오픈하기 전에 1박 2일로 MT를 가는 것이 포섭 도구 프로그램 중 하나 였어요. 강촌 OO리조트를 주로 이용했어요. 또 특전대끼리 따로 MT를 갔었는데 그곳에서 포교 도구를 개발했어요. 포교를 어떤 방식으로 할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연기 연습을 하는 장소였어요. 주로 1박 2일로 할 때가 많았어요.

- 그곳에서 놀지는 않아요?
놀기도 하는데, 프로그램은 정해져 있었어요. 말씀 듣고 조별 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담력훈련도 하면서 십자가의 무게를 체험해야 한다며 내 죄의 무게만큼의 돌을 찾아 들고 벌을 서기도 하고, 십자가에 묶어놓고 돌멩이나 종이를 뭉쳐서 십자가의 고난을 체험하기도 했어요. MVP도 뽑고 상을 준다든가. 그 상은 특전대장 만나서 1:1 정신교육을 받는 것이었어요. 식사를 하면서. 굉장히 자기가 뭔가 우월하고 엘리트인 것처럼 만드는 교육을 시킨 거예요. 고기도 먹고 놀기도 하지만 거의 정신 교육을 받았어요. 구호도 외쳤고요. 특전대장에 대한 우상화를 많이 시켰어요.

- 특전대장을요?
예를 들어, 이만희를 우상화해서 ‘선생님 최고입니다’ 하듯이 우리가 특전대장에게 그대로 배웠던 걸 답습하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신 대장님께 감사의 응원 메시지를 보내자고 하면서 항상 밥을 먹거나 활동을 하면 무조건 영상을 찍어서 단체 톡방에 보고하고 지금 뭐하고 있습니다, 교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걸 수시로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보고했어요.

- 지파장도 아니고 특전대장에게요.
네. OO중후반의 여성이었어요. 특전대장이 지파장을 좋아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 지파장이 유부남이었을 거 아니예요?
존경심인 거 같은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고단했던 신천지에서의 하루

제가 신천지에서 한 일은 직장생활을 다 그만두고 전도에만 전념한 것이예요.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세상일이 다 무슨 소용이냐고 했어요···

- 2~3년 남았다고 하던가요?
네, 2~3년 안에 지파가 완성되고, 나라가 이뤄진다고 하니까요. 오전에는 센터에서는 초·중·고등 수업을 들었어요. 아침수업은 9시부터 12시까지인데, 거의 오전 7시 30분 쯤 가서 기도하고 복습하고 예습했어요. 수업이 끝나자마자 특전대가 운영하는 복음방으로 옮겨요. 그곳은 충무로에 있었어요. 그곳에서 새벽 2~3시까지 잎사귀를 하며 교육을 받기도 하고 밤새는 일도 비일비재했어요. 초중고등까지 시험을 쳐야 단계별로 진급을 하니 늘 신천지 교리 공부를 해야 해서 거의 잘 시간이 없었어요.

- 센터 수료 시험 이외에 계속 시험을 봐요?
초등 끝나고 중등 끝나고 보고 그래요. 성경을 보는 게 아니라 계시록의 실상을 배운 후 실상 해석을 써 놓은 것을 필사하고 그리고 진바신이라고 해서 진짜 바로알자 신천지에서 말하는 이만희 총회장의 말씀이란 걸,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생명의 말씀처럼 여기고 필사하고 그런 것도 숙제로 냈기 때문에 숙제를 하고 외우고 했어요.

- 신천지에 있을 때 수면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군요.
너무 피곤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다 보니 한번 먹을 때 폭식하고 악순환이 계속됐어요. 서로 피곤해 하는데도 지파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냈어요. 또, 신천지에서는 모든 걸 말씀으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한다고 하잖아요. 위장 행사를 해야 하는데 돈을 자원하는 심정으로 내라고 하죠. 그때 보험을 깨서 1백만원을 헌금한 적도 있어요. 그 전에 모아 놓은 돈도 전도하면서 계속 썼구요. OOO에 살다가 OOO의 고시텔로 이사를 하는데 부모님께 말씀도 드리지 않고 보증금을 빼서 예비 특전대원들이 있는 곳에 가서 특전대원에 지원할 친구들과 같이 고시텔에서 생활했어요. 그곳에 살면서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고 경쟁하는 생활을 했어요.

