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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이대위에 대한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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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이대위에 대한 인터콥 최바울 선교사의 답변
  • 기독교포털뉴스
  • 승인 2018.07.09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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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가 인터콥 선교회 최바울 선교사에 대해 연구하자 최바울 선교사는 2018년 4월 12일 기성측에 답변서를 보내 반론을 폈다. 그는 △과거에 출판한 서적들의 내용에 대한 교계의 신학적 비판들을 겸허히 수용하였고 이들 서적들을 절판했다 △KWMA의 신학적 지도를 받았고 2014년 모든 신학적 문제가 해소되었다 △만화 ‘하나님의 나라’는 최바울의 허락없이 만화가 백OO씨에 의해 일방적으로 출판된 것으로 최바울은 이 책의 저자에서 자신의 이름을 삭제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최 선교사는 “교회가 기관화되고 문명화되고 타락한 것으로 비판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서구의 제도화되고 화석화된 교회를 비판한 것이지 한국교회를 기관화 문명화된 것으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시한부 종말론’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본인은 시한부 종말론자가 아니다”며 “당연히 저는 모든 민족에 대한 세계 선교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특정하는 결정적이거나 자동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와 기한은 예수께서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셨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다만 세계선교의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가 그 이전 2천년의 선교에 필적할 만큼 급속도로 이뤄졌고, 이는 주요한 종말의 표적이(다)”며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 주림의 재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갖고 더욱 선교에 헌신하자고 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성결교단(기성) 이대위 보고서에 대한 답변(반론) 전문이다. 

최바울 선교사

먼저 보고서에서 지적된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하며 성찰하며 또 설명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설명 드리기 전에 먼저 해명드릴 것은 귀 교단 신학보고서에서 사용된 본인 최바울 선교사의 저서들이 대부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어 본인에 의해 이미 판매금지, 서점 수거 또는 폐기된 책들임을 밝혀 드립니다. <세계영적도해>는 지적하신 내용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어 2011년 이후 중단되었으며, <왕의나라>는 세계선교협의회(KWMA) 인터콥지도위원회(서울신학대 박영환 교수 포함 10인 신학자)의 요청으로 일괄 중단 했고, 만화책 <하나님의 나라> 또한 후에 <세계영적도해>를 기반으로 각색하여 본인 최바울 선교사의 허락 없이 자의적으로 만화가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 저희가 문제 제기하여 중단된 책입니다(첨부자료1. [내용증명] 만화책 하나님의 나라 관련 건). 시대의 표적 역시 문제점이 보완되어 수정되었습니다. 따라서 보고서에 인용된 본인의 책들이 대부분 이미 본인에 의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인정되어 중단 또는 수정된 책들임을 밝혀드립니다. 한편, 본인이 조직신학 석사학위를 마친 후에 발간한 책 <언약과 선교>(2014)가 본인의 신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어서 참고자료(첨부자료2. 최바울 저서 『언약과 선교』)로 첨부합니다.
KWMA는 <인터콥신학지도위원회>를 구성하고 수년 지도 한 후, 2014년 4월 모든 신학적 문제가 해소 되었음을 공식 발표 하였습니다.(첨부자료3. KWMA 인터콥신학지도위원회 최종 보고서_2014.04.02). 당시 위원회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원장: 성남용교수(총신대목회대학원 선교학과 교수)
*지도 위원: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강변교회 원로목사), 김재성 교수(한국개혁주의신학회 회장,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 교수), 박영환 교수(기독교신학회회장, 서울신대 교수), 신경규 교수(고신대 선교학과 교수), 김병선 목사(GP선교회 대표), 김연수 박사(KWMA 협동총무).


