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최대의 절기인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반 언론에서조차 이 날은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거룩한 날이라고 설명한다. 3월 18일자 부산일보는 ‘인류구원 예수 부활을 기리며···’란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예수 부활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거룩한 사건이다. 예수 탄생이 기독교를 있게 한 사건이라면 예수 부활은 인류 구원의 종교로서 기독교를 완성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래서 예수 부활의 날을 대축일로 기념하고 성스럽게 지낸다. 오는 23일이 바로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그런데 ‘몸이 다시 사신 예수’의 부활에 대해 딴죽을 건 무리 중 최근 한국교회에 가장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측의 책자에도 예외없이 ‘영부활론'이 나온다. 이 책자가 말하는 예수의 부활은 정통 기독교의 부활관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김풍일 씨 등 교주를 신격화하는 단체에서나 볼 수 있는 부활관과 유사하다. 이는 신천지측이 1985년 펴낸 <신탄>이란 서적에 잘 나와 있다.
<신탄>은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영육간의 부활로 굳게 믿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엄청난 오해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예수의 부활이 영적 현상이었다고 하면 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 이상의 충격과 파문을 교계에 안겨 줄 것이다라고 마치 자신들만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 )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이러한 주장은 이미 자칭 보혜사라는 김풍일 씨의 <생명나무>라는 책에서 먼저 제기한 내용이다. 더 나아가 자칭 재림예수라는 구인회 씨도 동일하게 예수의 부활을 ‘영부활’이라고 주장했다. 교주 신격화 단체의 주장을 <신탄>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영 부활이라는 이유에 대해 <신탄>은 몇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예수님의 처형을 보고 실의에 빠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사건이다. 길을 걷는 두 제자가 눈이 가려졌다니 이것은 육안이 아니라 영안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도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란 주장이다.
둘째, 베드로와 바울이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았다(롬 1:4, 벧전 3:19)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는 예수의 부활이 영적인 차원의 부활이었다는 주장이다.
셋째, 예수님도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했는데 만일 부활이 영육간의 부활이었다면 영혼을 부탁한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성경을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생전의 몸과 똑같은 몸이지만 동시에 형태의 변화가 있었던 몸이다. 이에 대해 루이스 벌코프는 그의 책 <조직신학>에서 “우리는 부활이 설명할 수 없는 사건임을 인정한다. 그것은 기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부활체와 매장되었던 몸이 동일하다고 해서 양자가 정확히 동일한 입자로 구성돼야 함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썼다. 즉 예수님의 생전의 몸과 다시사신 예수님의 몸에는 어떤 신령한 변화가 생겼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의 변화된 몸과 관련 ‘신령한 몸’이라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신령한 몸으로 바뀌신 예수님을 두 제자는 알아볼 수 없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는 말씀 또한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부인하는 표현이 아니다.
후크마 주석은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본 절은 ‘죽으심’, ‘부활’, ‘육신’과 ‘영’이 대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헬라에서는 물질과 영을 나누어서 해석하는 방법이 유행하였으나 본절의 '육체로는'의 헬라어 ‘사르키’와 ‘영으로는’의 헬라어 ‘프뉴마티’는 도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아니라 영역을 나타내는 여격이다. 따라서 ‘육’과 ‘영’은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육’은 인간적인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영’은 부활하신 생명의 영역에서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나이다라고 하신 것도 같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한 언급이 아니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완전히 운명하셨음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죽었음을 말해주는 구절인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님의 부활을 영부활이라고 한다면 죽은 뒤 불멸하는 인간의 영혼과 예수님의 부활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정통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으로 생각하며 기념하고 축하하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신탄>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영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속내를 잠깐 드러낸다. “예수는 영적인 모습으로 현신하였다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등 뒤에 남겨 두고 영(구름)으로 승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실 때도 영으로 강림하신다”(420~421)는 것이 그것이다.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하셨으니 당연히 재림도 영으로 하신다는 뜻이 된다. 결국 <신탄>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의 영 부활 자체보다 영으로 재림하신다는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으로 다시 사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다시 사셨으며 정확하게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부활이야 말로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루이스 벌코프는 “부활은 하나님의 교회의 위대한 기초석 중의 하나이다”라며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천부의 추인이자 그것을 열납하셨다는 공적 선언이었다”고 말했다.