- 그곳에서 신천지 신도들이 못 먹고 못자는 건 똑같았겠어요. 그럼 예민해지잖아요.
좀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에는 서로 아끼고 격려하다가 어느 순간, 일처리를 제대로 안하면 서로 다투고 그랬어요.

- 일반교회에 대한 시각은?
일단 목회자에 대해 비판하고, 상대할 가치도 없는 대상으로 생각했죠. 비유풀이를 할 때도 개, 돼지, 뱀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개, 돼지, 뱀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했죠. 상담소에 왔을 때에도 제가 교회에 붙어있는 달력에 진용식목사님 성함을 보면서 “여기 진뱀있는 곳이네.”라고 했다가 상담사님이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냐며 혼나기도 했었어요. 일반 교회는 진리가 없다, 세상 얘기만 한다, 성경은 답이 있는데, 말씀에 짝이 있고 예언과 성취가 있는데, 일반교회에선 그런 말을 안 해준다. 인학만 가르친다고 했죠. 목회자들의 설교를 짜깁기해서 이게 비진리이고 선악과라고 했어요.

센터 공부 과정 중에 가마를 교회로 해석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끓는 가마, 썩은 가마 이러거든요. 제 기억에는. 그래서 가마가 교회인데, 그 대형교회가 가마이다, 말씀이 없는 대형교회라서, 견학을 갔어요. 그걸 가마 탐방이라고 했어요.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갔어요. 어떤 친구는 삼일교회로 갔어요. 한 30명씩 따로따로 2~3명씩 짝지어서 들어갔어요. 주로 2층에서 한적한 자리에서 말씀을 들었지요. 일반교회 사람들은 열정도 없고 영혼도 없이 예배를 드린다는 비판을 하면서요.

- 눈에서 레이저빔 쏘면서요.
네, 설교도 세상 이야기만 하고 자기 아들, 딸 자랑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천지에 있을 때는 성경을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그렇게밖에 안 들렸어요. 그렇게 탐방 후 나와서 후기를 나눠요.

- 가마탐방한 교회는 어떤 곳이었어요?
여의도순복음교회, 삼일교회 등 큰 교회 많이 갔어요. 오륜교회, 온누리교회, 사랑의교회, 팀별로 나눠서 갔죠.

- 신천지에 빠진 후 가족, 결혼, 미래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요?
무조건 신천지가 우선이어서 제가 나라와 제사장이 될 때까지는 설령 가족이라도 말씀을 모르면, 악한 영이 들어가서 쓸 수 있다, 이런 교육을 받아서, 가족이 핍박하면 가족과의 연을 끊어서라도 신천지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전도해야 한다, 일해야 한다고 세뇌당했어요.

- 가족들이 언제든지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봤군요.
그래서 결혼 자체는 필요 없었어요.

- 나라와 제사장이 될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요?
다 끝나는데 결혼이 무슨 소용이냐, 그렇게 생각해서, 일단 그리고 그 안에서 연애를 절대로 금지 시켰어요. 그래도 연애를 하면 6개월 안에 결혼해야하고 신천지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들었어요. 학교, 직장, 세상적 명예와 부는 다 필요없다, 무조건 나라와 제사장이 먼저 돼야 한다, 내 시간과 생활을 신천지에 바쳐서 살아야 하고 그것이 이긴자 정신이다! 이만희 교주도 그렇게 했다고 배웠어요.

- 항일 독립투사들처럼요.
네 맞아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이해가 가요. 그리고 제가 재능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내 재능으로 이긴자와 신천지를 찬양하는 소망을 갖게 됐어요. 가장 큰 소망은 내가 수료식 무대에서 이만희 교주 앞에서 찬양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죠.

