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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넷플릭스 이후, ‘종교 혐오’의 파고 어떻게 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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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넷플릭스 이후, ‘종교 혐오’의 파고 어떻게 넘을까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3.03.24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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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사이비 실체 파악에 큰 역할, 더불어 한국교회에 큰 숙제 남겨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위력이 상상을 뛰어넘고 있다(본 글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넷플릭스의 위력을 감안해 편의상 ‘넷플릭스 시대’로 명명했다). 특히 1화~3화에서 다룬 ‘정명석’ 교주(기독교복음선교회)의 JMS가 가장 큰 충격파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 방영 후 JMS는 2023년 3월 23일, 교단 설립 후 최초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는 전적으로 환영한다. JMS는 한국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성폭행범이 이끄는 사교집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본 글에서는 JMS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딛고 넘어가야 할 숙제들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언론인이자 기독교인으로서 넷플릭스 방영 이후 기독교인들의 성찰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1편~8편이 사이비 문제에 집중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순간순간 당황스런 편집도 없지 않았다. 특히 ‘죽음의 아가동산’편에서는 비정상적 사이비 종교에 심취한 신도들의 실체와 더불어 종종 십자가와 교회의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사실 아가동산은 정통교회와는 달리 십자가 상징을 쓰지 않고 건물에 십자가도 달지 않는다. 게다가 아가동산 김기순 교주의 스승이라는 이교부 씨 또한 건물 간판에 십자가를 내리고 ‘종교를 없애러 온 사람이지 종교인이 아니다’고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소위 정통 기독교와 연결고리가 거의 없어진 사이비 집단이다. 그런데도 사이비 집단 문제를 방영하며 십자가와 교회를 오버랩시키는 장면은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사이비에 대한 불신을 넘어 ‘종교 자체에 대한 혐오’, 나아가 기독교에 대한 깊은 반감과 불신을 심어주는 요소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넷플릭스 시대에 한국교회는 이단 사이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깊은 불신과 반감과도 싸워야 하는 숙제를 안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먼저 이런 문화적 반감과 혐오는 그리스도인 스스로 ‘삶’ 자체로 지속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너무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기를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넷플릭스 방영 후 이단 사이비들은 붕괴될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넷플릭스 시대에 사이비들이 붕괴되지 않고 버텨가는 이유 중 하나는 이단사이비에 몸담은 사람들이 그 종파 안에서 특수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때로 그것이 형제, 자매로 불리는 사람들과의 끈끈한 공동체 의식일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한 그들만의 사랑과 나눔 때문이기도 하다. 신도들을 돕는 리더들의 모범적 모습, 경건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모습들(실제로 JMS는 표면적으로는 절대 금욕, 절대 경건을 표방한다)을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경험하고 느끼기도 한다. 사이비 단체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긍정적 경험은 매스컴에서 아무리 문제지적을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 바탕을 만든다.

이는 바꿔 말하면 넷플릭스 시대에 아무리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지나치게 과장되고 그것이 뿌리 깊어진다고 해도 크리스천들이 삶 가운데서 진정으로, 진심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된다면, 어떤 매스컴과 문화적 위협에도 무너지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위치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크리스천인 내가 먼저 교회 공동체가 이 사회의 희망임을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 주변 사람들에게 참된 크리스천으로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넷플릭스 시대에 기독교에 대한 반감과 혐오가 깊어진다고 탄식하기보다 이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야 한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 감독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 감독

다음으로 교회의 주인공인 2세대들이 하나님에 대한 깊은 경험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다음세대가 주역인 시대가 도래하는 중이다. 이들 스스로가 교회 직분자인 부모를 따르는 수동적 신앙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그들 스스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해야 한다. 즉, 가정과 교회와 사회 속에서 삶 속에, 기도 가운데, 말씀 가운데 그들이 어느 순간 영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일하시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만들고 열어 가신다는 깊은 확신을 갖는 순간을 가져야 한다. 이는 갑작스레 번개처럼 경험될 수도, 가랑비처럼 생활 속에서 서서히 일어날 수도 있다. 부모세대들은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자녀들에 대한 기도, 신앙교육, 특별히 부부간의 상호 존중, 거룩한 도덕성, 교회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굳건히 지켜가야 한다. 자녀 세대가 하나님을 만나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들은 많은 방황을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기까지 그런 시간을 거친 것처럼 말이다. 크리스천 2세대를 굳건히 지켜야 넷플릭스 시대뿐 아니라 그 이후에 벌어질 어떤 난관도 이겨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안의 사이비적 요소를 지속적으로 몰아내야 한다. 이단사이비의 특징은 세속적 욕망의 끝판왕이라는 점이다. 사이비란 한마디로 종교를 빙자해 사기를 치는 단체를 의미한다. 왜 사기를 치는가. 종교를 포장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큰 것을 얻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같은 신적 권력, 교인들이 바치는 전재산이나 노동력 등 거액의 물질, 수많은 여성과 남성의 집중적이고 농도 짙은 사랑, 사이비 교주가 되면 이 모든 것을 한방에 채우게 된다. 어떤 초소형 사이비 교주는 1~2명의 껍데기를 벗겨먹고 어떤 초대형 사이비는 많게는 수십만명의 삶의 모든 에너지를 빼앗는다. JMS급 교주가 되면 이것은 고대의 진시황이나 3천 궁녀를 거느린 의자왕 이상의 권세를 누린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에도 말이다. 이 유혹에 넘어간 사이비 교주들이 과연 정통 교회를 벗어난 사이비들에게만 발견되는 것이냐는 점이다. 한국교회 내의 목회자들에게는 이런 요소가 없느냐는 질문이다.

절대 권력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앉힌 사람들, 심는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악용해 축복받으려면 얼마를 바쳐야 한다며 빚을 지고 사채를 끌어서 헌금을 내도록 강요하는 사람들,  신도들이나 부교역자를 상대로 알파메일(Alpha Male, 짐승의 우두머리 수컷) 행세를 하려 하는 지도자들, 공동체의 목적과 집단주의를 위해, 또는 제자훈련이라는 미명하에 개인의 행복과 일상과 인격과 인권을 철저히 파괴하며 가스라이팅하면서도 죄책감 하나 없는 목회자들. 사이비 문제는 비단 외부의 문제만이 한국교회 자체의 문제는 아닌지 되돌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이단사이비 대처는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 시대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의미가 깊다. 40여년간 대학생이 가장 주의할 이단으로 신천지와 함께 거론되던 JMS가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나 ‘PD수첩’이 아닌 넷플릭스라는 점에서 이는 가히 놀라운 사건이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벌인 문화전쟁은 사이비만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교회 또한 그 파편에 깊은 내상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 넥플릭스 현상을 사이비만의 문제로 여길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을 통해 앞으로 더 질기고 강력해질 문화 전쟁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는 한국교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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