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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수용하는 '퀴어 신학' 어떻게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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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수용하는 '퀴어 신학' 어떻게 봐야하나?
  • 김민주
  • 승인 2016.07.27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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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퀴어 신학의 이단성에 대한 올바른 분별 필요하다
▲ 탈동성애인권교수포럼에 참석한 인사들(왼쪽부터 하다니엘·이승구·이요나·정군효·김규호 목사) - 사진 건전신앙수호연대 제공

2015년 11월 20일에 열렸던 제 2차 탈동성애인권교수포럼에서 건전신앙수호연대의 하다니엘 목사(사단법인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가 ‘퀴어 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발표했다.

동성애에 대한 입장... 엇갈린 두 진영
하 목사는 동성애와 관련해 기독교내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는 주제는 ”동성애 혹은 동성애자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동성애가 죄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를 일종의 언어적, 문화적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진보성향의 계급 투쟁적인 관점과 맥을 같이하며, 개인의 책임보다는 모든 것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는 게 하 목사의 분석이다. 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진영은 “복음을 통해 죄와 욕망에서 전인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탈동성애를 지향점으로 두고 교회는 치유와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 목사는 동성애에 대해 양쪽 의견이 엇갈린 상황에서, “퀴어 신학은 동성애자들에게 기독교를 공격하고, 회유하고, 왜곡할 수 있는 학문적 명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를 왜곡하는 퀴어 신학”
테드 제닝스(시카고대학 신학교 교수)는 대표적인 퀴어 신학자로서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인 <예수가 사랑한 남자>에서 동성애자들을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할 대상으로 봤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관점이 잘못된 동시에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 목사는 제닝스가 성경을 “게이적 성경읽기”로 접근한다고 표현했다. 즉 “그의 해석은 동성애적으로 의도된 것이며, 자의적인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책에서 제닝스는 “많은 수의 성서 텍스트들이 동성애적 관계들과 행위를 긍정하고, 심지어 찬양까지 한다.”고 했으며, 예수님의 행위를 동성애적 행위와 연관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줄 때 예수님은 옷을 벗은 상태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릎에 눕거나 가슴에 닿을 정도로 바짝 기대 있었다”고 하면서, 이것을 “물리적인 접근과 육체적 친밀함의 표현으로 사랑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 목사는 “설사 가정이라 해도 정통교회나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며, “교묘하게 예수를 게이라고 가정하면서 소설을 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퀴어 신학,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성경은 일관되게 동성애를 하나님의 뜻과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퀴어 신학’은 지나친 가정법의 사용, 성 해방의 관점에 역사성을 더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가족관, 윤리관이 파괴되고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하 목사의 비판이다. ‘퀴어 해석’이 일반화 된다면 퀴어 문화를 중심적인 가치로 내세운 교회가 등장할 것이고, 성경적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교회를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하 목사는 “예수를 게이로 가정하고, 성경을 왜곡하는 잘못된 신학은 충분히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의 근본을 뿌리부터 흔드는 퀴어 신학과 해석은 동성애자들을 교회가 따뜻하게 받아주고 탈동성애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랑과 포용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앞으로 한국교회는 퀴어 신학의 이단성에 대해 신중하게 분별하고 성경에 입각한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하다니엘 목사의 발제문 전문이다. 

 

<발제문 3>

퀴어신학의 이단성에 관하여

하 다니엘 대표(건전신앙수호연대 대표, 사단법인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의회)

기독교에서 동성애 문제를 이단문제로 볼수 있느냐에 대해서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관점은 유보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동성애가 인간의 욕정과 성적 지향과 취향의 문제이며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과연 맞는 것인지,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오늘날처럼 고도로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조치들이 요구되고 있다. 현대의 이단은 조직화된 종교의 형태만으로 국한해서 정의될수 없다. 지금까지 이단에 대한 논의는 특정 집단의 교리체계나 그 집단을 이끄는 교주에 집중되었지만 이단의 영역은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체계를 왜곡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파괴하고 위협하는 종교성을 띄는 집단과 사상과 문화와 학문의 영역을 포괄한다.