- 그때는 그것이 굉장히 영광스런 자리로 생각했던 거죠?
베드로지파가 굉장히 행사를 크게 했던 영상이 있거든요. 전라도 지역이라 국악으로 수료식을 많이 했어요. 한국무용, 판소리와 민요, 풍물패 등등. 그런 걸 보면서 나도 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저기서 쓰임 받으면 된다는 희망도 있었지요. 그래서 그 영상을 보면서 희망을 가졌어요. 그게 내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내 재능을 갖고 신천지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았어요.

   
▲ 일부 신천지 신도들은 특전대장을 대상으로도 충성경쟁을 했다고 한다.

- 신천지 중간 관리자들은 조직관리가 탁월하겠어요.
정말 청년들이 많았는데, 연대 출신인데 5개 국어를 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굉장히 재능 많은 인재들이 많았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 젊은이들의 미래가 불안하잖아요. 신천지는 틀렸지만 그 불안감을 없애주기 때문에 청년들이 안정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청년들은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을 시기이잖아요. 그런 고민하면서 무기력해지고, 고정적인 직장은커녕 하루하루 알바로 연명하는 힘든 생활에서 신천지로 인해 뭔가 하나의 안정적인 직업을 찾았다는 느낌, 그래서 더 올인하는 것 같아요.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참고 해야 하구요.

신천지에서 했던 남모를 고민은?

- 최고의 진리라 생각하고 다녔지만 남모를 말 못할 고민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신천지는 진리와 사랑이 가득하다고 가르치는데 그 안에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헐뜯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일반 사회와 다를 바가 없는?
네. 특히 존경하는 사명자가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요.

-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 주신다면요?
제가 있었던 곳이 특전대예요. 복음방에서 센터로 넘어가는데, 모든 열매들이 센터에 가서, 교육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전도를 해야 하는데, 그 중에 저처럼 특전대에서 ‘나는 살아 남겠다’는 사람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나라를 이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면서 센터파, 특전대파로 나뉘었어요. 독하게 하려면 특전대로요. 그 파가 나뉘면서 사명자들끼리 서로 싸우는 거예요.

특전대파와 센터파의 리더 둘다 여자였어요. 굉장히 질투하고, 오해하고 이간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고생을 했어요. 그래서 항상 특전대장이 했던 말은 ‘사람 보면서 신앙생활하면 안 된다’는 거였어요. 이긴자와 함께 하는 영이 돌아다니면서 다 보기 때문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시기와 질투를 참고 견뎌내야 한다고 얘기했어요. 저를 미혹했던 친구는 센터파로, 저는 특전대파로 갔어요. 그러면서 서로 멀어지게 됐어요. 서로 눈치보고 정보 파악해서, 전해주기도 하구요. ‘센터강사 혹은 대장이 특전대에 대해, 센터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했다더라’ 이렇게 서로 가서 얘기하는 거예요.

- 서로 견제하는 거군요.
개인적인 상처를 받은 것도 있어요. 대학생활을 할 때 저는 지도교수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지방에서 판소리를 배웠기 때문에, 인맥이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내가 지금까지 배웠던 것들이 다 잘못된 것들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상처가 많이 됐죠. 내가 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신천지가 좋았던 것은 내 실력과 배경과 관계없이 내가 재능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걸 모든 사람들이 좋아했고, 정말 ‘너는 택함 받았다’는 식으로 말해주니, 내가 세상의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보다 내가 말씀을 따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특전대장이 어느 날 올레 KT CF에 나오는 민요소녀 영상을 보면서 저를 앞에 두고 ‘이런 실력 있는 애가 신천지에 와야 하는데’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대학 때 경험했던 또 한 번의 상처와 충격을 받게 됐어요. 이외에도 비상식적 신천지의 관행과 모습을 보면서 힘들었어요. 특히 사명자들이 자신들의 행동과 말만 옳은 것이고, 다른 사람, 서로서로 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며 서로 비판했어요.

