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1920년에 태어나 1954년에 통일교를 시작했으니 그의 교주 경력도 벌써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그러나 혹자는 “통일교가 아직도 활동하느냐?”고 묻는다. 한국산 신흥종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통일교를 참 몰라주는 말이다.
그동안 통일교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엄청나게 몸집을 키웠다. 지금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공식명은 그대로지만 수 십 개의 기업·종교·스포츠·학원·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통일교 유관 조직이 문어발처럼 활동하고 있다. 최근의 변화로 보면, 그동안 속칭이었던 ‘통일교’라는 이름을 이젠 그냥 아예 자신들 종교의 공식명칭으로 사용할 모양이다. 지난해 말, 문 교주의 막내 아들 문형진 씨(31세)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회장 겸 청파동 본부교회 당회장으로 취임한지 2주년을 지나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명실상부한 통일교의 2대 교주인 문형진 씨가 1997년부터 사용해온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단체명을 ‘통일교’로 바꾸면서 2010년 새해에 가장 먼저 한 일은 핵심성지(聖地)였던 본부교회를 청파동에서 용산으로 옮긴 것이다. 이름도 ‘통일교 세계본부교회’로 바꿨다. 이 새로운 본부교회는 통일교측이 용산구민회관을 매입해 9개월 동안 100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리모델링한 건물이다. 문형진 씨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본부교회가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통일교가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건물을 불교, 이슬람교, 천주교, 유교 등이 사용할 수 있는 초종교적인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통일교의 포스트문선명시대가 조금씩 드러나는 형국이다.
“안녕하십니까? 식구여러분. 먼저 원리부터 세워봅시다. 수수~작용. 사위~기대. 하나님의 참사랑을 상속받겠습니다. 아~주.”
이것은 문형진 씨가 매번 설교를 시작하면서 하는 말이다. 신도들과 다 같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와 네모를 그리고 두 손을 하늘로 받쳐 드는 시늉을 한다. 통일교의 마크 모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 이 두 단어 수수작용(授受作用)·사위기대(四位基臺)는 통일교의 핵심교리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단어다. 통일교의 이단성 교리를 정리해 보자(본 기사에 인용하는 <원리강론>은 통일교 출판기관인 성화출판사에서 2002년 5월 25일 41쇄로 발행한 것이다).
1. 통일교의 신론, 하나님은 마음(남성격)·피조물은 몸(여성격)
통일교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사상은 이원론(二元論)이다. 통일교에 의하면 무형(無形)의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피조세계를 관찰해 보아야 한다고 한다. 피조세계의 모든 존재는 음양(陰陽)·내외(內外)·주객(主客)·표리(表裏)·상하(上下)·좌우(左右)·강약(强弱) 등과 같이 양극성(兩極性)이라는 보편적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이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형(無形)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피조세계(被造世界)를 관찰함으로써 알 수 있다.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자체 내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과의 사이에서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二性性相) 이 상대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원리강론>, pp.21~22).
통일교에 의하면 또한 모든 만물은 양극성과 동시에 ‘성상(性相)’과 ‘형상(形狀)’을 갖추고 있다. 보이는 외형은 보이지 않는 내성을 닮아간 것이므로 성상은 주체(主體)이고 형상은 대상(對象)이다. 그런데 성상과 형상은 동일한 존재의 상대적인 양면의 꼴을 말하므로 형상은 ‘제2의 성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통일교에서는 이것을 통틀어 ‘이성성상(二性性相)’이라고 부르며 하나님도 이성성상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이성성상(二性性相)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므로 삼라만상의 제1원인 되신 존재인 하나님도 역시 양성과 음성의 이성성상의 상대적 관계에 의하여 존재해야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원리강론>, p.26).
통일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남성적 주체이고 피조세계는 여성적 대상이다. 모든 형상적 여성격 대상으로서 피조물은 제1원인인 하나님으로부터 존재할 수 있는 힘을 받음과 동시에, 성상적 남성격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에게 돌아가겠다는 목적을 지향하는 힘으로 인해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상과 형상의 상호작용을 통해 우러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힘을 통일교는 ‘만유원력’(萬有原力)이라고 부르며, 이런 상호작용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완성된 피조세계(被造世界)는 마치 마음을 중심하고 완성한 인간 하나와 같아서, 하나님의 창조목적대로 움직이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有機體)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상적인 남성격 주체(男性格 主體)로만 계셨기 때문에, 형상적인 여성격 대상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셔야만 했던 것이다”(<원리강론>, p.26~27).