현재 국내에서 나타난 동성애 문제는 여타 국가와는 다른 특수한 상황이다.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치적 상황, 동성애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릇된 정치문화, 잘못된 언론환경, 기독교와 동성애 세력의 극한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동성애 문제를 단순히 윤리 문제로 국한시킬수 없는것은 동성애 세력과 정치적, 이념적 성향을 공유하는 진영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반교회 운동을 강화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동성애자들은 억압받는자와 억압하는자의 대립구도로 투쟁의 프레임을 짜고 일부 급진진보세력들은 기독교가 수천년간 지켜온 신앙과 윤리를 무시한채 보수 기독교계를 수구적이며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 과정이 전혀 없이 개인의 성적취향을 법제화하고 교회의 가르침에 재갈을 물리려는 기독교를 향한 폭력적인 시도를 자행하면서 현재 교회는 불가피하게 방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이런 움직임이 교회 내부의 논쟁으로까지 번지면서 동성애에 온건한 입장과 강경한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내에 가장 주된 이슈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진영에서는 그들을 사회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성적 차별에서의 해방이다. 그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규정하는 것 자체를 일종의 언어적, 문화적 폭력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평등, 해방의 논리는 진보진영의 계급투쟁적 관점과 맥을 같이하며 개인의 책임을 방기하고 모든 것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돌리는 경향을 가진다. 일부 좌파 진영의 논리와 동성애자들의 목소리가 하나되어 그들의 투쟁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진영에서는 진정한 해방은 동성애의 사회적 해방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힘으로 죄와 욕망에서 전인적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사실 교회가 그들을 포용할 것인가 배척할 것인가의 문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교회는 그들을 치유하고 회복하도록 도와야한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향점은 반드시 동성애로부터의 탈출이 되어야한다. 그 지점에서 동성애 문제에 대한 양 진영의 생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퀴어신학이라는 장르는 동성애자들에게 기독교를 공격하고 회유하고 왜곡할수 있는 학문적 명분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문화계에서 흔히 하는 표현중에 “예술과 외설 사이”라는 말이 있다. 선정성을 띈 특정 영화나 전위적 예술을 평론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외설이냐는 논란이다.

최근 한국에 퀴어신학자들의 책이 소개되고 있는 가운데 가장 널리 소개된 책은 테드 제닝스의 책이다. 그의 책을 면밀히 분석해본 결과 과연 어디까지가 신학이고 어디까지가 외설이고, 어디까지가 학문이고 어디까지가 이단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테드 제닝스는 대표적인 퀴어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듀크 대학을 졸업하고 에모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시카고 신학교에서 성서신학과 구성신학을 가르친다. 그는 급진주의적 신학자이면서 동성애 문제를 해방신학적 관점으로 해석해왔다. (데리다를 읽는다. 바울을 생각한다. / 예수가 사랑한 남자 / 야곱의 상처: 고대 이스라엘 문학의 동성애 설화 / 플라톤 혹은 바울? : 서양의 동성애 혐오의 기원들 등이다.) 그는 "예수가 사랑한 남자“라는 책에서 동성애자들을 억압에서 해방되어야할 대상으로 보고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 관점이 잘못되었고 왜곡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을 “게이적 성경읽기”로 접근한다. 그 전략을 네가지로 소개한다.

1. 성경 안에 있는 동성 간 성행위에 관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모욕과 심지어 법률 제정을 위해 가정된 성서적 근거에 도전하는 전략

2.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경의 텍스트들이 왜곡되었음을 증명하는 전략
(이성애적 독해가 아니라 게이적 독해를 해야할 필요성을 강조. 기존의 독해는 이성적 결혼과 가족 가치들의 전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자체적인 전제들을 텍스트에 투영하여 독해한다는 주장)

3. 게이를 지지하는 해석적 전략. 요나단과 다윗, 룻과 나오미, 백부장과 그 하인, 예수가 사랑한 제자들을 통해서 게이적 해석을 하는 전략

4. 게이적, 퀴어적 감수성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전략. 동성애를 긍정하는 입장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

나는 테드 제닝스가 쓰는 “전략”이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그것은 제닝스의 텍스트 해석이 동성애적으로 의도된 해석이며 그 자체로 자의적 해석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서의 전승을 동성애 혐오와 이성애로부터 해방시키고 비성애 혐오적인 신앙의 이해에 대한 길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성서 텍스트를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부터 분리시키기위한 의도된 해석인 것이다.

제닝스가 주장한 몇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나는 예수는 게이였나? 라는 질문으로 이 연구를 시작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나는 처음부터 이 질문이 주어진 그대로 단순한 ‘예’ 또는 ‘아니오’라는 대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첫째, 동성애에 근대적 사상이 그런 것 만큼이나 게이에 대한 오늘날의 사고방식도 지난 1세기동안의 생각이나 관점과는 잘 들어맞지 않는다......우리는 성이 자연스러운 것이거나 또는 공개적으로 보일수 있도록 전시되는 것의 확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예수와 그가 사랑한 그 남자 사이에 관계를 동성애적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제닝스는 성경이 동성애를 찬양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많은수의 성서 텍스트들이 동성적 관계들과 행위를 긍정하고 심지어 찬양까지 한다.”