잎사귀들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고 경쟁하는 풍조도 심했어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죠. 그래서 비밀 얘기나 진짜 고민들은 얘기를 못했던 거죠. 서로에게 겉으로 웃으면서 연기를 하는 거였어요.

- 늘 긴장했던 삶이군요.
내부에서도 나이와 이름을 속이는 경우가 많아요.

- 그 속에서도 속여요?
연락처나 신상 공개를 서로 막았어요.

- 결국 누군가 회심할 경우를 생각해서였군요.
그걸 대비하기 위해서였던 거 같아요. 그때 많이 탈퇴하긴 했어요. 특히 잎사귀 중에 품행이 바르지 못한 친구들은 보고를 했어요. 수업시간에 졸고, 자세가 좋지 않고 이런 친구들이었죠. 남녀가 썸을 타면 바로 보고하구요.

- 성경해석의 모순도 보였나요?
성경해석의 모순은 저는 그 안에 있을 때는 찾지 못했어요. 모순이 보인다는 생각보다는 신천지 말씀은 완벽한 말씀이고, 진리라서 모순이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로 교회를 다녔던 애들이 항상 질문을 했어요. 질문을 하면, 사명자들은 ‘아직도 못 깨달았다’면서 혼을 내고, 정신교육을 시켰어요.

- 강사나 리더들의 모습에서 이상했던 점은요?
특전대 대장이 여자였잖아요. OO지파장이 남자였고 유부남이었는데도, 약간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대장의 눈빛이 좀 그랬어요. 항상 지파장이 올 때는 야한 옷을 입었어요. 비치는 옷이나 짧은 치마를 입었던 거 같아요. 특전대 대장이 특히 남자 형제들에게 애착을 가졌지요. 남자 형제들을 따로 불러서 마음을 열어준다는 빌미로 밥을 사주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있었죠. 그때는 대장님이 사람들을 엄청 챙긴다고 생각했죠. 저도 술을 좋아할 때였지요. 공식적으로는 술을 마시면 안됐기 때문에 대장이 저를 따로 불러서 자신이 먹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막걸리에 파전을 먹기도 했어요.

특전대 대장과 센터 강사가 둘 다 여자였는데, 서로 싫어했어요. 엄청 둘이 시기 질투했어요. 특전대에는 일 잘하는 애들이 많이 가니까, 센터 강사가 대원들은 물론 대장도 싫어했죠. 편가르기를 하는 격이니까요. 특전대장이 겉으로는 굉장히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특전대원들이 말을 했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늦잠자고, 손톱관리하고 머리손질 하다가 교육에 늦게 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모습이었겠군요.
‘이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개소리 들으러 간다’는 PK들

- 신천지 OO지파에 있을 때 가족해체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었나요?
목회자 자녀인 청년들이 특히 많았어요. 목회자 자녀들이 2~3명, 그 밑에 기수에서도 목회자 자녀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기 아빠를, 개·돼지라고 하면서, 집에 가면 ‘개소리 들으러 간다’고 얘기하는 자녀들이 있었어요.

- 목회자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반항심이 굉장히 많았군요.
그랬던 거 같아요. 저는 생각해보면 모태 신앙이 아니었어요. 주일엔 무조건 교회를 가야 한다는 억압이 없었는데 그 아이들은 항상 그 억압 속에 살았던 거죠. 세상의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있어보였어요. ‘너는 안 돼! 목사님 아들이야!’라는 데 대한 상처가 많았던 거 같아요. 말씀을 전하는 분이지만 목회자의 삶에 대한 반감들이 실망과 상처로 남아서 오히려 신천지 말씀 들었을 때 굉장히 목회자 자녀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봤어요. 제 기수에 가출한 목회자 자녀들이 남녀 한 명씩 두 명이 있었어요. 여자 아이는 상담 받다가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갔고 남자 아이는 원룸에서 상담 받던 도중에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려 자기 목에 대고 자해하는 연기하다 부모가 포기하자 눈치 봐서 도망 나왔어요.