“모든 존재를 이루고 있는 주체(主體)와 대상(對象)이 만유원력에 의해 상대기준(相對基準)을 조성하여 잘 주고 잘 받으면, 여기에서 그 존재를 위한 모든 힘, 즉 생존과 번식과 작용 등을 위한 힘을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힘을 발생케 하는 작용을 수수작용(授受作用)이라고 한다”(<원리강론>, p.30).
통일교에서는 또한 ‘사위기대’(四位基臺)라는 개념을 사용해 하나님의 속성과 창조를 표현한다. 사위기대의 기본형은 ‘중심’을 정점으로 하여 ‘주체’와 ‘대상’이 분화되어 나오고, 합성체가 다시 통합점을 이루는 다이아몬드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영원불변한 것은 이러한 사위기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통일교의 신관은 자연의 관찰을 통해 궁극적 실재의 본질을 유추하려는 태도를 나타내는데, 이것은 일종의 자연주의적 사고방식으로서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았음을 역력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계시하기는 하지만(롬 1:19~20), 이는 하나님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통일교는 하나님을 성상(=마음)으로 이해하고, 피조세계를 하나님의 형상(=몸)으로 이해함으로서 세계가 곧 신의 몸이라는 전형적인 범신론적 단일신론을 주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통일교의 계시관, 문선명 <원리강론> ‘성약’에 성경은 빛을 잃어
여타의 이단단체들과 마찬가지로 통일교 역시 오직 자기들만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진리는 다름 아닌 문선명 교주가 계시 받아 기록했다는 <원리강론>이다. 통일교는 <원리강론>이 성경을 능가하는 완성된 ‘성약’(聖約)이며, 이제까지 밝혀진 적이 없는 새로운 진리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이미 이 땅위에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한 분을 보내셨으니, 그분이 바로 문선명 선생이시다. 이분은 수십 성상(星霜)을 두고 역사 이래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창망(滄茫)한 그 무형세계(無形世界)를 헤매시면서 하늘만이 기억하시는 진리탐구의 피어린 고난의 길을 걸으셨다. 인간으로서 걸어야 할 최대의 시련의 길을 다 걷지 않고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최종적인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원리를 아셨기에 선생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억만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비롯한 낙원의 수많은 성현(聖賢)들과 자유로이 접촉하시며, 은밀히 하나님과 영교(靈交)하는 가운데서 모든 천륜(天倫)의 비밀을 밝혀내신 것이다. 여기에 발표하는 말씀은 바로 그 진리의 일부로서….”(<원리강론>, p.17).
이렇게 새롭게 주어진 ‘성약’이 정통교회의 성경을 무용지물로 만들뿐만 아니라, 이것을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말세에 모두 실족하게 된다는 것이 통일교의 주장이다.
“재림주님은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새 말씀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완성부활섭리는 신·구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시는 새 말씀(이 말씀은 성약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을 인간들이 믿고 또 주님을 직접 모심으로써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여 의로움을 받도록 섭리하시는 것이다”(<원리강론>, p.192).
“해와 달이 빛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성신에 의한 신약(新約)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신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될 것인가? 마치 예수님과 성신이 오셔서 구약(舊約)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신약의 말씀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말씀이 빛을 잃게 되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셔서 신약의 말씀을 이루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기 위한 새 말씀을 주시게 되면, 초림(初臨) 때에 주셨던 신약의 말씀은 그 빛을 잃게 될 것이다”(<원리강론>, p.130).
“별들이 떨어진다는 것은 말세(末世)에 있어서의 성도들이 모두 실족(失足)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시아의 강림(降臨)을 열망해 오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반대하다가 전부 떨어진 것 같이, 예수님의 재림을 열망하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그 날에 실족하게 됨으로써 그와 같이 떨어지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원리강론>, p.130).