I. 인식론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서울대 고려대 강사, 한동대학교 국제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한반도국제대학원 총장으로 있습니다. 국제지역학 박사로서 또한 국제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첨부자료4. 최바울 선교사 이력서). 대학교수이며 학자인 저를 반지성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마치 문명의 폐해를 지적하는 인문학자들을 반문명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인식론에 대한 보고서 내용에 대해서 먼저 해명하고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보고서에 나타난 연구자의 논점은 성경의 특별계시와 이성에 기반한 자연계시라는 구분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성경의 특별계시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우주와 자연을 통해서도 인간에게 필요한 지식을 공급하십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습니다(롬1:20). 따라서 만물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 계시만이 아니라 자연 계시에 근거한 지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 최바울 선교사의 글에서 비판한 지성, 학문, 과학은 이러한 특별계시/일반계시의 프레임 안에서 다룬 것이 아닙니다. 같은 용어인 지성이라도 프레임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집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문화와 세상 문화"의 조합(혼합), "하나님과 세상 임금의 화친"과 같이 특별계시를 훼손하는 차원에서의 세상 지식을 비판한 것입니다. 자연계시는 인문학적 지식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문학적 지식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식은 혼합주의 형태로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 하거나 전복하기도 합니다. 제가 비판한 것은 바로 지성의 이런 측면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연계시에 바탕 한 지성이 아니라 교묘하게 기독교 신앙 안에 자리잡은 반기독교적 인본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갖자는 것입니다.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개혁주의 최고의 종말론 신학자로 불리는 안토니 후크마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독교문화, 기독교예술, 기독교철학, 과학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등 기독교 적인 문화를 창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말 이전의 이 세상에서 전적으로 기독교 적인 문화를 성취하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아직 미래에 변화될 우리의 모습이 아니므로 기독교문화를 세우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단지 완성에 다가가는 것일 뿐이다. 비록 지금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 사이에 분명히 연속성이 있지만 다가올 세상의 영광은 지금 이 세상의 영광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p. 112-113).

문화관 및 세계관과 관련하여 이러한 관점은 저명한 기독교 문화관과 기독교 세계관 전문 신학자 데이비드 반드루넨도 강조하는 것으로, 이러한 관점은 본인의 문화관 및 세계관과도 일치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문화활동을 탁월하게 수행하고 그런 활동을 올바르게 해석하면서 스스로가 이 세계에 유익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문화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문화를 “속량”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룩한 경건한 문화의 성과가 새창조에 포함될 것이라고 암시한다면 나는 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데이비드 반두르넨, p. 270).

다시 말씀드리지만, 같은 용어라도 프레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특별계시/자연계시의 프레임에서 이해되는 지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반기독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지식은 분명 분별하고 점검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께서도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롬1:21-22)라고 허망한 생각과 미련한 마음에서 발생하는 자칭 ‘지혜있다’함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지식은 권력으로 작용할 뿐 인간을 살리지 못한다... 지식은 또 하나의 지배권력일 뿐이다.”라는 지적은 현대의 지식사회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학문적 이론입니다. 사회학은 다양한 차이들과 그 차이들의 갈등 혹은 기능적 상호작용으로 사회를 설명하는데 특별히 지식사회학은 그러한 사회의 운영 메커니즘 안에 지식이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지식은 중립적이거나 또는 구원 얻은 각성 상태에서의 지식이 아니라 권력-지식 혹은 이데올로기적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지성 메커니즘에 순진하게 속아서 좀비처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진리인 성경 말씀을 믿고 살아가자는 것이 저의 글의 논지입니다. 특히, 근대 초기 철학자요 과학자인 베이컨이 “지식은 힘이다!”고 선언했을 때, 그의 의도는 중세 크리스챤 유럽 세계를 지배했던 “말씀”이 아니라 “지식” 힘이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는 근대 지식의 역사가 성경 말씀을 지식으로 대치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개혁주의 신학자 게할더스 보스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그 죄의 상태로부터 다시 찾기 위해서 죄의 파괴적인 영향이 미치는 두 영역에 상응하여 두 가지 과정을 따라 행하셨다. 이 두 영역은 '존재의 영역the sphere of being'과 '지식의 영역the sphere of knowledge'이다. 존재의 영역에서는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구속의 과정이 채용되며, 지식의 영역에서 세상을 올바른 상태로 돌리는 데에는 계시(말씀)의 과정이 사용된다. 지식에서 성경말씀의 계시로 전환시켜야한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 p.145-146). 여기서 게할더스 보스는 지식의 영역이 계시, 즉 성경의 말씀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말씀을 대체시키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또는 신학 자체를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또한 늦었지만 신학교육을 받았고 한국개혁주의신학회 회장 김재성 교수의 제자로 조직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수료했습니다.