19살 연기지망생 여자 아이도 있었는데 회심한 척 연기하고 상담소에서 회심 간증까지 하고 신천지에 안 다니는 것처럼 부모를 속이고 신천지랑 몰래 연락하면서 신천지를 다니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아이들은 신천지에서 영웅인 것처럼 떠받들고, 무용담을 늘어 놓게 하고 신도들을 모아 놓고 간증을 시켰어요. 사명자인 것처럼 추켜 세웠죠. 제가 신천지에서 나오고 나서 동갑이었던 열매를 한 명 빼냈었는데, 제 동기들 중에 남녀가 눈이 맞아서 혼전 임신을 하고 결혼한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 안에서 만약 그 소식을 들었다면 너무 큰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 신천지에 빠진 청년 중 목회자 자녀들, 선교사 자녀들이 많았나요?
정말 많이 있어요. 제 열매 중에 호주에 계신 선교사님의 딸이 신천지에 빠진 경우도 봤어요. 오빠랑 한국에서 둘이서 생활하던 친구인데, 부모님은 딸이 신천지에 빠져있는지도 모를 거 같아 안타까워요.

신천지 탈퇴 후의 고민들

- 마음 아픈 일들이 참 많았네요. 나온 이후 가장 걱정되는 것, 즉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생각과 가장 극복하고 넘어서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힘들었던 건 구원문제였어요. 교리가 깨지는 순간은 마음에서 ‘와장창’하고 무너지는 느낌이었어요. 그 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긴 한 걸까? 내가 신천지 말씀을 못 깨달았으니, 나는 심판받고 지옥가는 것 아닌가?’ 신천지도 가기 싫고, 정통교회도 가기 싫은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커졌구요. 신천지에서 버린 시간에 대한 후회, 자책이 이어졌어요. 자존심, 자존감은 다 무너졌어요. 신천지는 항상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거든요. 상담을 받고 교리가 깨지고 난 뒤, 가장 힘들었던 게,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인가?’ 였어요.

- 가장 기초적인 걸,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군요?
진짜 그게 힘들었어요. 내가 행해야지 구원을 받는 거지, 어떻게 믿기만 하면 구원이냐는 거였어요.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였고, 가족과의 신뢰회복도 힘들었어요. 무슨 일을 해도 부모님이 저를 의심하는 거였어요. 믿었던 딸이 거짓말과 연기를 밥 먹듯이 했다는 배신감과 신천지에서 딸을 빼앗겼던 상처 때문에 어디를 간다고 해도 보고하듯이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또 힘들었던 것은 진로와 취업 고민이었어요. ‘이제 나는 뭐해 먹고 살지’라는. 내가 갖고 있던 꿈이 한순간에 무너졌기 때문에 초반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상실감이 진짜 컸지요. 회사동료, 친구들, 가족들에게 모두 거짓말을 했잖아요. 그것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 친척, 회사동료 및 지인들에게 연기, 거짓말한 것을 사과했어요. 그러나 솔직하게 사과하고 밝히는 과정에서도 인간관계가 멀어지고 지금까지도 연락을 하지 않아요.

- 빠진 후 1년 정도가 신천지 신도들이 가장 뜨거울 때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 같아요?
초중고등 과정을 끝내고 수료한 후, 수료식을 하면 내가 성경통달을 했고, 이제 추수꾼이 되어 목숨을 다바쳐서 일해야 한다는 뜨거운 사명감이 들어요. 학사모 쓰고 가운입고, 광화문, 여의도 공원, 킨텍스 등 큰 행사장에서 수료식의 규모에 압도되어 정말 세상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열심히 신천지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각오가 생기는 거 같아요. 신천지에서 늘 2, 3년 안에 이루어지고 지금이 마지막 때, 재림 때라고 하니 곧 예수님이 오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전도실적을 많이 쌓아야 생명책에 녹명된다는 압박감이 있었어요. 나라와 제사장으로 녹명돼서 가족까지 구원해야 한다는 압박감, 위기감, 불안감에 더 열심히 일해서 나중된 자가 먼저돼야 한다는 생각에 더 열심을 낸다고 생각해요.

