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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담임목사로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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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 담임목사로서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 오대희
  • 승인 2013.02.22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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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차고도 넘치는 은혜, 열두광주리교회 오대희 목사 칼럼

오대희 목사(열두광주리교회 담임, 본지 칼럼니스트)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러면서 내게 왜 당신은 기뻐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에게는 아버지가 된다는 기쁨보다 아버지로서의 강한 책임감이 나를 더 크게 누르고 있었다. 나뿐만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한 많은 가장들에게서 그 모습을 보아 왔다.

교회를 개척하고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담임목사가 된 지 일 년이 된 것이다. 이전에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참 많은 기도와 스스로의 사색을 통한 묵상과 좌절을 경험하였고 작은 희망을 따라 계속 걸어온 시간이었다. 새로운 교회를 세워간다는 기쁨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기쁨도 크지만 담임이라는 책임감과 압박감이 강하게 누르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교회를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가?
부교역자 때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소하면서도 중요한 첫 관문이 바로 목회경영이었다.
목회나 교회에 경영이라는 말을 붙이면 왠지 세속적인 느낌이 들고 거룩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그러나 경영이라는 말 자체를 두고 보면 ‘사람과 자원을 활용하여 조직을 이끌어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가정이나 교회 그 어디에도 필요한 것이 당연한 것이다.

목회경영에 대해서는 신학교에서도 배운바가 없고 부교역자시절에도 경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말씀을 잘 전하고 심방과 양육을 통한 목양사역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다가온 첫 번째 변화였다. 담임목사는 무한책임자라는 말이 현실로 느껴졌고 교회 운영에 필요한 재정과 새롭게 시작할 동역자를 찾는 그 모든 일들이 목회경영이었다. 신학교에서 아니면 부교역자 시절에 교회 전체를 경영하거나 운영하는 법에 대한 최소한의 학습과 훈련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앞으로 한 동안 이 문제는 담임목사로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가 될 것 같다.

이상실현에 대한 도전과 고뇌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이 없었다면 이 길에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크지 않더라도 영향력이 있지 않더라도 새로운 교회와 목회에 대한 꿈 때문에 개척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일년은 내가 꿈꾸는 교회에 대한 이상실현은 가능할 것에 대한 도전과 좌절과 고뇌 그리고 도전의 시간이었다.

교회는 조직체이면서 동시에 생명체이다. 가정의 요소와 조직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실현하고 싶은 공동체는 가정같은 교회이다. 사랑이 교회의 핵심이 되고 건강한 가정에서 보이는 역동적인 사랑의 모습들이 나타나 세상에서 힘들게 살다가도 집에 와서 행복과 쉼과 능력을 경험하는 허물없는 큰 영적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다.

우리 가정은 나름대로 노력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 왔다.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 좋은 아들, 좋은 형제로서의 모습들을 만들어왔고, 교회에서 그 모습들을 이루고자 했었다. 그러나 담임목사라는 직책은 또다른 변수였다. 대표성이 주는 상징성의 파워가 컸다. 대표성을 유지하면서 친밀감을 갖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 모델을 만나지 못했다. 대표성이 강조되면서 스스로의 고립을 경험하게 되고, 가족처럼 유대관계를 강화하고자 할 때는 설명하기 힘든 장벽들을 만나게 된다.

부교역자시절에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허물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도들과의 친근함, 연약함을 그대로 보임으로 함께 하는 공감형성 등이 큰 무기였는데, 대표성을 갖는 순간 이런 것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계속 등을 보여도 괜찮을까? 아니면 더 가리고 감추고 상징적인 대표성만 부각해야 하나? 가정같은 교회에서 이 둘 사이의 적절함은 어디에 있을까?

고립의 시간
우리교회가 큰 공동체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대표성을 갖는다는 것은 상당히 나 자신을 위축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되며 기쁠 일보다 미래에 대한 대책을 간구해야 할 시간들이 많아진다.

아버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아버지는 늘 완벽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가정에서 가장의 자리를 고립시키듯이 담임목사의 자리도 그렇게 고립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책임감만큼 마음의 여유도 사라졌다.