그러나 통일교의 이런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고 증거하고 있으며(사 40:8, 마 24:35), 이미 계시되어 있는 내용을 더하거나 빼는 자들에게 가장 혹독한 재앙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신 4:2, 계22:18).
3. 통일교의 인간(죄)론, 천사와 성관계로 영적타락·아담과 성관계로 육적타락
통일교에서는 창세기의 타락사건들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통일교에 의하면 에덴동산은 전 지구를 의미하며 뱀은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상징한다. 생명나무는 아담을 의미하며 선악과는 하와를 의미한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성적인 타락, 즉 천사장 루시퍼와 하와의 성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창세기 2장 25절을 보면, 범죄하기 전 아담 해와는 몸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타락(墮落)한 후에는 벗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무화과(無花果)나무 잎으로 하체(下體)를 가리었다.(창 3:7). 만일 선악과(善惡果)라고 하는 어떠한 과실이 있어서 그들이 그것을 따먹고 범죄를 하였다면, 그들은 필시 손이나 입을 가리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인간은 허물을 가리는 것이 그 본성(本性)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손이나 입을 가리지 않고 하체를 가리었었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의 하체가 허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들이 하체로 범죄하였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원리강론>, p.79).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은 가지고 자기의 피와 살이 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의 사랑으로 선과(善果)를 따먹고, 선의 피와 살을 받아 선의 혈통을 번식해야 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사탄을 중심한 악의 사랑으로 악과(惡果)를 따먹고 악의 피와 살을 받아 악의 혈통을 번식하여 죄악의 사회를 이루었던 것이다. 따라서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사탄(천사)을 중심한 사랑에 의하여 서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맺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원리강론>, p.81).
아담과 하와는 아직 어린 미완성기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완성기까지 성장하여 하나님의 허락과 축복을 받으며 부부생활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사탄이 하와를 유혹해 간음함으로써 사탄의 피가 하와에게 먼저 들어갔으며, 하와는 또 아담을 유혹하여 성행위를 함으로써 아담에게도 사탄의 피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통일교는 이것을 두 종류의 타락 즉, 영적인 타락과 육적인 타락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모든 타락은 성격상 성적인 타락이었다고 한다. 하와는 루시퍼와 성관계를 맺어 영적으로 타락하였고, 후에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아담과 또다시 성관계를 맺음으로서 육체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적인 부분과 육적인 부분으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타락에 있어서도 영육 양면의 타락이 성립된 것이다. 천사와 해와와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영적 타락이고, 해와와 아담과의 혈연관계에 의한 타락이 육적 타락인 것이다”(<원리강론>, p.85).
통일교에 의하면 하나님을 ‘중심’(中心)으로 아담(主體)과 하와(對象)가 부부관계를 맺음으로써 아이(合性體)가 태어나면 사위기대(四位基臺)가 되어 지상천국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사탄을 중심으로 한 사위기대가 만들어져서 죄가 혈통적으로 유전되고 지상에 지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일교에서 아담과 하와가 어려서 성숙할 때까지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성격적인 생각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이들에게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8)고 하셨고, “남자가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창 2:24)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미성숙한 상태로 창조하셨다는 것 자체가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천사와 인간이 성행위를 했다는 것도 성경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이다. 천사들은 영적 존재이며 결혼하지 않는다(마 22:29~30). 따라서 비록 타락한 천사라도 성행위를 필요로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인간이 아닌 천사가 행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4. 통일교의 구원론, 하나님 95%·인간 5% 책임분담
통일교는 인류의 전(全) 역사를 구속사로 보고 이것을 ‘탕감복귀’(蕩減復歸)의 섭리라고 말한다. 즉, 타락한 인간은 창조 본연의 위치와 상태로 돌아가야 하며 거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어떤 조건들이 따른다. 이러한 조건들을 세우는 것을 ‘탕감’이라고 하는데 탕감의 조건들은 곧 인간의 책임분담을 말한다. 그런데 통일교는 이 탕감복귀 섭리에서 하나님의 뜻의 성사는 하나님의 책임분담 95%, 인간의 책임분담 5%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한다.
“창조원리(創造原理)에서 이미 밝혀진 바와 같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함으로써만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목적을 다시 찾아 이루시려는 복귀섭리(復歸攝理)의 뜻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관여할 수 없으나, 그 뜻 성사에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원리강론>, p.215).