유명한 변증학자 래바이 재커라이어스 교수(얼아이언스 신학대학원)는 하나님께로 가는 여러 가지 길 중 예수도 그 중에 하나일뿐이라는 종교다원적 주장에 대해 예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반박한다. 예수가 ‘참진리’인 이유에 대해 그는“예수의 부활 때문이다”고 단언한다.
“부활 사건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습니다. 부활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신성에 반대되는 주장을 펴고 있는 다른 모든 종교 체계는 진리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저항할 수 없을 만큼 설득력이 강합니다.”(<특종믿음사건> 두란노, 리스트로벨 지음)
이뿐 아니라 1997년 출간한 <신천지 발전사>라는 책의 ‘신천지 증거장막성전 창립 연혁’에 보면 ‘1985년 6월 5일에 <신탄>을 출간했다’고 되어 있다(도서출판 신천지, 신천지 발전사 P4). 1985년 출간된 <신탄>은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주요 대학 도서관에도 납본됐다. 현재 이 책은 ‘대출가능’한 책자로 분류돼 도서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신천지측에 20년간 몸담았던 신현욱 전 교육장은 <신탄>에 대해 ‘신천지측의 교리서’라고 주장했다.
도서출판 신천지에서 발행한 <신탄-성경의 예언과 그 실상의 증거>( 김건남, 김병희 공저, 1985)를 통해 살펴본 부활 “예수는 영적인 모습으로 현신하였다가 영으로 승천했고 영으로 강림한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이 책을 읽어 나가자. 예수는 십자가 상에서 그의 육신을 죄인들에게 내어주어, 사랑과 희생의 도를 몸소 실천하고 구원의 길을 터놓으셨다. ··· 예수는 영적인 모습으로 현신하였다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등 뒤에 남겨 두고 영(구름)으로 승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실 때도 영으로 강림하신다”(420~421).
물론 육신 부활이면서도 그들 앞에는 나타날 수 없는 하늘의 큰 비밀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간 지상에 머물다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셨다는 점에 있다”(424p). “베드로의 견해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분명히 영적으로 부활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의 부활(과거 유대에서의 부활)이 영적인 부활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영적 이스라엘 시대를 이끌어 온 두 대표 사도의 견해는 한결같이 예수의 부활이 영적으로 이루어진 현상임을 천명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424~425p.)
7) 육신부활로 오해된 성구 해명 이상의 성구를 보면 한식 후 첫날 미명에 예수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 등 두 여인은 예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였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구운 생선을 잡숫기도 하시고 도마로 하여금 그 손을 내밀어 자기의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도 하셨다. 또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나에게는 있다고 말씀하셨던 점을 미루어 볼 때 누구라도 예수의 부활을 육체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문제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세 천사의 이야기를 상기해보자. 창 18:1~8 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그들이 가로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버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이 말씀의 전후를 유심히 살펴보면 여호와를 포함하여 세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아브라함이 진설한 음식을 먹고 두 천사는 소돔으로 떠난다. 또한 소돔성에 도착한 두 천사도 롯이 대접하는 무교병을 먹었으며 그 성읍의 백성들이 천사들을 상간하고자 롯의 집을 침입한 사례가 있다. 사람과 천사들이 천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동일하게 보았으며 음식을 먹었던 사실을 잊지 말자. 예수는 여호와의 사자요 아들로서 하나님이 영이시니 그도 영이시다. 더군다나 십자가의 희생으로 육신은 고난을 받으셨으나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 살아 계셨으니(눅 23:46) 안식 후 첫날 제자들 앞에 보이신 모습은 그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롯에게 나타난 천사들처럼 육신 인간과 전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생선이나 떡을 잡수셨다는 사실은 불합리한 점이 없다. 다만 몇몇 사람의 영안이 열려 예수의 영혼을 볼 수 있었던 것뿐이다. 그러므로 위 성구들이 예수의 육적 부활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429p~43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