화란의 개혁주의 사상가 도예베르트는 성경의 종교적 근본 동인에서 하나님이 계시에 이르는 열쇠가 있다고 했고, 이 동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지배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적 근본 동인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는 신학적으로 정립될 수 없는 교리라고 했습니다. 신학은 본질상 그리고 스스로 성경적 근본 동인의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없으며, 만일 신학이 그런 주장을 펼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역에 반하여 서 있고, 사단의 세력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만일 신학이 신적계시의 동인으로부터 벗어난다면, 그것은 우상적, 비기독교적 근본 동인의 수정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도예베르트, p.32-33). 제가 문제로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체계화나 변증학으로서의 신학이 아니라 신학의 형태로 하나님의 말씀에 반(against)하는 그런 잘못된 체계화입니다.


II. 창조관, 세계관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보고서에서 지적된 <세계영적도해>에 등장했던 ‘하나님의 사정’에 관한 내용은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그 문제점을 인식하여 2011년 2월 초에 전면적으로 삭제하였습니다. 그 이후 2011년 9월부터는 더 이상 그 책을 발행하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KWMA의 최종지도 결과에 따라 문제가 지적된 다른 서적들 전부를 판매 중지하였으며, 2015년 2월에는 기독서점들에 잔량이 남아있는 것을 공문을 보내어 직접 회수하였습니다(첨부자료5, 서적반환 요청 공문).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하나님의 사정’에 대한 생각이 오류였음을 다시 한번 인정합니다. 창조이전에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다는 생각은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저는2013년 인터콥선교회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에서(첨부자료6. 하나님의 사정에 대한 반성, “겸손한 시도”) 이러한 오류를 통감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 인데도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의 뜻을 잘 알려고 '무리한 시도'를 하는 바람에 이런 오류를 범했다고 인정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영역인 우주 창조이전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것에 사과하고 이를 폐기했습니다.

인간의 창조 목적은 마귀를 멸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창조에서 온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창1:26-28)라고 명령하셨고, 에덴 동산에 두실 때는 특별히 구별된 거룩한 성전을 지키도록 제사장의 역할을 주신 것입니다(최바울, 언약과 선교,p.149). 하나님께서는 아담과의 특별한 창조언약을 통해서 에덴 동산의 청지기로서 아담에게 창조질서와 관련된 근본적인 관계, 즉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관계 질서를 다시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질서는 영원한 창조질서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찬양하며 예배하기 위함 입니다.(최바울, 언약과 선교,p.152).
또한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하나님과 사단의 대결로 인류 역사를 해석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조로아스트교 처럼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의 대결로 역사를 이해하는 이단 사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창세기 3:15,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는 은혜 언약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최바울, 언약과 선교, p.47). 여인의 후손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죄와 사망의 권세를 파하실 것을 창세기 3:15은 말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창세 전의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사단의 권세를 멸하시고 인류를 구속하신다는 사실을 자칫 하나님과 사단의 영적 대결로 오해하게 했던 점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는 분이며 사단은 결코 하나님과 대등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에 통치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사단을 대등한 신으로서 설정하고 이원론적 대결구도로 보는 것은 바른 신학이 아니라 이교사상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나타난 바 영적 전투라는 개념과 실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점은 저명한 학자들의 저술에도 잘 나타납니다:
“주님은 나라의 관념을 정치적 영역에서 영적인 영역으로 끌어 올리셨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정복이란 사단과 귀신들에 대한 것이요 죄와 악에 대한 정복인 것이다. 그것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것이다. (게할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p.52)

“시대의 표적은 역사상 지속된 <하나님의 나라>와 <악의 세력> 사이의 대립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군대>와 <사탄의 군대> 사이의 싸움이 세상 역사 내내 지속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후크마 p.194).

“그리스도는 분명 죄와 사탄에 대해 결정적인 승리를 얻으셨고, 따라서 이 싸움의 최종 결과는 결코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대적들> 사이의 대립은 끝까지 계속될 것이다.”(후크마, p. 254).

“역사에 대한 성경적 개념은 하나님과 사탄,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큰 간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아서글라서, p.369)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우주적 충돌이 있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장엄한 계획과 이에 대항하는 사탄의 어둠의 세력 간에 잦은 충돌이 있었다.”(아서 글라서, p.68)

이러한 면은 에베소서 6장에도 잘 나타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1-12).


III. 역사관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기본적으로 역사를 영적 투쟁의 결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며 이를 <언약과 선교>에서 체계적으로 다루었습니다.