“그러면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하여 어느 정도로 예정하시는 것일까? …복귀섭리의 목적을 이루시려는 뜻은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뜻의 성사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실 95퍼센트의 책임분담에 그 중심인물이 담당해야 할 5퍼센트의 책임분담이 가담되어서만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정하시는 것이다”(<원리강론>, p.216).
따라서 통일교에 의하면 창조 본연의 상태로 복귀노정이 지연되는 것은 인간이 책임분담에 실패했기 때문이지 하나님의 예정이나 계획 때문이 아니다. 즉, 통일교의 구원론은 행위구원론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원리강론>, p.164).
그런데 통일교에서는 복귀과정이 역사법칙과도 같은 수리적 공식에 의해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역사적 전개 또한 수리적 법칙을 가지고 전개되고 나선상을 그리면서 창조목적을 지향하는데 이때 역사적 나선상의 반복성을 ‘동시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통일교에 의하면 동시성의 시대를 형성하는 세 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것은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중심인물,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 그리고 수리적 기간이다. 이러한 동시성의 요인에 따라 전(全) 역사 노정의 복귀섭리를 담당한 중심인물은 네 사람이 있는데, ‘기대시대’의 아담, ‘구약시대’의 아브라함,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고 ‘성약시대’의 재림주 즉, 문선명 교주가 바로 그 네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통일교의 이러한 구속사론이 가지는 수리성은 세대주의자들의 수리법칙보다 지나쳐 모든 것을 수로 풀이하는 항간의 동양철학자들의 상수학에 가깝다. 그리고 사실 수리적 공식에 의해서 역사적 사건들을 끼워 맞추면 역사의 어떤 사건들은 정도 이상으로 부각되고 또 다른 사건들은 그 의미가 평가절하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95대5 책임분담 비율은 또 얼마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가. 하나님에게도 인간의 역사는 유희가 아니다.
5. 통일교의 기독론, 예수는 사탄에 패배·영적구원만 이뤄
통일교의 영·육 타락론과 탕감복귀론은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이 불완전한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 따라서 통일교는 예수의 십자가 사역을 성경과 정반대로 해석함으로써 사탄이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통일교는 예수가 어디까지나 인간이었으며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지상에 있어서도 원죄(原罪)가 없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는 우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인간이었고, 또 부활 후 영계에 있어서도 제자들과 다름없이 영인체로서 계신다”(<원리강론>, p.230).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라면, 어떻게 하나님이 사탄의 시험을 받고 또 사탄에 몰려 십자가에 달리는 등의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이 아님은 분명한 것이다”(<원리강론>, p.231).
통일교는 세례요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가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로서 완수해야 했던 인류의 영·육 구원은 반밖에 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의 몸이 사탄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인간 육신은 구원하지 못하고 영만 구원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창 2:7). 이와 같이 영(靈)과 육(肉)으로 창조된 인간이므로, 타락도 역시 영육 아울러 된 것이었다. 따라서 구원도 영적구원과 육적구원을 아울러 하셔야만 되는 것이다”(<원리강론>, p.160).
“예수님은 그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함으로써 육적 구원섭리의 목적은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代贖)으로 부활의 승리적인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도들은 영적 구원섭리의 혜택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원리강론>, p. 161).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예수님은 영육(靈肉)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지자(先知者) 이사야의 예언(사 9:6∼7)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교시(눅 1:31∼33) 그대로, 또 예수께서 친히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신 말씀(마 4:17)과 같이 그는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셨을 것이었다”(<원리강론>, p.160).
통일교에서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었다는 비성경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십자가의 죽음 길에 내준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반(反)하여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길을 가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음서(福音書)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데가 많이 있다. …베드로를 보시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고 하신 책망으로 미루어 그의 십자가 죽음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에 있어 예수님은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육(靈肉) 아우른 구원섭리(救援攝理)를 완성하실 수 없게 되자, 영적 구원만이라도 이루시려고 그 탕감조건(蕩減條件)으로서 부득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하고 계시던 때였다”(<원리강론>, p.165).
