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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리, 우리 시대 ‘희망의 메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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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리, 우리 시대 ‘희망의 메신저’
  • 정윤석
  • 승인 2013.04.23 04: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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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가더라도 한사람씩 챙기며 가고 싶어요”

정애리(54, 강남교회), 그녀가 책에 사인을 해서 선물해줬다. ‘정’을 갈겨 쓴 부분을 얼핏보면 29로도 보인다. 그렇다. 그녀는 20대~30대의 젊은이처럼 열정적으로 산다. 감성은 아직도 10대 소녀처럼 수줍다. 넉넉하게 나누는 삶을 보면 어머니의 희생이 엿보인다. 

▲ 정애리 권사의 사인. '정'이라고 쓴 부분은 얼핏 보면 29로도 보인다

25년동안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성로원’(고아원)과 봉사의 인연을 맺어왔다. 1989년 성로원에서 촬영할 기회가 있었다. 어린 아이들 100여 명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가면서 안스러운 마음에 아이들에게 “다시 올게”라고 말했다. 이후 잊어버리려 했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부담이 가시지 않았다. 스스로 성로원이 어딘지 잊어버렸다는 핑계를 대며 다시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노량진 고시원에서 촬영할 기회가 있어 성로원을 다시 지나치게 됐다.

더 이상 핑계를 댈 수가 없었다. 기도하며 혼자서 다시 그곳을 찾았다. 성로원측 사람들은 반색했다.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정 권사처럼 다시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성로원과 이렇게 맺어진 인연을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처음 8년동안은 봉사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다녔다. 그러나 그 사실을 공개했을 때 나눔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나눔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린다. 월드비전 친선대사를 비롯 연탄은행, 생명의 전화, 아프리카 미래 재단 등의 홍보 대사 등으로 활동 중이라는 것을.

▲  최근 펴낸 [축복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

요즘 그녀는 페이스북(페북)에 푹 빠져 있다. 사진도 찍고 글도 직접 쓴다. 컴퓨터를 1시간만 봐도 하루 종일 본 사람처럼 눈이 아프다. 다행히 스마트폰은 사용할 만했다. 폰을 이용해 글도 쓰고 사진도 찍어서 페북에 올렸다. 2012년 8월에 시작한 일이었다. 남편 지승룡 소장(민들레영토)이 페북을 하자고 초대했다. 워낙 촬영 스케쥴에 쫓기는 정 권사지만 그래도 시작해 봤다. 지 소장이 신학적인 담론, 사회 이슈와 관련한 포괄적인 얘기를 썼다. 반면 정 권사는 평범한 일상에서 누구나 만나고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얘기들을 썼다. 8개월 동안 정 권사의 페북친구가 5천명이 됐다. 그들과 정 권사는 따스하게 교감하며 소통하는 중이다(https://www.facebook.com/1004AR).

정 권사는 뭔가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순간, 순간의 삶에 충성하면 됐지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첫 책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랜덤하우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북 정읍의 도시락 나눔의 집을 설립할 수 있도록 기부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에 작년 8월부터 올린 글들을 책으로 엮어 두 번째 책 <축복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forbook)을 출판하게 된 이유다.

▲ 아프리카 어린이들과 함께한 정애리 권사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잖아요.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책을 내서 기부를 하는게 사랑이라면 기꺼이 이 수고를 감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 책으로 얻어지는 인세도 그녀는 전액 사회복지 시설에 기부할 계획이다.

정 권사는 매일 말씀을 읽으며 묵상한 구절을 사람들에게 보내준다. 하루 20명에게 매일 보낸다. 외국 갈 때를 빼고는 자신이 돌봐야 할 사람이라 생각하면 문자를 보내며 위로의 말씀을 전달한다.

이광기 씨의 한 아들이 2009년 연말 신종플루로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그 소식을 뉴스를 보고 알았다. 한달 정도가 지났을 때 갑작스레 이광기 씨를 생각하며 대성통곡을 하며 눈물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이광기 씨를 위로하신다는 마음도 느껴졌다. 세상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그에게 용기를 내서 문자를 보냈다. “광기 씨를 잘 모르지만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로해 주라는 마음을 주셨어요.” 다행히 그는 너무도 고마워했다.

이후로 인연이 돼 꾸준히 말씀을 보내줬다. 문자나 전화를 해서 ‘잘 지내?’라고 묻는 날은 여지없이 이 씨가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다. 지금은 많은 회복을 하고 있다. 이광기 씨가 어느날 공중파 방송에 나와 “매일 내게 힘이 되는 문자를 보내는 분이 계신데 내가 그것 때문에 산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정애리 권사의 문자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김구라 씨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도 마음에 걸려 문자를 보내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진실 씨의 자살로 한국사회가 떠들썩 했을 때는 이영자 씨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늘 그녀를 위해 기도하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 권사는 “너무 빠른 성장 속에 사람들이 너무 어지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며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낙오시키고 홀로 빨리 가기보다 늦게 가더라도 한사람 한사람씩 챙겨가는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한다.

▲ 요즘 그녀는 페북에 푹 빠져 있다

정 권사의 남편 지승룡 소장은 “결혼 2년차가 됐는데 촬영하는 날 외의 시간은 늘 성경을 보고 기도하며 보낸다”며 “늘 깨달은 말씀은 타인들과 나누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고 말한다. 지 소장은 “합리적, 이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나와 달리 정 권사는 기도를 많이 하는데 그 힘이 없다면 과연 그녀에게서 글과 연기와 해외 봉사 활동과 기부하는 마음이 나올수가 없을 것이다”고 말한다.

올해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다. 새벽에 벅벅 마당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해 밖을 내다보니 “잠이 안 온다”며 정 권사가 새벽녘에 마당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안 치우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지 소장은 정 권사에 대해 “믿음의 습관이 깊게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깊은 신앙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가장 가까운 남편이 바라본 정애리 권사다.

정애리 권사는 1960년 출생해 1978년 KBS신인탤런트 모집에 특선으로 뽑혀 연예인으로 데뷔했다. 35년간 수십편의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아우르며 활동했고 백상예술연기상, MBS방송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서울연극제 최우수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에세이집 <사람은 버리는 게 아니잖아요>와 2013년 2월에 <축복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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