한편,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말씀(text)와 역사와 세계 현상에 대한 이해(context)를 갖고 있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세계 현상에 대한 설명 가운데는 증명이 불가능한 추론의 영역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을 이름하여 음모론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모든 학문은 합리적 의심과 추론에서 출발하며 다양한 증거를 논리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타당성과 적합성을 얻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국제학과 지역학의 영역에서 대학교수로서 나름대로 연구하고 가르쳐왔습니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탄 침공과 미국의 석유-가스 지정학에 대한 합리적 의심에 근거한 연구는 다양한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 단순히 음모론 적으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이슬람의 글로벌 지하드는 미소 냉전 체제 붕괴 후 국제정치의 가장 첨예한 갈등구조이며, 이슬람이 종교문명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신이라고 표명한 것이지 하나님과 다른 신의 대결구도라는 이원론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이러한 역사와 세계에 대한 접근은 절대 진리가 아니며 학문적 작업에서 출발하는 합리적 의심과 추론에 대한 논리화 작업의 산물이며 학자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정과 관련하여 지적하고 있는 1차 자료인 『세계 영적도해』는 여러 저명한 신학자들의 지도편달을 거쳐 폐기한 책입니다.

한편, 대립적 이원론이라는 것만으로 이원론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성속을 나누는 헬라적 이원론적 접근 또는 카톨릭적인 이원론을 분명히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헬라적 이원론에는 선과 악의 절대윤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히려 히브리적 이원론 또는 이분법적인 접근이 성경적이라고 믿고 있으며 저는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 왔습니다.


IV. 구원관

귀 교단 신학 보고서는 본인 최바울 선교사가 이원론적 구원관을 갖고 있어 '세상 내에서의 관계성의 회복, 세상의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의 근거는 “문화명령은 선교명령의 종속 개념이지 결코 궁극적인 목적이 될 수 없다, “문화명령은 거룩한 도구”, “통전적 선교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온전한 복음은 교회 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온전한 복음은 통전적 선교 명분으로 선교를 봉사로 변질시키고 있다.” 등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전도와 말씀 사역 그리고 제자양육과 교회개척과 같은 기본적인 선교사역에 소홀하고 반대로 막대한 헌금이 투입되는 건물 구매와 프로젝트형 선교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습니다. 선교전략에 대한 논쟁을 바탕으로 저는 문화명령과 선교명령의 관계에 대해서 보다 세밀한 접근을 하였던 것입니다. 저희 단체는 영혼 구원과 성결만 아니라 병원, 학교, 농업 등 NGO, NPO와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형태로 아주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음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보고서에는 제가 웨슬리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을 하셨는데,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그 동안 장로교단으로부터 집중적인 신학검증을 받아왔기 때문이며, 웨슬리의 복음 증거의 열정과 윤리적 성결에 대한 강조를 선교사역에서 항상 강조해 왔으며, 물론 성결운동을 결코 폄하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현장에 나가서 선교하고 있는 인터콥선교회 1,200여명의 선교사 중에서 그 동안 윤리적 문제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도 말씀 드립니다.

더불어 저는 선교사 교육에 있어서 웨슬리 형제의 대학교 청년복음운동에 대하여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위대한 전도자요 목회자인 웨슬리는 분명 위대한 사도적 사역을 수행했다고 믿습니다.


V. 교회관

보고서는 제가 교회의 역사를 “기관화”와 “운동”의 긴장관계로 이해하면서, 교회는 세상의 중심에서 제도화 기관화 되어지면 타락하고, 주변부에서 운동을 통해서 새로운 부흥을 하게 된다고 본다고 지적했습니다.
역사를 문명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토인비의 담론에서 문명의 제도화(기관화)와 역동성의 길항관계는 역사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상식적인 술어들입니다. 또한 저명한 신학자 스니븐 나일의 고전적인 선교역사 책 <기독교선교사>(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에서 교회의 세속화를 교회의 문명화로 보며, 이를 ‘교회의 기관화(instutionalisation)’로 규정합니다. 교회의 기관화에 대한 반동으로 수도원운동이 일어났으며 교회의 순수성이 이렇게 보존되었다고 교회사 해석을 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최근 선교역사학자 폴 피어슨의 <기독교선교운동사>에서도 동일합니다: “새로운 부흥과 확장은 대부분 그 시대 교회권력 구조의 변두리에서 시작된다"(폴 피어슨, p.17)."수도원운동은 제도권교회의 형식주의와 기관화(제도화:institutionalism) 및 명목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폴 피어슨, p.146). "모든 갱신운동은 기관화의 위험에 직면한다. 기관화 현상은 개척자의 초기비전을 추구하기보다 기관이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가치가 될 때 일어난다. 모든 갱신운동은 이런 기관화의 위험과 공존한다. 우리는 이런 기관화의 부정적 면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폴 피어슨, p.157)

교회는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 고백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전이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촛대로서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과 구분되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기관화 되고 제도화 되면서 진리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상실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강조한 것입니다.


