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부터 자신을 “사생아 같은 목회자”라고 소개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목회자를 꿈꾸지도 않았고, 주변의 아는 목회자 한 명 없던 삶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한 이후부터 180도 달라졌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교회론에 대한 치열한 고민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 교회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부부 목회와 발칸 선교에 대한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에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교회’가 되고자 부부 목회를 꾸려감과 동시에 발칸 선교사 파송을 준비하고 있는 하늘꿈 연동교회의 장동학 목사를 만나보았습니다. 장동학 목사와의 인터뷰는 2018년 12월 6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하늘꿈 연동교회의 짱 목사방(목양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8년 전 교회를 시작할 때부터 ‘교회란 뭘까?’ ‘우리가 교회 개척을 왜 하지?’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인이 와서 “목사님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사실 그냥 교회를 세웠을 뿐인데, 이분이 교회를 통해 나는 어떤 성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겁니다. 교회는 어떤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때까지는 교회를 세워놓고도 교회가 뭔지 몰랐는데 신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교회론을 세우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장동학 목사가 말하는 교회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기에, 사랑과 신앙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장 목사는 사랑을 교회의 가장 큰 사역이라 보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사역의 첫걸음은 ‘부부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랑 가운데서도 부부의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모습과 얼마나 관계되어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부부사랑의 관계가 그들의 예배 참여와 신앙생활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사랑의 회복을 위해 교회 안에 ‘부부사랑학교’를 세우고 부부들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부부사랑이 성경읽기와 같은 신앙의 실천적인 부분들과 관련되는 데에는 의문이 든다는 기자의 질문에, 장 목사는 행하는 것 이전에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라고 답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신앙의 실천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을 모르는데 사랑의 실천이 가능할리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부부 사랑이 회복되어야 하나님 사랑도 가능해지게 됩니다.
장 목사 목회의 첫 번째 키워드가 사랑이라면, 두 번째 키워드는 소통입니다. 여기에도 웃지 못할 일화가 있습니다. 부활절 이전 고난주간 특별새벽 기도를 앞두고, 장로님 한 분이 장 목사를 찾아왔습니다. 교회가 성도들을 대하는 방식이 ‘친절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친절한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친절의 다른 말은 소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성도들과 SNS와 교회 홈페이지로 소통하고, 헌금을 비롯한 교회의 많은 부분들을 투명하고 솔직하게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교회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장 목사는 교인들의 수를 세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수’에 대해 말해왔기에 한국교회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 목사는 교회가 모이기보단 흩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태까지의 한국교회의 문제는 우리가 모이기만을 강조했기 때문이고, 교회의 또 다른 모습인 ‘흩어지는 교회(Missional Church)’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개척교회를 섬길 것을 권면하기도 하고, 성도들을 세상 밖으로, ‘생활 선교사’로 파송할 훈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만 했던 교회가 점점 흩어지고, 평신도들을 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장 목사의 철학입니다. 목회의 현장 가운데 믿었던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깨어지고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평신도들은 “세상에서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치열할 고민 가운데에 있으며, 장 목사는 ‘세상으로 나아갈 훈련’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장 목사는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고,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부터 동인된 생활 선교사로서의 사명이 평신도를 세우는 장 목사의 방향성입니다.
다음은 장 목사와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 피곤하고 바쁘신 가운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목사님 자신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목회자로선 사생아 같은 목회자에요. 목회자를 꿈꾸지도 않았고 제 주변의 목회자들도 없었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목회자의 기준에서 벗어난 목회자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장점은 제가 일반 목회자와는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스스로 교인들의 생각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어요. 주일예배 외에 청바지를 제 작업복처럼 입는 것도 제가 교인들과 똑같은 생활을 살아가는 일에 정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척교회와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 행복하고 정직하게 목회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지금까지는 정면승부 목회를 해왔어요. 뒤로 돌려서 말하지 않고, 교회 건축 때는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길 바란다.”설교하지 않고 헌금을 많이 내달라고 설교했어요.