- 탈퇴한 후 1개월, 6개월, 1년 등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심리적 변화가 생겼는지 알고 싶어요.
탈퇴 후 1개월 정도 됐을 때는 교리가 깨졌어도 ‘신천지가 그래도 맞는 곳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깨진 후에도 수시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신천지가 진리인데, 내가 못 깨달았다면, 내가 신천지를 버린 거라면 나는 심판받고, 지옥에 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두렵고 무서웠어요. 신천지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제가 머리로 이해하면서도 성경을 읽으면 신천지식으로 해석되는 게 힘들었어요. 성경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어요. 기도도 안 됐어요. 비유풀이를 보면서 이긴자의 영이 늘 함께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교리가 무너졌기 때문에 기도가 나오지 않았어요. 말씀도 안 들리고, 구원이 뭔지도 모르겠고, 자포자기의 심정이 제일 컸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어요. 사람을 속여야 한다는 죄책감이 무척 컸거든요. 반증교육과 증거자료들을 보면서 교리가 더 깨지고, 그때 구원론을 들으며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이 들리는 과정이 1개월이었어요.

그 후 고린도후서 5장 21절 말씀을 들으면서 정말 구원의 감격을 체험하게 됐어요. 내가 죄인이었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단번에 내 죄를 갚아주심으로 나를 의인 삼아 주셨다는 거였죠. 6개월째 됐을 때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나서 평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생겼어요. 제가 구원받기 전에는 판소리를 해서 세상의 부와 명예를 얻어야 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나의 재능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찬양 드리는 것만으로도 진정한 삶의 기쁨이 될 수 있다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더 이상 세상을 위해서가 아닌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쓰임 받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담임목사님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단 예방집회에서 간증을 하고 찬양을 하기도 했습니다.

후속교육 기간동안 회심한 상담 동기들끼리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 받았어요. 같은 경험을 했고, 같은 아픔이 있기에 위로도 할 수 있었어요. JMS출신도 있었는데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다른 이단들도 신천지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서로 ‘와 우리가 더 낫다’며 우스갯소리도 하구요.

그러다 점점 사회 적응해야 하는 숙제도 현실적으로 다가왔어요. 앞으로의 삶이 막막해지고 신천지에서는 나라와 제사장이 되면 끝이었는데, 고민하기 싫었던 취업문제, 진로문제에 직면하게 된 거죠.

- 이단에 있다가 나온 사람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하는 말이나 교인들이 삼갔으면 하는 행동이나 말은 무엇인가요?
진용식 목사님과 이단 예방 세미나 간증을 많이 다녔어요. 간증 후에 ‘정말 잘했다, 정말 잘 나왔다’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어떤 분들은 한심하다는 표정과 말투로 ‘왜 멀쩡하게 생긴 애가 그런 데를 갔다왔냐’고 할 때는 힘들어요. 평신도 분들이 그러셔도 힘든데, 목회자 분들이 그런 눈빛으로 보시는 게 정말 울컥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신천지에 빠진 사람들이 멍청해서 혹은 신앙심이 없어서 빠졌다고 비난할 때도 좀 그렇죠.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곳을 왜 빠지냐?’라는 말도 상처가 됐지요. 지금은 그런 말 한 게 이해되지만 당시에는 힘들었어요. 지금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긴 해요.