“실제로 상당히 전통적인 해석학의 성애혐오적 전제들은 예수를 한 사랑받는 자와 애인 관계에 두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기존 입장이 전승과 편견에 입각하여 예수와 다른 인간 사이의 성애적 연관성을 독자의 시선으로부터 감추려는 음모를 꾸며왔다고 주장했다. “전승과 편견이 예수와 다른 인간간의 성애적 연관관계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후보자를 독자의 시선으로부터 감추려는 음모를 꾸며왔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정도는 조심스럽게 이 관계의 독해를 게이를 긍정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야만 한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최후의 만찬 장면을 두고 제닝스는 “예수가 옷을 벗고 그의 친구들의 발을 씻는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라는 언급을 통해서 최후의 만찬을 동성애적 스킨쉽의 연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요한복음 13:21-26절에 나타난 내용을 들어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장면과 예수님이 부활후에 다시 베드로를 찾아가셨을 때 베드로가 옷을 벗고 있다가 주워입고 바다로 몸을 날렸다는 표현으로 동성애적 상황을 연상하도록 의도한다. (관음증 환자처럼 성경의 문틈으로 동성애적 시선을 들이댄다.)

제2장 ‘사랑하는 사람과 그의 사랑받는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류애의 본성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과 그 사랑에 대한 그의 예증과 일깨움에 따라 한 남자는 정말로 그가 사랑했던 제자, 즉 예수에게 사랑받는 애인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이 텍스트는 예수가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내밀한 의미에서 한 사랑받는 사람과 애인 관계에 있었다는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 위해 옷을 벗은 상태를 가정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릎에 눕고 가슴에 기댈 정도로 바짝 기대 있었다는 것은 물리적인 접근과 육체적 친밀함의 표현에서 사랑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행위를 게이적 행위로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설사 가정이라 할지라도 교회사 전체를 통틀어 결단코 정통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복음주의 진영 교회에서 상상조차 할수 없는 해석들이다. 고대 유대사회에서도 절대로 동성애를 긍정하는 해석을 하지 않는다. 그는 교묘하게도 예수를 게이라고 가정하는 가정법을 전제로 다양한 상상을 펼쳐보이며 마치 그렇게도 볼수 있는것처럼 한편의 소설을 써나가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소설은 말 그대로 픽션이지만 소설안에도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세계관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닝스의 소설같은 논거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는 여러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언급함으로서 마치 당시에 동성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있었던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일부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동성애적 정황들과 성서 텍스트의 본질이 어떠한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성서 텍스트는 일관되게 동성애를 하나님의 뜻과 반하는 것이요 순리를 역리로 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의 이단들은 소위 알레고리적 해석을 통해서 성경을 교묘하게 왜곡하는데 제닝스의 해석은 지나친 가정법과 성 해방의 관점, 그리고 역사성의 가미를 통해서 고등한 방법으로 천박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이러한 해석들이 힘을 얻고 일반화된다면 퀴어문화를 중심가치로 내세운 교회가 등장할 것이고 창세기서부터 확립된 남녀관과 가족관, 성경적 윤리관을 뿌리채 흔들어 또 다른 충돌과 혼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으며 그러한 집단이 전통적 가치관을 지키고자 하는 교회를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부정할수 없다.

만약 예수를 게이로 가정하고 성경을 왜곡하는 잘못된 신학을 이단적이라 말할수 없다면 무엇을 이단이라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성경의 근본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며 동성애자들을 교회가 따뜻하게 받아주고 그들의 손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는 사랑과 포용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직시해야한다. 앞으로 퀴어신학의 이단성에 대한 한국 교회의 신중한 분별과 단호한 입장이 요구된다. 더불어 모든 인간은 하나님앞에 구원이 필요한 똑같은 죄인으로서 우리가 동성애자들과 함께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자 그들의 손을 잡아주려는 노력이 호모포비아로 폄하되고 억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고 동성애를 통해 괴로움을 겪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탈동성애자들의 인권이 무시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말

현재 기독교 진영안에서 일부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까지 동성애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신사도 운동의 영향권 아래 있거나 신비주의나 극단적 성향의 단체들도 있다. 만약 일부 이단들이 동성애 문제를 제기하다가 그들의 극단적 성향으로 인해 동성애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폭력을 행사한다면 기독교 진영의 동성애 반대 목소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수 있다.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동성애 반대 진영에 대한 신중한 분별과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진정성 있게 접근하려면 반드시 탈동성애 운동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탈동성애 운동을 외면한채 반동성애 운동에만 치우친다면 동성애 진영의 논리와 공격에 맞서기 어렵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모든 죄의 문제가 치유될수 있다는 믿음으로 탈동성애 운동을 전개해야하며 그 운동을 탈동성애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도록 지원해야한다. 탈동성애자들을 돌보고 상담할수 있는 전문사역자 양육과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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