이런 통일교의 주장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해서 영·육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상(十字架上)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최후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아시게 된 후부터 예수님은 육적 구원은 재림(再臨) 후의 섭리로 미루시고,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만이라도 조성하시려고 십자가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이다”(<원리강론>, pp.165~166).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로서 청산하시지 못한 원죄를 속하고 육적 구원을 완성함으로써 영육(靈肉)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원리강론>, p.162).
통일교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사역을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셨으며 그 사역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기에 족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6. 통일교의 종말론, 지금은 세 번째 말세·재림주는 육신으로 탄생
통일교에 의하면 탕감복귀 노정에 있어서 동시성의 매 시대가 바뀌는 전환기가 곧 말세다. 그러므로 노아의 때도 말세고 예수의 때도 말세이며, 예수님이 재림할 때도 말세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과 섭리의 지연이 인간의 책임분담의 실패에 기인하지만 탕감조건을 3수(數)로 세위기 위해서 세 번 이상의 지연은 있을 수 없다는 게 통일교의 주장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이래 죄악세계를 청산하고 창조본연(創造本然)의 선의 세계를 복귀하시려는 섭리를 여러 차례 하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이 그 책임분담(責任分擔)을 완수하지 못하여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곤 하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말세가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은 사실을 우리는 성서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원리강론>, p.123).
통일교에 의하면 지금이 세 번째 말세인데 이 말세는 신약시대에서 성약시대로의 전환이며 절대적인 말세이다. 그리고 ‘원리’(原理)가 새로운 계시인 성약경전이며 통일교인들은 ‘제3의 이스라엘’이 된다고 한다. 즉, 예수가 초림 때 그를 위하여 소명되었던 이스라엘 선민을 버리고 기독교인들을 제2의 이스라엘 선민으로 세웠던 것처럼 재림 때에도 기독교인들이 불신으로 돌아서면 그들을 버리고 제3의 이스라엘을 세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하면 재림주는 하늘에서 강림하는 게 아니라 육신을 통해서 지상에 태어난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현대인의 지성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이제 우리는 성서의 문자가 말하고 있는 그 참뜻을 파악하기 위하여 종래와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 번 성서를 상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원리강론>, p.529).
“이와 같이 예수님이 재림(再臨)하실 때에는 그가 지상에서 탄생하시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2장 5절에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원리강론>, p.538).
“위에서 살펴 온 모든 논증에 입각해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탄생하시는 것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원리강론> p.542).
곧 통일교에 의하면 예수의 재림은 예수의 영인체가 후대에 재림주의 사명을 대행할 사람의 영인체와 협력하는 식으로 환생한다는 것인데, 통일교는 이것을 ‘재림부활’(再臨復活)이라고 부른다. 즉 통일교에서 말하는 재림부활은, 예수라는 사람의 영이 다른 사람의 육신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영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신약시대(新約時代)에 지상에서 예수님을 믿고 낙원으로 간 생명체급(生命體級)의 영인들은 메시아가 재강림(再降臨)하신 후 전부 지상에 재림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영인들은 지상의 성도들로 하여금 재림하신 예수님을 믿고 모시어 생령체급(生靈體級)의 영인체를 완성할 수 있도록 협조함으로써, 그들도 동일한 혜택을 받아서 생령체(生靈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상의 성도들이 육신을 벗고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때에 그 영인들도 그들과 함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섭리를 완성재림부활섭리(完成再臨復活攝理)라고 한다”(원리강론>, p.201).
통일교는 또한 재림예수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성경의 예언을 부정하고, 그것을 ‘성도’라고 해석하며, 동방의 그 나라 역시 ‘한국’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위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영체 재림(靈體再臨)이 아니라 초림 때와 같이 육신 재림이라는 것을 여러 모로 밝혔다. 예수님이 설혹 영체로 재림하신다 하더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안(靈眼)으로만 볼 수 있는 영체가 물질로 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더욱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다. 더구나 그의 재림이 영체로써가 아니고 육신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일진대, 그 육신으로서 공중의 어디에 가 계시다가 어떻게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원리강론>, pp.541~542).
“그렇다면 구름은 과연 무엇을 비유하였을 것인가? …그렇다면 구름은 타락한 인간이 중생(重生)하여 그 마음이 항상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독실한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원리강론>, p.543).