VI. 종말관

보고서는 제가 "재림의 때와 시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태복음 24:14절을 근거로 모든 종족들(nations, ἔθνεσιν, 에트네신)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재림의 조건임을 강조'하면서, "이 시대를 예수님의 재림 전의 마지막 세대라고 주장"한다고 지적 합니다.
물론, 마태복음 24:14절이 재림의 때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으로 볼 수 없다는 성서신학적인 반론들이 있지만, 반대로 개혁주의 조직신학자인 안토니 후크마와 같은 학자는 세계복음화를 주의 재림의 구체적인 표적들의 하나로서 복음의 만국 전파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다시 오시기 전에 지상의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모든 민족에 대한 하나의 증언으로서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후크마, p.198).

즉, 안토니 후크마는 세계선교의 완성, 즉 이방 민족들에 복음 전파와 유대인의 회심이 종말론적 구속사의 표적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대의 표적들이 있다. 시대의 표적은 선교적 복음 전파의 완성, 이스라엘의 회심, 큰 배교, 대환란, 적그리스도의 등장 등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들을 가르키는 말이다…. 선교적 복음전파를 생각해보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따라서 이러한 선교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적인 표지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르키는 표적이다. 선교적 복음전파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과거에 거두신 승리를 상기시키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예고하는 표적이다” (안토니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pp. 105-106).
미국의 저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조지 래드의 저서에서도 이러한 관점은 강조되고 있습니다. “종말론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볼 때 새언약은 우리 주 예수님의 재림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이 이스라엘을 넘어서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를 통해 성취될 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그리고 이것은 마태복음28장의 예수님의 위임 대명령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조지 래드, 하나님 나라 제대로 알고 믿는가?)

올리버 헤이우드 역시 동일하게 설명합니다: “모든 민족에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고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적그리스도가 정복되면 주님의 일은 완성된다.”(Oliver Heywood's Dairies, edited by J. Horsfall Turner, 1882, vol. 1. p. 212.)
한편, 보고서에서 인용한 신약학자 이필찬 교수는 골로새서 1: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를 근거로 사도바울이 이러한 종말론적 비전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골1:23에서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의 '만민'은 헬라어 본문에서 <ἐν πάσῃ κτίσε,엔 파세 크티세>, 즉 모든 피조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영어 성경 NIV도 “that has been proclaimed to every creature under heave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골1:23의 만민은 모든 민족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to every creature’,NIV>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필찬 교수의 주장은 근거가 미약합니다.
또한 본인 최바울선교사는 시한부 종말론자가 아닙니다. 안토니 후크마도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분파주의 이단의 특징이다”라고 했습니다.(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p. 190).
당연히 저는 모든 민족에 대한 세계 선교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특정하는 결정적이거나 자동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와 기한은 예수께서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안토니 후크마 또한 "이 표적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의 정확한 날짜를 확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후크마,p.199).

다만 세계선교의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를 바탕으로 지난 100년 동안의 선교가 그 이전 2천년의 선교에 필적할 만큼 급속도로 이뤄졌고, 이는 주요한 종말의 표적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 주림의 재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갖고 더욱 선교에 헌신하자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4-15)라는 선언하셨을 때 종말은 이미 초림에서 시작이 되었고 재림 때까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뤄진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적 영적 긴장속에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요한계시록의 핵심 주제인 고난과 박해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다시 오심(maranatha)을 희망하며, 세상을 이기고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선교는 종말론적 구속사의 중심사역이라고 믿으며 모든 성도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선교에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존 칼빈 역시 “우리의 시선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에 고정시키는 것을 배우자”라고 설파했습니다.(이안 머리, 청교도소망, p.75). 선교와 재림소망의 상관성은 청교도 신앙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복음의 전세계적인 전파가 성경에 약속되어 있다는 것과 그것은 반복되는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실현 되리라는 것과 교회는 이 목적의 성취를 위해 지명된 거룩한 수단이라는 것을 믿었다.”(이안 머리, 청교도소망, p.142)