한때, 상담사역은 나의 목회에 큰 장점 중 하나였다. 다윗의 아둘람 굴처럼 많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에게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왜 담임목사님들은 상담을 잘하지 못할까? 예전에 내가 물었던 질문을 이제는 나 자신에게 해야 하며, 이 변화의 시기를 지나 문무를 활용할 수 있는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는 위로자가 될 수 없는가? 상담 사역자는 대표성을 가진 리더는 될 수 없는가? 이 둘의 균형점은 또 어디일까?

잃으면 잃으리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그림동화가 있다. 나무는 소년에 모든 것을 다 주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러나 소년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나고자 할 때 자신의 몸을 줄 때 나무의 느낌은 이러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어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할 수 있다면 다 주는 것, 그래서 행복을 얻는 것, 그러나 그것이 정말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등등이다.

교회사역을 하면서 성도에 대해 나만큼 여유(?) 부리는 담임목사도 없을 것 같다. 나는 교회의 성장과 부흥보다 성도 개개인의 행복을 먼저 추구하겠다고 결단했다. 그들이 나의 곁을 떠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을 위한 필요한 과정이라면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개척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얼마나 무모하며 위험한 생각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이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분리됨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면서 경험한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 엄마의 자궁에서 나오면서 엄마와 떨어질 때 느끼는 아기의 첫 불안함. 이것이 이별에 대한, 헤어짐에 대한 불안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개척교회에서 성도 한 사람의 소중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과 반응이 담임목회자에게 주는 영향과 의미가 얼마나 큰지는 작은 교회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이라면 정말 공감할 것이다.

불면 날아갈까? 혹시나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이 느낌은 마치 씨를 뿌려 놓고 싹이 제대로 내릴까를 걱정하며 매일의 날씨를 살피는 농부의 마음이다. 빨리 자라 큰 나무가 되어 뿌리가 견고해서 웬만한 강풍에도 흔들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싹이 막 올라온 모판의 새싹은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교회를 떠난다는 말을 할까 솔직히 매일 매일 두렵다. 한번씩 우리교회 성도들에게 오는 메일을 보면 깜짝 놀란다. 제목이 ‘목사님...’ 이 제목은 나를 얼마나 위축시키는지 모른다. 다행이 교회 용품 파는 곳에서 온 스팸메일이었다. 그런데 성도들 이름은 비슷한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목회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그들이 떠날까에 대한 노심초사의 마음은 나로 하여금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성도들의 이동이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많은 성도들에게 싸여서 내가 맡은 한 부분만 담당하던 부교역자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목회의 성공은 성도가 많아지는 것도 포함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나에게 목회성공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더 잘 의뢰했는가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혜, 또 기다려지는 은혜
부교역자 시절에는 목회와 교회에 대해서 강의도 잘 했다. 교회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다. 그러나 지금 담임목사로서 일 년을 보낸 나에게 목회란 ‘알 수 없음’이다.

우리의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일 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신 은혜의 시간들이었다. 나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미성숙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셨다. 이 은혜들을 생각하면 감사가 밀려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은혜들을 거둬 가시면 어떻게 될까라는 믿음 없음에 대한 염려가 잠시 들어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이 후에도 더 강력한 은혜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내가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시간들이었다. 하나님께 무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요즘 새벽잠이 없어졌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아니면 생각이 많아서 일까? 새벽에 기도하고 혼자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 년을 지나오면서 머릿속에 정리되지 않은 이것 저것들을 그냥 적어본다. 그리고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기다리며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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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차고도 넘치는 은혜, 열두광주리교회(http://www.12baskets.or.kr) 담임 오대희 목사는 목회자가 많이 배출된 믿음의 뿌리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자랐다.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사회복지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부했다. 서울 대길교회(담임:박현식목사)와 대전 새로남교회(담임:오정호목사)에서 사역을 했고 프리셉트성경연구원(대표:김경섭목사)에서 편집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열두광주리교회 개척이야기>(해피데이),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첫 설교 준비하기>, <커플들을 위한 100일 큐티>(이상 생명의 말씀사)와 <큐티 합시다>, <나의 사랑하는 성경>(이상 프리셉트)등이 있다. 본지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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