“자고로 동방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3국을 말한다. 그런데 그 중의 일본은 대대로 천조대신(天照大神)를 숭배해 온 나라로서…. 그러므로 단적으로 말해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동방의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인 것이다”(<원리강론>, p.550~551).
그러나 통일교의 주장과 달리 성경은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메시아의 초림은 나사렛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심으로서 성취되었다(마 2:1~2).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늘로부터 인간의 몸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행 1:11, 계 1:7). 예수님은 초림 때에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사역으로 육체의 구원과 영의 구원을 모두 완성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또 다른 메시아는 결코 필요치 않다(행 4:12). 따라서 메시아가 육체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금 육체로 태어날 것이라는 통일교의 주장은 완전히 비성경적인 것이며, 그런 메시아는 비성경적이고 불필요한 존재다.
7. 통일교의 통합론, 기독교의 재림주는 미륵불·동방은 한국
통일교에서 생각하는 지상천국은 사회적인 개혁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며 지상천국에서는 전체 사회가 완성된 한 사람처럼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교는 모든 것의 통일과 통합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모든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성과를 자신들의 교리체계 안에서 통합하고자 노력하며 궁극적으로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문명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를 드러낸다. 기독교의 재림주가 곧 불교의 미륵불이요, 유교의 진인이며, 한국의 정도령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에서 고대하고 있는 재림 예수님은 다른 모든 종교에서 재림하리라고 믿고 있는 그 중심인물(中心人物)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를 믿다가 타계한 영인들도 그가 가지고 있는 영적인 위치에 따라 그에 적응될 시기는 각각 다르지만, 재림부활(再臨復活)의 혜택을 받기 위하여 낙원(樂園)에 있는 영인들과 같이 재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결국 기독교를 중심하고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원리강론>, p.208).
“기독교는 기독교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과거 역사상에 나타났던 모든 종교의 목적까지 아울러 성취해야 되는 최종적인 사명을 가지고 나타난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중심으로 오실 재림주님은 결국 불교(佛敎)에서 재림할 것으로 믿고 있는 미륵불도 되는 것이고, 유교(儒敎)에서 현현할 것으로 고대하고 있는 진인(眞人)도 되는 것이며, 한편 또 많은 한국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정도령(正道令)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밖에 모든 종교에서 각각 그들 앞에 나타나리라고 믿고 있는 그 중심존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원리강론>, p.208).
물론 통일교는 말세의 재림주가 한국의 문선명 교주에게로 오기 때문에 당연히 지상천국의 중심엔 한국이 있으며, 궁극적으로 지상통일이 이루어지면 한국어가 세계공통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재림(再臨)하시는 주님을 부모로 모시는 하나의 대가족의 이상세계(理想世界)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언어가 통일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 그 언어는 어느 나라 말로 통일될 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너무나 자명하다. 자식은 부모의 말을 배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부모되신 예수님이 한국으로 재림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한국말을 쓰실 것이므로 한국어(韓國語)는 바로 조국어(祖國語)가 될 것이다. …이리하여 온 인류는 한 나라 말을 사용하는 한 민족이 되어 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이다”(<원리강론>, p.567~568).
그러나 통일교가 추구하는 이런 통합운동은 뉴에이지운동을 포함한 거의 모든 이단단체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경향이다. 그리고 통일교가 이렇게 인간적인 힘으로 세계의 통일과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예비하는 사탄의 역사일 뿐이다. 지금의 부패한 인간성으로는 인류가 통합할 수 없기 때문이며, 참된 통합과 통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부패한 인류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능력을 소유한 독재자가 필요할 것이며, 물샐 틈 없는 통제망이 요구될 것이다. 성경은 그 독재자를 적그리스도(요일 2:18),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살후 2:3~13), 짐승(계 13:11~18)이라고 표현한다.
맺는 말
이제껏 살펴본 대로 <원리강론>을 중심으로 한 통일교의 가르침은 성경과 완전히 다르다. 모든 교리적 면에 있어 성경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고, 전혀 일치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원리강론>을 중심으로 한 통일교의 교리는 결코 계시의 완성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혹시 그것이 소위 ‘계시’라고 할지라도 이미 계시된 내용과 전혀 모순되므로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라는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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