- 외대 영어과에서 장신대 신대원, Fuller 신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목회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는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저보다도 제 누나 셋이 먼저 기도로 받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걸 영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그때 전 목회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제일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대를 다닐 때 돈을 벌려고 제2외국어로 일본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었지만, 곧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장신대 신대원에 가게 되었어요. 제가 지금도 영어를 못해서 고민인데, 외대를 가게 하신 건 언어적인 장점이 되기보다는 선교에 대한 꿈을 품게 해주시는 계기가 되었어요.
- 사모님도 이대 수학교육 출신이시지만, 여러 교회학교 부서와 교역자로서 사역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두 분의 관계는 부부로서 뿐 아니라 동반자로서도 남다를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많이 다투기도 했어요. 개척 초기 아내는 당시 이대 수학교육학과를 나와 선생님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회자의 생활패턴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오전에 들어오는지 출퇴근이 명확하지 않은 것부터, 갑작스러운 장례가 터져 갑작스레 예배를 가야 하는 것까지요. 반면에 저 또한 처음엔 사모가 사역하는 것에 완전히 반대했어요. 사모 사역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좋지 않기에 아내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죠. 사모가 교회 일을 하는 것부터···. 예를들어, 목사가 살이 찌면 “사모님이 어떻게 했길래” 하며 사모의 탓으로 돌리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내의 전문가다운 모습을 점점 같은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아내는 100명 이내의 학생들을 너무나도 잘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청년부를 맡아서 굉장히 부흥시켰어요. 아내는 고민 끝에 과감히 교사를 그만두고 사역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게 되었어요. 남편의 목회에 있어 자신이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하고 남편이 만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목회가 잘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지금 아내는 부부청년부를 맡아 사역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에게 아내는 최고의 동역자입니다.
지금도 어딜 가든 아내를 꼭 모시고 가요(웃음). 아내가 보는 관점이 다르고, 서로가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목회 초기에 “성령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아내가 물어보는 거예요. “성령 충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왜 그건 얘기 안 해줘?” 그 말이 저에게 충격이었어요. 아내를 통해 세상의 교인들은 ‘성령 충만’이란 단어로 끝마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를 말해주길 원한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 토요일에서 일요일 사이에 있는 4번의 설교를 30분씩 2시간에 걸쳐 아내에게 보여주고 읽는 시간을 가졌어요. 아내가 “이 예화는 왜 들어갔어?” 물으면 “눈물 나잖아.”가 제 이유였어요. 그러면 또 아내가 “근데 앞의 말과 연관성이 없잖아.” 하면 저는 또 “(그래도) 눈물 나잖아.” 답했어요. 그 당시의 저는 단순히 설교는 성도들의 눈물을 흘리게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던 거죠. 아내는 그런 저의 설교를 빨간 펜을 들고 성도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전 그런 아내가 빼준 빨간 부분을 설교문으로 다시 고치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성도들이 말씀에서 더 은혜를 받기 시작하는 거예요.
요즘도 저는 교회를 개척하는 분들이나 동역자들을 만날 때면 사모와 만나는 날, 부부의 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날만큼은 자신의 설교에 대해 솔직하게 피드백 받고 사모의 시각에서 듣는 시간을 갖는 거죠. 사모야말로 목사의 설교를 가장 잘 보아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12박 13일 정도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가정 만들기’(부부 세미나)를 하고 오셨는데요.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을지도 궁금하지만, 더불어 선교사님 부부뿐 아니라 목회자 부부의 관계에서 어떤 스트레스 요인들이 진단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아프리카 케냐라는 곳에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선교사님 부부도 그렇고 부부가 다투는 이유는 좀 더 빨리 와서 밥을 먹는다든지, 어쩔 땐 남편이 밥을 차려주기도 한다든지 아주 사소한 문제였어요. 부부는 사랑하니까 사는 것인데, 20년에서 30년 요구해도 바뀌지 않으니 거절감을 느끼는 거죠. 근데 오히려 싸우는 것보다 싸우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싸우는 거거든요. 대부분의 부부 관계의 갈등은 거절감으로 나타난 사랑의 손상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것들요. 예를 들면 개척을 하면서 제 아내 또한 머리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겠죠.