   
▲ 지역 주민을 초청해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신천지 신도들

- 페이스북에서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봅니다. 신천지 탈퇴 후 사회에 적응할 때 가장 힘든 요소는 무엇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정말 무슨 일이든지 좋아하는 일에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았어요. 쉬지 않고 살아온 삶이 후회가 될 정도예요. 그랬기 때문에 신천지에서 나왔을 때 너무도 쉼이 필요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보상받을까도 생각했고,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하면 또 보상받는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신천지를 나오고 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무척 컸어요.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전공했기 때문에 꿈을 쫓는 열정이 있었지만 그게 나를 위한 꿈이 아니라 부모님, 주변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꿈으로 살았던 거 같아요. 지금까지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내가 정말로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어요.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상실감이 너무 컸고, 자괴감에 빠져 많이 힘들었어요.

착하게 커온 딸이 갑작스레 그러니 부모님이 굉장히 충격 받으셨어요. 그래서 정말 그 나이 때에 하는 고민들, 특히 청소년시기에 자아정체감에 대해 생각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하나님 안에서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어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 일을 즐기게 되고 열정도 자연스레 생겼어요. 열정적으로 억지로 산다기보다 지금은 정말 제 삶을 즐기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신감과 자존감도 점점 올라가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죠.

신천지를 나온 후 우울증이 크게 왔었어요. 다시 사이비종교에 빠졌다고 낙인찍힌 제가 판소리를 전공으로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었어요. 또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 직장에서 겪어야 할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연약한 제 믿음이 흔들릴 것만 같아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했어요. 그 때 전문가와 함께 심리상담을 꽤 오래 받았었고, 부모님이 하루빨리 사회에 적응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길 원하셔서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제 마음은 더 힘들어질 뿐이었어요.

1년간의 고시생활 중 저는 엄마의 권유로 운동을 하면서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았던 것 같아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며 1년 동안 식단을 짜고 10KG 감량을 해서 몸도 예쁘게 만들어 보기도 하고, 복싱도 1년 열심히 배우면서 제가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운동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필라테스 학원에서 새로 시작하는 줌바라는 댄스피트니스프로그램을 하게 하면서 정말 신나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제가 예술을 전공해서인지 저를 표현하는 일을 무척 좋아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몰입되어 신나게 춤을 추면 함께 줌바를 배우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을 느꼈고, 주변에서도 ‘소질 있다,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큰 힘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나에게도 좋아하고 잘하는 다른 분야가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지금 하는 줌바강사가 평생 직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로 인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대부분의 청년들이 신천지에서 나왔을 때 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가장 힘든 문제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 같아요. 아마도 저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탈퇴 청년들이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신천지에서 너무 시간을 헛되게 보냈잖아요. 보상받지 못한 청춘에 대한 안타까움, 회의감, 자책감으로 힘들 텐데 이렇게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과 자신감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고 이걸 회복하는 게 제일 힘들 거예요.

회심 후 교회로 돌아갔을 때, 일반 교회 교인들이 이단 탈퇴자라며 낙인을 찍히게 되는 아픔도 클 거예요. 실제로 적응하지 못해 상담 후에 본 교회에 돌아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교회를 안가고 방황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교회 성도들께서는 잠시 잠깐 방황했었지만 결국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으로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다시 편견을 갖고 배척하려 한다는 것도 탈퇴자들이 신앙을 회복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는 거 같아요.

또 신앙이 없다가 이단에 빠진 탈퇴자들의 어려움도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이 신앙이 없는 경우는 상담하기도 힘들고, 상담을 받고 나서도 바른 신앙을 가지기가 힘든데, 특히 JMS 탈퇴자들이 더 어려워하는 모습 봤어요. 그들이 잘 적응 못하는 이유는 ‘보여주는’이단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신도들이 신앙심이 없는 상태에서 전도가 되고, 가족들도 신앙심이 없는 가족들이 더 많다는 것이에요. 신천지는 ‘가르치는’ 이단이기 때문에 상담소에서 교리를 바로 배우고 구원관이 회복되면 본 교회로 돌아가서 잘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복음으로 완전한 회복되지 못하고 단순히 탈퇴, 이탈로만 그치는 것이 안타까워요.