VII. 선교관

본인 최바울 선교사는 미전도종족(unreached people groups)선교와 백투예루살렘 그리고 서구와 비서구의 분업적 협업 제안에 대해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미전도 종족의 의미는 선교학에서 개별 민족 단위 내 복음적 기독교인의 역량이 자체 민족 복음화 하기에 못 미치는 상태에 있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정량적으로 몇%라고 할 수가 없으며 저는 결코 이런 정량적 기준을 제시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민족복음화를 감당할 수 있는 개별 족속이 증가하고 있다면 세계선교는 보다 역동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또한 세계 복음화의 전개가 어떠한 경향성을 갖고 이뤄지고 있는지 볼 수 있도록 선교학적으로 통계화 한 것입니다.
본인은 선교가 제자훈련과 교회개척을 근본으로 해야 한다고 십수년 동안 선교훈련을 해오고 있고, 약 1,200명의 저희 단체 선교사들 대부분은 선교지 현장에서 지금도 바로 성경적 관점에서 바로 제자훈련과 교회개척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교회의 선교 운동인 백투예루살렘은 선교적 전략과 구호이지 어떠한 성경적 근거를 갖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증거되기 시작하였고,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출발점은 곧 종착점이라고 형식논리학적으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저희 단체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이슬람권에 파송했으며, 이슬람 지역은 바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동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전지구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편 백투예루살렘은 본래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선교하자는 것으로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대부분 이슬람 권임을 고려할 때 이슬람선교하자는 것입니다. 백투예루살렘은 특정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백투예루살렘은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to Jerusalem)" 선교하자는 이슬람선교운동이며 구호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슬람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식으로 "이슬람선교하자!"는 선교적 용어를 공공연히 하는 것보다 은유적인 백투예루살렘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9.11 사태이후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선교하는 단체나 교회들이 취할 수 있는 적절한 접근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서진운동>은2006년 1월에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이사장 통합 박종순 목사, 회장 합동 강승삼 목사, 사무총장 합신 한정국 목사, 한국최대 선교단체연합회로서 160여개의 한국 대부분의 교단 및 선교단체가 개입되어 있음)에서 발표한 <한국교회 세계선교비전> 문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24:14, 눅24:47, 롬11:25). 이는 당시 한국의 대부분의 교단 선교부가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첨부자료6. [KWMA] ‘복음의 서진’에 대한 정기총회 자료집).

그리고 서구와 비서구로 선교를 분담하자는 제안은 복음의 두 측면을 나눈 것이 아닙니다. 서구 단체들이 보다 사회복음 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고 우리가 맹목적으로 서구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말씀과 전도 그리고 교회개척 사역에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따라 프런티어 미션에 한국 교회가 더 주력하자는 것입니다. 서구 단체들이 사회구호와 프로젝트를 하고 있으니 우리 안에서 일종의 역할 분담으로 해석하고 균형을 맞추자는 주장이지 결코 복음을 두 측면으로 인위적으로 나눈 것이 아닙니다.
한편, 그동안 인터넷에 유포된 바, 인터콥선교회가 위험한 선교 또는 공격적 선교 등 무리한 선교방법으로 말미암아 문제가 많았다는 주장과 그 근거로 자주 거론되는 아프간피랍사건은 저희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음을 밝혀드립니다. 당시 샘물교회팀 파송에 인터콥은 전혀 관계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사실은 샘물교회 담임목사였던 박은조 목사께서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최근 파키스탄 중국인 납치 살해사건도 인터콥이 일으킨 사건이다 라는 주장도 사실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 받아 인터콥 선교사가 해당국가에서 재판을 받았으나 관련 없어 무죄로 석방되었습니다.
끝으로 저의 선교관에 관하여, 기존의 선교를 매도하는 배타적, 독선적 선교관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지적을 했습니다. 인터콥 선교회가 국내 최대 선교단체로 성장 하다 보니 의도적이지 않게 교만하고 독선적으로 비추어 졌을 수도 있으며 주변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면이 적지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이 또한 저희의 책임이라 통감하고 있습니다. 저희 단체가 평신도전문인 선교 단체이다 보니 열정은 앞서나 목회적 소양 부족함 또한 적지않았습니다. 또한 지난30년 동안 저희 단체가 이슬람선교 사역을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이슬람권 현지 상황으로 인해 극도의 긴장관계에서 선교 사역을 계속하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지적 사항에 대하여 적극 성찰하여 더욱 더 상호 배려와 협력의 선교를 수행하는 성숙한 선교단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참고문헌>
- Oliver Heywood's Dairies, edited by J. Horsfall Turner, 1882, vol. 1. p. 212
- 게힐더스 보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은혜와 영광, 원광연 옮김(1998)
- 게할더스 보스, 조지 래드 공저, 하나님의 나라, 제대로 알고 믿는가, 정정숙 옮김(2007)
- 데이브드 반드루넨, 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아가기, 윤석민 옮김(2012)
- 도예베르트. 서양문화의 뿌리, 문석호 역(1994).
- 아서 글라서, 하나님의 선교, 임윤택 옮김.(2010).
- 안토니 A. 후크마. 개혁주의 종말론, 이용중 역(2012).
- 이안 머리. 청교도소망, 부흥과 세게선교를 향한 청교도의 열정, 장호익 옮김(2011).
- 스티븐 나일, 기독교선교사, 오만규 역(1980)
- 폴 피어슨, 기독교선교운동사, 임윤택 옮김(2010)
- 최바울, 언약과 선교. (2014)