부부 사랑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듣고 풀어줘요. 규모도 여섯에서 일곱 가정 밖에 안 돼요. 지금 선교사님들 가정도 풀어져서 너무 좋아요. 저는 개척교회목사들과 선교사들을 섬기고 있어요. 그런데 부부관계의 해법은 예상보다 어렵지 않아요. 상대방의 이야기를 100퍼센트 수용하여 들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부부관계에 하나님이 끼면 어려워요. 신앙적인 것이 끼게 되면 되레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핑계가 되고 합리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에선 그러한 것들을 다 제거합니다. 첫 번째 원칙이 ‘하나님을 얘기하지 않는다’와 ‘기도하지 않는다’에요. 3, 4번째 단계에 이르러서야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 남자는 늘 일에 치이고, 여자도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면서도 부부 사이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우리가 잘살고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부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목사님만의 부부 사랑의 비결이 있으신지와 부부관계의 친밀도는 신앙생활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건지도 궁금합니다.
이 문제가 많은 분이 우리 교회에 오게 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우리 교회에는 부부 사랑학 교가 있어요. 부부가 사랑을 배우기 위한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거에요. 18년 전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란 뭘까?’ ‘교회 개척은 왜 하지?’ 고민했어요. 이미 주변에 교회가 많잖아요. 교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던 중에 “우리 교회와 다른 교회의 차이가 뭡니까”라는 한 교인의 질문을 받게 된 거에요. 그때의 충격 이후 교회론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받은 말씀이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40절이에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대한 첫째 되는 계명과 둘째 되는 계명에 대한 말씀이에요. 그래서 ‘아, 교회란 사랑을 하는 공동체구나’ 깨달았어요. 근데 문제는 교회에서 사랑을 가르치거나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인데 그에 대한 훈련은 받은 적이 없는 거예요.
교회에 사랑이 제일 중요하단 걸 알게 된 이후 또 알게 된 것은 부부가 같이 싸우게 되면 설교도 안 듣고 교회도 안 나온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부부로서 보기 시작했죠. 부부는 한 몸인데, 신학적으로도 예수그리스도가 신랑이고 교회가 신부잖아요.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부부가 사랑하는 방식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같아요. 부부관계가 안 좋은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부부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요. 18년 개척 때부터 우리 교회의 현장에서 부부가 한 인격체로 나아오게 되면서 새로운 신앙의 인격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로 변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사랑이 많아지고 눈물이 많아져서 남성 중심의 특별 새벽기도가 만들어지게 된 거에요. 부부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회복될 수 있는 핵심이에요.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는 신학적으로도 한 몸인 부부잖아요.
- 목사님의 목회를 요약하자면, 첫째는 부부 사랑 학교이고 둘째는 ‘발칸을 품은 교회’인 것 같은데요. 발칸반도는 어떤 곳입니까? 어떻게 발칸선교에 대한 꿈을 품게 되셨나요?
교회건축과 동시에 건강한 교회에 대해 고민하면서, 하이파이브에 대한 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이파이브란 한 사람이 두 명을 전도해서, 삼천 명의 교회를 만들어 사십 명의 선교사를 돕고, 자체선교사 다섯 명을 파송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서로 만나면 하이파이브 인사를 해요(웃음). 이왕이면 그 다섯 명의 선교사는 우리 교인들을 보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러다 제가 한세대학교 상담학 교수로 재직할 때 만난 학생이 이스탄불 한인교회 부흥회로 저를 초대하면서 터키에 가게 되었을 때였어요. 그 여정 중에 김아엘 선교사를 만났고, 김 선교사님이 차로 터키에서 그리스까지를 2박 3일 동안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다다른 그리스의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 빨래터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갑자기 통곡이 나오고 엉엉 울게 되었어요.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자꾸 누가 나를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곳이 어딘지 물었고, 제가 있는 곳이 마케도니아와 인접해 있고 발칸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발칸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발칸을 발칵 뒤집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발칸은 내전으로 인한 상처로 얼룩진 곳이었고, 무엇보다 한국 선교사가 별로 없는 곳이었어요. 거기서부터 발칸에 대한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우리 교인들을 파송하고 싶었습니다. 불가리아에서 여러 선교팀이 찬양하는 곳에 700부에서 1000부에 달하는 발칸 찬양 집을 뿌리기도 하고 발칸 달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차 선교사로는 노강석 선교사를 파송했는데요. 이 팀은 내년부터는 독립하게 되는데, 불가리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어요. 2차로는 양기동 선교사를 파견하였습니다.