- 사회적응을 준비하는 신천지 탈퇴 신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조금만 더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일단 신천지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잘한 거예요. 신천지에서 버려진 아까운 시간에 대해 후회하면서 혹은 부모님이 원하셔서 빨리 직장을 구하고 결정하려는 친구들을 봤어요. 그리고 나서 적응하지 못해 많이 힘들어 해요. 신천지에 있으면서 몸과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을 것이고, 많이 지쳐 있는 상태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가는 결국 탈이 날거예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제대로 못했으니 먼저 회복을 충분히 했으면 좋겠어요. 몸의 회복과 마음의 여유를 충분히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시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빠졌던 시간보다 회복하는 데는 두 배의 시간이 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신천지를 탈퇴한지 4년이 넘었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회복해가는 단계거든요.

가족들 특히 부모님이 받은 상처도 굉장히 클 거예요. 가족들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자녀가 신천지에 빠져 있을 때 바쳤던 시간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셔서 이미 늦었다고 급한 마음이 드실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께서도 여유를 갖고 자녀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자녀가 상담 받기 전에는 자녀를 위해 인내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던 분들도 자녀가 상담 받고 회심하고 나면 빨리 사회적응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라며 재촉하는 분들도 계세요. 오히려 그러면 회복이 더 힘들어지고 서로 관계가 더 악화될 뿐입니다. 힘들고 답답하시겠지만 인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녀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결국 이단에 빠진 건, 신천지만의 문제는 아니예요. 가족간의 소통의 부재, 대화의 단절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쌓이고 누적되고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무조건적으로 좋은 대학과 안정적인 직장만 강조하는 부모님과는 대화가 단절되죠. 그게 쌓여서 해결되지 못한 채 곪아 있다가 터지는 겁니다. 또 크리스천 청년들은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에서 해결되지 못한 말씀에 대한 갈급함.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이 없을 때 신천지로 빠지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년 시절에도 견뎌야 하는 삶의 무게가 적지 않거든요. 획일화된 사회 분위기를 청년들이 많이 힘들어 해요. 신천지를 탈퇴한 청년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의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정말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회복의 시간을 절대로 혼자서 견뎌내기는 힘들어요.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주변사람들 특히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대화하다보면 그 상처가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될 것이고, 나의 아픔은 모두의 아픔이었기에 서로의 마음을 공감하며 각자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거예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복음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 확신 속에서 회심한 청년 들이 함께 교제와 나눔을 하고 말씀을 듣고 함께 예배드린다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고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값없이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 마음속에 참 평안이 오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잡으신다는 믿음과 견고함을 기초로 제가 줌바강사로 살든, 다른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이단상담사가 되든, 그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지금도 신천지에 빠져 있는 신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신천지에 당신은 속았다는 거예요.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겠지만 신천지에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는 이단상담소에 꼭 한 번 가보세요. 그렇게 신천지가 싫어하는 이단상담소에 가면 이만희 교주의 실체가 다 드러나기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단상담소에 와서 들어본 결론은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잘못됐고, 맞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거예요. 이만희 교주는 사람의 영혼을 갖고 장난치는 종교 사기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고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요. 그건 선악과가 아니거든요.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한번쯤은 관심을 갖고 용기를 내서 들어보라는 거예요. 내가 신천지 말만 듣고 선택해서 간 거잖아요. 그들의 거짓말 연기에 속아서 간 거 잖아요. 그래서 정통교회가 성경적으로 말하는 교리적 반증을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아까운 청춘과 시간을 허비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이만희 교주가 사망할 날이 올 텐데 그때까지 몸 담고 있으면 얼마나 그 시간이 아까워요. 저도 속상하고 후회가 되는 시간인데요. 후회하기 전에 나와서 보상받을 수 없는 그 아까운 시간을 힘들게 겪지 말고 빨리 회복해서 사회에 적응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참 예배자로 쓰임 받는 일꾼이 됐으면 좋겠어요. -끝-

정윤석  unique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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