<최바울선교사 약력>
[학력]
- 1982년 2월 서울 소재 대학교 졸업
- 1986년 1월 Hacettepe University 사회과학대학원 석사
- 1989년 12월 Hacettepe University 사회과학대학원 박사
- 1992년~1994년 아시아연합신학교 신학대학원 M. Div. 과정(2학기 학업)
- 2011년 침례교신학대학원 연구원(M. Div.) 과정 1년 수학
- 2012년 8월 KUIS대학원 M.Div. 졸업
- 2014년 8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학석사(Th. M.) 조직신학 전공 졸업

[신앙이력]
- 1983년 선교사 파송(인터콥선교회 파송)
- 1989년 온누리교회(하용조목사) 파송선교사
- 1998년 11월 온누리교회 장로장립(통합교단 평양노회)
- 2003년 4월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안수(LA한인침례교회 박성근목사 시무)
- 한국독립교회연합회(KAICAM) 부회장 역임

[경력사항]
- 1989년~1991년 앙카라국립대학교 교수
- 1992년~1993년 아시아연합신학교(ACTS) 강사(아세아학과)
- 1992년~1994년 고려대, 한국외대 강사
- 1994년~1998년 서울대 강사
- 1994년~1999년 호서대 교수(해외개발학과)
- 1999년~2005년 한동대 교수(국제학 전공), 한동대 기획처장, 국제학부 학부장
- 1994년~ 현재 국제중앙아시아학회(IACAS) 회장
- 1999년 한국투르크학회 회장
- 2005년~현재 국제알타이민족학회 공동회장
- 한국NGO학회 국제이사
- 전문인선교협의회(KAT) 회장 역임
- 선교타임즈(KWMA발간) 편집장 역임
- 한반도국제대학원대학교회 총장
- 전방개척선교 저널(KWMA발간) 편집장
- 인터콥선교회 본부장

주후 2018년 4월 12일
최바울 선교사


첨부자료
1. [내용증명] 만화책 하나님의 나라 관련 건
2. 최바울 저서 『언약과 선교』
3. KWMA 인터콥신학지도위원회 최종 보고서_2014.04.02
4. 최바울 선교사 이력서
5. 서적 반환 요청 공문
6. 하나님의 사정에 대한 반성_"겸손한 시도"
7. [KWMA] ‘복음의 서진’에 대한 정기총회 자료집

기타 참고자료
8. 온누리교회 당회장 이재훈 목사의 청원서
9. [크리스천투데이 기사] 인터콥선교회, 강승삼 목사 이사장 취임으로 새출발
10. [코람데오닷컴 기사] 인터콥선교회 - 이단성 논쟁 종결과 새 이사장 취임
11. [KWMA 공문] 예장(개혁)교단의 질의에 대한 KWMA의 회신
12. [코람데오닷컴] 베뢰아 이단성 문제에 대한 소고
13. [코람데오닷컴] 최바울의 신사도운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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