-‘짱 목사 방’은 어떤 공간인가요? 그 외에도 온라인을 통해 성도들과 칼럼과 자료 등 많은 것들을 공유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교회가 커지면서 SNS로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교회를 걸어 다니면서 찾았지만, 요즘은 손으로 찾는 구나 느꼈어요. 그래서 개척하면서 손으로 찾아올 수 있게 홈페이지를 열게 된 거죠. 제가 “홈페이지가 눈물을 흘린다.”는 글을 쓴 적도 있는데, 홈페이지를 통해서 안 믿는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고 홈페이지로 성도들과 소통도 하길 바랐어요. 요즘은 성도들과 카톡 플러스(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주로 소통하고 있어요. 카톡 플러스는 누구나 저를 찾을 수 있고 저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잖아요?
친절한 교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활절을 앞둔 고난주간 특별 새벽기도를 2주 정도 앞두고, 장로님 한분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주보를 내밀면서 “목사님 특별 새벽기도에는 성도들이 와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2주 전에 알려주는 것은 직장을 다니는 성도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겁니다.” 말씀하시는 거예요. 충격이었어요. 이 계기로 저의 목회가 친절한 교회를 방향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친절의 다른 말은 소통이더군요.
헌금에 대한 것을 예를 들면, 교인들은 헌금을 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헌금이 어떻게 잘 쓰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헌금들도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이 교회를 개척한 1세대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때에 교회에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 현대에 주일학교에 대한 반성이 나오면서, 신앙교육에 있어 가정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뿐인 주일학교보다 부모가 미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는 얘기죠. 그런 맥락에서 목사님의 ‘부부 사랑 목회’ 또한 아주 중요한 사역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더욱 목사님의 교육목회비전 또한 궁금했습니다.
저는 획일적이고 군사적인, 장년층에 달린 교회학교부서가 아니라 부서와 아이들을 각각의 지체들로 바라보고 싶어요. 각 공동체를 부서가 아닌 개별적 자치권과 프로그램을 갖고 다만 한 말씀을 나누는, 그들의 독립과 자립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목표예요.
우리 교회는 평신도 사역을 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의 구조는 당회와 목회자 마을회, 삼권분립의 구조로 나누어져 있어요. 당회는 제정의 일만 담당하고, 목회자는 목회의 일을, 마을회는 평신도로 이루어져 교회의 전반적인 일에 투입되어 있어요. 아이들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 교육전도사일까요? 저는 평신도가 그 교회의 아이들을 가장 사랑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목회자들은 그런 평신도들을 세워주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래서 우리 교회는 평신도들을 훈련하는 것이 먼저이고, 평신도들이 교회에 많이 개입된 교회입니다.
평신도 사역의 일환으로 내년부턴 생활 선교사 파송을 꿈꾸고 있어요. 일터선교사, 학생선교사, 가정선교사로 나누어지는 생활선 교사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실제로 훈련시켜 선교사의 자격도 주고 선교비도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생활 선교사학교를 꿈꾸게 된 건, 성도들이 세상 속에 나가서 무너지는 모습들을 보게 된 거에요.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3~40대 부부 청년들은 거의 돈 버는 기계에요. 자신이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힘을 얻더군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크리스천들이 종교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종교적이지 말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자유로움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교회에 와서 “나는 자살하고 싶어”라는 얘기까지 할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다양한 색깔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고, 사실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의 문제보다는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가는 교회가 어떻게 열어주는가에 달린 거거든요. 너무 종교적인 색깔만 강하다 보니 좋은 신앙이 삶으로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주님께서 자유를 주기 위해 종의 멍에를 매셨는데, 크리스천들이 교회와 신앙 안에서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